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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김분홍/러닝머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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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86회 작성일 19-07-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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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김분홍/러닝머신 외 1편


러닝머신 외 1편


김분홍



발자국이 알리바이를 만들고 지나간다
낯선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찍는 발자국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설정하고 달린다
가야 할 곳이 궁금할 때마다
길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덧댄다
페이스메이커가 없는 페이스에서
나는 완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출발에 실패한 것이다


속도와 속도 사이에는
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등만 보인다
다람쥐처럼
햄스터처럼
거대한 머신 위에서
당신 안엔 또 다른 당신이 달리고 있고 
나는 속도를 밀어내며 속도를 쫓아간다   


출발한 곳을 모르듯이 도착할 곳을 잊어버린 여정
올라서는 순간 7호선이고 내려서는 순간 세종시 버스 안이다
어느 구간에서 속도를 벗어나야 할까?
속도가 속도를 갈아 끼운다
속도가 쓰러진다 나는 그 속도를 밟고 속도를 더한다


허기진 날엔 초코파이가 마라톤 완주 메달로 보일 때가 있었다


가속도가 붙는다
쓰러진 곳은 언제나 목적지가 아니다





 양파가 있는 정물
―폴 세잔, 1895, 66×82cm



  정물 속엔 와인병과 싹튼 양파가 있다. 정물 속으로 들어온 남자가 여자의 반대편에 앉아 코르크마개를 딴다. 검붉게 채색된 정물이 숙성하고 코르크마개는 안면을 바꾼다. 바디에 빠진 남자가 개봉되지 않은 입구를 개봉한다. 마시기 부드럽게 방치한 와인, 남자가 여자의 잔에 따라 준다. 라벨 없는 양파들, 꿈을 보관한 정물 속에서 여러 겹의 얼굴을 껴입고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의 고백으로 정물 속 양파는 싹트고 벽에 걸린 양파는 싹트지 않는다. 여자가 와인 병을 내민다. 병목구간에서 과녁을 찌른다. 남자는 천천히 정물을 탐색한다. 어제의 동어반복인 오늘의 키스, 몇 번의 스킨십으로 열리지 않는 입구가 열리고 남자가 타닌을 날려 매독*을 따른다. 남자와 여자가 매독을 음미한다. 드라이하거나 스위트한 밤, 온몸에 매독이 번진다. 사심이 흘러내린다. 고백이 부딪친다. 머리 대신 식탁보와 양파에 집중한다. 정물 속 양파는 어제보다 한 뼘 더 촉이 자란다. 남자는 정물을 빠져나오지 못했는데 정물이 닫히고 있다.


   *매독 : 와인 이름.





*김분홍 2015년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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