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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공연장의 인프라> 국립극장의 냉수마찰/임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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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970회 작성일 04-01-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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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냉수마찰
―공공극장의 현황과 21세기 과제―
임 준 서
(공연과미디어연구소 간사)


1. 들어가며
극장(劇場)은 문화의 혈관이다. 부단히 새로운 문화의 피를 생산하여 사회 구석구석으로 실어나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은 문화 인프라의 의미에 가장 잘 부합한다. 이 혈관이 싱싱하고 건강해야만 그 나라 문화의 신진대사 또한 활발해질 수 있다. 혹은 그렇지 못 할 때 극장의 현실은 문화의 동맥경화를 보여주는 증상(症狀)이 되기도 한다. IMF 사태 이래 불거져 나온 공공극장의 민영화 논란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재정자립도가 한 자리 숫자에 머물거나 유료관객이 전무한 등 공공극장의 만성적 골다공증, 부실경영의 책임이 문제된 것이다. 그 결과 2000년을 전후하여 국내 공공극장들은 제각기 구조조정을 통한 운영합리화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국립극장의 변신은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지난 2000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면서 시작된 국립극장의 체질개선 노력은 해를 거듭하면서 여타 공공극장의 운영에 큰 자극제가 되고 있다. 관료 출신이 독점해 오다시피 한 극장장에 전문 예술인을 공개 채용한 것이나, 극장 운영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한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자본주의의 심화와 첨단미디어의 대두로 요약되는 이미지 폭주의 시대에 ‘날것’의 문화가 살아남기 위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쉰 살의 국립극장은 시장(市場)의 혹한에 적응하기 위해 웃통을 벗어부치고 냉수마찰을 시작한 것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최근 국립극장의 변화에 주목하여 그 공과를 살핌으로써 우리 공공극장의 건강 상태를 종합 검진해 보고자 한다. 국립극장의 사례를 조명하기에 앞서 우선 국내 공공극장의 전반적인 현황부터 개괄해 보자.

2. 공공극장 현황
공연예술 분야의 인프라는 크게 공연장(극장)과 공연예술단체로 구분될 수 있다. 전자는 물적 기반으로서, 후자는 인적(人的) 기반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공연장은 운영방식에 따라 다시 공공극장과 민간극장으로 나뉜다. 공공극장이란 ‘운영조직이 국공립이거나 운영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공재원으로 지원받아 운영하는 극장’을 일컫는다. 공연예술단체 또한 같은 기준에 따라 공공단체와 민간단체로 구분되는데, 공공단체의 경우 대부분 공공극장의 전속단체 또는 계약 형태로 부속되어 있다. 공공극장과 단체의 실태에 관한 가장 최근의 신빙성 있는 자료는 2000년 문화부에서 실시한 ‘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이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0년 5월 현재 국내의 극장수는 총 554개로, 이 중 공공극장은 269개이다. 그리고 공연예술단체는 총 1,741개이며, 이 중 공공단체는 174개이다.
국내의 대표적인 공공극장으로는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국악원, 정동극장, 문예진흥원 극장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극장은 현재 책임운영기관, 재단법인, 특별법인 등의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 밖의 공공극장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문예회관이 있다. 2001년 현재 전국에는 110여 개의 문예회관이 세워져 있으며, 46개관이 건립 추진 중인 상태이다. 문예회관은 우리 공공극장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전시행정의 표본이라 할 만한 공간이다. 이는 90년대 들어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짓기 시작한 대규모 공연장들로, 문예회관, 시민회관, 구민회관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문예회관은 명확한 설립목적이나 운영계획 없이 선심행정의 차원에서 들어선 공간인 만큼 시설의 기능보다는 외관에만 치중되어 있다. 나아가 일단 짓고 나면 그뿐, 그 운영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과 예산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전문 공연장으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극장운영 책임자의 자리는 공무원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순환보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우리 공공극장의 고질적인 관료주의 병폐를 온몸으로 증언해 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00년을 전후해 민영화가 추진되면서 여러 공공극장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변화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던 문예회관 또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노력이 요청되는 시점에 서 있다.
