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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이종수/묵묵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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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이종수/묵묵 외 1편
묵묵 외 1편
이종수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은
손을 먼저 흔듭니다
길을 같이 걷다가 헤어져도
손을 흔들어 멀리까지
배웅합니다
같이 걷는다는 것은
사람이나 개나 바람, 풀, 벌레까지도
발등에 얹는 일이어서
꽃처럼 손을 흔들어 마음을 비우는 것이지요
밤하늘을 날아서 당신이 옵니다
천애의 고아처럼 무인도만큼의 국적을 버리고
온다는 전갈을 받고
공항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세상에 고아 아닌 고아가 있을까요
(天涯라는 말이 더 아릴 뿐이지요)
당신의 호적에 아직은 굳세게 뭉친
우박의 결정체가 배꼽처럼 만져져서
만나면 우두망찰 아프게 맞아주는 것으로 대신하며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우산을 펴지는 않겠습니다.
지금쯤 트랙을 내리고 있겠군요
땅에 입을 맞추는 먼 나라의 사람처럼
손을 흔들고 있겠습니다
기다린 것만으로도 동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천애마저 와락 껴안는 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발이 멀고도 따뜻한 나라의 날씨를 알리는
기압골의 표시처럼 무탈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꼬막
어머니는 가마솥에 꼬막 삶아도
핏기 가신 배릿한 눈 만들어내시고
껍데기 부뚜막에 붙이시고
삼촌은 가심이 아파 꼬막 껍데기 불에 태워
갈아 마시고
나는 꼬막 꽁지 돌돌 뚫어 어머니 몰래
실꾸리 실, 목걸이 만들어
원기소 냄새 나는 목사 딸에게 바쳤지
꼬막은 깡깡한 가난살이
뻘에 살아도 해감하지 않는 눈
핏기 도는 맑은 눈 저절로 밝아지는
그래서 아직도 맞닥뜨리기 어려운
눈부처
네 눈에 매가 비치는
남도의 감빛 눈이지
*이종수 199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작나무 눈처럼』, 『달함지』, 『안녕, 나의 별』. 엽서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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