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73호/집중조명/홍지헌/신작시/배고픈 참새 외 4편
페이지 정보

본문
73호/집중조명/홍지헌/신작시/배고픈 참새 외 4편
배고픈 참새 외 4편
홍지헌
목동 에벤에셀 플라자 건너편
장금이 떡방 앞에는
아침마다 참새들이 모여든다
하늘 어디에도 먹을 것은 없고
나뭇가지에는 찬바람만 지나가니
바닥에서 먹이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종종걸음 치는 것 같다
저 작은 눈에 쌀알이 보일까
저 작은 콧구멍으로 떡냄새가 맡아질까
제 목에 풀칠은 하겠지만
어린 것들까지 먹일 수 있을까
출근길에 본 참새들
소리 없는 종종걸음
통통통 울리며 지하철까지 따라온다
냉이 이야기
―친구 대순에게
지난 송년회 때 들은 친구의 귀농일기는
평범한 잎사귀로 향긋한 뿌리를 키우는
냉이 이야기
태생이 잡초라 잘 자라는 편이지만
냉이를 괴롭히는 진짜 잡초가 있다는 이야기
같은 잡초라 제초제를 뿌릴 수 없어
일일이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
횡으로 이어진 잡초의 스크럼을 이겨내고
흰색 테이프를 감은 친구의 엄지손가락 이야기
반년이 지난 후 결혼식 하객으로 만나 다시 들은
잡초에게는 정을 주는 게 아니었다는 쌉쌀한 이야기
작고 둥글고 평평한
작고 둥글고 평평한 내 접시에는
그리움 서러움 같이 물기 있는 것들은
많이 담을 수 없고
기다림 고마움 같이 꼬들꼬들한 것들은
수북이 담을 수 있지
함께 버무려져 있는 곰삭은 지난날과
다가오는 날의 떨리는 징후들로
물들여진 탓인지
비워도 비워도 번번이 같은 것만 담고 있는
작고 둥글고 평평한 접시
영원한 청년, 현봉학 선배
―현봉학 선배 동상 건립 1주년을 맞아
흥남부두 실향민은
이 분을 은인恩人이라 부른다
언론에서는
이분을 ‘한국의 쉰들러’ 라 부른다
나라에서는
이분을 전쟁영웅戰爭英雄이라 부르지만
우리들은
이 분을 현봉학 선배라고 부른다
저 멀리 모교를 바라보며
청동으로 우뚝 서 있는
영원한 청년, 현봉학 선배
내 어깨에 걸려있는
나의 하루를 응원하겠다고
아내는 날마다 출근길 인사를 해준다
소파에 누워 아침 드라마를 보며
건성으로 하기도 하고
과장되게 군대식 경례로 하기도 한다
떠나 있는 아들 둘
항상 집으로 오고 싶어 한다
아직은 자기들 집이라 여기고 있다
비굴하게 환자를 볼 수는 없지만
너무 뻣뻣하면 안되는 이유가
아침마다 어깨에서 만져진다
<시론>
귀한 방문객들
몇 년 전 시인으로 등단한 후 ‘왜 시를 쓰는가’ 라는 질문을 종종 받고 있지만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왜 사는지 모르고도 다들 잘 살아가는 것처럼 그 문제는 삶의 비밀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지금처럼 사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순간이 생기듯이, 등단 후 시의 이유와 의미를 스스로 물으며 답을 찾아보곤 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다. 철부지 시절에 시작한 시 쓰기가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습관이 된 첫 이유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시가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효용이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해 보게 된 것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시가 위로이고 치유인 것은 분명하다. 직업상 심신이 괴로운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버겁기도 하고 나 자신도 많이 상했다고 느낀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성숙해져야할 터인데, 포용력과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것이 그 징표이다. 상처를 입었고, 병들었고, 힘들다고 진단을 내렸으니 다음은 치료와 위로가 필요한 단계인데, 눈에 드러나는 상처도 아니고 보면 남들이 들으면 엄살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니가 삶의 괴로움을 알기나 해?’ 하는 눈총을 맞을 수도 있다. 이것이 조용히 혼자서 스스로 치료와 위안을 찾는 이유이다.
