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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문학의 인프라> 문화 인프라로서의 시낭송의 가능성과 문제점/백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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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3,553회 작성일 04-01-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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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프라로서의 시낭송의 가능성과 문제점


백 인 덕
(시인. 한양대 강사)




1. 들머리
전 지구적인 축제와 함께 문화의 세기가 개막되었다. 어느덧 3년여의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말이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흥분과 열광이 가라앉자마자 과연 지금이 ‘문화의 세기’, 다시 말해 ‘문화’가 삶의 중심적인 ‘가치’로 자리잡았는가에 대한 격렬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세계는 지금 문화 융합을 통한 상호이해를 넓혀가기는커녕, 알 수 없는 증오에 더욱 휩싸여 대규모 전쟁의 목전에 와 있고, 국내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세대간의 문화적 충돌 내지는 갈등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최소한 우리에게 두 방향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하나는 이른바 매스미디어, 주류 대중매체들이 지난 세기말 그토록 떠들어댔던 ‘문화’가 그 개념이나 용어 사용에 있어서 인문학, 혹은 문학계에서 생각하는 ‘문화’와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다. 그 이면에는 대중을 배경으로 한 매체들의 공세적 논의에 상대적으로 대중으로부터 유리되었다고 생각하는 문학계의 심리적 위축이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인문학, 혹은 문학의 담당자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미래지향적 ‘문화관’을 확고하게 정립하지 못 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대다수는 도래한 대중사회에서 주변인이나 아웃사이더에 머물며 엘리트적 문화관을 계속 유지하기를 내심 갈망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앞에서 보인 심리적 위축이나 소극적 대응 태도로 인해 ‘문화’ 자체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발언권을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 시점에 봉착해 있다는 점이다. 논의의 범위를 좁혀 시를 예로 들어보면, ‘시의 위기’나 ‘시의 죽음’에 관련한 논의가 매우 심도 있게 진행되었고, 그 위기감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시인’ 이외의 계층에서는 아무도 그 위기감을 느끼지 못 하고 있다. 왜냐하면 시는 여전히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대중적 주목을 끌 수 있는 이색 시인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한 축으로서의 시의 기능이나 역할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않은 채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이 시점에서 ‘문화’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그것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며, ‘문화’가 일정한 유․무형의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하면서 일상적인 ‘삶’ 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아니 일상적 생활 자체가 ‘문화’라는 큰 ‘장(場)’을 형성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번 특집의 기획 의도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2. 오늘의 시 : ‘위기’와 ‘기회’의 겹침
시의 위기는 넓게는 인문학의 위기, 나아가 활자문화 전체의 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상 매체의 약진과 그로 인한 감수성의 변화는 비단 시 분야에서만 긴장과 갈등을 빚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위기가 두드러지게 보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논의의 장을 달리해서 다룰 문제이므로 차후로 미루기로 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시의 위기는 다름 아닌 시 읽기의 위기라는 점이다. 이는 달리 말해 시 쓰기의 위기는 없다는 것이다. 창작의 과정은 지금도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고, 그 환경은 오히려 낳아졌다고까지 할 수 있다. 시인이 고독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믿는다면, 대중사회보다 개인이 더 고독해질 수 있는 사회가 언제 존재했었던가. 대중사회에서 개인은 파편화 된 고독한 편린에 불과하지 않는가. 또한 시인이 외로운 방랑자라고 믿는다면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서 유목민처럼 유랑하는 것보다 더 황량하고 쓸쓸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또한 대중사회가 견인해온 문화민주주의라는 미덕에 힘입어 이젠 누구나 시를 읽는 데 머무르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의 시를 쓰고, 발표할 수 있는 이런 자유로운 시대가 언제 있었던가. 따라서 지금의 시의 위기는 ‘시 읽기’의 위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의 위기는 결국 독자가 시를 외면한다는 데 있고, 외면의 핵심은 시가 재미없다는 데 있다. 물론 시와 다른 오락물들의 재미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독자들의 경우, 시를 읽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시를 외면하는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시가 말하기의 한 예술적 형태라는 점을 인정할 때 소통의 부재는 재고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시를 통한 소통의 부재 내지는 곤란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다각도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제도로서의 시 자체의 문제, 문학 교육의 문제, 시인들의 인식의 문제 등등 여기에는 가능한 모든 층위에서의 점검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읽을거리로서의 시가 그 재미를 다했다면 그것을 보완하고 새롭게 갱신시켜 이미 우리 눈앞에 놓여있는 시들에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고자 한다.