한편 공연장 운영의 문제는 공연예술 인력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2000년 현재 국내의 공연예술가 수는 약 3만5천 명이다. 한 해 예술 계통 대학 졸업생 수가 3만여 명에 달하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수치는 국내 공연예술단체의 인력수용이 대단히 제한적임을 시사한다. 공연예술인 중에서도 공공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내의 대표적인 공공 예술단체로는 국립극단,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서울예술단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국립극장이나 예술의 전당 등 공공단체의 전속단체나 상주 계약단체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들 단체에 소속된 예술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음으로써 직업적 전문성을 연마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집행 과정의 경직성과 공익이념의 강조는 또다른 관료주의를 조장하여 과감한 무대실험이나 마케팅 노력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요컨대 공공극장과 단체의 경직된 운영과 낮은 자립기반은 겸직 혹은 이직을 촉발하는 주요 원인이 되며, 이는 다시 공연상품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3. 국립극장의 변모와 그 성과
국립극장은 우리 문화를 대표하는 얼굴이자, 공연예술의 묘목을 키우는 온상이다. 그래서 국립극장의 역사는 곧 우리 공연예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국립극장은 ‘민족예술의 발전과 연극문화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1950년 설립되었다. 구 부민관(府民舘) 건물에서 출범한 국립극장은 세 차례의 이전 끝에 지금의 장충동에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한국전쟁 발발로 대구 문화극장으로 이전했다가 서울 수복 후엔 명동의 시공관에서 활동을 재개했으며, 장충동 시대를 연 것은 1973년의 일이다. 현재 국립극장은 3개의 실내극장과 1개의 야외무대를 갖추고 있다. 1,522석의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454석의 중극장인 달오름극장, 100석의 소극장인 별오름극장, 그리고 600석의 야외극장인 하늘극장이 그것이다.
국립극장은 개관 당시부터 공연예술인들과 국민들의 전폭적인 성원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악랄한 검열과 일본 극장주들의 갈취에 한 맺힌 연극인들에게 공공극장의 건립은 절체절명의 당면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국립극장의 개관은 한민족의 주체성이 깃들인 민족예술을 떳떳하게 감상할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국립극장 개관공연인 <원술랑>공연에 1주일 동안 5만여 명의 관객이 입장한 사실이 이러한 정황을 잘 대변해 준다. 이처럼 국립극장 개관이 갖는 의미에 대해 유민영은 ‘신극운동이 시작된 지 40년 만에 비로소 무대예술이 전용 공연공간을 얻은 점’을 첫째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이렇듯 전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출범했던 국립극장의 진로는 그리 순탄치 못 했다. 국립단체로서 중앙정부의 예산을 받아 운영되는 만큼 통제가 따랐고, 조직체계 또한 전형적인 관료조직의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극장장 자리는 공무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장기적인 발전계획이 부재한 상태에서 극장장의 교체에 따라 운영방침은 이리저리 부유했다. 전속 예술인들은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보장된 자리에 안주한 채 복지부동의 태도에 젖어들었다. 정부의 시책에 맞춰 동원되는 관변단체로서의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관객들은 국립극장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관객의 감소는 결국 재정자립도 추락으로 이어졌고, 국립극장은 뚜렷한 성과 없이 국민세금만 축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국립극장에 대한 대수술이 단행된 것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이다. 공공극장의 제반 문제를 집약적으로 체현하고 있던 국립극장에 대해 정부는 시범사례로 메스를 들게 된 것이다. 특히 97년 구제금융사태를 기화로 사회 전반에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의 요청이 거세어짐에 따라 공공극장의 정비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결국 국립극장은 2000년 문화관광부의 소속기관 직제개편에 따라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책임운영기관이란 중앙정부로부터 민간인 기관장이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위임받아 계약기간 동안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을 뜻한다. 관료제의 경직성으로 인해 마비된 조직에 경영 마인드를 불어넣어 피를 돌게 하려는 고육책이었던 것이다.