시가 극히 사적인 독백에 가까우면서도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인간 경험의 유형이 엇비슷하고, 사람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으며, 동시대의 상황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공감대가 두루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감정들이 방문객처럼 찾아와 잠시 문을 두드리다 그냥 가기도 하고, 자신의 흔적을 방명록에 남기기도 한다. 특별히 눈에 띄는 방문객을 만나면 자주 보자고 인사를 하게 되고, 내 속을 더 털어놓게 되고, 나를 위로해 달라고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그들도 반가이 응해줄 때 한 편의 시가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나를 물들이는 감정들, 나를 찾아온 손님들을 귀하게 여겨야하는 이유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글쓰기 만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은, 산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임산부와 교도소 재소자,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를 통해 이미 입증되었고, 치료를 위한 여러 문학 행위 중 시 쓰기가 가장 효과가 있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삶에 대한 불안감, 흔들리는 신념,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 등으로 어수선하던 마음도, 그런 심정을 바탕으로 시를 쓰다보면 많이 달래지는 것을 느낀다. 더구나 혼자만의 경험이기 보다는 보편적 경험에서 비롯되어 독자들과 널리 공감과 감동을 나눌 수 있겠다고 느껴지는 시가 써질 때에는 위로를 넘어서 큰 기쁨과 감동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작품을 자주 쓰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창작력이 점점 고갈되는 듯 자괴감을 갖게 되는 것이 요즈음의 고민거리이다.
*홍지헌 2011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시집 『나는 없네』.
<작품론>
일상의 체험에서 빚어진 실존적 자의식의 힘
―홍지헌의 시세계
이연승
서정시는 고백적인 자기 표현을 통해 시인의 내면에 새겨진 마음의 풍경과 자의식을 드러내는 장르이다. 시인의 자의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은 구체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이며, 그 경험을 둘러싼 여러 사건이나 징후들을 묘사하고 재해석하는 원리가 생의 순간을 그려내는 감각의 힘일 것이다. 기억은 시인으로 하여금 자아를 발견하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뿐 아니라 초월적 존재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중요한 촉매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홍지헌의 시들은 일상에서 겪은 여러 사건과 기억의 편린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며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시적 여정을 제시한다.
그의 첫 시집 『나는 없네』(2015)는 일상에서 겪은 다양한 체험이 간결하고 구체적인 어법과 상상력을 통해 펼쳐지고 있다. 객관세계를 상실하고 진정한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에게 기억과 생활이란 의미 없는 파편에 불과할 수 있지만, 시인은 그 파편들을 재구성하여 유의미한 자기성찰과 회복의 한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충분한 무게감을 전달하고 있다. 첫 시집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가족과의 부대낌이나 체험을 통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비애와 고독감이 부각된다는 점일 것이다. 다음 시는 그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늘을 배경으로
내 아이들이 웃고 있네
함께 있었지만
나는 없네
사진 속 작은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파도가 부서지네
사진 속 작은 하늘에서
구름이 피어나고
구름이 흩어지네
세월이 지나가는
바닷가 간이역에서
내 아이들이 웃고 있네
환하게 웃으며
없는 나를 보네
―「나는 없네」 전문
바다와 하늘의 풍경을 배경으로 아이들과 함께 있었지만 “나”는 존재하지 않는 이 역설의 풍경은 일상에 부대끼며 사느라 자신의 삶을 조금씩 소진해버린 한 중년 남성의 실존적 자화상이다. 사진 속에 없는 “나”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나”이다. 사진 속 배경인 “세월이 지나가는 바닷가 간이역”을 응시하는 시의 화자는 소멸과 고독을 감싸고 있는 시간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시간의 파편이 깔려있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는 만감이 교차하지만 유한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 끊임없이 소멸해가는 자신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에서 삶의 아득함과 비극성을 확인하게 된다. 삶이라는 여정은 만남과 이별, 성장과 죽음, 채워짐과 비워짐 같은 이항대립적 가치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결국 자신의 존재감을 서서히 무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지헌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 “나”는 이렇게 서서히 소멸해가거나 지워져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체로서 그 상실감 속에 서성이는 중년 남성의 실존적 자의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읽혀진다. 그 화자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이고 남편이며, 환자를 진료하는 이비인후과 의사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시적 화자와 시인은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자전적이며, 주변의 사건이나 인물을 대하는 주체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면서도 불필요한 관념이나 수사를 배제하여 독자와의 교감과 소통을 수월하게 이루어낸다.
