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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장편연재5/김현숙/흐린 강 저편5/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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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52회 작성일 19-07-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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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장편연재5/김현숙/흐린 강 저편5/지평선


흐린  강 저편
제5회 / 지평선


김현숙



한석이 내소사에서 출가의 뜻을 접고 집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시모와 계순의 갈등은 어느만큼 완화된 게 사실이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랬다. 그러나 첫딸을 낳은 계순이 어쩐 일로 그후 연년생으로 딸만 내리 셋을 낳아 어언 네 딸의 엄마가 되자 그로인해 가뜩이나 아들 선호 사상이 유별난 시모는 극히 심기가 편치 않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계순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이번엔 혹여 아들일까 애타게 기다려 온 시모는 한석이 네 딸의 아비가 되자 실의를 넘은 짙은 좌절에서 좀체 헤어나질 못했다. 따지고 보면 계순이 딸만 내리 낳은 게 적어도 그녀의 탓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대를 이은 고정 관념, 그 테두리 안에선 전적으로 그 모든 책임이 출산의 몫을 담당한 며느리에게 있다는 게 흔들림 없는 시모의 판단이었다. 


겉으로 딱히 내색은 안했으나 계순을 대하는 시모의 언행엔 은연 중 서운한 기미가 드러났고, 그로인해 계순은 딸을 낳을 때마다 시모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의 앙금이 깊어만 갔다. 계순은 임신 초기의 흔한 입덧조차 조심스럽기만 했고 입에 당기는 걸 찾는 임부 특유의 징후도 맘 놓고 드러내질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기만 했다. 때로 장날엔 혼자 장에 나가 이것저것 입맛에 당기는 걸 찾아 기웃거려 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마을 사람 누군가의 눈에 띄기 십상이라 이래저래 계순의 심경은 도무지 편편치를 않았다. 얼마 전 장날 기름 냄새 진동하는 시장 한 켠 좌판에 쪼그리고 앉아 정신없이 튀김을 먹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 마을 아낙 한 사람이 그걸 곧장 시모에게 옮겨 결국엔 희연의 귀에까지 들어온 걸 보면 계순의 맘은 오죽할까 이해되고도 남았다. 겨울 농한기, 서울 큰아들집에 다니러 온 시모는 큰며느리 희연과 마주한 조용한 시간이면 늘 자신의 마음에 묻어 둔 이야기를 꺼내어 푸념 겸 긴 하소연을 토로함이 상례였다. 
계순을 향한 까닭모를 엄격함과는 달리, 큰며느리인 자신을 향한 시모의 애정은 거의 무비판적, 무조건적이라 그 점이 희연에겐 극심한 곤혹감을 안겨주었다. 단지 당신의 첫 며느리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고 거기에 첫 손녀에 이어 손자까지 낳아줬다는 그런 이유만으로 내심 은연 중 편애를 일삼곤 하는 시모의 태도는 희연에게 결코 도움이 안되는 것임을 시모는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서로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살며 일상을 함께 하지 않기에 당연히 빈번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하지 않는 것도 자신을 향한 시모의 편애에 한 몫 함을 희연은 알고 있었다. 이래저래 고부간 갈등으로 고통 받고 힘들게 사는 사람은 계순이었고 그것을 해결할 존재는 오직 시모일 뿐임을 알기에 희연은 자주 둘 사이의 중재에 발 벗고 나서곤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갸는 대저 딸만 내리 낳은 게 넘부끄럽지도 않다냐. 애를 가졌다고 장터에 쭈글트리고 앉아 혼자 군입정을 허다니! 우리 땐 당췌 생각도 못헐 일이다. 뭐시냐. 그란께 나가 둘째를 가졌을 적인디, 하루는 복숭아가 워찌나 먹고 잡던지 지나가는 행상을 불러 보리쌀 한 되 주고 고것을 사먹었단께. 물에 대충 씻어 껍질도 안 까곤 겁나 맛나게 먹고 있는디 마실 갔던 엄니가 삽짝을 들어서는 것이여. 딱 들켰단께. 그 길로 엄니가 내 머리채를 움켜잡곤 동네가 떠나가게 소락데기를 질러쌌는디……. 참말로 혼줄 났단께. 시엄씨도 고렇큼 싸낙빼기 시엄씨는 시상에 둘도 읎을 것이다. 옛일을 회상하는 시모의 낯빛이 더없이 차분하고 담담하여 희연은 그 점이 더욱 놀라웠다. 할머님 진짜 너무 하셨네요. 아니 어머님, 할머님의 그런 고약하고 잔인한 처사, 그냥 참고 사신 거에요? 희연은 마치 자신이 당한 듯 가슴이 벌렁거리고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지만 며느리가 무슨 노예도 아니고, 설사 노예라 한들 그런 식의 야만적 행위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희연은 분노로 몸이 부르르 떨림을 느끼며 시모를 향해 반문했다. 긍께로. 근디 워찌겄냐. 그런 시엄씨 만난 것도 다 내 팔자고 그땐 다 그러고들 살았지 별 수 있었간디. 너무도 허심한 듯 들리는 시모의 말에 희연이 기가 막혀 반문했다. 화도 안나셨나요.
