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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도서관의 문화 인프라> 도서관을 활용하면서 가졌던 생각들/조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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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360회 작성일 04-01-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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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도서관
조 미 숙(주 부)

1.
그곳에는 책이 있었다. 하루 종일 이쪽 서가와 저쪽 서가를 돌아다니면서 낯선 페이지를 흘깃거리다 문을 나서면 어느새 날은 저물고 나는 언덕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해질답 인적 드문 길은 대부분 권태롭기만 했고 어쩌면 나는 그 낯선 페이지들을 훔치며 사는 답답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혼자였던 나는 외롭지 않기 위해서 혹은 외롭기 위해 ‘기억의 박물관’에서 헤매었다. 젠장젠장 되뇌면서도 쉽게 그곳을 벗어나지 못 했던 건 결국은 불멸에 대한 욕구의 철저하게 개인적인 표출이라 할 수 있는 책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여전히 외로움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고 결국 다년간의 도서관 칩거생활 끝에 내가 얻은 기술이란 기껏 책을 유린하고 도서관의 권위를 위협하는 짓거리가 전부이지만 어쩌면 나는 도서관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볼 수 있는 책상도 구비되어 있고, 끊임없이 책을 분류해야 하는 사서라든지, 책을 찢고 달아나는 사람, 열심히 낙서하는 사람, 자는 사람, 데이트 중인 사람 등속도 있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그리고 요 몇 년 새에는 컴퓨터가 책을 찾는 수고를 덜어주고 있고 영화를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도서관의 바퀴벌레만큼이나 그곳과 친숙한 내가, 무엇보다 먼저 말해야 할 사실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멀리 있으며 어쩌면 그때문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산을 넘고 숲을 지나 강을 건너고 골짜기를 지나서야 나오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도서관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한다. 그곳은 당연히 도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의 공간일 것이며, 도서에 관심이 있는 이라 하더라도 하절기 오후 일곱시 동절기 오후 여섯시에 내려지는 셔터에는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학 도서관과 같은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이즈음 도서관은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도서관은 나처럼 시간이 남아돌고 시대의 혜택으로 컴퓨터자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흰 손’들에게나 낙원인 것이다. 옛적에는 도서관이라는 것이 순전히 전문학술 정보센터라든지 정보관리센터로서의 목적을 가진 공간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유, 평등, 박애의 근대 이후에 공공 도서관 스스로가 “시민의 문화활동 및 독서생활화를 지향하는 문화센터”를 지향하고 있는 이상, 이것은 도서관 스스로가 극복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과연 언제까지 도서관이 아날로그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주위를 맴돌기만 하고 있다.
이런 뜻에서 나는 공공 도서관뿐만 아니라, 지금은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 도서관의 권위를 조금쯤은 해할지도 모르는, 짧은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려는데, 사실 이런 생각은 늙으신 나의 아버지의 행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2.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가 책 외판을 잠시 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도서관은커녕 도서와도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으로, 심지어 술김에 억지로 산 백과사전을 케이스 따로 책 따로 책꽂이에 진열하자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다.(책이 두 배나 많아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이 들어 일선에서도 물러나고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가 얼마 전 밥상머리에서 나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도서관에서는 책을 무료로 빌려주냐는 것이었다.(사실은 구어체로 ‘공짜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나는 은근히 머리가 복잡해졌는데 도대체 왜 아버지가 책에 대해 관심을 보일까, 혹은 나더러 심부름을 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끔씩 떼먹기는 해도 세금을 성실히 내는 시민이 나이 예순이 넘어서야 도서관에서 책을 무료로 빌려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도서관을 밥먹듯 드나드는 나로서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었던 것에 반해, 도서와 관계없는 아버지는 혹시 유료일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께 누우면 코 닿을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데 한 번도 안 가봤냐는 둥 다섯 권까지는 마음껏 빌려도 된다는 둥(내가 빌려주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나 과연 아버지가 읽으실 만한 책이 있을까 하는 둥 너스레를 떨면서, 하마터면 그간의 나의 절도행각에 대해서까지 고백할 뻔한 이유는 도서관이 사실은 그리 심각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한때 도서관의 화집에서 춘화를 찾는 것을 취미로 삼기도 했고 특정한 책의 특정한 곳에 밑줄을 긋는 것으로 연애편지를 대신 하기도 했으며 책을 전혀 엉뚱한 곳에 꽂아둠으로써 그 책을 독점하는 범죄를 통해 도서관을 우습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무료하던 차에 아버지는 며칠 후 관상과 원예관련 책을, 그리고 특별히 어머니를 위해 요리책을 빌려오셨다.(사실 이 요리책 대출은 배려라기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시위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십여 일 방치되어있던 그 책은 결국 내가 연체료까지 물고 반납해야 했고, 아버지의 도서관 출입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이유를 물었더니 더 이상 읽을 것이 없노라 하는 궤변과 함께 책을 찾기도 어렵더라는 수줍은 고백이 답으로 돌아왔다.
