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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최자원/환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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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신작시/최자원/환희 외 1편
환희 외 1편
최자원
가리여울 길모퉁이 뒤편에 숨어 가슴을 쓸었다
저만치, 저기 어디쯤 당신이 있을 것만 같아 두려웠고
당신이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모퉁이를 도는 걸음걸음이 벅찼고
걸음과 걸음 사이에 환희가 스몄다
어쩌면 있을지 모를, 혹여 없을지도 모를 당신의 속내를 헤아리며
가까워지던 그 순간이 유일한 환희였는지도
커서
당신의 머리카락이 적힌 페이지 위
깜박이는 커서 뒤로 어떤 문장을 이어 적어야 좋을지 궁리하느라
하늘과 땅이 자리를 바꾸는 시간만큼 앓았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적힌 페이지를 뜯어내
일기장이나 시 속에 붙여넣고 싶었으나
꿈쩍 않고 버티고 앉아있는 커서는
그리 좋은 궁리가 아니라며 눈만 깜박인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자라나 버려지던 시간만큼
딱 그만큼이라도 당신 곁에서 우리이고 싶었던 마음이
깜박임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볼 수 있는 세상에 온통 투명해졌으므로
눈을 떴다
볼 수 없는 세상으로 온통 칠흑이었으므로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최자원 2016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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