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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소설 계간평/성장의 소설과 대결의 소설/오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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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의 소설과 대결의 소설
오양진
여기 설탕과 소금과 실리카겔이 있다. 식탁 위에서 이 세 가지 물질은 사실 공통점이 많다. 우선 육안으로 보기에 유사한 입자의 흰 가루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음식의 부패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속성이 있다. 잼과 절임의 형태로 지속적인 저장에 소용되는 설탕과 소금이나 제습제의 형태로 음식물에 첨부되는 실리카겔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부패의 중지와 관련된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소금과 실리카겔의 경우는 어떤 대상으로부터 물기를 제거한다는 동일한 속성을 통해 부패를 차단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적 상상력 속에서 그 세 가지 물질은 각기 일정한 의미의 권역을 가지면서 개별적인 상징들로 구분된다. 설탕은 먼저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의 형태가 의미하듯 천진난만한 유년기적 속성을 내포하고 아울러 그 중독성과 내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욕구불만의 청년기적 속성을 상징한다. 이에 반해 소금은 열량이 없어 진정한 음식이 되지는 못하지만 유기체의 필수적이고 주된 성분이 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분별력 있는 어르신들의 지혜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소금은 한마디로 노년기의 대표적인 상징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실리카겔은 먹지 말라는 금지의 표기와 결부된 유독성의 이미지로 인해 저항과 반항 혹은 충돌과 살의 등의 대결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띤다. 다소 좀 엉뚱한 짐작이 되겠지만, 여기서 실리카겔은 어쩌면 위험한 중년기의 표상이 되는지도 모른다. 한편 이 세 가지 물질은 그 조합에 따라 소설의 어떤 범주를 잘 정의해주기도 하는데, 설탕의 중독과 욕구불만을 소금의 지혜로 순치시키는 소위 ‘성장의 소설’이 그 하나이고 소금의 지혜를 실리카겔의 저항과 반항을 통해 거절하는 이른바 ‘대결의 소설’이 다른 하나이다.
성장의 소설―권지예의 「설탕」(≪문학동네≫ 2002년 가을호)
권지예의 「설탕」은 그 제목과는 달리 유년기나 청년기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노년기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현우)’는 후미진 해안도시 삼류 지방대학 국문과에 다니는 젊은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학생들은 대개 본분인 공부보다는 다른 일에 관심이 더 많다. 예를 들면 라면에 소주를 마시거나 시내 나이트를 가거나 바닷가로 몰려가 싸움박질을 해대는 것이 일반적인 그들의 일과다. 그런데 사실 그런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던 나는 그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중독의 삶을 원한다. 나는 같은 대학 외식산업학과에 다니는 동아리 선배의 애인 미나와 섹스를 나누며 설탕에 중독되듯 그녀의 존재에 빠져든다. 그러기는 미나라는 여학생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게 녹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자신의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꿈인 미나는 소위 후진 학교와 시시한 남자애들에 넌덜머리를 내고, 간혹 그런 욕구불만을 나에 대한 변덕이나 히스테리로 해소하거나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것으로 푼다. 그러던 어느 날 미나는 나에게 연락도 없이 사라지고, 그녀와 연락이 두절된 나는 일종의 금단증세에 시달리며 바닷가를 배회하게 된다. 나는 거기서 우연히 소설창작론 수업을 하는 김민정 교수를 만나는데, 얼마 전 나는 그녀의 수업과제로 과거 첫사랑이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을 기록한 ‘스물두 살의 자서전’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낸 적이 있었다. 김민정 교수는 나에게 자신에게도 첫사랑 남자의 뼈마디를 목걸이로 걸고 다니게 된 아픈 상처가 있음을 암시하며, 바다의 비유를 통해 인생은 단 설탕 맛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쓰고 짠 소금 맛이다 라는 말로 나를 위로한다. 한편 사라진 지 한 달쯤 후에 돌아온 미나는 나에게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려오고 소금 한 되 정도는 나왔을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곧 수술을 결심한 미나는 소금이 절여진 바다처럼 깊은 침묵에 빠져버린다. 이때 나는 김민정 교수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느낀다. 얼마 후 미나는 요리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설탕」은 일단 그 제목이 암시하듯 청년기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실제로 삼류 지방대학을 다니는 남녀 대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는 대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그렇듯이 방황과 혼돈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그들은 어디서건 모이기만 하면 “술을 마시거나 시내로 나가 나이트를 가거나 바닷가로 몰려가 싸움박질을 해”댄다. 