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9호 <문학의 인프라> 문화센터의 문학강좌를 듣고/이현명
페이지 정보

본문
일상의 공간 속에서 꿈꿨던 작은 여행
이 현 명
(대학생)
늘 내가 머무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편안하지만, 그 편안함이 때로는 권태롭기까지 한 일상적인 공간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공간으로의 모험은, 그 모험이 크던 작던지 간에 어느 누구에게라도 설레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그 권태로운 편안함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사람에게는 일상적인 공간을 탈출하여,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큰 의미임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동안 바캉스철이라 해서 산이고 바다고 찾아가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찌는 듯한 더위가 권태로운 일상마저 녹여버리는 수준에 이르는 한 여름이 되면, 기다리는 것은 바가지요금과 고생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바다로 계곡으로 죽어라 찾아가는 까닭은 고생을 해서라도 얻고 싶은 권태로움의 탈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권태로운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바다로 산으로 더러는 해외로 발을 돌려도, 그곳은 어디까지나 여행지일 따름이다. 결국은 또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를 더 권태롭게 만드는 사실일는지도 모른다.
작년 내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길고 지루했다. 매일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사람들과 고만고만한 이야기를 나누고, 비슷한 메뉴로 점심을 해결했으며, 저녁 역시 같았다. 나를 언제나 뜨겁게 만들던 ‘문학’이란 글자도 계속되는 더위로 지쳐있던 내게는 또 하나의 숨가쁜 더위일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탈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며칠 짬을 내서 바다라도 보고 온다면 녹아버릴 권태로움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도 같았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딱히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일들에 치여서 나 스스로 나로 하여금 며칠 아무 것도 안하고 짬을 내서 바다를 보러 가는 일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쩌면 작년 권태로운 여름 안에서 나누었던 후배와의 짧은 통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의미한 하루하루에 녹아버려 이렇게 머리를 싸매어 가며 글을 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권태로운 여름 안에서 권태로운 여름날 저녁, 후배는 내게 ‘우리가 옹호한 작가’라는 이름의 문화센터 강좌를 듣지 않겠냐고 했다. 이 강좌가 열린다는 소식은 이미 그 전에 알았고, 쉽게 접할 수 없는 소위 신세대작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강좌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루한 일상 가운데 잠시 귀를 솔깃하게 만든 일 정도였을 뿐이었다. 더구나 부끄럽게도 그때까지 나는 학교 이외에 공간에서, 학교 이외의 사람들과 문학을 공부한 적이 없었으며, 문화센터는 시간 많은 아줌마들이 뜨개질이나 꽃꽂이, 서예 정도를 배우는 공간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어찌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운 공기에 찌든 방안에서, 할 일도 없이 잔뜩 짜증이 나 있던 내게 후배의 제안은 신선한 바람처럼 들려왔고, 두말 없이 그러겠노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신촌에 있는 아담한 문화센터까지 신청한 ‘우리가 옹호한 작가’라는 문학강좌를 듣기 위해선 한 시간이 조금 모자란 시간을 전철을 타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문학’은 내게 뜨거운 열정을 주는 존재였지만, 똑같은 일상에 치어 생각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느낌으로 가득차 있던 내게 있어서의 문학은 무거운 더위였다. 더구나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문학을 매개로 두 달 가까이 연결고리를 잇는다는 것은 한 시간이 모자란 시간만큼의 무게는 결코 아니며, 그 기간 동안 무얼 얻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노력 역시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신촌역에 내려 아담한 문화센터 안에 들어선 순간 묘한 긴장감이 몸 안에 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한 긴장감은 낯선 공간이 주는 긴장감일 수도 있었지만, 단순히 낯선 공간에 들어섰기 때문이 아닌 내가 들어선 장소가, 문화센터라는 특수한 공간이기 때문에 오는 긴장감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사소한 일로 하여 신촌에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말 그대로 사소한 일이었지, 뚜렷한 목적으로 찾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두 달 가까이 일주일에 한 번은, 신촌역에 내려 바로 이 문화센터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녹아내리는 일상에 흐느적거리는 내게 이런 긴장감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조금 모자란 스무 명 정도의 수강생들 가운데 ‘국문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3명 남짓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알 수 없는 책임감으로까지 바뀌고 있었다. 앞에서 조금 언급하긴 했지만 내가 듣던 강좌는 ‘우리가 옹호한 작가’라는 이름의 문학강좌였다. ‘비평과 전망’의 편집위원들로 구성된 젊은 비평가 선생님들이 주목하고 있는 신세대 작가의 작품을 공부하는 강좌였는데 그 때문에, 어딜 가도 국문학을 전공하는 문학도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닌다고 생각해 오던 내가 다른 것도 아닌 문학강좌를 듣는 이상은 다른 수강생들보다 한번 더 고민하고, 한 번 더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책임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나의 책임감이 순전히 내 오만과 자만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채 스무 명이 되지 않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첫 강의 때 강의를 담당한 선생님이 ‘누가 이 강좌를 들을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라는 말의 의미를 씁쓸하게 웃을 수 있을 만큼 모두들 문학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있었고, 현재 문학이 처해 있는 난관에 대해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오만과 자만은 여지없이 초라하게 깨져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초라하게 깨져버린 문학도로서의 오만한 책임감이 나로 하여금 그 어떤 속상함을 자아내지는 못 했다. 아니 속상하기는커녕 속이 시원하기까지 했다. 