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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신작소설> 화담이 진이를 만날 때/이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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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911회 작성일 04-01-0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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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이 진이를 만날 때



이 호 림



진실은 흔히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거나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수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점,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다르다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일치한다면 궁극적으로는 그래야 되겠고 그러한 상태가 지향되는 바이긴 하지만, 그래가지고는 역사의 수정가능성은 없고 그야말로 역사란 삭막하고 한없이 무거운, 버거움이 되고 말 위험이 크다.
나는 다소 거창하게 서두를 시작했는데, 앞으로의 내 얘기의 전개에 보탬이 될 게 틀림없으리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했다. 만일 그게 그렇지 못하다면, 그러니까 보탬이 못된다면, 내가 그렇게 거창하고 무겁게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치명적이기까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약점이 될 것이다. 상당한 약점이라는 점에서, 나는 조금은 걱정이 된다. 내 얘기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 거창함과 무거움은 서두에 이미 등장하고 말았으니 내 얘기의 청자에게 이미 어떤 불쾌감이나 거북함을 유발시키고 만 게 아닌가 싶어서다. 그러한 우려서 하는 소리이다. 앞으로 들어보면 알겠지만 내 이야기는 서두의 거창함이나 무거움과는 달리, 가볍고 경쾌하고 솜털같은, 한마디로 오색의 맛나는 눈깔사탕 같은 거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일 여러분이 내 얘기의 서두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 불쾌감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내 얘기를 경청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내 정체부터 밝히는 게 순서겠다. 내 정체를 밝힌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이렇게 거슬러올라가 내가 시작된 시초부터 밝히겠다는 것으로 내가 지금 이렇게 있는,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근거를 제시하겠다는 의미이다. 다소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는데, 내가 공장에서 생산된 상품이 아니라 진짜 근본이 있는 인간임을 과시하려는 의도에서라기보다는, 이 이야기의 전개상 그런 구차스러운 내력 따지기가 필요한 까닭에서이다.
나의 시작은 서화담(徐花譚)이다. 아버지 쪽으로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머니 쪽으로 따지면 나의 시작은, 황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의 성은 서씨이다. 이름은 하주다.
나는 나의 성이 황씨가 아니고 서씨라는 데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불쾌감을 지니고 있다. 기녀의 자식이라 서씨 집안의 족보에도 오르지 못하고 천민 취급을 당했던 내 아버지들의 억하심정이 옹이진 탓에 그랬던 게 아니라, 그러한 옹이진 심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 시작의 어머니 쪽인 황진이를 진짜 사랑한 때문이었다. 가끔 나는 안타까워하곤 했었다. 왜 사람이란 늘상 어머니 쪽 성을 따르면 안되고 아버지 쪽 성을 따라야만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그게 불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지금에서야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참 불합리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의 역사가 시작된 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수천 년 아니 수만 년을 거슬러올라가는 일일 텐데, 수만 년 동안 불합리적이었다가 지금에서 합리적이 되려는 것은, 그동안 사람은 무얼하고 있었던 걸까 싶어지고, 지금에사 합리적으로 되려는 게 오히려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나는 나의 정체를 밝혔다. 그것도 근본에서부터 밝혔다. 이만하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필연성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반감을 지닌 사람도 없지는 아니할 것이다. 세상살이라는 게 원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거니까 말이다. 내 아버지들의 이름들이 서화담의 족보에 올라있지 않다는 이유로 내가 서씨 집안의 후예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혹은 황진이는 죽음에 이르도록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하면서 내 어머니 쪽의 존재성을 부정하려드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내 아버지들의 이름이 서화담을 필두로 하는 서씨 집안의 족보에 올라있지 않는 게 사실이고, 황진이가 죽음에 이르도록 자식이 없었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과 역사적 사실은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의 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서두에서 진실과 역사적 사실과의 관계를 언급했던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양자들의 관계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은 어떤 것이냐 하면, 조금 전 내가 언급했던 그것이다. 내 아버지들이 서화담의 후예이고, 어머니들은 황진이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화담과 황진이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자라왔다. 서화담이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이고 황진이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이라는 것이었다. 어른들은 우리 집안이 서화담의 후예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녀를 천시한 조선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도학자로서 알려진 서화담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하여 화담의 원가족들과 친지들과 제자들이 정략적으로 진실을 은폐한 탓이라고 했다. 또한 서자를 박대하는 당대의 잘못된 풍조 역시 그 진실을 은폐하는데 일조를 하였으리라는 것이었다. 어려서 나는 어른들의 그 얘기를 믿기도 했고 믿지 않기도 했다. 집안 어른들의 얘기였으므로 믿는 게 당연했지만, 집안 어른들이 어린 나에게 거짓을 전파할 리는 없으므로 당연히 믿었던 거지만, 밖에 나가면 나의 믿음은 한조각 휴지만큼의 대접도 받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집안에서는 그 얘기를 믿었고, 밖에 나가서는 그 얘기를 믿지 않았다.
