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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김상혁/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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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김상혁/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외 1편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 외 1편
김상혁
오래전에 죽은 할머니가 어디 산책하고 돌아온 것처럼 현관문 열고 들어올 때 죽도록 소리를 지를지 그녀를 안아줄지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
더 오래전에 죽은 할아버지 위독하니 어디어디 병원 찾아가 손 한번 잡아주라 그녀가 조심스레 부탁할 때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지
이 불길한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랄지는 또 당신의 선택
사람 같지도 않은 사람에게 쏟을 시간과 정성 다 모아,
옛날에 죽어 이젠 사람 아니고 모래가 된 영혼 앞에 한 다발 꽃으로 엮어 가져갈 때
당신은 세계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지 아니면
이 세계가 선한 사람을 나약한 사람으로 하나둘 대체하고 있다고 느낄지
나쁜 아버지가 죽고 나쁜 어머니도 죽었는데 그들이 내 강아지 짖는 문밖에 저녁으로 돌아올 때 현관문 열고 나가서 멀어지는 자동차 엔진 소리를 확인할지 블라인드 내리고 숨죽일지는 당신의 선택
자식도 없으면서 자식 잃은 부모 마음 운운하는 친구는 너무 시끄럽고
무름병 걸린 과실수에서 성한 열매 골라내는 이웃은 너무 평화롭다 느끼는 당신에게
오늘 하루 잘 견딘 선물로 술 한 병을 줄지 조용한 문장 하나를 줄지도 역시 스스로의 선택
그러다가 죽어서나 잠에서 깰지 아니면 사는 동안 무슨 이야기라도 될지
하여튼 할머니 할아버지는 있던 데로 돌아갔고
바람 부는 거리로 나온 당신이 과연 어떤 영혼을 눈 비비게 만드는 먼지가 되느냐
이모
한밤중 아들은 부모의 깊은 잠 속에서
번화가 중심처럼 반짝이는 꿈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무심한 사람이 취한 사람 등을 두드리고 눈물도 없는 사람이 우는 사람을 안아주고 있었다.
밤의 도시란 더럽고 정신없는 가운데 끝없이
따뜻한 정이 흘러넘치는 장소로군, 아들은 생각하는 중이었다.
내가 배운 마음은 이것이 전부라고 혼잣말하는 중이었다.
이모가 잠든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속삭였다.
얘, 그렇게 나쁜 꿈이었니?
*김상혁 2009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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