시모가 답했다. 속아지가 나긴 혔어도 식구덜 양식도 딸릴 땐디 그런 짓을 혔은께 내가 참아야지 워찌겄냐. 다신 고렇큼 안컷다고 싹싹 빌곤 싸게 저녁밥 차려 올렸지러. 말도 말어. 싸나운 시엄씨 밑에서 나 고상허고 산 것은 하늘이나 알제 누가 다 알긋냐. 참말로 징허게 징글징글혔은께. 요즘 시집살인 시집살이도 아녀. 시엄씨덜이 되레 메누리 눈치 보고 사는 시상인디, 글안혀……. 서리서리 맺힌 듯한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시모가 말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인들. 이렇다 할 자의식 없이 집안 대대로 내려 온 관습에 따라 핍박과 억압에 묵묵히 순응하며 그것이 곧 아녀자의 미덕이며 도리라고 믿고 살아온 여인들. 그러나 이제 그런 세상은 소멸되었다. 시모도 자신의 척박한 삶, 그 악몽의 기억을 떨쳐내고 변해야만 한다.   
그러니까요. 어머님께서 그리 힘든 시집살이를 하셨으니 동서에겐 좀 따스하게 대해주셔도 되잖아요. 어쨌든 어머님 모시고 농사 지으며 그 많은 애들 키우려면 하루 해가 짦고 고달플텐데 되도록이면 동서를 이해하시고 딸처럼 보듬어 주시길 부탁드려요. 저는 맏며느리지만 집안을 위해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동서 혼자 모든 걸 도맡아 고생하잖아요. 동서 맘이 편해야 제 맘도 편해요. 어머님이랑 동서랑 불화하면 저도 다리 뻗고 못잡니다. 희연은 간곡한 심정으로 시모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희연은 친정 어머니 강 여사가 그토록 맘고생을 강조하며 자신의 결혼을 만류했던 까닭이 해를 거듭할수록 절절히 체감되었다. 사랑의 과정은 실로 녹록찮음을……. 그것은 결혼의 전과정에 걸친 사랑의 실천, 단지 그것의 시작이었을 뿐임을 절감했다. 매일 밤 무언가에 대한 불안과 책무감에 짓눌리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엔 적어도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한 마디로 늘 뭔가 가슴에 체증을 안고 사는 듯 부채감에 시달리는 삶이란 일상의 작고 소소한 행복감을 앗아가는 크나큰 장애였다.   
그러나 장남인 경석이 짊어진 가족에 대한 책무를 나눠 지려면, 또한 그가 지닌 삶의 무게로부터 조금이라도 그 중량을 덜어주려면 그건 마땅히 희연이 감당해야만 할 몫이었다.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종일 시장을 돌며 계순과 그녀의 아이들 내의 및 옷을 잔뜩 사들고 시가로 향하는 희연의 발길은 쇠뭉치를 매단 듯 무겁기만 했다. 시모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명절을 포함, 일년에 대여섯 번이나 있는 제사까지 모셔야 하는 계순의 낯빛은 정겨움과 친밀감 중에도 늘 얼마만큼의 불만이 어려 있었고, 그런 모습을 맞닥뜨려야만 하는 희연의 마음 또한 말할 수 없이 무겁고 힘듦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 해 희연은 과감히 제사를 자신이 가져가겠노라 선언했다. 이왕이면 제사의 주최를 옮겨도 아무런 탈이 없다는 한가위, 추석 명절을 기해 맏이인 자신이 제사를 맡아하겠노라 단호히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귀성의 착잡한 심경과 불편 대신 정작 제사를 위한 제반 준비 과정의 모든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희연은 대학 졸업 직후부터 교직에 몸담아 왔고 결혼 후엔 시누이 혜옥이 살림을 도맡아 그녀가 애초 살림에 익숙해질 기회란 거의 없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다. 제수품 장만을 위해 장을 보는 일부터 대청소, 김치 담그기, 목기 닦기, 그리고 삼색전 중 고추전을 부치려 고추씨를 빼는 일부터 토란 껍질을 벗기는 작업까지, 또한 조기를 너무 익혀 그만 머리 부분이 떨어져나가 꼬치로 간신히 이어붙이는 일 등등. 뭐 하나 쉬운 일이라곤 없어 희연은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낑낑 매며 간신히 홀로 차례 음식을 장만한 후 오후에 고향에서 대거 상경한 시댁 식구들의 저녁 식사며 접대 등으로 마침내 그녀는 혼비백산, 그날 밤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고추와 토란을 맨손으로 손질하여 밤새 손이 아리기도 했으나, 서울 맏이네서의 첫 제사라 7남매의 거의 모든 식구들이 상경, 근 20명에 해당하는 가족들이 모여 든 까닭에 식사 준비며 잠자리 마련에 정신없는 상황을 겪은 때문이었다. 32평의 좁은 아파트에 꽉 들어찬 식구들로인해 번잡은 극에 달했으나 왁자한 웃음과 정겨움으로 모두 비좁은 공간조차 서로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는 계기일 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였다. 숙박의 편의를 위해 집 부근의 모텔에 방이라도 하나 잡을까 싶던, 제법 기특한(?) 희연의 의향은 완전히 묵살되었다. 워쩌어, 걍 차곡차곡 포개서 쪼깐 눈이나 부치고, 여그 앉아 날밤을 새더락두 함께 있어야제. 동상집에 와서 한뎃잠을 자다니 이게 대체 뭔 소리다냐. 펄쩍 뛰며 만류하는 손윗 시누이들의 반응에 희연도 더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작 차례 준비보단 저녁상이며 술상이며 시댁 식구들의 먹거리 접대에 더 분망하고 고달픈 나머지 밤이 되자 희연은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에 이르렀다. 고향에서 계순이 맡아할 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온통 법석을 떨곤 했던 지난 제사 때의 일들이 새삼 뇌리에 떠올라 더욱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모든 일이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진정 그 애로를 알 수 없음을 절감하곤 희연은 고추와 토란으로 아린 손가락을 냉찜질하며 한숨 지었다.