집안에 들어오면 그걸 믿고 집 밖으로 나가면 그걸 믿지 않는 이중적인 생활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마냥 이중적인 생활을 지속해갈 수는 없었다. 어느 시점에서는 이중성은 해소되어야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가 되지 않으려면, 나는 이중인격자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중인격자란 자아가 분열된, 불안정한 인간인 거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중성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 이중성을 해소해야겠다고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던 게 열아홉, 대학 일학년 때였다. 나는 안에서든 밖에서든 일관된 나여야 하고, 더 이상 안팎이 다른 나를 두고 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 한쪽을 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진실을 택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진실을 찾기 위한 나의 피눈물나는 조사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나는 집안 어른들이 들려준 얘기를 진실로 믿고 싶어했다. 서화담과 황진이의 후예라는 사실은 그들의 지명도와 역사에서 차지하는 그들의 비중을 놓고 볼 때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진실로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그 사실을, 유보했다. 나는 이제 대학생이었다. 대학생이란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군대를 갔다온 이후로는 전혀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게 된 거지만 갓 대학생이 된 그땐 그래서, 그 사실이 검증되기를 내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이다.
내가 찾은 진실은, 도처에서 내가 맞닥뜨린 진실은, 그러나 내가 진실로서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사실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었다. 그 어떤 자료도 내가 서화담과 황진이 사이의 후예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았다. 서화담과 황진이 사이에 소란스런 스캔들이 있었던 것은 모든 자료가 증거하고 있었지만, 그 스캔들의 결과물로서의 이세가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었다. 당연히 증인도 없었다. 내가 찾은 모든 자료가 우리 집안이 유포시킨 우리 집안의 내력과 정확히 배치했다.
자료만 놓고 보아서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서화담이고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황진이라는 사실은 성립될 수 없었다. 나는 짜증이 나고 말았다. 지금까지 나는 상당한 양의 자료를 찾아보았었다. 서화담이나 황진이나 워낙에 유명하니까. 내가 아직 찾아보지 못한 자료들이 그래도 적잖이 남아 있겠지만, 그러므로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시기상조라고 해야 하겠지만, 나는 앞으로 내가 찾아보게 될 자료들도 역시 이 모양일 거라는 강력한 회의가 일고, 자료를 찾고 하는 일이 이젠 별 의미가 없는 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나는 다음처럼 푸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집안 어른들은 무슨 근거에서 우리가 서화담과 황진이 사이의 후예라고 하는 걸까. 그에 대한 한 가지 증거만이라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밖에서 찾아지는 자료들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거기에 짜증이 나버린 나머지 나는 집안으로 눈을 돌렸다. 집 안에서 발견되는 자료들은, 당연히 그러리라 짐작되는 것처럼 나의 원망에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자료에 신빙성이 안 간다는 것이었다. 족보와 육대조와 사대조 할아버지의 문집 속에 그와 같은 내용이 분명히 실려있긴 하지만, 그것이 자료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 객관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대조와 육대조 할아버지의 문집은 개인적 문집에 불과해 그 내용과 배치되는 다른 자료가 있을 경우 그 사실을 주장하기 어렵고, 족보는 아무래도 조작된 느낌이 짙다는 것이었다. 구한말 많은 집안의 족보들이 조작되고 개편되고 하였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나는 우리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집안 내력을 꾸며진 것이라고 결론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전설로서 간주했다. 모든 자료들, 정황 증거가 그렇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소 마음이 아리긴 했다. 서화담과 황진이가 내 핏속에서 빠져나와 나와는 무관한 거리로 멀어져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 자존이 해체되는 걸 감수했다. 나는 합리적인 문명인이었고, 드러난 모든 자료들이 나의 불리함만을 증거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목울대의 핏대를 세워가며 여전히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하더라도.