시를 독자와 가깝게 하려는 시도는 시의 역사와 그 맥락을 함께한다. 거칠게 인용해보자면, ‘시가 낭송이나 실연(實演)되는 경우-시가 어떤 구체적 환경 속에 놓여 있었을 때,-수용자들은 보다 가까이 시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가 창작된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그 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지를 확연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책을 통해 문자적으로 전승되자, 시는 포괄했던 많은 것을 읽어버리게 되었다. (…) 이른바 시는 문자화되면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전문적으로 아는 소수에게 속하게 되었다. 그것은 대중적인 장르였던 시의 역사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시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게된다.’(김양희, <매체의 변화와 시 체험의 변화>, ≪문화변동과 인간 그리고 문화연구≫, 깊은샘, 2001, p 109.)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한 방향은 시를 노래 등에 실어 전파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들 수 있다. 또한 최근에는 시의 이미지를 여타 영상 장르의 이미지와 결합시킴으로써 그 효용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자칫하면 그 과정에서 시의 의미나 주제 등을 탈각시키거나 희석하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고유성이 불가피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도들은 지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여기서는 논의의 범위를 좁혀 시낭송이라는 시의 전달방식과 관련된 부분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3. 시낭송의 문화적 기반과 역할
시가, 나아가 문학이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구비전승의 전통을 지녔음을 감안한다면 시가 낭송된다는 사실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먼저 시 읽기와 시낭송의 차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요구된다. ‘시낭송’의 사전적 의미는 ‘시를 소리 높여 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너무 소박하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시 읽기’란 글자 그대로 시를 단지 읽는 것을 말한다. 시 읽기는, 소리를 내지 않고 눈으로 읽는 경우와 소리를 내면서 읽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소리를 내어서 시를 읽는 것을 시낭독이라고 한다. 그런데 ‘시낭송’이란 시를 소리내어서 읽되, 시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청중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적 감동이 묻어나게 읽어 시의 음악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말한다.’(송현, <시낭송에 문제 있다>, ≪현대문학≫, 1986, 7월호, p 81.)고 구분해 볼 수 있다.
이처럼 시낭송은 시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방법 중에서 대단히 적극적인 방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낭송은 ‘시’가 정위되는 역사적 변화에 따라 그 위치가 달라져 왔다. 따라서 현대, 다시 말해 오늘의 문화적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시낭송의 가능성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그 첫 번째 단초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 현대사는 일반론적인 역사적 발전과 궤적을 달리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문학사에 있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이미 많은 논의가 심도 깊게 진행되었으므로 여기서는 시의 창작자와 수용자의 기본적인 역할의 변화와 그에 따른 심리적 변화의 한 양상만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문화가 대중적 기호에 의존하는 정도가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현상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다. ‘문화적 대중주의의 개념 가운데는 문화의 주체와 객체를 표나게 구분짓지 않는다는 특성이 포함되어 있다. 즉,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내포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는 한편으로 문화를 소수의 생산자의 손에서 다수의 소비자 계층으로 이동시켰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아니다. 앞 시기의 문화적 특성들과 비교할 때 문화의 민주적 공급과 수혜를 특징으로 하는 대중주의는 큰 의미를 갖는다. 되풀이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문화의 공급 방식이 일방통행식 공급에서 쌍방향식 공급으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대중주의가 가지는 이러한 의미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문화소비자에 불과했던 대중들에게 문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실로 크다. 대중들을 문화의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바꾸어 놓은 대중주의는 현상적으로 문화의 흐름을 역전시켜놓았다.’(박남철, <시낭송의 문화적 기능>, ≪한국언어문화학회≫ 21집, 2002년, p 180.)는 지적은 이러한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시낭송’이 대중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형태(이미지의 장르적 혼융이나 전파력의 확장을 위한 CD, TV, 라디오 같은 타 매체를 이용한 경우)의 시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고려될 수 있다면, 그것은 현대적으로 전환된 시인, 혹은 시낭송자의 낭송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배경에는 시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철저한 자기 인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가 대중사회의 중요한 문화적 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아주 강력한 비판이 대두되었다.