 
고향집에서 제사를 지낼 때면 희연네를 빼곤 형제들 대부분이 가까이에 살아 집안 어른인 시모를 뵙기 위해 통상 가족 전체가 모여들어 무려 근 30여명에 달하는 대단위의 모임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긴 계순의 아이들만 하더라도 딸이 네 명이고 7남매의 자식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마당을 제외한 건평 고작 30여평 정도의 집안 곳곳을 놀이터 삼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북새통을 이루는 아이들의 아우성에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매끼 끼니 때면 마루며 방마다 여러 개의 상을 펴 빼곡히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미처 상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한 사람은 주로 부엌 한 켠 작은 상에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기 일쑤였다.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며 부엌 일을 담당하는 계순과 희연이 으레 그런 측에 속했는데, 희한한 일은 그런 옹색한 식사에도 불구하고 직접 농사 지어 가꾼 무공해 재료로 빚어내는 반찬, 여럿이 함께 먹는 음식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소음과 혼란 가운데도 그렇게나 맛있고 정겨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희연은 그 점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러기까지엔 매사에 급한 게 별로 없고 느긋하고 천연스럽기만 한 계순의 성격도 큰 몫을 차지함이 사실이었다. 딸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워낙 천성이 유연하고 느슨하여 얼핏 보기엔 나태가 느껴질만큼 태평한 모습이 그녀의 강점이었다. 잔뜩 어지러진 방, 여기저기 늘어져있는 물건들. 정갈하고 깔끔한 성품과는 거리가 먼, 어쩜 시부모 봉양에 네 아이의 양육과 거친 농사일까지. 그녀가 겪는 삼중고의 삶에 애초 그런 것까지 기대함은 무리일지도 몰랐다.  
그에 비해 시모는 너무도 바지런하고 손 빠르고 몸놀림이 재빠른 여인임이 고부간 갈등의 화근이었다. 그러나 그건 7대 독자로서 더없이 자기본위적이고 병약한 지아비를 대신하여 빈곤 속 시부모 모시며 일곱 명의 자식들을 건사하고 보살펴야만 했던, 죽지 못해 살아온 고되고 힘든 삶. 그것이 가져 온 뇌수 깊은 곳에 각인된 슬픈 습성일 것이다.
 
학수고대 아들만을 바라며 끝내 출산을 포기하지 않던 계순이 이윽고 다섯 번째 아이를 가진 그해 가을, 마침내 큰 가마 안에서 자글자글 시나브로 타오르던 불꽃이 어느 순간 강력한 화력을 일으키듯 마침내 고부간 갈등이 대폭발로 이어진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새북에 눈 떠도 하루가 대저 쓸 것이 읎단께.
농사철의 가을 일은 하루가 늦으면 열흘이 늦어진다는 말이 있듯 너무도 짧은 가을 하루, 일은 많고 일손은 딸리고 성질 급한 시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만 갔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을 종종대며 들녘을 쏘다녀도 마당 가득 쌓인 가을걷이는 쉽게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하늘은 곧 비라도 뿌릴 듯 침침해져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나 굼뜬 몸으로 한석이 벼 베는 논가에 겨우 점심 새참을 날라다 준 이후 내내 방에 틀어박힌 계순은 어쩌자고 꼼짝도 하질 않아 시모는 부아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다.
       
야, 에미야. 대체 안에서 뭘 허고 있다냐. 이젠 쪼깐 마당에 나와 말린 고추라도 후딱 좀 걷어야 쓰겄는디. 곧 비 쏟아지게 생겼다아. 에미야, 뭣혀~. 급한대로 빨간 고추가 가득 널린 멍석 귀퉁이를 이리저리 말며 시모가 계순의 방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 낮잠에라도 들었었는지 부스스한 머리털을 매만지며 그제서야 계순이 잔뜩 부은 얼굴로 방에서 몸을 빠져나왔다.      