이러한 방황과 혼돈의 이유와 원인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고 또 어느 정도 명백하다. 우선 “삼류 인생”을 자처하는 지방대학 아이들의 열등감과 소외감은 그들이 겪는 방황과 혼돈의 표면적이면서 특수한 이유로 나타난다. 그러나 꿈과 현실 사이의 격차와 간극이야말로 무엇보다도 그들의 방황과 혼돈을 야기하는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원인이다. 가령 이 소설에서 미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웨딩케이크를 만들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게 녹는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자신의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꿈”인 외식산업학과에 다니는 여학생으로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후진 학교와 더불어 그 학교에 다니는 멍청한 학생들과 그 학교가 자리잡은 “후미진 해안도시”의 모든 걸 참을 수 없어 한다. 자신의 화려한 꿈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그 초라한 현실이 싫고 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미나가 끊임없이 어떤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서 온다. 그런데 그러한 욕구불만의 현실을 견디기 위해 미나와 같은 아이들이 선택하고 즐기는 것은 “설탕”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중독적인 삶이다. 미나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에 탐닉하고 현우는 미나와의 섹스에 빠진다. 그들은 모두 아이스크림이나 섹스에 대한 탐닉과 같은 “설탕 중독”이 “모두 다 녹여서 없애는” “무시무시한” 것이고 또 그것으로 인해 “파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달콤한 환각 없인 못 산다”고 생각한다. 미나가 연락을 끊은 채 사라진 사이 현우가 일종의 “금단증세”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하나의 비근한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한마디로 욕구불만과 중독의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방황과 혼돈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일단 「설탕」은 ‘설탕’이 갖는 상징적 의미의 권역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설탕」에서 그 제목이 뜻하는 욕구불만과 중독의 청년기적 삶은 “소금”이 갖는 상징적 의미의 권역 속에서 점차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 된다. 소금은 전통적으로 설탕의 유아성과 청년성을 넘어선 곳에서 노년기의 지혜를 상징하는 물질로 상상되곤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설탕」이 궁극적으로는 청년기의 혼돈과 방황을 그리려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그 혼돈과 방황 이후에 오는 노년기의 지혜를 강조하고 전달하려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설탕」은 사실 제목과는 달리 설탕에 관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소금에 관한 소설이 명백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현우에게 김민정 교수라는 스승의 존재가 미나라는 애인의 존재와 대비되는 지점에서부터 그 점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방황과 혼돈을 거듭하게 되는 미나가 끝내 연락도 없이 사라진 후, 현우는 일종의 금단증세를 느끼며 바닷가를 배회하다가 거기서 우연히 소설창작론 수업을 하는 김민정 교수를 만난다. 현우는 얼마 전 그녀의 수업과제로 과거 첫사랑이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건에 대한 자전적 체험을 리포트로 낸 적이 있었다. (자살한 현우의 첫사랑이 보여준 주검은 어떤 의미에서 설탕에 비유된 욕구불만과 중독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러한 삶이 도달하게 되는 데가 어디인지를 암시한다.) 김민정 교수는 현우에게 자신에게도 첫사랑 남자의 뼈마디를 목걸이로 걸고 다니게 된 아픈 상처가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젊음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초콜릿을 까먹는 버릇”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스승인 김민정 교수도 미나나 현우의 상황과 같은 중독적인 삶에 빠졌던 청년기적 경험을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인생의 선배답게 김민정 교수는 현우에게 인생의 본질이 설탕의 단 맛이 아니라 쓰고 짠 소금 맛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삶은 “소금이 졸여지고 있는 바다”처럼 수많은 증오와 고통을 하나의 “결정”과 “정수”로 만들면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라는 노년기의 지혜를 가르친다. 그리고 현우는 한 달 후 돌아온 미나가 낙태 수술 뒤에 “소금 한 되 정도”는 나왔을 눈물을 흘리고 “바다처럼 깊은 침묵”에 빠진 것을 두고 “김민정 교수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느낀다.