“…… 분명한 것은 조선사회의 양반 이데올로기가 진실을 은폐해버렸다는 것이다. 서화담이 황진이에게 반해, 어느 날 밤 황진이의 기방 벽을 월장해 겁탈했다는 사실은 조선이라는 양반사회의 의식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양반사회의 의식 속에서 서화담은 도학자이고 황진이는 기녀인데, 도학자가 기녀에게 반해 야밤에 기루의 담을 월장해 들어간다는 것은,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들 양반의 우월 의식은 그 순간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말 테고, 그래서 그들 양반들은 진실을 은폐하기로 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 은폐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양반사회의 의식구조는 산산조각나고 양반사회 자체가 휘청거렸을 테니까. 체제 수호본능에서 비롯된 당연한 왜곡이었던 그 왜곡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은 서화담과 황진이의 얘기가 된 것이다. 황진이가 서화담을 유혹하려, 시쳇말로 하자면 꼬시려 하였지만, 서화담은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서화담에 마음으로부터 감동한 황진이가 서화담을 사모하게 되고 급기야는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야말로 조선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색적이고 유혹적이고 육적이고 리비도적이고 상상적인 것들이 도덕적이고 신적이고 엄숙적이고 이성적인 것들에 굴복해 들어가 작아지는 것. 어쩌면 서화담과 황진이와의 관계의 진실을 은폐시켰다는 사실보다도 그 역할 관계를 전도시켰다는 그 점이야말로 치명적인 것일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조선을 그르친 것은 진실의 은폐보다는 리비도적인 것에 대한 리(理)적인 것의 우위성 확보의 전략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로 인해 우리 서씨 집안은 애비 에미 없이 세상에 출현한 도깨비 같은 가문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애비 없이 여자가 아이를 갖는 경우는 그나마 기록되어지고 있지만 애비 에미도 없이 아이가 탄생한다는 경우는 우리 가문이 유일무이할 것이다. 서화담과 황진이 사이에 자식이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한다면, 별수없는 노릇인 것이다. 리비도적인 것이 리(理)적인 것을 타고 넘을 때 아이의 탄생, 창조의 순간이 개시되는 것인데, 그런 순간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 그것이 조선의 이데올로기이고, 그 이데올로기의 편협함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한, 우리 서씨 집안의 정체성은 치명적으로 말소된 채 회복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서씨 집안 자손들은 그 은폐된, 그 억압된 것의 방기를 위하여……."

나는 서씨 집안과 일정한 거리감이 생기고 말았다. 아버지의 말에도 할아버지의 말에도 코방귀만 뀌어질 뿐이었다. 서씨 집안의 내력에 대하여 나는 아주 냉소적이 되어갔다. 내가 서씨 집안의 내력에 대하여 냉소적이 되어갔다는 것은, 나 역시 서씨 집안의 일원이었으므로, 다름아닌 나 자신에 대하여 냉소적이 되어갔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랬다. 나는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서 왔고 나를 형성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인지가, 자꾸 헷갈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내가 섭렵한 모든 자료들이 너는 정체성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심하게 흔들려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거의 반년이란 세월이 흘러야했다. 나는 내 깨어졌거나 흔들리는 정체성을 추스르기 위해 무감각 내지는 무감동이라는 전략을 도입했다. 서화담이니 황진이니 하는 그 징그러운 이름들을, 내 입장에서는 징그러운 이름들이 아닐 수 없었는데, 내 뇌세포 속에서 암흑처럼 깡그리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반년쯤이 지나면서부터 내 무감각의 전략이 효력을 발휘했다. 그 전에는 무감각하려는, 서화담이니 황진이니 하는 이름을 잊으려는 나의 전략이 아무리 애를 써도 별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었다. 내 전략의 무용성 때문에 밑모를 좌절에 빠져, 좌절에 빠진 날들을 보내야 하기도 했었다. 그런 날들은 내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다 부수어져 나가는 날들이기도 했다.