가을일은 미련한 놈이 잘허고, 칠월 신선에 구시월 뱃놈이란 말이 있다. 여름내 고렇큼 신선 노릇혔음 인자 걷어부치고 싸게 일 헐 때도 되얏건만 뭔짝으로다 허구헌날 냅다 잠만 퍼자고……. 참말로 폭폭혀서 못살겄다아. 참말로 못살겠단께. 계속되는 시모의 질책에 가뜩이나 임신 초기의 끝 모를 피로와 과민에 시달리던 계순은 순간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뭔 말씀을 고렇큼 심허게 허셔요. 지가 언지 신선놀음을 혔다고 그려요.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여요. 몸 한번 딸싹 하덜 못허고 365일을 종처럼 사는디……. 참말로 인자 더는 이렇큼 못살겄어요. 고추가 널린 멍석을 벌컥 접어 창고 안으로 질질 끌고 가며 계순도 분기충천한 음성으로 악을 쓰며 대들었다.  
뭐시 워쩌. 너 시방 고걸 말이라고 혔냐. 새끼덜은 넘보다 곱절은 낳아갖꼬선 신랑은 뼈꼴 빠지게 일 허는디 각시란 것은 죙일 잠 퍼자고 나와 헌다는 소리가 겨우 고따구냐. 자알 헌다, 잘 혀. 이집에서 종은 대저 누구다냐. 으응…바로 나여, 나. 새끼덜이 많아 즈거덜 먹고 살라고 죽으라 일혀줬더만 에고, 분혀서 못살겄다. 참말로 원통허고 분혀서 못살겄어. 이대로 콱 죽어뻔져야제 대체 워찌 살겄냐아…….
애끓는 하소를 토해내며 뒤란으로 사라진 시모는 그로부터 얼마 후 들일을 마친 한석이 마악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때서야 위급의 상태로 발견되었다. 창고에 농기구를 넣으려 뒤란으로 들어선 한석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시모의 모습을 보곤 기겁, 곧바로 119를 불러 시모를 싣곤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나마 한석이 들에서 빨리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계순과 말다툼을 한 시모는 곧바로 뒤란 창고로 달려가 농약 한 병을 따 벌컥벌컥 마시다간 그대로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홧김에 생긴 끔찍한 불상사였다.
요행히 시모는 위세척을 통해 간신히 소생하였으나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고부간 더 이상은 도저히 한 집에 살 수 없다는 가족회의 결과, 결국엔 서로 분가하기로 결정이 났다. 시모와 계순이 당분간은 서로 떨어져 지냄이 피차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울 것이라는 게 가족들의 중론이었다.
독한 농약 성분의 흡입이 남긴 후유증으로 시모는 며칠을 더 병원에 머물러야만 했다. 주말을 이용해 병문안을 간 희연에게 시모가 자신의 처연한 심경을 토로했다. 
15살에 꽃가마 타고 시집 와 해 지는 지평선 바라보며 이 마실에서만 70년을 살았지러.
때론 사는 게 징글징글혀갖곤 참말로 워디로 달아나고잪아도 달아날 데가 없드란께. 시집 오던 해 열병을 앓았는디 층층 시부모 모시고 살믄서 열이 펄펄 나고 삭신이 무너져도 아궁이 앞에 쪼글뜨리고 앉아 불을 땠단께. 하루는 자고 일나니 쪽진 머리털이 모자맹키로 통째로 쏙 빠져 겁나 무서갖곤 막 울었단께. 막내 시뉘는 손벽을 치며 깔깔대고 웃어쌌고 큰 시뉘가 말읎이 다가 와 수건으로 내 머릴 꽁꽁 싸매주더라고. 빢빢머리가 넘부끄러워 몇 달을 고렇큼 수건만 쓰고 살았은께. 옛일을 회상하는 시모의 눈빛이 차오르는 회한으로 흐려졌다. 
휴우, 나 살아온 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시집와서 본께 시뉘 다섯에 아덜이라곤 달랑 니 시애비 하나여. 시뉘덜이 워찌나 극성맞고 싸납배긴지 외둥이 아덜이 영판 치이더란께. 신랑이라곤 몸이 약해 빠져 빌빌 해쌌고……참말로 폭폭혀서 못살겠더란께. 쎄빠지게 일혀서 모은 돈으로 겨우 부안에 땅 사고 새집 사 마악 이사가려고 허는디, 그때 마침 때를 맞춘드키 부안에서 산 타고 공비가 내려 와 마을을 죄 쑥대밭으로 맹그는 사건이 터졌단께. 혀서 쪼깐 꺽정스러워 이사를 미루고 있는디, 시집 가 부안에서 살고 있던 막내 시뉘가 즈거가 먼저 거그 땅에서 농사 지으며 함 살아볼틴께 울더러 찬찬허니 이사오라고 허드라고. 후제 집을 비워줄 중만 알았제잉. 그러드만 끝내 즈거 식구덜이 차지하곤 집도 땅도 끝내 비워주덜 않는 것이여. 환장혀 죽겄지만 피를 나눈 혈육인디 죽이겄냐, 워찌겄냐. 인자는 거그서 농사 짓고 오래 살드만 영판 자기네 땅으로 알고 내어줄 생각조차 안 헌지 오래 되얐단께.
