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73호/신작시/김령/봄비 내리는 사이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73호/신작시/김령/봄비 내리는 사이 외 1편
봄비 내리는 사이 외 1편
김령
청소기를 미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동작과 동작 사이는 매끄럽고 속도는 일정하다 그 틈으로
비가 내리니 칼국수를 먹자는 전화, 나는 정지 버튼을 누르듯 그대로 멈추고 봄비 사이로 칼국숫집을 찾는다
국수가락은 자꾸 흘러내리고
내리는 빗줄기 틈은 미로처럼 복잡해서 맹세를 숨겨두기 좋았다
꽃이 피는 마을길을 걷는 동안 날이 갠다 산그림자 가만히 내려와 어깨를 다독이다 물러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재생 버튼을 누르듯 다시 일상을 잇는다
또 하루, 사는 연습을 한다
간절기
시험 앞둔 아이 위해
고기를 굽는다
붉은 살점을 후라이팬에 나란히 눕히고
살뜰히도 뒤집으며 통후추를 뿌린다
남의 살에 기대어 연명한 목숨
고기 한 점마다
먹이사슬 꼭대기에 오르길 바라듯
표고버섯과 피망도 색깔별로
울긋불긋 버터 두르고 굽는다
어머니의 그 어머니의 손끝에서 뒤집히던
저 깊고 층층한 욕망의 사다리
사다리 위쪽에 다다랐으나
자랑이던 털가죽으로 위기에 몰린 눈표범처럼
출구도 없이
맹렬하게 달려드는 허기
*김령 2017년 《시와경계》로 등단.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부문 당선.
추천0
- 이전글73호/신작시/최은별/그냥 외 1편 19.07.01
- 다음글73호/신작시/최자원/환희 외 1편 19.07.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