나도 사실은 도서관에서 아버지가 읽으실 만한 책은 모두 다 고르신 셈이라는 점에서는 아버지의 궤변이 타당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에 원예나 요리와 관련된 책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또 어느 누가 도서관에 그러한 책이 있으리라 생각할 것인가 말이다.(아버지가 그 책을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나 빌릴 수 없는, 아니 빌리지 않는 책을 빌리셨으니 아무튼 대단하신 분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교육계에 몸담고 있을 때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놀러가자고 제안했다가 외면당한 적이 있다. 당시 아이들의 대답도 도서관에는 읽을 책이 없노라였었다. 만화책, 공상과학소설, 무협지를 읽기 위해 동네 도서대여점을 신발이 닳도록 드나드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탄저균이 뿌려진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책에 관한 한 ꡔ파우스트ꡕ보다 짜임새 있는 만화책 한 권이 아이들에게는 유용하다는 것을 지론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학부모가 독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어떻게 해야겠냐는 질문을 해오면 먼저 만화책을 선물로 내밀기도 했었다.) 아이들의 독서습관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만일 도서관에 양질의 만화책이 있다면, 도서대여점 사장님껜 죄송한 말이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용돈을 쪼개가며 수준이 천차만별인 만화책을 마구보지 않을 것이다. 만화책을 보다 지치면 다른 책에도 눈을 돌리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도서관에 만화책은 없다시피 하다. 각종 취미 관련 책자나 실용서도 마찬가지이다. 고상한 책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외면당하고 있다. 더불어 공공 도서관의 공무원들은 지독히도 말을 아끼고 칼같이 퇴근시간을 지킨다.
은근히 도서관이 도서와 도서관 스스로에 대해 권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공공 도서관의 도서가 계몽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의 새마을문고가 지금의 도서관의 전신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정녕코 문화공간으로서 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도서관의 존재 이유라면 권위적인 운영방식이나 의식이 오히려 도서관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도서관의 영화상영과 각종 문화행사에 쓰이는 비용을 조금 덜어 만화책이나 잡지를 사놓는 것이 도서관과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 더 유용할 것 같다는 말이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도서관이 문화공간화되는 것을 목표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구민회관도 아니고, 독서의 전당도 아닌 모습으로 여전히 사람들에게 멀리 있다면 어쩌면 공공 도서관은 이름만 남은 채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위기감은 공공 도서관과 달리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전문적 공간인 대학 도서관에 대해서도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3.
고등학교 시절 학교도서실에 개구멍을 만들어 합당치 않은 도서 외부유출을 일삼던 나에게 한 가지 불만은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확인해본 결과 전공서적이 좀더 많다는 것, 시험 기간에만 자리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외에는 별 특별한 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공공 도서관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면 대학 도서관은 꽥꽥 소리 지르는 코찔찔이 미성년자는 사절이다.
그 출입 규제는 도서관 전산화와 함께 더욱 엄격해져 요즈음은 신용카드같이 생긴 학생증의 바코드를 읽는 방식으로 출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신분이 수상한 자는 들어올 수 없으며, 슈퍼마켓처럼 외부유출 경고장치가 출구에 마련되어 있다.
실제로 지하철의 출입구 비슷한 입구에서 바코드가 읽히지 않아 땀을 흘리며 쩔쩔 매는 선후배의 손에서 복사카드나 신용카드를 발견해 준 것만 해도 여러 번이며 자기 책 사이에 저도 모르게(?) 도서관의 책을 끼운 채 나가다 심문을 당하는 친구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변명을 해준 적도 있다.
졸업과 함께 멀어졌던 학교에 다시 돌아왔을 때 발견한 대학 도서관의 큰 변화는 전자 도서관 사업에 따른 각종 시설의 구비, 자료의 전산화, 그러나 졸업 전과 큰 변화가 없는 도서 구비량이었다. 각종 논문 열람과 도서검색을 컴퓨터 앞에 앉아 편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전공 관련 서적을 보기 위해 대학 도서관이 아닌 공공 도서관을 찾아야 하는 일을 몇 년 전과 다름없이 해야 했던 것이다.
도서관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무지한 나로서는 도서 구비와 관련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전산화에 쓰이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사서 중에 새로운 얼굴을 보기 힘든 것도 이것과 관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정도밖에는 달리 이유를 짐작해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학 도서관에서 전공에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없을 때마다 지금의 대학 도서관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중간쯤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안하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 대학 도서관 자료실은 구비자료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보다는 독서실처럼 자신이 가지고 온 책으로 공부를 하기 위해 그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메뚜기와 D.D.T 사마귀, 두꺼비가 벌이는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가 자료실에서도 연출되면서 도서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독서실화되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전산화의 여러 가지 유용한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처럼 쓸데없는 공상을 즐기는 사람은 과연 디지털화된 자료가 아날로그식의 자료보다 경제적이거나 영구적인 보존방식인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만일 미래의 어느 날, 갑자기 프로그램이 다운된다면, 우리는 새책이 들어오지 않은 지 오래된 서가 사이를 먼지를 마시며 돌아다니거나 그 안에서 길을 잃어야 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대학 도서관이 손으로 쓰는 도서카드와 검색카드를 없애버린 것은 실수가 아닐까.

4.
사실 다소 엉뚱하고 두서없으며 불손할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가 도서관이 사라질 것이라는 저주는 아니라는 것으로 마지막 말을 대신하고 싶다. 오히려 도서관이 이러한 점들을 이용자가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애정 어린 투정이라 생각한다.
불꺼진 미로에서 때론 길을 잃기도 하고 (어느 소설가의 몽상처럼) 무수한 방의 바벨탑의 어느 한 방에 갇혀 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소설가의 몽상처럼) 불특정한 이와 연애하며 재미있게 놀았던 나의 아름다운 도서관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앞서 암시된 나의 각종 절도행각에 대한 벌은, 마음의 준비는 되었으나 물리적 준비가 미처 되지 않은 관계로 좀더 뒤로 미루었으면 한다.

추천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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