시모의 말이 사실임은 희연도 신혼 때 이미 파악한 내막이었다. 신행 인사 차 다섯 명의 시고모 중 가장 막내라는 부안 고모집를 방문하던 날 경석이 들려 준 이야기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이라 희연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렇다 할 문서나 서류도 없이 단지 구두로 한 약조이긴 했으나 형제간 신뢰와 정리를 생각할 때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을 행한 시누이. 그런 사람초차 다 껴안고 용서하며 살아야 했을 시모의 내면은 과연 어떠했을까. 희연은 더없는 부당함과 분노에 몸을 떨었다.
부안 고모의 집은 희연이 한 눈에 보기에도 육간대청 여느 대감 집의 면모를 갖춘 대단한 규모의 전통 한옥이었다. 정방형의 젊은 마당엔 자미수, 능소화 등 온갖 꽃이 피어있고 깊고 찬우물이 있고 모든 것이 반지르르 윤이 나는 고아한 저택의 분위기였다. 이 집이 바로 우리집이었는데 고모님이 차지하셨어. 그때부터 우리집이 고생 길에 접어들었지. 농사 지어 애써 모은 재산을 몽땅 투자한 곳이니까. 물론 빚도 얻었지. 그 빚 갚느라 엄니랑 나, 우리 형제들 진짜 고생 심했지. 집을 둘러보며 회오에 찬 얼굴로 경석이 말했었다. 아니 그럼 재판이라도 해서 집과 땅을 되찾아야지 이해가 안되네요. 희연이 새파랗게 화난 얼굴로 반문하자, 경석이 대답했다. 그럼 남도 아니고 고모넨데 어쩌겠어. 재판은 무슨…그저 시간 지나면 비워주려니 믿고 살다간 세월만 간 거지. 무연히 말하는 경석도, 그렇듯 일처리를 행한 시부모도 희연은 모두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시모의 말이 더 이어졌다.           
누군덜 고렇큼 살고잡아 산 사람이사 있겄냐. 타고난 팔자려니 허고 걍 죽은득키 살아온 것이제. 헌디 요즘 것들은 워디 고렇큼 박복허고 고달픈 삶 상상이나 헐 수 있겄냐. 나도 인자 살만큼 살았고 그만 살고잡다는 생각이 당췌 떠나질 않혀. 한량읎이 지평선만 바라보고 사는 삶도 인자는 참말로 징허다잉. 지평선께가 삘가니 물들어오면 아궁이 앞에 앉아 하염없이 울곤 혔단께. 내 평생 언지나 여글 벗어날까 눈앞이 캄캄해져갖곤……. 끝이 읎는 막막헌 지평선이 나헌티는 바로 창살읎는 감옥이었은께.            
꼭 부여잡은 희연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시모는 마치 독백을 하듯 자신의 지나간 삶을 되짚어 갔다. 그 사연이 하도 애절하고 신산하여 희연은 몇 번이나 목이 잠겼다. 시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순간 무슨 말이라도 하여 시모를 위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 이제 고생은 끝, 앞으론 좋은 일만 있으실 거에요. 이제 곧 손자도 보셔야죠. 저 임신했어요, 어머님. 근데 호랑이 태몽도 그렇고 입덧도 그렇고 이번엔 어쩐지 꼭 아들 같아요. 희연은 확신도 없는 말을 털어놓고 있는 자신에 놀랐다. 하긴 50:50의 확률이니 어차피 아들 아님 딸일 것이다. 호랑이를 본 태몽 뿐 아니라 첫 딸 때완 달리 유독 육식이 당기고 웬지 이번엔 아들일 듯한 예감이 있긴 했으나 일단 시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한 말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상불 기운 하나 없이 축 쳐져있던 시모의 어께가 들썩 움직임을 보이더니 벌떡 상반신을 일으켜 앉으며 목소릴 높였다. 하이고, 에미야. 이게 시방 뭔소리다냐. 너 애 가졌냐. 호랭이 꿈을 꿨담서. 아덜 맞겄다야. 호랭이 태몽은 영락읎는 아덜이더란께. 안골 당숙 아덜이 뭐시냐 판사까정 혔잖여. 근디 갸아 가졌을 때 태몽이 호랭이 꿈이었디야. 우리 큰며느리 참말로 장허다, 장혀. 너사 원캉 복뎅이라 아덜도 너끈히 낳을 것이다. 낳고 말고…….