그 동안 녹아질 듯 흐물흐물한 나의 하루하루 속에서 ‘문학’이란 두 글자는 늦은 밤 학교 앞 술집에서 흥건히 취하고 난 다음에야 입에 올릴 수 있는 것일 따름이었고, ‘문학도’란 보기 좋은 껍데기는 지치고 겁먹은 내 속마음을 감출 수 있는 그럴 듯한 방어막이었다. 나는 지쳐있었고, 문학에 대한 내 열정도 지쳐 있었지만, 그들의 열의는 뜨거운 나머지 시원하게 나를 때렸고, 그 안에서 작아진 나 역시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수강생들의 직업과 나이는 천차만별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는 30대 후반의 노총각 선생님,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는 30대 초반의 주부, 외국계 회사에 다닌다는 20대 후반의 언니를 비롯하여,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 언젠가는 멋진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던 학생 등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고만고만한 이야깃거리로 웃고 울던 사람들이 아닌, 어쩌면 단 한번의 우연한 마주침도 없을 법한 사람들, 우연한 마주침이 있었을지라도 서로 무관심하게 각자의 방향을 향해서 걸어갔을 사람들이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은 오로지 ‘문학’을 매개로 한 강의실에 모여 거침없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강의는 일주일에 한번 늦은 저녁에 이루어졌다. 대개는 2시간 정도면 마무리가 되었지만 어떠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강의를 시작한 지 3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날 때도 있었다. 강좌 자체가 크게 이름을 날리고 있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문단에서 크게 위치를 차지하지 못 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도 모두 우리의 몫이었다. 특히 작품의 이해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정답도 없었다. 물론 문학작품 자체가 그 어떤 분명한 정답을 정해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이 논의되었던 작가와 작품에는 다수가 공감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좋던 싫던 간에 정설처럼 굳어지곤 한다. 특히 학교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수업이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던지 상관없이, 답이 존재할 수밖에는 없었고, 그 틀 안에 나의 생각을 끼워 맞추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센터 안에서 두 달 가까이 들었던 강좌 안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강생들은 각자 다른 공간 속에서 다른 방식의 삶으로 한 주를 채우고 ‘문학’이란 두 글자를 알아가기 위해서,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모인다. 그 안에서는 누구도 답이나 경쟁을 요구하지도 않고, 또한 그러길 바라는 사람도 없다. 젊은 작가가 내놓은 한 작품을 가지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하지 않았다. 굳이 작품을 쪼개고, 파고들지 않아도, 답을 찾기 위해서 머리를 동여매지 않아도 되었다. 눈앞에 보이는 결과가 아닌 한 작품을 통한 다른 사람과의 소통, 그리고 나아가서 내 안으로의 성장이 매주 한번의 만남이 주는 결과였다. 이러한 만남이 내게는 단순히 우연한 기회에 문화센터를 찾아 두 달 가까이 강좌를 들었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늘 내가 속해 있는 공간에서 나의 일상은 무언가를 나누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일어날 시간과 생활하는 시간, 그리고 잠잘 시간을 나누고, 아침에 해야 할 일을 나누고 저녁에 해야 할 일을 나누고, 오늘 만날 사람과 내일 만날 사람,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을 나눈다. 해야 할 이야기와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나누고, 웃어야 할 순간과 울어야 할 순간을 나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나누고, 정답과 오답을 나누기 위해서 애썼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은 너무도 익숙했고, 편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에 지쳤고, 그러한 나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아니 나 스스로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없다고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두 달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매주 한 번, 문화센터 안에서 ‘우리가 옹호한 작가’라는 강좌를 통한 시간은, 그 시간 가운데 문학이라는 공통 분모 속에서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그 어떠한 나누기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 만남은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괴로워했던 내게는 하나의 탈출구였고, 그 어떤 여행을 간 것보다 성공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럴 수 있었던 것도 문화센터라는 공간이 주는 특수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화센터를 찾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배우로 왔든지 간에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스스로의 자기 만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센터라는 공간은 권태로운 일상 그 안에서 찌든 자신을 벗어나, 스스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자기 만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특수한 공간인 것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후배의 전화가 걸려온 그날, 늦은 밤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더웠던 그 시간, 새삼스러울 것 없는 후배의 제안이 신선하게만 들려온 것도, 어렴풋이나마 그를 통해 권태로운 일상, 그 안에서 되는 대로 지내는 하루하루를 벗어날 수 있음을 예감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달이 조금 모자란 시간 동안 문화센터에서 ‘문학’을 통해 만났던 사람들과, 또한 그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내겐 일상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탈출구였다. 그러나 단순히 권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탈출구를 넘어선, 권태로운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지 않고 그 공간 안에서 얻은 탈출구였기 때문에, 나 스스로 그 공간 안에 있는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무덥던 지난 해 그 시간, 그때를 나는 일상의 공간 속에서 꿈꿨던 작은 여행의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이전글9호 <문학의 인프라> 문화센터의 문학강좌를 듣고/한아름 04.01.04
- 다음글9호 <문학의 인프라> 시낭송회 견문록/엄경희 04.01.0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