나는 내 근본이라고 우리 서씨 집안 어른들이 주장하는, 그러나 내게는 징그러운 서화담이나 황진이를 잊어갔다. 내 무감각의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그들이 내 근본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 되어버렸다. 문득 그들의 이름이, 그들의 일이 내 머릿속에 떠올라와도 신경들이 소란스러워지지 않는,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결국 내 정체성이란 집안 어른들의 조작에 의하여 만들어진 가공물이었다는 건데, 나는 이제 그 사실에 익숙하게 되었다. 그 사실에 익숙해가는 데 내 나름의 합리화가 작용하기도 했다. 정도상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의 정체성, 그 내력이란 조작된 가공물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예수의 내력조차도 가공물일 공산이 컸다. 거슬러올라가면 아브라함의, 아담의 그것도 그렇고 어쩌면 하나님조차도, 인간의 창조주로 알려진 그조차도 가공물일지도 몰랐다. 너무 지나친 발상인가. 어쨌거나 내가 더 이상은 서화담과 황진이로부터 벗어나, 그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십여 년이란 세월이, 정확히 말하자면 십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나는 서화담이니 황진이니 하는 내게는 징그럽기 짝이 없는 그 이름들을 잊은 채 살아왔다. 말하자면, 그것들에 구속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었다. 겉보기만을 보자면 그랬다. 속은, 잘 모르겠다. 자유로웠다 할 수도 있었고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텅 빈 공동(空洞)과 같은 상태를 자유라고 한다면 내 속은 자유였지만, 불확실한 무의미의 상태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했다. 서씨 집안의 일원으로서의 내 정체성이, 내 인간성이 조작되고 만들어진 가공물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터이므로 그 이후의 내 속이 텅 빈 공허가 되어버린 것은 논리적인 귀결점이었다. 진실의 차원에서 볼 때 조작되고 만들어진 가공물이란 공허하고 텅 빈 공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그 조작되고 만들어진 가공물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여전히 나의 정체성으로 고수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지금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나의 정체성으로 고수한다 하더라도 가공물의 그 조작되고 만들어진 속성이 창조된 주어진 속성을 갖게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이제 서른셋이었다. 결혼을 했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자라나는 아들은 또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아들의 대부분의 질문들은 어른인 내가 대답하기 곤란한 참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지만, 어떤 질문들은 나를 흡족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들의 질문에 되도록 충실하게 대답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내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얼마 못 가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들이 누구인지 아들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똑 부러지게 설명해줄 수 없었던 탓이었다. 내 아들은 내 분신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까닭이 불명료했다. 내가 세상에서 그렇게 불명료한 존재였으니까 그럴 터였다.
어느 날 나는 서화담과 황진이에 관한 얘기를 아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내가 믿지도 않는, 조작되고 만들어진 서씨 집안의 가공의 내력이라고 치부하고 있던 그 얘기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아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이다. 나는 일종의, 허위의 날조된 이데올로기를 아들에게 유포한 것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아들에게 하고 나서 몹시 후회했다. 나는 아들을 날조된 허위 속에서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그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 바람이었었다. 나는 그 얘기, 서화담과 황진이의 얘기를 내게 들려주던 때의 아버지를 기억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던 때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던 때의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던 때의 고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던 때의…… 자꾸 그 순간들을 더듬어갔다. 더듬어가면서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들께서도 나처럼 후회스러웠느냐고. 그분들은 대답이 없었고 나는 추측해볼 수밖에 없었는데, 나의 추측은 그분들은 후회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이었다. 당신들의 초상을 통해서 내가 보는 것은, 느끼는 것은, 한치의 의심도 여지가 없는 자기 확신이었고, 그에서 품어져 나오는 위엄이었다.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수시로, 그럴 짬과 분위기가 형성되기만 하면 그 얘기를 들려주곤 하였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신들은 나와는 다른 분들이었다.