그로부터 시모는 그토록 마다하던 식사며 산책까지 시도하며 돌연 생기를 되찾아 식구들을 놀라게 했다. 그건 희연과 시모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희연이 장손을 가졌다는 것. 그것이 그토록이나 시모의 삶에 새로운 의지를 부여할 조건인 것인지……희연은 내심 너무도 놀랍고 또한 한 편은 염려스럽기도 했다. 만에 하나 아들이 아닐 경우 지극히 낙담할 시모의 모습이란 상상하기 조차 두려운 일이었으나 일단은 시모를 소생시키고 볼 일이란 생각에 희연은 모든 불확실성을 접어야만 했다.   
 
농번기를 지나 겨울이 다가올 즈음 결국 한석은 시모와 함께 살아 온 집을 떠나 분가했다.
그래봐야 겨우 담 모퉁이 돌아 골목 끝에 자리한 지척의 거리로 살림을 났을 뿐 한 동네 가까운 이웃이라 크게 서로 소원해질 일은 없었다. 다만 고부간 일거수 일투족을 서로 상관 안 해도 된다는 게 쌍방에 크게 이로움으로 작용되어 피차 심간 편한 나날이 지속된 점은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한석은 노모가 염려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본가엘 들렸고 계순 역시 국이며 밑반찬을 만들면 어김없이 시모에게 먼저 갖다주는 갸륵함을 보여 분가 후 외려 고부간 갈등이 서서히 줄어만 갔음은 다행이었다.             
그 뿐인가. 분가한 다음 해 봄 희연의 득남에 이어 마침내 딸 넷 다음으로 계순이 아들을 낳자, 시모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펄펄 뛰며 환희에 찼고 기꺼이 계순의 산후바라지를 도맡아 하며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또한 아이들 다섯에 한석 내외까지 일곱 식구가 보대끼기엔 아무래도 이사 나간 좁은 집보다 그래도 번듯한 본가가 더 살기에 편하다는 이유로 그들은 결국 다시 합가하는 것에 합의를 보았다. 그 모든 일의 진행은 뭐니뭐니 해도 계순의 다섯 번째 아이, 즉 훈이의 존재 때문임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집안엔 다시 웃음꽃이 피고 화기가 돌았는데 그러한 사실에 누구보다 안도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사람은 희연이었다. 호랑이 태몽과 여러 정황상 병석에 누운 시모에게 아들을 가진 것으로 귀뜸했던 일이 두고두고 맘에 걸렸었는데 몇 개월 차이로 자신이 먼저 아들을 낳고 연이어 계순이 또 아들을 낳자 뭔가 일이 순탄히 잘 돌아가는 듯한 평온이 느껴졌던 것이다.  
훈이의 출생으로 삶의 행복 지수가 높아진 사람은 비단 시모 뿐이 아니었다. 연년생으로 내리 딸 넷을 낳으며 오매불망 아들을 기다려 온 계순은 물론이고 한석은 눈에 띄게 생활 태도가 바뀌어 우선 술을 입에 대면 대취하도록 마셔대던 주사가 사라지고 뭔가 좀 삶에 대한 진지함이 깃든 모습으로 변해감이 놀라웠다.
금자동아, 은자동아, 금을 주면 너를 사며, 은을 준들 너를 사랴…….
시모는 훈이 자신의 치마폭에 오줌을 싸도 흔연히 웃었고 심한 투정이나 말짓에도 그저 모든 걸 어여삐만 받아줄 뿐이라 그 위 네 명의 딸들은 단지 훈을 위한 들러리로 존재할 따름인 그런 느낌을 주었다. 어쨌거나 다섯 아이들은 탈없이 튼튼하게 잘 자라났고 한석은 마침내 그들의 교육을 위해 대도시인 J시에 아파트를 매입, 시모와 함께 아이들을 이주시켰다.

