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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소시집/박정규/제1경 금산과 보리암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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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96회 작성일 19-07-0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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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소시집/박정규/제1경 금산과 보리암 외 4편


제1경 금산과 보리암 외 4편
―보광운수 최기사


박정규



1.
복곡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
독수리 하늘 돌리듯 쉼 없이 돌아가는
높은 곳에서도 낮은 세상이 있다네
혀 비린 보릿고개를 넘고 또 넘어도
저 생에서는 육관대사의 설법자가 되는
최 기사는 생을 넘나드는 성진이네
세탁기에 돌려버린 껍질들처럼
천태만상으로 얽힌 인연들을 품고
작은 버스는 억겁을 끌어당기며
귀천 없는 한 가지 소원을 빌러
보문사, 홍련암보다 깊은 불심으로
보리암 가는 길 굽이굽이 오른다네


2.
남해바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억새꽃
마른 헌데 같이 피어 있는 기암괴석
빌딩과 굴뚝, 방과 방 사이를 떠돌며
도시살이 아픈 상처로만 남았을 뿐
눅눅한 가계 따뜻한 귀농이 있는 소읍
고샅마다 돌부리에 차이는 가장들은
어쩔 수 없는 조선의 대물림 농군이라
태조가 기도로 건국하며 하사한 비단 산에
발밑은 서포의 배소가 삼백 년을 읍소하고
보물섬 청정바다가 눈물로 삼천 배 하여도
귀천의 매듭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가진 자의 탐욕이 바위처럼 굳어있네


3.
아, 유혈도 머리에서 솟구치는 일출아
적소謫所 노도를 굽어보는 해수관음아
이 무슨 해괴한 허황후 삼층석탑의
자기난리磁氣亂離*란 말이더냐
민초의 그림자만 밟고 다니겠다던 공약公約이
권재명權財名 치마폭 구린내를 묻혔구나.
바위도 넘치면 구르는 법
토민들이 환하게 웃을 수만 있다면
농군의 눈동자에 희망봉이 뜬다면
핸들을 돌려 페달을 밟아 억겁을 달려
사지가 문드러져 보리암의 산죽山竹이 된다 한들
정토淨土에 닿을 수만 있다면


  * 남해금산 보리암에 있는 삼층석탑을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탑 위에 나침반을 놓으면 침이 남북을 가리키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아버리는 현상.





제2경 남해대교와 충렬사
―노량포구 영아 씨



목련화여! 은어 같은 몸매에
멸치처럼 여렸던 도회 처녀가 
이슬로 다리를 놓았다는 노량露梁나루를
칠보금덩 부럽지 않은 20세기산産 가마를 타고
뭍에서 건너 와 육례六禮로 인연을 고하던 날
봄바람의 질투가 충렬사 동백꽃을 붉혔다고
털보신랑 김 씨의 너털웃음이 포구를 농간질한다.
오지랖이 넓어 일등 상표가 붙은 부녀회장에 
이순신의 딸로 충렬사 지킴이로
자암 선생 인수체에 걸린 두보의 오행시처럼
그물에 걸려 파닥이는 은빛 갈치마저  
달콤하고 짭짭한 그녀의 도마소리에
댓바람 입맛으로 오르는 횟집 마님에 주방장
“맛있는 횟감 있어예”
횟집골목 호객꾼에 딴따라 될 줄도 알고
하얀 치아에 고춧가루 붙일 줄도 아는


포구 촌장 김 씨 족보 우듬지에 올라

영락없는 여염집 아낙이 되었다
뭍에 계신 어머니의 촉촉한 자하紫霞가 
볼우물로 흥건하게 영아 씨의 삶으로 넘실거린다.





제3경 상주 은모래비치
―어머니



  금산 남경南景을 산수도 병풍삼아 쪽빛 남해바다를 만삭처럼 품에 안은 상주 은모래 백사장은 멀리 오대산자락 월정사 뜰 밑 진부에 계시는 어머니의 굽은 허리 같아서 이곳 상주 송림에 들면 어머니 윤 씨 부인을 눈물로 그리던 서포 선생의 심경을 모래알만큼이라도 가늠할 수 있어 나의 불효가 무겁습니다.
 