나는 그 한번으로 다시는 아들에게 그 얘기, 서화담과 황진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서 떠나갔다. 아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아내에게 방기했다. 나는 늘 아들과 함께 있고 싶었고, 그 애와 더불어 늘 함께 나누고 배우고 가르치고 하고 싶었지만, 하는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면 또 아들에게 그 날조된 내력을 얘기하게 될 것만 같아서였다.
한번으로 끝나긴 하였지만 아들에게 그 얘기를 들려준 시점을 계기로 그게, 서화담과 황진이의 관계의 진실이 다시 내 관심의 영역 속으로 소급해 올라온 게 사실이었다. 나는 다시 그 문제, 서화담과 황진이의 관계의 진실은 무엇이고 그들 사이에서 우리 서씨 집안의 비조가 될 인물이 태어났느냐 하는 문제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고민이 다 끝난 해결이 다 된 문제를 놓고 새삼 다시 고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이 분명했지만, 나는 새삼 고민스러웠다. 아들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서씨 집안에 전해져오는 가문의 전설이 단순히 전설이 아닌 진실이기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젠 아들을 위해서 바라는 것이었다.
내가 엉뚱한 그를 만나게 되는 게, 새삼 나를 다시 사로잡기 시작한 그 엉뚱한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엉뚱한 그, 다소 비정상적으로 비치기도 하는 그가 나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리가 없잖은가.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기인열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였다. 기이하거나 특이한 재주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그 기이한 재주를 맘껏 뽐내보는 프로였는데, 기이한 사람들이 도통 마음에 안 드는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프로였지만, 아들 녀석이 기를 쓰고 좋아했다. 나는 아들이 기인열전과 같은 프로를 즐기는 걸 걱정했는데, 아들 녀석에게도 기이한 재주 같은 게 감추어져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였다. 나는 기이한 재주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나 갖게 되는 비정상적인 것이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내 아들녀석이 비정상적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비정상적인 사람이란 정상적인 사람에 비하자면 소수에 불과하고, 그들이 소수인 한 정상적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할 수밖에 없고 기껏해야 정상적인 사람들의 구경거리, 눈요기거리밖에는 안된다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기인열전이라는 프로가 내 우려를 입증하는 단적인 프로였다. 기인열전이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시청자라는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의 오락거리 내지는 구경거리가 되기 위하여 방송국이라는 일종의 변형된 동물원에 나와 전시되고 있는 것이었다. 기인열전들이 얼마의 출연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일종의 변형된 동물원인 방송국의 수입을 능가하지는 못하고, 십중팔구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가 쉽다. 기인열전들의 기이한 재주란 처음 평균적이고도 정상적인 사람들의 눈에 잡힐 때에야 상품성을 지니는 것이지 두번 세번 반복될수록 그 가치가 놀라운 속도로 다운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기인열전들의 기이한 재주자랑은 일회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고, 기인열전들은 그 자랑이 끝나는 순간 비정상의 어두운 동굴 속으로 곤두박질쳐가야 하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 기인열전들이 비정상의 어두운 동굴 속에 유폐되지 않으려면, 그들의 기이한 재주를 자랑은커녕 드러낼 생각조차 말고 죽을 때까지 감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아주 평균적인, 아주 정상적인 사람들이 대다수인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아내가 나와 의견을 달리한다는 게 한두 번 겪는 일은 아니었으므로, 아니, 요즘 들어서는 아내와 나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스러울 정도로 아내와 나의 의견이 엇갈리거나 대립하고 있었으므로, 새삼스럽게 놀라워할 일은 아니었다. 아내는 기인열전들의 비정상적인 그 기이한 재주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좋으니 재주가 있어 한번 TV 에라도 나가봤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아들녀석도 아내의 의견에 동감이어 했다. 어처구니없는 아니,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아내의 그 얘기를 듣고는 나는 아내가 진짜 건전한 상식을 지닌 평균적인 정상인이 맞나 심각하게 심사숙고해 보기까지 해야 했던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가 없었다. 단지 기인열전과 같은 비정상적인 프로를 아내가, 아들이,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잠정적인 결론뿐이었는데, 참으로 우려스러운 바는, 그렇게 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원칙을 놓고 볼 때 불가능하기까지 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인열전을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내와 아들은 보기를 원하고 있었다. 일대 이였다. 다수결의 원칙에 입각할 때 기인열전을 보지 말자는 내 입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그건 원칙을 파기하는, 정의에 반하는 처사가 될 거였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원칙을 파기하고 싶지 않은 나는, 그 역시 아들 녀석에게 좋지 않은 교육적 효과를 미치리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하는 수 없이 아들과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기인열전을 보기로 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정상인들의 타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받아 오지 못한 기인들의 한풀이 혹은 넋두리 정도로밖에 비치지 않는 그 프로, 기인열전이 내게 재미있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그 프로는 내겐 지루함과 지나침과 역겨운 오버액션의 파노라마였다. 그날도 나는 그 프로가 진행되는 한시간 동안은 공쳤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내와 아들 녀석과 함께 TV 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었다. 내가 그 프로를 그렇게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TV 브라운관 앞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아내와 아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그 프로의 비정상성이 아내와 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방어해주어야 한다는 남편 된, 아빠 된 책임감, 말이다.
