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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도서관의 문화 인프라> 도서관을 활용하면서 가졌던 생각들/우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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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447회 작성일 04-01-0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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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도서관
우 상 민(대학생)

1.
난 다음달이면 대학을 졸업한다. 처음 대학을 들어갈 때가 1994년이었으니 내 대학시절은 남들에 비해 꽤나 긴 세월이었다. 대학 다닐 때 내 전공은 국문학일 뿐만 아니라 워낙 소설을 좋아해서 내 주무대는 도서관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하거나 강의에서 요구하는 레포트를 쓰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데 반해 난 도서관을 소설을 읽고 소설책을 빌리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달 후면 20년간 달고 오던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내 대학생활을 반추할 겸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또 도서관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어떠했는지 한 번 공개하고 싶다.

2.
미국에서 제 15회 월드컵이 열리고 김광석이 타계한 1994년에 난 대학을 입학했다. 공교롭게도 그때의 내 전공은 화공학이었다. 대학 1학년 중에 어디 공부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나? 나 역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유희거리에 휩쓸려 방탕한 생활을 하는 무늬만 학생인 사람 중의 하나였다. 한 달에 채 한 권도 되지 않는 독서량이 입증하듯이 난 책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었다. 헌데 2학년이 되면서부터 친구들, 선배들이 다 군대를 가고 나만 혼자 캠퍼스에 덜렁 남게 되었다. 그래서 이래선 안 되겠다, 뭔가를 하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아리를 하나 가입했다. 그 동아리는 문학동아리로서 <글패새벽>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당시 운동권의 흔적이 미약하게 남아있는 동아리였다. 그때 난 운동의 ‘운’자도 몰랐고 최루탄 가스 한 번 마셔보지 못한 순둥이였지만 문학이라는 이름 두 글자가 맘에 들어서 계속 남아있기로 했다.
이때부터 내 삶의 여정은 급작스럽게 변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선배들은 내게 책을 무진장 읽게 했다. 당시에 읽은 책은 A.하우저의 ꡔ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ꡕ, 동녘이라는 출판사에서 발간한 ꡔ삶 사회 문화 그리고 과학ꡕ 등의 인문과학 서적과 안도현의 ꡔ외롭고 높고 쓸쓸한ꡕ, 도종환의 ꡔ사람의 마을에도 꽃이 진다ꡕ, 이동순의 ꡔ백석시전집ꡕ 등의 시집이었다. 이때부터 난 전공 수업은 거의 빼먹고 대학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당시에 세계문학전집을 거의 독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ꡔ죄와 벌ꡕ, ꡔ적과 흑ꡕ, ꡔ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ꡕ, ꡔ여자의 일생ꡕ, ꡔ테스ꡕ, ꡔ생의 한가운데ꡕ, ꡔ파우스트ꡕ, ꡔ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ꡕ, ꡔ인형의 집ꡕ 등이 그것이다. 어떤 때는 도서관 사물함(하루씩 사용)에서 가방도 빼지 않고 귀가하는 바람에 그 다음날 관리하는 분한테 엄청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당시 내 미래를 걱정하던 형이 한마디 던졌다.
“소설 좀 그만 읽어라. 니 사는 모습이 소설같이 보인다.”
당시 난 가벼운 웃음으로 넘겼지만 그건 형의 예리한 통찰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그 당시 엄청 소설 같은 삶의 모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부산을 가던 도중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과 사귀어서 밀애를 나누기도 했고, 생전 밟아보지 못한 전라도(광주․목포 일대) 땅을 혼자서 밟아보는 등의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그리고 항상 집으로 돌아와서는 여행체험을 발판으로 소설가 흉내를 냈던 기억도 있다.
서두가 좀 길었던 것 같은데 이런 모든 내 청춘을 도와준 것이 바로 도서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난 언제부턴가 돈이 드는 일이다 싶으면 휙 돌아서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찾다가 찾다가 찾은 것이 바로 도서관이었고 책이었다. 도서관에는 항상 책이 있고 내가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설사 잃어버린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들어갈 수가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간중간에도 또 강의 중간중간에도 내 편안한 안식처는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는 드넓은 캠퍼스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난잡한 생각들을 수월하게 정리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내 군입대 전의 대학 생활은 마무리가 되었다. 제대하고 나서 난 다시 수능을 보고 광운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을 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글쓰기)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말이다. 24살의 새내기. 타이틀이 좀 웃기다. 내 삶의 여정은 다시 도서관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곳의 도서관 역시 책을 읽는 곳이기보다는 시험 공부를 하는 곳으로 전락된 지 오래였다. 항상 시험 기간에만 학생들 발길이 오가고 평상시에는 단풍이 다 떨어진 나무처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도서관 안에 인터넷과 비디오마저 침입해서 책의 가치와 효용을 더더욱 전락시키고 있다. 그래도 난 도서대여 한정 권수인 3권을 꼬박꼬박 채워서 다녔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맘이 편치 못 하다. 책은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어나고 밑줄이 많이 그어져 있어야 정감이 간다. ‘아,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던 사람은 이 부분에서 감흥을 받았구나.’ 하고 제2자가 그 밑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먼저 책을 읽은 사람과 나중에 책을 읽은 사람이 무언(無言)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난 책을 자주 빌려주고 자주 빌려본다. 그건 그와 나 사이에 막혀있었던 벽을 책을 통해서 허물어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지난 밤 싸우고 헤어졌던 나와 그녀, 우린 그 다음 날 내가 그녀에게 선물한 책에 대해 얘기하면서 화해했던 것이다.