국립극장의 변신은 2000년 제30대 극장장으로 연극인 김명곤 씨가 취임함으로써 본격화되었다. 그를 구심점으로 국립극장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립극장’이란 모토 아래 극장 이미지 쇄신, 질 높은 레퍼토리 개발, 관객개발 활성화, 자립기반 구축 등 다각적인 체질개선 노력에 착수하였다. 국립극장 측의 자료를 참고할 때, 책임운영기관 전환 이후 국립극장의 변화는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과감한 구조조정 및 조직개편이다. 145명의 기존 직원수를 75명으로 감축하고, 기존 7개 전속단체 가운데 오페라단, 발레단, 합창단 등 3개 단체를 독립법인화했다. 그리하여 국립극단과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악관현악단의 4개 단체로 전속단체를 개편하였다. 아울러 기구개편을 단행하여 기존의 부서를 행정지원과, 공연운영과, 무대예술과로 나누고 이 체제하에 팀제를 적극 운용하여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이러한 개편은 거대조직으로서의 육중한 몸집을 줄여 ‘작은 조직’의 기능성과 경제성을 최대한 수용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둘째로는 전속단체의 공연활동 활성화이다. 예술감독제를 도입하여 전속단체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최대한 보장한 가운데 공연횟수를 크게 늘렸다. 국립극단의 경우 1999년 총 5편 51회이던 공연횟수가 2002년 11월 현재 8편 69회로 늘어났으며, 국립창극단의 경우 1999년 총 1편 10회 공연에서 2002년엔 5편 60회로 횟수가 증가했다. 국립무용단은 1999년 총 1편 4회 공연을 한 데 비해 2002년엔 4편 22회 공연하였으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경우 1999년 4편 9회 공연에서 2002년엔 5편 14회 공연을 기록하였다. 그 결과 1999년 7개 전속단체의 관람객 수가 44만5천 명이었던 데 비해 2002년엔 4개 단체의 관람객 수가 44만 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로는 극장 이미지 개선을 통한 관객개발을 들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립극장은 특히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아동극 <나 어릴 적에>, 어린이 창극 <토끼와 자라의 용궁여행>, 그리고 ‘남산문화탐방’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에 이르기까지 관객층을 확장시켰다. 아울러 무료공연인 ‘토요문화광장’, ‘열대야 페스티벌’ 등의 프로그램은 중장년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냈다. 이밖에도 고객지원센터를 비롯한 편의시설의 확충과 아울러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서비스 개선작업을 다각도로 추진하였다. 또한 75년 매각된 명동 시공관 건물을 다시 확보하여 2005년 재개관 계획을 수립하는 등 관객들의 진입장벽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 같은 환골탈태의 노력은 결국 멀어져 가던 관객들의 발길을 장충동으로 되돌리기에 이르렀다. 1999년 34%이던 관객수는 2000년 50%로 증가했으며, 유료관객의 비율 역시 24.1%에서 50.9%로 비약적인 증가추세를 보였다. 나아가 이는 단기간에 재정자립도를 배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99년 7.34%에 머물던 재정자립도가 2000년 이후에는 17%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요컨대 극장경영에 기업식 마케팅 개념을 적용시킨 국립극장의 변신은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그리하여 여타 공공극장의 운영에 모범적인 참조사례로서 운위되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예단일지 모르나, 국립극장의 변신은 일견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한 판단은 곧 국립극장의 변화과정이 지나치게 외형적인 데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다. 국립극장이 새롭게 채택한 운영전략은 기업식 비즈니스 마인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관객을 유치하고 재정자립도를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는 경영상의 체질개선에 머물뿐 공연 레퍼토리의 개선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즉 하드웨어의 합리적 운영에만 집착한 나머지 소프트웨어의 개발에는 내실을 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립극장이 우리 문화를 대변하는 간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간판이 될 만한 우수한 공연작품을 꾸준히 생산하고 정착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립극장의 최근 공연사례를 보면 실망을 감출 수 없다. 전속단체인 국립극단의 정기공연이 여전히 셰익스피어 작품으로 채워지는 등 종래의 천편일률적인 레퍼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도 시대성과 지역성을 살리지 못하는 구태의연한 연출로 인해 관객을 식상하게 하거나, 아니면 인기 연예인을 캐스팅해 관객을 동원하고자 하는 얕은 상술까지 발견된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부분적인 일례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그간 각고의 변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립극장의 공연 레퍼토리에는 별반 질적 수준의 변화가 포착되지 않는다. 이러한 정황은 국립극장을 비롯한 공공극장의 개혁에 있어 그 궁극적인 지향점이 어디에 놓여져야 할지 재점검할 것을 촉구한다.