권지예의 「설탕」은 결국 청년기를 통과하며 젊은이가 겪게 되는 혼돈과 방황의 경험을 통해서 인생을 알아가는 성숙의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설탕의 중독적인 삶에 빠진 젊은이를 노년기의 소금의 지혜로 교육함으로써 쓰디 쓴 성장과 성숙의 의미를 확인시켜 줌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는 명백히 「설탕」이 설탕에 대한 소금의 우월성을 말하는 이른바 ‘성장 소설’임을 지시하는 것이다. 「설탕」에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현우와 미나의 수평적인 연인관계가 김민정 교수와 현우와의 수직적인 사제관계에 압도되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의 성장 소설적 의미를 더욱 확고하게 증거한다. 성장 소설이란 그것이 비록 ‘어쩔 수 없는 화해’에 이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가능한 교육’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대결의 소설―표명희의 「실리카겔」(≪문학판≫ 2002년 가을호)
표명희의 「실리카겔」은 그 제목 그대로 청년기에 관한 소설도 아니고 노년기에 관한 소설도 아닌 위험한 중년기에 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여자’는 직장에 다니면서 살림을 하고 있는 유부녀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사실 시어머니보다는 남편에 대한 신뢰 때문에 시작되었다. 남편은 융자받은 학비를 갚느라 결혼 후 한참이나 남편의 월급을 축낸 일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 없던 남자였으므로, 여자는 처음엔 시집살이도 견딜 만하였고 그런 대로 행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유산을 겪은 후 이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희망이 사라지게 되면서부터 시집살이는 심해지고 결혼생활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여자는 무엇보다도 손주를 손꼽아 기다렸던 시어머니에게 불평과 원망이 섞인 잔소리를 점점 더 자주 듣게 되었다. 가령 시어머니의 까다로운 입맛과 음식 타박은 한동안 음식 솜씨도 별로 없는 여자가 김치를 세 종류로 나누어 담아야 할 정도로 심했다. 그렇게나 신실했던 남편이 종종 밖으로 나돌게 된 것은 물론이었다. 여자는 그럴수록 전의에 가까운 열의를 보이며 요리학원을 다니거나 음식 만드는 것 이외에는 누구의 손도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집안 살림을 해냈다. 과거 친정 엄마는 여자가 소금을 뒤집어쓰고 절여진 숨이 죽은 배추 같지 않고 언제나 펄펄 살아 언제 부러질지 모르는 배추 이파리 같은 것을 걱정했는데, 여자는 바로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소금을 거절한 배추 이파리 같은 오기로 충만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집안 일에서 일단 두 손 든 시어머니는 이번에는 옆집 푸들이 새끼를 낳은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여자를 자극하고 괴롭혔다. 그러나 얼마 후 옆집 푸들과 그 새끼들은 연이어 죽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아쉬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자는 시어머니처럼 입맛 까다롭던 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던 말린 무화과에 실리카겔을 박아 옆집 마당에 여러 개를 뿌려놓았던 것이다. 지금 여자는 집안에 홀로 남아 김치를 담그고 있다. 그러다 문득 여자는 출장 중인 남편과 외출 중인 시어머니를 떠올리고 실리카겔 병을 바라보며 살인에 관한 상상을 한다.