그런데, 그날은, 그 프로가 나의 시선을, 시선뿐만이 아니라 관심까지를 끄잡아들이는 무서운 흡입력을 발휘했다. 순간 나는, 퍼뜩 놀라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마저 아내와 아들처럼 TV라는 일종의 변형된 동물원의 조작에 말려들어 정상성을 내팽개치고 비정상성을 동경하게 되었단 말인가. 그 프로에 나의 관심이 끌려가면 끌려갈수록 내 자신에게 묻는 내 내면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나는 TV에 몰입해 들어가면서 한편으로는 신기해하고 재밌어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울해져갔다. 나는 일종의 자아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아분열이라니, 이건 조금 지나친 분석이겠다. 내가 한순간 TV 브라운관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기인열전이라는 프로에 관심을 집중했던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건 그 프로 전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챕터, 한 인물에 대해서만이었다. 그날 프로에는 모두 네 명의 기인들이 나왔는데 다른 세 명에 대해서는 나는 늘 그 프로에 대해 그래왔던 것처럼 지루함만을 느꼈고, 내가 흥미를 보였던 인물은 단지 네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이란 것도 실상을 따지고 보면, 사람에게 보인 관심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나온 어떤 물건에 대한 관심일 가능성이 컸다. 분명히 그랬다. 그 사람은 기인열전 프로그램에 나오긴 하였지만 기인이랄 수 없는, 우리와 같은 평균적인 사람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가 가지고 나온 어떤 물건만이 기이하고 괴상하고 흥미로웠을 뿐이었던 것이다. 정당하게 말해서, 그 사람은 기인열전이란 프로그램에 나와서는 안될 사람이었고, 나온다면 기물열전이라든가 기물열람 등의 프로그램에 나왔어야 할 사람인데, 기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현재 없는 관계로 편의상 기인열전에 껴맞추어 나오게 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내나 아들처럼 마침내 정상성을 잃고 비정상성으로 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기우였다. 자아분열을 일으켰다고 하였는데 실상은 분열도 분리도 아닌, 나의 자아는 이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괴상한 물건이었다. 생김새가 괴상하지는 않았다. 생김새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과자나 사과나 배 따위를 담은 상자곽, 꼭 그 상자곽이었다. 그러므로 그 물건은 무엇이든 담았다. 그런데 생김새가 꼭 상자곽인 그 물건이 여타의 상자곽과 다른 점은, 그 물건 속에 무언가를 담는 순간 그 무언가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었다. 그 물건 속에 담겨지는 무언가는, 볼펜이든 핸드폰이든 머리핀이든 마이크든 무엇이든 좋았다. 심지어는 사람마저도 그 물건 속에 들어가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은, 사람마저도, 스튜디오 안 어디에서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 물건의 주인은, 기인이라고 나왔지만 기인은 아닌 그는, 그 물건 속에 들어간 물건들이나 사람이 과거로 갔다거니 혹은 미래로 갔다거니 횡설수설했다. 그 괴상한 물건의 주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도 프로그램의 진행의 흥미를 위해 초대된 옵저버들도, 그리고 방청객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술사를, 그 속임수를, 그 마술의 비밀을 밝혀내 달라고 초빙했다. 그러나 그 초빙된 마술사는 사라진 물건들과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건지, 자기가 접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마술을 쓰고 있거나 마술이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마술도 그의 감각을 속일 수는 없기 때문에 이것은 마술이 아닌 다른 특별한 능력인 게 틀림없다고 그 마술사는 아나운서의 마이크에 바짝 입술을 갖다대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내와 아들은 그 괴상한 물건 속에 들어간 물건들이 사라지는 걸 속임수라고 했다. 