한 예로 ‘80년대에 『접시꽃 당신』과 『홀로서기』 같은 시집들이 100만대의 초베스트 셀러가 된 일을 들 수 있다. 시집은 어느 나라에서나,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든 문화적으로 대국이든, 그러니까 가장 많이 책을 발행하는 미국에서나 가장 독서를 많이 한다는 일본 또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높은 프랑스에서나, 결코 베스트 셀러가 된 적도 없고 될 수도 없는 장르이다. 시는 대중적으로 유행되기를 가장 완강히 거부하는 예술이고 그만큼 시장 논리에 굴복하지 않으며 일반 독자들의 소비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까다로운 창작이기 때문이다.’(김병익, <문학은 이제 어떻게 생산․소비되는가>,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문학과지성사, 1997, pp 72-73,) 라는 견해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처럼 시낭송이 시의 독자들을 향한 하나의 적극적 소통방식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적 여건 내지는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문화적 흐름의 변화나 시인들의 인식의 변화 못지않게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시낭송 전문가들의 부재이다. 다시 말해 인적 요소가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기존의 시낭송의 방식, 이를 테면, 시인 자신이 직접 낭송하거나 성우나 탤런트, 또는 독자가 시를 낭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앞서 지적된 것처럼 시의 의미와 감동을 제대로 살릴 줄 아는 전문가 집단의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되었던 바, ‘ 마지막으로 들고 싶은 것은 시낭송은 전문 시낭송자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문 시낭송자가 많이 육성, 배출되어야겠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시낭송 전문가는 시낭송 선진국이라 할 프랑스에서도 그 숫자를 헤아릴 정도로 많지 않다고 하는데 우선 시를 잘 안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라도 전문적인 시낭송자가 많이 나와서 시는 시인이 짓고 낭송은 낭송 전문가라는 토양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윤성근 , < 시낭송 실태 분석과 그 전망>, ≪문학예술≫, 1986, 9월호)는 지적이 시낭송가의 전문적 육성이 얼마나 등한시되어 왔는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열악한 사회, 문화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시낭송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이른바 시의 위기의 극복을 모색하거나 소통의 부재라는 문화적 문제의 해결에 한 가닥 기대를 거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것은 시낭송이 말 그대로의 시 읽기보다는 현재의 문화적 상황에 걸 맞는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낭송은 새롭게 대두된 시민사회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는 이윽고 시민사회, 이를 문화적으로 번역한다면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사회로 전화했다. 시낭송은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획일적인 읽기를 대체할 다양한 듣기, 또는 대화하기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둘째, 시낭송은 인접문화와의 교섭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시 읽기는 공간에 대한 배려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시낭송은 야콥슨적 의미의 ‘접촉’을 심화하기 위하여 단순히 시의 주제나 의미의 강조가 아닌 그 시가 낭송되고, 감상되는 공간에 대한 배려를 불가피하게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는 공간을 주요한 매재로 하는 여타 예술 장르와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가능케 한다.
셋째. 시낭송은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든 문학의 독자를 창출할 수 있다. 듣기를 통한 감동이 읽기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대중은 슈퍼 개인으로서 매우 개성적이면서도 정보의 교환에 있어서 개방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시작품을 계속해서 읽게 하는 젓보다 시낭송의 이라는 방식을 통한 감동의 전파가 보다 효과적인 적극적 독자의 창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시낭송의 현황과 문제점
시에 있어서 낭송이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문화적 상황뿐만 아니라 발생론적 기원에 있어서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주 작은 통계를 확인하는 데서도 곧 드러난다.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집계한 문학 행사 현황이 그것이다. 각종 문학관련 행사 중에서 ‘문학 강연이 건수로는 53건, 비율 23.5%를 차지하였고, 뒤이어 심포지엄 및 세미나가 건수 42건 18.7%를 점유하였고, 시낭송 회가 건수 37건, 비율 16.4%로 세 번째로 비중이 높은 문학관련 행사로 집계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문화적 내용물, 다시 말해 콘텐츠의 유통과 소비가 대부분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경로를 채택하고 있음에 비추어보아 이른바 오프라인 상의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 문학 관련 강연이나 세미나보다는 시낭송회 등이 소규모로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낭송의 현황에 관해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오프라인에서의 시낭송을 주도하는 것은 전문적인 시 관련 잡지와 시인 단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낭송을 CD로 굽거나, 문학 잡지에 지상 연재하거나, 인터넷 잡지인 웹진을 통해 알리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러한 경우에는 기타 사회 유관 단체와 결합하여 정기적인 시낭송을 지속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1) 시의숨결시낭송회:문학과지성사-금호재단 주최 시낭송회

