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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김인육/가난한 사랑에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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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김인육/가난한 사랑에게 외 1편
가난한 사랑에게 외 1편
김인육
겨울밤은 가난처럼 아득하다
깊고 서럽고 눈물겹다
그러나 사랑이여
저 무량한 은하수가
오늘밤은 하늘바다를 흘러흘러서
가난한 우리에게로 당도하느니
우리는 매화가 오는 길이라든가
혹은 연초록의 어린 것들의
꼬물꼬물한 햇살에 대해 이야기하자
월급이며 방세며 집값 같은 비루한 것들은
겨울밤 깊은 어둠 속에 파묻어 버리고
은하수 흘러가 닿는 신비한 마을에 대해
이렇게 별을 가득 가진 부자로 사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에 대해
서로의 눈빛 맞추며 웃어보자
정말 바보가 되어보자
그러는 사이 우리에게로 흘러오는
가장 빛나는 별들을 건져 서로의 눈동자에
반짝, 보석처럼 빛나게 넣어주고
지나는 바람이 궁금하여 똑똑 창문을 두드리면
잠든 척 이불을 덮어쓰고 포옥 서로의 심연에 잠겨보자
이불 가득 은하수를 덮고
달이 강을 건너듯
가난한 계절을 빛나게 건너가자
가을의 사랑법
이젠 좀 아파하지 않을란다
꽃이 핀다고 꽃이 진다고
애타게 마음 달뜨는 일일랑 않을란다
이제는 가을의 눈빛처럼 좀 처연해져서
봄이 와도 복사꽃이 피어도
설혹 철없는 사랑이 온다 해도
가만히 등을 쓸어줄 일
천둥 같이 울지는 않을란다
산이 말없이 계절을 맞이하듯
고요히 안으로 깊어갈 일이다
그래야 사랑은 사랑으로 영원하고
그대 또한 그대의 본연으로
꽃다울 것이다
가까이 두려고 꽃을 꺾어서 아니 되듯
저 달빛이
상처 하나 없이
강물 속으로 스미듯
서로의 마음속에
환하게, 아프지 않게 빛날 일이다
*김인육 2000년 《시와생명》으로 등단. 시집 『다시 부르는 제망매가』, 『잘가라, 여우』, 『사랑의 물리학』. 교단문예상, 미네르바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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