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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바다거북 외 1편/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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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938회 작성일 04-01-0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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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진
바다거북


그는 수족관에 침몰선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얼굴에 문신을 한 아랍인의 우울 같은 것이
주름살을 파들어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유리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 앞발을 휘젓고 있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수족관에서
그는 알비노증에 걸린 사람처럼 등껍질 속으로
자주 희멀건 얼굴을 숨겼다
여기서 나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갑골문자야, 하지만
등껍질에 새겨진 세월의 이면은 점치지 못한다
한번도 깨진 적 없는
그는 몸을 벗어 던지려는 듯 한참을 끙끙거렸다
나는 신하도 하나 없는 왕이야, 그는
임금 王자가 새겨진 배를 유리에 문지르며
입을 뻐끔거렸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나마나 다 안다는 듯
그의 시선은 유리벽 밖에까지 맺히지 못했다
짤막한 꼬리로 물 속에 무수한 마침표를 찍으며
그는 그렇게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등판에 펼쳐진 별자리판에서
제 운명의 슬픈 점괘 하나를 얻은 것처럼  
알라, 알라, 코란을 읊는 것처럼 그는
자꾸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꿇어앉히고 있었다





여행자


그의 구두 뒤축에는 지구의 자전이 매달려 있다
호수에 날은 저물고 웅웅 편서풍이 분다
멀리서 지평선이 언덕을 내려놓고 달을 들어올린다
여행용 컨테이너처럼 그의 몸은 조립식
그는 몸을 펼쳐 텐트를 친다
발목 사슬에 달고 질질 끌고 온 세월은
문 밖 기둥에 백기(白旗)처럼 걸어놓는다
여기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조개를 건져먹고
어느 날은 패총처럼 굳어
자신의 묘비가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편지를 쓴다
하이에나처럼 낄낄거리는 꽃들
그 먹이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몸을 눕힌다
무너져오는 어둠의 네 귀퉁이를 손발로 들어올리고
안녕,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는 몸을 끄듯 눈을 감는다


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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