3.
이제 본격적으로 도서관 사용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기로 한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역시 우리 학교 도서관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의 구조를 살펴보면 1층에는 열람실과 인터넷 카페가 있다. 2층은 문학과 역사서적이 있는 제1대출실이고 3층은 도서관장실이다. 4층은 전공관련 서적과 컴퓨터 관련 서적을 대출할 수 있는 제2대출실이고 5층은 열람실, 6층은 논문 및 기타 잡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을 보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계단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지만 고작 두 개가 다인 데다가 그 속도 또한 엄청 느리기 때문에 식사를 한 번 하러 가려고 해도 꽤나 오랜 시간이 소모된다. 다른 학교 같은 경우에는 계단이 워낙 넓어서 학생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보다는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학생들은 운동도 할 겸 계단으로 다니는 것이 좋다며 오히려 계단 이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한데 우리 학교 도서관 계단은 너무 협소해서 올라갈 때는 내려가는 사람과 부딪치기 일쑤고 내려갈 때는 올라가는 사람과 부딪치기 일쑤다. 도서관을 지을 때는 계단을 아주 크고 넓게 짓는 것이 보기에도 좋고 이용하기에도 편하다.
도서관 이용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도서대여 권수에 있다. 보통 대학교의 학부생은 3권으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자료를 복사해서 가져갈 수도 있지만 3권은 그 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된다. 레포트 하나를 쓰려고 해도 보통 5권이 필요한데 여러 과목의 레포트가 겹치면 엄청 곤란한 경우가 많다. 나 개인적으로도 레포트를 쓰기 위해 오전에 책을 빌려다가 워드 작업을 하고 바로 반납을 한 뒤 다시 다른 책을 빌려서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은 그 문제가 덜하겠지만 집이 인천이나 수원인 사람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일 경우에는 집에 책을 가져가서 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책 대여권 수가 최소 5권 정도로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대신 그 분실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따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책 대여 기간을 현행 2주에서 1주 정도로 줄여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오랫동안 대여할 수 있게 해 봐야 읽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단 하루를 빌려줘도 다 읽는 법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필요한 부분 참조만을 위해 책을 빌리는데, 이러한 면에서 보면 책 대여기간인 2주간의 시간이 허비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여기간을 길게 준다고 해도 당사자가 읽을 마음이 없으면 책은 그냥 장소 이동만 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개관 시간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우리 학교는 오전 9시 30분에 대출실 문을 열고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물론 일하는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의 여건을 고려해 보면 현행 제도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일찍 닫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수업이 늦게 끝날 경우 도서관을 이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서관이 책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오로지 시험을 위해 전공서적만을 파고드는 장소로 전락해 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서관 개폐시간을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할 것이다.
한번은 토요일 오전에 학교를 가본 적이 있었는데, 도서대출실은 그야말로 사막 같았다. 운영자나 아르바이트생을 제외하고는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생들은 책을 읽으려고 학교에 오지 않는다. 가까운 비디오 방이나 책방에서 얼마든지 무협지나 만화책을 빌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책의 종류이다. 내가 가장 혐오하는 책은 판타지 소설과 무협지이다. 판타지 소설과 무협지를 가져다 둘 거면 차라리 만화책도 가져다 두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면 학내 도서 대출 비율이 엄청 높아질 텐데 말이다. 그리고 도서 대여 순위 10위 안에서 여덟 권이 판타지 소설이라는 말에 난 깜짝 놀랐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이 흘러간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도 아니고 대학 도서관은 지성인들이 들어오는 곳이 아니다. 그저 유희를 위해 재미를 위해 한순간의 쾌락을 위한 곳으로 도서관은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심한 노릇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은 양질(良質)의 책을 접할 수가 없다. 오로지 텔레비전에서 만들어주는 베스트셀러류의 책만 읽고 있다. 고작 그러한 책만 읽고서는 자신이 읽어야 할 책들을 다 읽었다는 듯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돌아다니는 게 현재의 대학생들이다. 정말 많이 비치되어야 할 책은 문(文)․사(史)․철(哲)에 관한 책이다. 문학은 세계고전을 많이 가져다 두어야 할 것이다. 일찍이 난 세계고전보다 더 위대한 책들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고전들도 위대하다. 문학을 알지 못 하면 우리 몸에 심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톨스토이․도스토예프스키․스탕달․셰익스피어와 같은 거장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감추어진 문호들의 책을 많이 비치해 두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초서의 ꡔ캔서베리 이야기ꡕ를 빌려 보려고 도서관에 갔는데 딸랑 한 권이 있었다. 그것도 노랗게 바랜 세로 활자책으로 말이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또한 역사를 알지 못 하면 하반신이 불구인 사람이다. 우리 민족을 지탱해 주고 우리나라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바로 역사이고 역사책이다. 그리고 철학이 없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한 채 산다고 생각해 보라. 과연 그게 제대로 사는 사람의 모습인가?

4.
대학도 바뀌고 있고 대학 도서관은 점점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상아탑으로의 이미지가 아니라 즐기는 곳, 아니면 피 터지게 시험 공부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 인터넷으로 채팅도 하고 게임도 하고 여러 가지 연예인의 일상사를 보는 곳이 도서관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판타지 소설이 가득한 곳이 바로 대학 도서관이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고뇌하는 대학생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지금 대학 안에는 춤과 음악과 패션에만 집착하는 눈뜬 맹인들뿐이다. 이젠 돌아가야 한다. 지식과 지혜의 산실, 진정한 상아탑으로의 모습, 지식인으로서의 대학문화가 싱싱한 고등어처럼 살아있는 곳으로 말이다. 중․고등학교와 분명 구별되는 대학의 도서관, 대학의 문화……, 이들을 우린 다시 찾아서 지켜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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