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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문화영/차 한 잔 할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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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문화영/차 한 잔 할까 외 1편
차 한 잔 할까 외 1편
문화영
차 마시는 입만 가지고 차 한 잔 할까 우리
혀 밑으로 눌러놓았던 말
내 앞에 앉아있는
너는 나보다 많은 입을 가졌다
가방 속에 넣어둔 입들이 나를 보자 순서 없이 테이블 위로 쏟아져 진열 중이다
하나같이 지퍼가 없어 침을 튀긴다
말문을 닫고 노래지는 귀 나는 빨간 틴트로 입술을 그린다
자판기 앞에서 버튼을 누르듯 너는
입 하나에 아픈 지구를 입 하나에 회사 동료를 입 하나에 먹방 찍는 아이돌을 담아낸다
언제나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자연스런 3인칭들
고민 없이 사라지는 커피향 같은
입안에 갇힌 말들이 목구멍을 오르내린다
바닥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커피
마저 마셔야지
귀를 개조해 입을 만들까 내 귀들은 안절부절못하고
나는 말하고 싶은 걸 꿀꺽 삼킨다
등을 긁어주세요
그를 본적 없습니다 그렇다고
나랑 같이 있는 걸 의심하지 않아요
춤 출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
방문을 닫고 혼자 앉아 소리 내 울 때도
그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떠난 적이 없다는 건 만만하다는 거지요
거절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뒤통수를 치는 건 그의 몫이죠
모른 체하면 그만입니다 고작
식은땀을 흘리거나
서늘한 한기를 전달할 테니까요
배반은 내가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죠
당하는 쪽은 나인데
그가 웅크립니다
묻어버린 얼굴을 감싸줍니다
손길을 기다리며 구부정해집니다
빈집의 담벼락 같은 그에게 머리카락이 다가갑니다
어제보다 길어진 머리카락이 그를 감싸줍니다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당신이 기댔던 자리가 간지럽습니다
*문화영 2016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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