4. 공공극장의 향후과제
이상에서 지적했듯이 공공극장 개혁의 무게중심은 궁극적으로 공연레퍼토리 개발에 두어져야 한다. 공공극장의 기능이 고급 문화에 대한 공중의 향수기회를 확대하는 데 있다면, 공공극장 운영의 초점은 마땅히 그 ‘고급 문화’를 생산하는 데 맞춰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깃 설정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아무리 경영구조와 시설을 개선한다 한들 그 개혁은 눈먼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경영상의 체질개선 노력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개혁의 수단과 목표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경영합리화의 노력이 질 높은 공연작품의 생산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공공극장은 어떠한 침로를 설정해야 하는가. 그 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관객 중심의 레퍼토리 개발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오늘날 고전으로 운위되는 공연작품들은 동시대 관객들의 정서와 세계관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대변한 작품들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었고, 이러한 정서적 점착성(粘着性)으로 인해 불멸의 가치를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한 상품미학의 측면에서도 공연예술은 그 어떤 상품보다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하다. 다른 상품과는 달리, 공연상품은 질적 수준에 하자가 있다 해도 근본적으로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소비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못 할 경우 쉽게 소비자의 부정적 반응을 촉발하며, 이는 나아가 그 상품의 생산자, 즉 극단이나 극장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극장은 동시대 관객들의 정서나 기호, 가치관을 어떻게 파악하여 이를 작품에 반영할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 기존의 공공극장은 공익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러한 관객 연구를 대중추수주의에 기초한 상술로 폄하하고 등한시하였다. 그 결과 관객은 극장에서 등을 돌렸고, 이는 결국 공공극장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병인(病因)으로 작용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국립극장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청산하기 위해 관객 개발을 주요한 운영방침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서비스 개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시설 개선의 차원을 넘어 공연 레퍼토리 개발에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는 못 한 상태로 보인다.
문제는 구호로서의 관객 개발이 아니라, 관객의 심리를 창작과정에 수용할 수 있는 과학적인 체계를 정착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관객 동향’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연의 잠재 수요층을 산출하여 연령별, 학력별, 직업별 수입과 라이프 스타일, 소비취향과 가치관 등을 면밀히 조사한 뒤 이를 공연기획의 기초자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관객조사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극장은 타깃 대상층을 분명히 설정하고 타깃 관객의 기호와 기대수준이 창작물에 반영되도록 계산해야 한다. 동시에 기획단계에서부터 관련 아이템의 시장 규모와 유사동종 상품의 특성을 벤치마킹하여 타 상품과 차별화될 수 있는 작품개발 전략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처럼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마케팅 개념에 입각한 관객조사와 시장조사가 과학적으로 정착될 때 비로소 공공극장은 경쟁력 있는 공연작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술은 근본적으로 그 결과에 대한 과학적인 예측을 불허하는 위험상품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산과정의 보다 엄밀한 과학화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로, 과감한 무대실험을 통해 새로운 예술형식을 개발해야 한다. 무대실험은 관객의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무대화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질 때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과이다. 그 단적인 사례로 지난 1997년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 극단 라마마의 <트로이의 여인들>을 꼽을 수 있다. 이 공연은 배우와 관객, 무대와 객석의 관습적인 경계를 철거한다. 관객들은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위치하도록 요구받고, 배우들은 무대와 객석의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동선을 무한히 확장한다. 그 결과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극중인물로 참여하면서 고대희랍의 비극적 세계를 체감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시종일관 고대 그리스어로 공연하는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아무런 불편 없이 극중현실에 몰입할 수 있었다.
