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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이진희/돌멩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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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이진희/돌멩이 외 1편
돌멩이 외 1편
이진희
어제의 엄마는 다정했다가도
오늘은 겁쟁이 그럴 때 엄마는 호수에 던져져
하염없이 가라앉는 작은 돌멩이
얘들아, 아무 걱정 말아라
나쁜 꿈은 모조리 내가 꾸어줄게, 해놓곤
불길한 꿈이 진짜로 맞았네 쯧쯧
등을 돌려서 혼자 꾸역꾸역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다 그럴 땐
점심도 저녁처럼 어둡다
엄마는 기억 전혀 못하겠지
돌볼 자식이 여럿이었으니
돌볼 감정 또한 차고 넘쳤을 테니까
사춘기의 내가 펑펑 울며 귀가했을 때
괜찮다, 그럴 수 있다
다독이는 한마디면 충분했는데
친구 때문에 마음 아파 울었다는 대답에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그렇게 울었냐며
혀를 차는 엄마가 싫다기보다는 무서웠다
부지런히 일해서 먹고 사는 일
걱정 없이 잠들고 아무 일 없이 깨는 일
가끔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가끔 교외로 나가 바람을 쐬고
가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
애도의 끝자락에 반드시
자신에게도 닥칠 그 순간을 가늠하며
눈에 띄게 몸서리치는 일
엄마는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하염없이 가라앉는 돌멩이가 되는 순간이
지나치게 많았던 때문일까 덕분에
나와 형제자매들은 비교적 안전하게 성장했다
그거면 됐다고 할 수 있다 자꾸만
돌멩이가 되는 엄마를 생각하면
더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되겠지 더 이상
따지지 좀 말아라
넌 뭐 그렇게 따지는 게 많으냐
등 따시고 배부르게 키워준 고마움도 모르고
불현듯 날아오는
그 차고 모난 돌멩이에 더는 명치를 다치지 않기를
그리하여 날아온 것보다 더 크고 차가운 돌멩이를
형제에게 친구에게 애인이나 이웃에게
되던지는 일을 그만 두게 되기를
허기진 사람
한 번도 내 의사를 물은 적 없이
그는 나에게 꽃을 주었다
더없이 감미로운 노래를 얹어 내 앞에
수시로 달콤한 케이크를 놓아주었다
달가워하지 않는 나를
그는 완곡하고도 완고하게 거절하였다
대가를 바라서 이러는 게 아니야
호의를 왜곡하지 않았으면 싶은데
그는 몹시 허기져 보였다
그 어떤 꽃이라도 시든다
날마다 반복 재생되는 노래는 외면당하고
지나치게 많으면 버려지기 마련
내가 마침내 귀를 틀어막고
말라비틀어진 꽃다발과 상한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버리자
그는 전보다 훨씬 허기진 사람이 되었다
*이진희 2006년 《문학수첩》으로 등단. 시집 『실비아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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