  낮이면, 햇살이 쪽빛 수를 놓은 백사장의 속살에서 반짝반짝 노니는 조개들의 젖빛 옹알이를 듣습니다. 밤이면, 호수 같은 바다에 달빛이 그린 노란 유채꽃의 향연이 마치 교교한 달빛아래 노닐던 양소유와 팔선녀의 花鳥風月에 이릅니다. 인간사 모든 것이 한 낱 꿈이라지만 더 꿈속의 꿈같은 아름다운 선계仙界의 풍경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한없는 자식사랑을 모르는 이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효도를 다하는 이 극히 희박하니 일찍이


  서포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사랑이 여기 남쪽 작은 고도孤島 갯바위에 앉아 더욱 눈물로 깨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오늘밤 홀어머니에 대한 나의 불효가 천근만근으로 뒤척입니다.





제4경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
―죽방렴의 후예



  남해대교를 건너 에둘러 찾아온 길은 도시의 거친 세파가 아닌 차창 밖 코스모스가 마중 나온 정든 사랑채다. 가을볕은 파도냄새에 취해 손도해협을 온통 붉히고 있다. 한 뿌리에서 나온 파도가 이리도 다를 수가 있다니! 세상은 해협을 지나는 급물살 같아서 어구를 손보던 아버지를 풍랑이 휩쓸고 간, 꼭 그 시절의 순한 나이로 창선교에 서니 역류에 허둥대는 은멸치처럼 세파에 휩쓸려온 날들이 발밑에 인다.
  대나무 삼백인 나를 기다란 꼬리를 가진 정자와 닮았다고 동그란 자궁에는 매끈한 죽림 숲에 양수가 고여 어린 고기들이 물장구치는 아련한 추억의 소꿉장난 놀이터라 뭍사람들은 나의 별난 이력이 궁금하여 먼 길을 마다 않는다.
  주인은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찾아와 나의 몸매를 다듬어주고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삯으로 찾아가는 소작 어부였다. 어느 가을 임통에 담긴 멸치를 뜰채로 퍼내면서 받은 만큼 남은 만큼 세상으로 되돌리라셨던 순한 어부였다.
  말씀처럼 세상에 다 내려놓으시고 바삐 가신 아버지 아직


도 나는 홀로 물길 찾아 세파에 휩쓸리는 여린 어족으로 물결 속의 회오리는 아랑곳 하지 않는 어린 망둥어가 되어 폭풍전야의 팽팽한 고요를 완벽한 삶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죽방렴의 후예다.





제5경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이락사 앞바다



속살까지도 푸르러
보일 것 다 보여주는 에메랄드 빛
영웅의 최후를 온전히 품은 관음포의 하체
역사의 갈피 접힌 궂은 날에
이 곳 주인께서 충절을 소진하며
조총 든 도적떼를 무더기로 수장 시킬 때
그들의 영혼까지도 자처 안았던 화해의 품. 


밝은 오늘을 준비하는 새벽처럼
유비무한은 역사를 이어가는 매듭이기에
사지가 모자라 피눈물로 영혼을 앓았던 해전의
상처가 죽어서도 아물지 않아 문어발 같은
해송*으로 남해바다 문지기로 환생하여 
늘 푸른 기상으로 출렁이는 충절의 결.


역사는 무던히도 어두운 시대를 건넜으나


21세기 혓바닥으로 진화한 신 도적패의
휘모리장단으로 꺼져가는 민초들의 삶에 
묵묵한 청설모 한 마리 첨망대* 위에서
이름 없는 수군이 되어 등대를 밝히며
겨레의 안영과 못다 한 우국으로
이 땅을 찰랑찰랑 정화하는 배달의 곁.
 
  * 이락사 입구에는 뿌리부분부터 여러 줄기로  갈라져 자라는 소나무 수십 그루가 있다.
  * 이락사 전망대의 이름.




<시작메모>


파란 공기
파란 시야
파란 냄새
세상이 온통 덤인 보물섬 남해 청정갯벌에서
바지락 노래하며 지상의 온갖 매연을 피한다.





*박정규 2003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 탈춤 추는 사람들』(2003), 『검은 땅을 꿈꾸다』(2011), 『내고향 남해』(2019). 리토피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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