「실리카겔」은 그 제목이 암시하듯 중년기에 관한 소설이 분명하다. 이 소설에는 실제로 직장에 다니면서 살림을 하고 있는 유부녀가 나온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스스로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생각을 꺾고 가난한 집 딸인 여자를 기꺼이 선택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를” “평생 잊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한 결혼”이었고 또 게다가 남편은 “융자받은 학비를 갚느라 결혼 후 한참이나 남편의 월급을 축낸 일에도 불구하고 불평 한마디 없던 남자”였으므로 처음엔 그런 대로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두 번째 유산을 겪고 난 후 인공수정으로라도 아이를 갖게 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손주를 기대했던 시어머니의 심기는 불편해졌고 그에 따라 괜한 불평과 원망이 섞인 시어머니의 잔소리는 점점 더 심해졌으며 또 신실했던 남편마저 출장을 핑계로 종종 외유를 하게 된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사이 그녀에게는 친정 엄마가 김치를 담그면서 자주 하던 훈계의 말이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살아가민서 이래 소금을 확 뒤집어쓰는 것 같은 고비들이 몇 번씩 있는 기라.” 삶의 가파른 고비들을 넘어오면서 인생의 본질을 알게 된 노년의 지혜가 “소금”에 빗대어져 있는데, 여기서 친정 엄마가 일종의 인생의 교사가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교사로서의 친정 엄마가 들려주는 소금의 지혜는 소설의 또 다른 부분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팔팔하던 배추 이파리야 쉽게 부시라지지만 이래 짠 소금을 뒤집어쓰고 쓴물 단물 다 빼논 배추는 보드랍고 질긴 기, 절대로 안 부시러지는 기라” “이래 숨이 죽어야 배추는 김치가 될 준비가 된 기라. 애벌레가 막 나비가 될라카는 그런 때 같은 기제.” 친정 엄마가 들려주는 소금의 지혜는 무엇보다도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성장과 성숙의 관한 가르침임이 자명하다. 그런 만큼 「실리카겔」은 일단 제목과 달리 실리카겔에 관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소금에 관한 소설이 될 공산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성장 소설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리카겔」의 주인공은 사실 친정 엄마가 가르친 소금의 지혜를 인생의 후배로서 받아들이고 마음에 새기는 교육의 객체로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포기를 어리석은 일로 규정하고 “소금을 뒤집어쓴 것 같은 삶의 순간과 맞닥뜨릴 때” 오히려 “삶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는 자아가 강한 교육의 주체로서 등장한다. 그녀는 결국 교사의 교육을 거절하는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인물로 드러난다. 가령 그녀는 자신의 입맛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김치를 세 종류로 나누어 담을 정도로 고집이 세다. 그런가 하면 시어머니가 음식 타박과 더불어 여자의 살림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으면 놓을수록, 그녀는 “전의”에 가까운 열의를 보이며 완벽하게 집안 살림을 해낸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반항심에 가까운 오기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성장소설의 기본적인 인물 구도라 할 수 있는 사제관계가 붕괴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편 시어머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번에는 손주를 안겨주지 못하는 며느리를 새끼를 낳은 옆집 푸들 얘기로 교묘하게 자극하여 며느리의 신경줄을 건드린다. 이때 며느리의 전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살의로 전이되는데, 그녀는 시어머니가 그렇게나 집착하던 옆집 푸들과 그 새끼들을 죽여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유난히 입맛이 까다롭던 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던 말린 무화과에 “실리카겔”을 박아 옆집 마당에 여러 개를 뿌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서 마침내 그녀는 출장 중인 남편과 외출 중인 시어머니를 떠올리고 실리카겔 병을 바라보며 극단적이게도 살인에 관한 상상을 한다. (사실 푸들과 시어머니가 공유하는 까다로운 입맛은 그 유사성으로 인해 그녀의 위험한 살의를 짐작케 하며 나아가 그러한 살의의 실현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리카겔」은 결국 어른과 아이의 사제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성장의 소설이 아니라 어른과 어른의 대결 구도 속에서 읽어야 할 대결의 소설임이 명백하다. 이 소설은 소금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실리카겔에 관한 소설인 셈이다.
표명희의 「실리카겔」은 분명 소금의 지혜로서 쓰디쓴 성장과 성숙의 의미를 가르치는 일종의 ‘성장 소설(교육 소설)’로서 출발한다. 그러나 피교육자의 위치에 대한 거절과 함께 스스로 소금의 지혜를 만들어낸 한 유부녀를 통해, 이 소설은 성숙의 과정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 성숙한 사람들의 대결 과정을 극화해서 보여준다. 이는 궁극적으로 「실리카겔」이 소금에 대한 실리카겔의 우월성을 말하는 이른바 ‘대결의 소설’임을 가리킨다. 특히 「실리카겔」에 나오는 인물들의 관계에서 딸과 친정엄마의 수직적인 사제관계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수평적인 대결관계에 의해 압도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대결 소설적 구도를 명백하게 입증한다. 대결의 소설이란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대립’으로 인해 ‘불가능한 교육’에 관한 소설이 되기 때문이다.
오양진
․1969년 인천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등단
․현재 서울산업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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