나의 하루를 응원하겠다고
아내는 날마다 출근길 인사를 해준다
소파에 누워 아침 드라마를 보며
건성으로 하기도 하고
과장되게 군대식 경례로 하기도 한다
떠나있는 아들 둘
항상 집으로 오고 싶어 한다
아직은 자기들 집이라 여기고 있다
비굴하게 환자를 볼 수는 없지만
너무 뻣뻣하면 안되는 이유가
아침마다 어깨에서 만져진다
―「내 어깨에 걸려있는」
자신의 출근길을 따뜻하게 배웅해주는 아내와 집을 “떠나있는 아들 둘”은 화자인 “내 어깨에 걸려있는” 부양 가족들이다. “항상 집으로 오고 싶어 하”지만 쉽게 집에 올 수 없는 아들들과 출근길 인사를 해 주는 아내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일 것이다. 가족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함께 하는 중요한 인물들로서 그의 시들은 주변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자아의 정체성이나 시적 개성의 구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까운 가족들끼리의 소통과 연민은 대가 없는 의무와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일상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중요한 기제이자 행위라 할 수 있다. 아내의 숨결과 흔적을 확인하며 “달그락 달그락 주방에서 들려오는/아침 상 차리는 소리”(「굳은살이 만져진다」)를 듣는 화자의 마음은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과 고마움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웃으세요 어머니」,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같은 시들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어도 부모나 자식, 아내를 둘러싼 다양하고 보편적인 사건들이 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그의 시들이 솔직하고 과장되지 않은 일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시적 지향은 삶의 다양한 고통과 감정들을 과장하거나 숨기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시의 속살을 보여줌으로써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함께 공감하게 만든다.
이것은 타인을 향한 열린 공감의 세계를 열망하는 시인의 태도로 확연히 드러난다. 시인은 자신의 소임이 “힘없는 내 어깨를 잠시 빌려주는 것뿐”이며 “가장 약한 곳까지 보여주는 것이/나의 사랑이라고 조용히 말해 주는 것뿐”(「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임을 이미 강조한 바 있다. 온유한 말과 태도로 타인을 대하고 그들의 말에 경청하며, 보이지 않게 선행을 실천함으로써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는 삶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의 시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기대지평처럼 보인다. 그 기대지평에 도달하기 위해 그의 시들은 상실과 고독의 시간을 견디고 윤리적 결기結己를 바탕으로 사랑과 온유함을 실천하려는 시의 여정을 걸어가는 것 같다.
위의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환자를 대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일 것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비굴하게 환자를 볼 수는 없”어도 너무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인 자세로 환자를 대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시에서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가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다가 그 이면에 깃든 생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개입시킴으로써 자기 인식의 시선을 타자에 대한 지향성으로 전이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새는
자유롭겠지
바람 타는 나무는
즐겁겠지
길가에 핀 들꽃은
자랑스럽겠지
환자 보는 것이 영 재미없다고 느껴질 때면
새도 나무도 풀도 꽃도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모두 부러워진다
환자를 재미로 보나?
