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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배꼽 외 1편/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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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4,148회 작성일 04-01-0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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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하
배꼽
―관계에 대한 고집


꽃병에서 눈을 뜨는 여자
꽃병에서 머리가 반쯤 돋아난 여자
꽃병에서 목이 쑥쑥 길어지는 여자
꽃병에서 녹색 벽돌을 나르는 여자
꽃병에서 아이 한 채를 짓는 여자
소리 지르며 소리 지르며 모락모락 김이 나는 여자
아이의 배꼽에 호스를 끼우는 여자
부푸는 아이 몸에 미래를 주입하는 여자

그 여자의 체액을 빨아먹는 아이
그 여자의 미소를 찢어먹는 아이
그 여자의 가시를 발라먹는 아이
그 여자의 눈을 사탕 막대기에 꽂는 아이
그 여자의 뇌에 불을 지르는 아이
불 지르며 불 지르며 무럭무럭 크는 아이
여자의 배꼽에 호스를 끼우는 아이
헐거워진 여자 몸에 기억을 주입하는 아이

아이의 배꼽에서 여자가 주름투성이 손을 내민다
여자의 배꼽에서 아이가 털북숭이 앞발을 내민다





노란 약을 파는 가게


해변에서 모래밭을 지나 소나무 언덕을 넘어 푸른 약을 파는 가게를 지나면 노란 약을 파는 가게가 있네
해변에는 금빛 가루가 물결 위로 떨어져 내리고 하얀 새 한 마리가 물결을 타고 앉아있네
하얀 새는 노래를 부르며 뾰족한 부리로 어둠이 새어나올 때까지 물결을 물어뜯네
튿어진 어둠 속에서 고름 같은 그림자 몇몇이 어슬렁거리다 소나무 언덕을 넘어가네
문이 잠긴 푸른 약을 파는 가게를 지나 노란 약을 파는 가게로 가네
노란 약을 파는 가게에는 약사 가운을 입은 작은 꼬마가 노래를 부르고 있네
노래는 해변에도 있고 노란 약을 파는 가게에도 있네
꼬마는 그림자에게 기타처럼 생긴 커다란 캡슐을 건네네
먼저 들어선 그림자를 섞어 제조한 캡슐이라네
출구로 나오면 푸른 약을 파는 가게라고 적혀있네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오던 길에 노란 약을 파는 가게가 있네
그림자는 캡슐을 연주하며 문이 잠긴 노란 약을 파는 가게를 지나 소나무 언덕을 넘어 모래밭으로 돌아오네
넘실대는 파도 위에 연주하던 캡슐을 바치네
해변에는 금빛 가루가 물결 위로 떨어져 내리고 하얀 새 한 마리가 물결을 타고 앉아있네
하얀 새는 노래를 부르며 뾰족한 부리로 빛이 새어나올 때까지 노란 캡슐을 물어뜯네
노래는 노란 약을 파는 가게에도 있고 해변에도 있네
그림자가 노래를 몰고 다니네
노란 약을 파는 가게에서 해변으로 돌아오는 소나무 언덕에서 그림자들은 노래를 잃기도 하네
노란 약을 파는 가게에서 해변으로 돌아오는 소나무 언덕에서 그림자들은 간혹 실종되기도 하네  



이민하
․전북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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