라마마극단의 무대실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공연은 철저히 관객을 주인으로 삼아 관객의 눈으로 만든 연극이다. 고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골동품 다루듯 원전을 복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정작 관객의 입장은 외면하는 우리 극장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따지고 보면 서구의 부조리극, 극장주의 연극, 환경연극 등의 실험극은 실효성을 잃은 기존의 무대관습을 과감히 거부하고 동시대 관객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자 하는 열린 의식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 극장의 공간개념은 변화해야 한다. 실내의 좁은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벗어나 극장의 복도, 마당, 나아가 거리의 공간을 모두 공연공간으로 활용하는 파격적인 실험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실험은 관객의 입장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들이 연극이라는 장르를 잘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의도한 메시지를 그들에게 체감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서 우러나온 것이라야 한다. 이러한 관객 중심의 실험정신이 심화될 때 우리 공공극장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첨단 테크놀러지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네트워크의 발달로 오늘날 우리 문화는 새로운 전자 미디어의 홍수 속에 잠겨들고 있다. 작가와 관객,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와해되고 이른바 ‘인터액티브 내러티브(Interactive Narrative)’라는 상호소통적, 혼혈적 예술형식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문화적 조류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공연예술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동시대의 변화하는 문화적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공연예술은 시대적 적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연예술의 독창성은 이러한 전위적인 형식실험이 담보될 때에야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셋째로, 극작가의 지속적인 육성과 발굴이 필요하다. 공공극장이 관객 중심의 새로운 예술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이를 실현시킬 극작가의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극계의 현실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공연산업의 영세성과 불안정한 생계기반은 작가들의 극작활동을 위축시키고 있으며, 미처 극장문화가 제자리를 잡지 못 한 가운데 밀려든 영화와 방송매체의 범람으로 우리 극문학은 빈사상태에 빠진 지 오래다. 기성 작가의 작품활동이 위축된 상태에서 신인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는 빈혈상태가 계속됨에 따라 공연단체들은 만성적인 작품란에 시달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는 극작의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 한 공연 스태프가 대본을 구성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신인 작가의 등단 통로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현재 신인 극작가의 등용문으로는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 국립극장의 장막희곡 공모, 그리고 민간기업에서 운영하는 희곡상 공모 등이 있다. 그러나 그나마 신춘문예의 희곡부문 공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며, 희곡상의 경우 응모작의 질적 수준이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또한 이러한 통로를 통해 등단한 작가라 할지라도 공연 레퍼토리로 삼을 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의 생산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자연 공연단체로서는 무리수를 두느니 차라리 작품성이 검증된 번역극을 택해 안전하게 레퍼토리를 운영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근래 들어 번역극의 범람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된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에서는 작품은행을 상설 운영해 우수작품을 발굴하거나, 신인 극작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모두 나름대로 의미있는 방안이지만, 단순히 좋은 작품을 사들이고 지원을 강화한다고 해서 만성적인 작품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듯하다. 공연단체가 원하는 작품을 제대로 구성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작가를 초기부터 이에 맞게 조련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작품의 기획단계에서부터 과학적인 조사결과를 기반으로 대상 수요층을 겨냥해 작품의 컨셉을 정확히 구성할 수 있는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극장에 ‘연구원 제도’를 상설화하는 방안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
신인 작가나 작가 지망생을 극장의 연구원으로 두고 재정적인 지원과 함께 공연제작 과정에 견습생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신인 작가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고, 더불어 극장현실을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예술작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공공공연단체에서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지만, 실제로는 연구비 명목의 공공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위장전술로 변질되어 있다. 연구원을 정식 편제에 포함시키고 공채 모집하는 방식으로 인사의 투명성을 기한다면 연구원 제도는 극문학 육성을 위한 훌륭한 씨앗이 될 것이다.

이상으로 공공극장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세 가지 진로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지적은 공공극장의 작품생산에 관련한 문제들로, 이러한 문제가 조직개편보다 더 궁극적인 문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두고 싶다. 공공극장의 실태에 대한 보다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 한 점은 이 글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에 대한 보완은 후일을 기약하기로 한다.


<참고문헌>
. 국립중앙극장 엮음, 『국립극장 50년사』, 태학사, 2000.
. 국립극장 기관지 『미르』 2002년 12월호.
. 문화관광부, 『문화산업백서, 2001』, 2001.
. 문화관광부, 『2001 공연예술진흥기본계획』(부록), 2001.
. 문화관광부, 『2002 공연예술진흥기본계획』(부록), 2002.
. 유민영, 『달라지는 국립극장 이야기』, 도서출판 마루, 2001.
. 이승엽, 『극장경영과 공연제작』, 역사넷, 2001.
. 임준서, 「너희가 관객을 아느냐」, 계간 『상상』 199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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