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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그 옛날의 바람 불면 외 1편/손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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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순
그 옛날의 바람 불면
옛날 집 그 앞마당 같은 북아현동 산밑엔
청소차와 트럭과 지프와 리어카가 함께 산다
후박나무 느티나무 제멋대로 가지 뻗어
쭉정이 벼이삭처럼 시들어가는 늦은 어스름
공터 주차장엔 옛날의 바람 아직 부는데
싸늘한 반지하에 들어와 짙푸른 커튼 사이로
어느새 한 등씩 발갛게 실눈 뜨는 가로등 본다
산아래 어스름 마을로 밤이 내리면
하늘 가까이 켜드는 저 방의 불빛들
타작마당처럼, 바람 소리 휘파람 소리
덜컹거리며 그 불빛 탈곡하는데
엘피지 떨어진 독방(獨房)에 남아
어둔 심해(心海)에 무인등대 밝히는, 그녀
유년의 일기 1974
앙상한 가지에서 붉은 해가 뚝, 떨어지기 전입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 기대어 잠자던 늙은 감나무가 갑자기 비틀, 비틀거립니다. 놀란 두 토끼 눈 부비면 그 사이로 어느새 붉은 눈 맞추는 낯선 이방인의 새하얀 손, 파아란 금복주, 그것은 내게 초록색 신호등이었지요. 할머니는 하얀 앞치마에서 푸른 배춧잎 한 장을 꺼내 꼭 쥐어주셨습니다. 그런 날이면 몸에 맞지도 않은 옷 입은 아이들이 신발을 질질 끌며 내 꽁무니 쫓아 동구밖을 몇 바퀴씩이나 돌았습니다. 경산 중앙시장 구석구석 카바이트 불빛이 하늘분지로 올라가 푸른 아버지의 별이 되었습니다.
손정순
․경북 청도 출생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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