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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관계


늙은 아이스크림 기계 앞을
지나쳐 가는데

내 아랫배에 숨어있던 꼬마 삐에로
닭발 같은 손을 내밀어
아이스크림을 잽싸게 낚아챘다

나는 묵묵히 돈을 치르고
저녁을 굶었다
오늘의 제사는 취소되었다







지푸라기


오래 기다렸어요 청색 널빤지
내려왔다 사라졌다 너덜너덜해지는 동안
산꼭대기 바위틈에서
두 손을 앞에 모으고요
돌무더기에 또 하나 돌을 올리고 나서
나는 꽉 찬 만두 속 같았는데요
지나갔어요 배꼽으로 들어와
등뼈 사이로 빠져나간 지푸라기들
수북히 쌓였습니다
헬리콥터의 단단하고 검은 배를 올려다보았지요
쌀밥을 지어 먹었구요
열은 내렸습니다
까치 한 마리 가느다란 나뭇가지
입에 물고 둥지로 날아올랐는데요
왜 이제야 보았을까요
세 번째 나무를 지나 열두 번째 나무까지
숫자를 세지 않는 연습을 합니다
어둡고요 참 조용한 해질녘입니다



이성미
2001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