세상을 잘 모르는 내가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야단맞는다
―「야단맞다」
때로는 권태와 타성에 물들기도 하는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시인의 시선은 “하늘을 나는 새”, “바람타는 나무”, “길가에 핀 들꽃”으로 이동한다. 그 풍경 속에서 특정한 자연물은 스스로 돋보이는 존재 의의를 갖기보다는 다른 사물이나 자연물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드러낸다. “찔레꽃 다 지고/아까시 꽃 다 지고/때죽나무 꽃 다 져도/개화산은 여전히 향기롭다”(「유월의 개화산」)같은 시에서도 시인은 자연의 영속성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개화산의 향기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자연물에 대한 애정과 찬사는 단순히 자연예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실존을 증명하는 작은 토대가 되기도 한다. 첫 시집에 수록된 「누가 이 나무를 모르시나요」 나 「나무처럼」 같은 시는 이러한 특성을 반증하는 시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티프는 무료한 일상과 대조되는 삶의 본질을 드러내거나 현대인의 ‘나’의 부재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자연친화적이고 성찰적인 상상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복되는 진료와 무료함 속에 화자는 세상의 작은 존재들이 부러움의 대상으로 느껴지지만 시의 후반부에 가서는 “세상을 잘 모르는 내가/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야단맞는다”고 진술하여 타성에 젖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질책하고 분열된 자신의 자의식을 들여다보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전문 직업인이자 시민으로서 자신의 윤리적 책임과 태도를 다시 강조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렇게 다양하고 미세하게 펼쳐진 일상의 스펙트럼을 자신만의 상상력과 언어적 의장으로 세상에 남기는 일은 시인에게 부여된 큰 특권일 것이다. 시인은 이런 특권을 치열하고 성실한 자기 존재 확인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실존을 텍스트에 새기고, 그것으로부터의 견인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흥남부두 실향민은
이분을 은인恩人이라 부른다
언론에서는
이분을 한국의 쉰들러라 부른다
나라에서는
이분을 전쟁영웅戰爭英雄이라 부르지만
우리들은
이분을 현봉학 선배라고 부른다
저 멀리 모교를 바라보며
청동으로 우뚝 서있는
영원한 청년, 현봉학 선배
―「영원한 청년, 현봉학 선배-현봉학 선배 동상 건립 1주년을 맞아」
영화 「국제시장」에는 한국의 젊은 군인이 미군단장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공군의 침략으로 수많은 피난민이 죽음에 내몰릴 수 있으니 무기와 화물을 버리고 이들을 배에 실어 달라고 간청하는 젊은 통역사이자 민사부 고문이었던 젊은 의사 현봉학. 시의 주인공 “현봉학 선배”는 함흥고등보통학교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버지니아 주립 의과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수료한 1세대 한국 임상병리학의 선구자적 인물이다. 그는 28세이던 1950년 흥남철수 대작전 때 미군단장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약 1만 4천여명의 피난민을 기적적으로 구조한 전쟁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인도주의적 사랑과 휴머니즘을 두고 실향민은 그를 “은인恩人”이라 하고 언론에서는 “한국의 쉰들러”로, 나라에서는 “전쟁영웅戰爭英雄”으로 칭송하지만, 시인에게 그는 의학적 사명과 휴머니즘을 다한 “영원한 청년”이자 “선배”로 각인되어 있다. 시인은 세브란스 빌딩 앞에 서있는 동상을 바라보며 그 맑고 푸른 그의 정신을 추모한다. 진정한 휴머니즘과 사랑을 실천한 “현봉학 선배”는 시인에게 맑고 지순한 소명의식의 척도이자, 결곡한 정신의 한 상징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모교를 바라보며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그의 모습은 지금도 살아있는 그의 정신을 추모하려는 한 편의 헌사獻辭이기도 하다. 시인은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며 자기 자신에 침잠하면서도 한 인물의 객관적이고 공유된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공유된 그 생을 현재의 시간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정시의 또 다른 힘은 사적 체험의 개인적 편린을 공공의 리얼리티와 조화시키는 시인만의 능력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지헌 시인에게 시를 쓰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자기 확인에 대한 열망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쓰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자기 확인에 대한 자부심과 희열,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자괴감이겠지만 그의 시들은 막연한 감상에 물들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여 삶의 애잔함과 상실감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의 시들이 읽기 쉽고 소통이 되면서도 시의 깊이를 잃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작고 둥글고 평평한 내 접시에는