지평선 저 너머!! 시모에겐 이윽고 막막한 지평선 너머 아득한 들녘 저 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번잡한 도심 시장통 옆의 아담한 아파트. 시모의 새 삶은 다섯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거점으로 출발했다. 시모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편안하고도 행복한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급식이 없던 시절, 칠순이 다 된 노령에 다섯 아이들의 도시락이며 입성이며 청결이며 아이들 건사가 결코 쉽지만은 않으련만 워낙 농사일로 단련된 시모는 거뜬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주위를 경탄케 했다. 아파트 진입로가 바로 시장통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시장을 오가며 다섯 아이들의 먹을 것을 사들였고 열심히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쉴 틈 없는 일과였으나 시모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씩씩하고 밝아만 보여 놀라웠다. 뭐시 힘들다냐. 이게 살림이간디, 빠끔살이 같혀. 가족들이 힘들지 않느냐 물어볼 때면 험한 농사일에 비해 오밀조밀한 아파트 안에서의 살림살이란 마치 아이들 소꿉장난만 같다고 답하곤 했다. 아이들이 성장하자 하루에 무려 7개에 달하는 도시락을 싸기에 이르렀으나 시모는 절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오직 나날이 훈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만이 시모의 모든 것이었을까. 훈이에 대한 시모의 애착과 과보호는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미 소문이 날만큼 유별난 데가 있었다. 동네 아이들과 놀던 훈이 어쩌다 서로 쌈박질 끝에 맞거나 울고 들어올 때면 시모는 불같이 달려나가 손자의 역성을 들며 반드시 때린 아이를 혼내주고야 마는 싸납쟁이 할매로 약명 높아 드센 이웃 아낙들과도 종종 마찰이 빚어지곤 함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극성맞은 지지배들 땜시 머스마 하나가 완전 치인단께로. J시의 현대식 아파트에서 손녀 넷에 손자 하나, 그렇게 다섯 아이들을 양육하는 시모는 늘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누나 넷 밑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훈은 천성 자체가 욕심이 없고 유순하여 그 점이 더욱 주위로 하여금 귀염을 받는 대상이 되곤 했는데 시모의 눈에는 외려 그것이 그악스런 누나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기가 죽어가는 현상이라며 끌탕을 하곤 했다. 계란 부침 하나라도 훈이의 입에 들어가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모의 태도로인해 손녀들의 불만도 종종 수위를 넘곤 했으나 집안은 늘 시끌벅적 화해로운 분위기였다.
그 시절이 아마도 시모의 생에 정점을 이뤘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자유롭고 흔연하고 평화로운 나날. 한석 내외가 농사 지어 보내주는 식량과 생활비로 직접 가계를 꾸리고 장을 보고 이웃을 사귀고……. 희연은 다만 시모가 도시 아파트의 노인답게 비녀 꽂은 쪽머리를 싹뚝 잘라 시원스런 커트형 머리로 변화한다면 모든 게 더욱 조화로울 것이라며 내심 늘 그 점이 아쉬웠다. 머리를 감을 때면 더없이 힘들어 보였고 숱 없는 긴 머리털을 참빛으로 빚어 내리는 양이 너무도 기이하고 고답적인 모습이라 속이 답답해왔다.   
때문에 기회를 봐서 어쩌다 상경하는 시모에게 적극적으로 커트를 권해보기도 하였으나 시모는 번번이 숱 없고 긴 머리를 틀어올려 비녀를 꽂는 쪽머리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새색시 때 열병을 앓아 머리채가 통째로 다 빠져버린 아픔이 너무도 큰 트라우마로 남아 시모는 도저히 머리만은 쉽게 자를 수가 없노라 말했다. 희연이 결혼하며 시모를 위한 예물로 가져 온 은비녀. 끝내 그걸 애장하며 머리에서 늘 빼놓질 않던 모습. 시모는 그렇듯 끝까지 비녀 지른 쪽머리를 고수했다.        

맛있는 걸 사 먹이려 장을 볼 때도 늘 데리고 다니는 훈이에 대한 시모의 그런 유별남 때문일까. 누나만 넷인 집안의 막내 아들인 훈이의 존재는 시장통에서도 유명했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훈이 아직 취학 전이던 어느 여름 한낮, 그날도 시모의 손을 꼭 잡고 장엘 따라간 훈은 복잡한 시장통 한가운데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싱싱한 야채를 고르느라 시모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온데간데 없이 실종되고 만 것이었다. 장바구니를 내팽개친 시모는 전신이 땀으로 범벅되어 혼비백산 시장통을 누비며 훈을 찾아 헤매었다. 우리 손주 못 봤소. 우리 손주 못 봤어라……! 시모의 울부짖음은 시장통을 흔들었으나 훈이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떡볶이집, 튀김집, 놀이터, 친구집……아이가 갈만 한 곳은 다 헤매고 다녔으나 허사였다. 어묵 가게 여주인이 얼핏 어떤 남자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훈이 비슷한 아이를 본 듯도 한데 친척이려니 여겨 그저 무심히 지나쳤을 뿐이라고 전한 말이 전부였다. 경찰서로 달려 간 시모는 온통 눈물 바람을 하며 손주 좀 꼭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훈이의 실종 소식을 접한 한석과 계순이 득달같이 시골에서 달려왔고 시장을 중심으로 온 데를 돌아다니며 샅샅이 뒤졌으나 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시모는 식음을 전폐하고 몸져 누웠고 한석 내외도 제 정신을 잃고 J시의 모든 경찰서를 누비고 다니며 아이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늦은 저녁,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진하여 홀로 누워 있던 시모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유, 여보시유……. 잘 들으세요, 할머니. 지금 훈이를 데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를 절대 헤치진 않아요. 돈이 필요해서 그러니 우선 3백만원만 좀 마련해 두세요. 낼 오후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경찰이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할머니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내일 밤 10시 정각. 아파트 놀이터 뒷산 밤나무 숲 벤치로 아무도 몰래 돈 갖고 나오시면 훈이 곱게 돌려 보냅니다. 할머니, 할머니…듣고 계십니까. 잠깐 훈이 바꿀게요. 청년으로 느껴지는 젊은 남자가 곧 훈이를 바꿔주었다.