'시의 숨결'을 되찾자. 일반인은 물론 독서대중으로부터도 점점 멀어지고 있는 한국시(詩)의 부흥을 위한 문학계의 움직임이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일고 있다. 최근 계획되고 있는 일련의 규모와 깊이를 갖춘 낭송회 개최 움직임은 문학인 공통의 위기의식과 자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현대시가 노래로서의 성격과 기능을 상실한 지가 오래 됐습니다. '인류와 함께 하는 가장 오래된 문화양식'인 시의 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이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달부터 '시의 숨결'이란 이름으로 매월 낭송회를 열기로 한 문학과지성사 대표 채호기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의 숨결'은 매월 세 번째 월요일 저녁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02_720_5114) 뮤직홀에서 문학과지성사 및 금호문화재단, 우경문화재단의 공동 주최로 열린다. 2000년 4월 황동규 시인을 시작으로, 정현종 오규원 최하림 김명인 김광규 김혜순 김정환 황지우 이성복 시인 등이 차례로 내년 1월까지 낭송회를 열기로 확정됐다.

이 낭송회는 시인의 자작시낭송과 평론가와의 대담, 시인의 지인을 중심으로 타 장르 공연예술인 초청공연, 시인이 토로하는 시와 삶에 대한 이야기, 전문 낭송가와 연극배우 동료시인 및 일반독자의 시낭송, 관객과의 대화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꾸며진다. 특히 문학과지성사는 행사현장의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녹화해 후세에 한국문학의 자료로 전하는 한편 테이프를 일반에 실비로 판매할 계획이다.

채호기 시인은 "'시의 숨결'은 시인의 육성과 실제 모습을 통해 날것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시와 독자가 직접적으로 만나는 축제의 자리가 될 것"이라며 "시를 생활에 되돌려주고 다른 문화 분야와의 소통을 위한 통로 마련을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지는 우리 시문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시인은 물론 출판사와 공연관계자, 문화운동가 내지는 문학 애호가와 언론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는 달리 온라인, 이른바 통신상에서의 시낭송은 기존 시인들보다는 시를 좋아하는 동호인의 형태로 운영되면서 나름대로의 프로그램과 시 읽기, 시 생각하기를 기획하는 방향으로 전개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모임과 활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2) 시사랑문화인협회 시낭송회, http://www.poemq.or.kr/sisarang/주요 활동 상황 | 시사랑 문화인 협의회 (2000년 7월 현재)


시낭송 페스티발
목적 : 민족정신과 얼의 정화인 우리 시를 일반 대중이 생활 속에서 가까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
방법 : 매회 10∼15명의 시인들을 섭외하여 참가 시인들이 자작시를 직접 낭송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되, 공연 당일 일반 방청객 가운데에서도 자발적 의사가 있는 경우 3∼4명을 참가시킴.

행사 내역
◦서울 시낭송사랑회 제2회 시낭송회
일시 : 1999. 6. 5(토), 18:30
장소 :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낭송시인 : 김명인, 최영철, 나희덕, 이성선, 박형준, 오탁번, 김정란, 장석남, 유안진, 원구식, 오세영, 최정례, 고재종, 정호승, 위승희

◦진해 시사랑 청소년 시낭송 대회
일시 : 1999. 9. 11(토), 16:00
장소 : 진해 문화의집 문화관람관
심사 : 이성선(시인), 김종회(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광주 ≪시와사람≫ 시회 시연(2) : 시와 음악의 밤
일시 : 1999. 10. 29(금), 19:00
장소 : 드맹아트홀
낭송시인 : 최동호, 서정춘, 최창균, 김용재, 윤석주, 조용환, 이수행, 원구식, 김성오, 정일근, 원은희, 정영주, 박태일, 안도현, 박주택, 박찬, 서종규, 이미숙, 김동찬, 위승희

◦경남 시사랑문화인협의회 시낭송 : 1999년 크리스마스 시낭송회
일시 : 1999. 12. 20, 19:00
장소 : 마산 양덕성당

◦제3회 서울 시사랑 시낭송 페스티발
일시 : 2000. 5. 3, 오후 7시
장소 : 선재아트센터(안국동)
낭송시인 : 정진규, 유안진, 허형만, 박세희, 원구식, 김남조, 신달자, 나태주, 문정희, 박주택, 이성선, 김영탁, 김행숙, 안덕상, 정끝별(낭송順)

◦제4회 시사랑 시낭송 페스티발
일시 : 2000년 9월 2일(토) 오후 4시-9시30분
주최 : (사) 시사랑문화인협의회, 두루뫼 박물관
장소 :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두루뫼 박물관(031-958-6101/7433)
협찬 : 농민신문사