그리움 서러움 같이 물기 있는 것들은
많이 담을 수 없고
기다림 고마움 같이 꼬들꼬들한 것들은
수북이 담을 수 있지
함께 버무려져 있는 곰삭은 지난날과
다가오는 날의 떨리는 징후들로
물들여진 탓인지
비워도 비워도 번번이 같은 것만 담고 있는
작고 둥글고 평평한 접시
― 「작고 둥글고 평평한」
시인은 접시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작고 둥글고 평평한” 것으로 치환시켜 놓는다. 그 접시에 “그리움 서러움 같이 물기 있는 것들은/많이 담을 수 없”지만 “기다림 고마움 같이 꼬들꼬들한 것들은/수북이 담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비워도 비워도” 늘 같은 것만 담고 있는 작고 둥근 접시의 형상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감내하며 삶의 아픔을 응시하는 자기 인식 과정의 은유적 상관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삶의 고단함을 과장스럽지 않게 내면화시키는 자기 인식의 한 양상을 그의 시들은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함께 버무려져 있는 곰삭은 지난날”의 풍경은 그 자체로 뒤척이던 지난 날들을 상상적으로 표현한 구절일 것이다. 그래서 이 접시는 시적 화자의 실존을 환기하는 어떤 존재론적인 원형의 상태로 끌어올려지고 있다. 그것은 겸손과 사랑, 온유함을 생활과 시쓰기의 미덕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시인 의식의 한 정점에서 일구어진 소중한 성과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홍지헌 시인은 일상의 성찰과 타자를 향해 스며들어가려는 사랑의 원리를 텍스트 전편에 확장시킨다.
목동 에벤에셀 플라자 건너편
장금이 떡방 앞에는
아침마다 참새들이 모여 든다
하늘 어디에도 먹을 것은 없고
나뭇가지에는 찬바람만 지나가니
바닥에서 먹이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종종 걸음 치는 것 같다
저 작은 눈에 쌀알이 보일까
저 작은 콧구멍으로 떡 냄새가 맡아질까
제 목에 풀칠은 하겠지만
어린 것들까지 먹일 수 있을까
출근길에 본 참새들
소리 없는 종종 걸음
통통통 울리며 지하철까지 따라온다
―「배고픈 참새」
작고 연약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시선은 위의 시에서도 확인된다. 춥고 먹이를 구할 수 없는 한겨울 “장금이 떡방” 앞에 모여든 참새들을 통해 시인은 생명의 소리와 몸짓에 귀 기울이고 있다. 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참새들에 대한 연민은 자연이 거세된 도시문명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추구하는 사랑의 세계에 작은 참새들이 등장하여 평화로움과 인간미가 더해지고 있으며 만물이 함께 상생하는 공동체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이 시에 담겨져 있는 듯하다. “어린 것들까지 먹일 수 있”을지 여부를 염려하는 연민의 마음은 한겨울의 배고픔과 생존을 넘어 존재의미의 확인이라는 주제로 수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민과 사랑의 시선은 자본의 논리 속에 파묻힌 생의 가치들을 복원하고 물신주의적 가치관을 뛰어넘는 치유의 전망을 탐색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의 힘은 파괴적인 현대문명이나 물신적 가치들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강력한 시적 기제가 되기 때문이다.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논리에 상처받고 신음해온 것들을 시인이 어떤 손길로 어루만지고 치유하려는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삶의 한 깊이를 보여주는 성찰의 시선을 견지해주길 기대한다.
*이연승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저서 『오규원 시의 현대성』, 『생성의 시학』, 『매혹의 언어』 등.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 숭실대 초빙교수 및 성신여대 강사.
- 이전글73호/소시집/박정규/제1경 금산과 보리암 외 4편 19.07.01
- 다음글73호/제9회 리토피아문학상/한용국/“본다”와 “잠시” 사이에 펼쳐진 시의 “들판”, 세계의 “들판”―허문태 시세계 19.07.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