할머니, 할머니, 저 잘 있어요. 낼 집에 갈게요, 걱정 마세요. 훈이의 음성은 평소와 똑같이  전혀 위축되거나 얼어 있거나 하질 않았으나 시모는 아이의 음성만 듣고도 와락 울음이 터져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흐…훈아, 저녁은 먹었냐. 왜 이 할미에게 말도 안하고 누굴 따라 워딜 간겨. 에고 이 놈아, 할민 너 읎음 죽는다, 죽어……. 오열하는 시모의 귀에 다시금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진정하세요, 할머니. 절대 아이는 해치지 않아요. 아, 아자씨이, 늙은이가 뭔 돈이 있겄어라. 시방 내게 있는 돈 몽땅 털면 백만원은 되겄소. 그 돈 몽땅 통장 째로 드릴텐께 지발 우리 손주만은 돌려주소. 지발요. 내가 곧 죽게 생겼소. 갸아 워찌 되면 나가 먼저 죽은께 지발 부탁인디, 시방 당장 돈 갖고 나갈텐께 아이만 돌려주시요잉. 늙은이랑 아이 두 사람 다 죽어블믄 앞으로 살 날 창창헌 젊은이도 뭐시 고렇큼 좋겄소. 낳아 준 부모 생각혀서락두 지발 지발 내 말 쪼깐 들어주소오.
시모의 피끓는 애원에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훈아, 훈아…아이고, 내 강생이. 대저 워디 있다냐. 시모는 통곡을 하며 흐느껴 울었다. 그리곤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손녀들이 다니던 교회를 향해 곧장 달려갔다. 예배당에 나가면 밥을 주냐, 옷을 준냐. 당췌 그런 데 나가덜 말어. 평소 계순이 교회 다니는 것도 심히 못마땅해 하던 터에 네 명의 손녀들까지 지 에미를 따라 우르르 교회 다니는 걸 보면 조상대대로 제사를 모셔 온 시모는 속이 터졌다. 그나마 아직 한석만은 흔들림 없이 신앙을 마다함이 다행이랄까. 그러나 시모는 그날 정신없이 교회를 향해 내달렸다. 교회로 들어선 시모는 십자가에 매달린 성상 앞에 주저앉아 주문을 외듯 정신없이 훈이를 돌려달라 기도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엉망인 노모의 모습을 발견하곤 마침 교회 마당을 나서던 목사가 다가와 사연을 물었고 시모는 사실을 고백했다.
훈이 할머니,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손주 무사히 할머니 품으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목사는 시모를 일으켜 두 손을 꼭 잡으며 오래 오래 기도를 해주었다. 순간 시모의 마음에 알 수 없는 희망과 평화가 밀려왔다. 시모는 목사를 향해 수없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 우리 손주만 무사히 돌아온다면 내 꼭 교회를 댕길 것인께. 시모는 몇 번이고 그렇게 다짐했다.
 
교회를 나와 아파트로 들어서는 발길이 쇠고랑을 찬 듯 무거워 시모는 몇 번이나 가뿐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저만치 사람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자세히 보니 한석의 모습과 계순, 그리고 어느새 훌쩍 자란 손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일까. 시모는 좀 더 동작을 빨리하여 그들을 향해 허위허위 다가갔다. 아, 헛것을 본 것일까. 그들 사이에 분명히 상고머리 머슴애의 모습이 아른거림이 이상했다. 흐…훈아……환영처럼 다가오는 훈의 모습에 시모는 휘청 쓰러질 듯 몸을 흔들며 신음했다. 할머니, 할머니! 순간 머슴애가 쪼르르 시모를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훈이, 진짜 훈이인 것일까. 시모는 점점 더 흐려지려는 정신을 또렷이 모아 아이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꽂았다. 훈이, 틀림없는 훈이었다.
 
시상에 참말로 이게가 꿈이여, 새…생시여. 시모는 달려드는 훈을 와락 끌어안고 그대로 훨훨 춤을 추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비상하는 독수리. 노모는 순간 한 마리의 독수리가 되었다.





*김현숙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 골고다의 길). 1989년 《현대문학》 신인상 추천완료(단편: 어둠, 그 통로). 작품 「출모」, 「삼베 팬티」, 「어두워지지 않는 밤」, 「가지 않은 길」 ,「꽃비 내리다」, 「홋카이도 3월의 눈」, 「와디」, 「히스의 언덕」등 다수.  2002년 소설집 『하얀시계』 출간 (휴먼 앤 북스), 2010년 소설집 『노을 진 카페에는 그가 산다』 출간 (도서 출판, 개미), 2013년 장편 『먼 산이 운다』출간 (문학나무). 2010년 제 14회 이화문학상 수상, 2012년 제 1회 아시아황금사자 문학상 (우수상) 수상, 2013년 제 10회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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