행사 내용
∙무속극 : 오우열(무속인, 시인), 이지묵(무속인)
∙살풀이춤 : 이철진(무용가, 명지대, 우리춤 연구회 대표)
∙시낭송 : 유안진, 성찬경, 이근배, 박이도, 허영자, 김종해, 이수익, 이가림, 이건청, 김정웅, 한영옥, 최문자, 양만규, 김부희, 정끝별, 성희모, 권혁웅, 신해욱
∙낭송시 초대 : 한인수/고두심(탤런트)
∙승무 공연 : 박재희(승무 전수자, 청주대 교수)
∙한국의 가곡 : 박윤진(소프라노), 하재완(테너), 한상식(바리톤)
∙판소리 공연 : 오양심(국악인, 시인), 김승덕(국악인)
∙지구 사랑 노래 : 이기영(환경 노래 운동가, 호서대 교수)

한편 앞장에서 지적되었던 시낭송의 활성화를 위한 인적 요소, 다시 말해 시낭송 전문가의 육성을 위한 움직임 또한 시작되고 있어 그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월간 ≪현대시≫ 등이 시낭송가를 정식으로 데뷔시키고 있으며, 1991년부터 시낭송 대회를 개최해 온 <재능시낭송협회>의 경우, 시낭송가의 심사 원칙까지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예3) 재능시낭송협회 : http://www.jei-sisarang.org/contest/m1.asp

5. 심사 기준

가. 시의 선택
∙문학적인 격조와 수준이 잇는 시의 선택
∙진부하고 유행성이 있는 시보다는 참신하고 새로운 시의 발굴
∙낭송자의 연령, 성별, 음성에 어울리는 시 선택
∙낭송에 적합한 길이의 시

나. 시의 이해
∙시의 의미를 이해하여 시어의 리듬을 잘 살리고 있는가?
∙시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표현, 발성, 해석을 담고 있는가?
∙적당한 감정 처리(힘참, 고요함, 평화로움, 기쁨, 그리움, 잔잔함 등)를 하고 있는가?

다. 시의 낭송 Skill
∙시 전문을 정확히 암송하는가?
∙적절한 낭송 속도(강·약 조절)로 시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가?
∙정확한 발음(음의 고저, 장단, 경음과 격음 등)으로 시의 뜻이 잘 전달되는가?
∙적절한 호흡 조절 및 리듬 호흡을 통해 시의 맛을 살리고 있는가?
∙낭송자의 음성과 음색은 적당한가?
(감정을 잘 살리는지, 음성이 탁하거나 가늘지는 않은지, 울림의 폭이 있는지, 목에서 내지는 않는지 등)
∙마이크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가?

라. 태도
∙자연스럽고 당당한가?
∙무대 매너 및 예의가 있는가? (자세, 의상, 무대 오르내리기, 인사법, 시선처리 등)
∙손짓과 몸짓은 자연스러운가? (과잉·과소 표현 지양)
∙청중을 이끄는 힘이 있는가?

이밖에도 시낭송과 관련하여 주목을 요하는 것은 지역, 또는 동인들로 이루어진 정기적인 시낭송 관련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통계상에는 잘 잡히지 않으나 이러한 소규모 모임들이 문화 인프라로서의 시낭송의 가능성을 문제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고 할 수 있다.

5. 전망과 발전적 대안을 위하여
시는 정말 위기에 처해 있는가, 또는 그 위기는 시의 내적인 요소에서 비롯되었는가 아니면 순전히 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가 하는 등등의 문제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그다지 적절치 못 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삶의 조건들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자기홍보와 소통의 열망에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서 시 또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아가 오늘날의 문화적 변화의 핵심에서 문학이 한 발짝 비켜 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생가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시낭송이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는 이른바 팬시적 상품의 생산이 아닌 이미 그 가치를 인정받은 기존의 시들을 적극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한 방법임이 분명한 것으로 인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체계적인 통계 조사나 학적 논문 하나 없는 것은 우리 문화계의 인프라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되살려 시낭송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생각해본다면,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시인들의 인식적 전환이 우선된다고 본다. 그것은 몇 사람이냐, 어느 공간이냐를 떠나 얼마냐 시에 귀 기울여주느냐에 따라 자신의 영혼의 비밀을 꺼내어 놓을 수 있느냐는 용기에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다. 시인과 시인들, 결국 시인들만을 위한 시낭송이야말로 하루 빨리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독자가 들어설 빈틈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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