마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들 짜고 속임수를 속임수가 아니라고 속이고 있는 거라고 했다. 프로가 타락했다고 했다. 기인도 아닌 사람을 데려다가 속임수를 써서 기인을 만들어놓고 있다고 했다. 아내도, 아들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라며 항의 전화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흥분했다. 나도 흥분했다. 나도 아내나 아들처럼 기인도 아닌 사람을 데려다가 기인을 만들어놓은 것은 프로의 타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이 프로는 타락된 프로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로 인해 이 프로가 특별히 더 타락되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내가 흥분한 것은 아내나 아들의 이유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나는 속임수를 밝히러 나온 마술사가 아나운서의 마이크에 바짝 입술을 갖다대고 한 항복선언 때문에 흥분했었다. 나는 아내나 아들과는 다른 이유에서 방송국에 전화를 걸고 싶었다. 항의 전화가 아니라 그 괴상한 물건의 임자를 만나게 좀 해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는 청탁 전화였다. 그를 위해 얼마간의 비용을 방송국에 지불해야 한다면 나는 그럴 만한 용의가 너끈히 있었다.
“당신은 그럼 그 사람이 기인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아냐, 나는 그 사람이 기인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거 봐요. 당신도 그렇게 보잖아요. 이건 시청자를 우롱한 거라구요. 당연히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란 말예요.”
“엄마 말이 맞아요. 항의 전화라도 해서 시청자를 우롱한 결과가 어떻다는 걸 똑똑히 보여주어야 해요. 그래야 다시는 그런 우스꽝스런 프로를 만들지 않을 거예요. 이게 뭐예요. 그 바람에 프로그램의 재미가 완전히 망치고 말았잖아요.”
“하지만 말이다, 이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아야 해. 그 프로는, 아빠가 늘 말해온 것처럼, 늘 시청자를 우롱해 오고 있었거든. 내둥 아무 반응이 없다가 지금 와서 항의 전화를 하고 한다는 건 좀 과민 반응처럼 생각된다는 거야. 더구나 그 사람 때문에 항의 전화를 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단 말이야. 그 사람이 기인이 아닌 건 틀림없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나온 그 물건은 괴상하고 기이한 게 확실하거든.”
“아빠, 무슨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건 속임수라구요.”
“당신, 진심에서 하는 말이에요? 그런 뻔한 속임수를 보고도, 그게 속임수인 줄을 모른단 거예요.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요?”
“내 말은 그러니까 그 사람은 기인이 아니지만, 그 물건은 기물이라는 거야.“
“오, 맙소사, 그걸 지금 말이나 된다고 하는 말이에요? 사람이야 기인이 있을 수 있지만 물건이야 어떻게 그런 게 있을 수 있겠어요. 물건이란 다 사람이 만든 건데, 사람이 만든 게 괴상하고 이상할 리가 있어요? 안 그래요?”
“사람이 만드니까 괴상해지는 거지.”
“아빠, 그건 어거지예요.”
“그래요, 그건 어거지예요. 그런 어거지는 그만하고 어서 방송국에 항의 전화나 하세요. 속임수를 동원해서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얄팍한 상술은 쓰지 말라고요. 그런 짓은 결국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프로그램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게 되고 말 거라고요.”
“…….”
나는 아내의 요구대로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했다. 내가 하고 싶어했던 전화는 아니었다. 나는 청탁 전화, 그 괴상한 물건의 임자와 만나게 해줄 수 없느냐는 전화를 하고싶어했던 거니까. 그러나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다수결 원칙 때문이었다. 나는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하고 싶지 않더라도, 아내와 아들이 원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인데, 아내와 아들은, 둘이었다. 이 대 일.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시는 시청자를 우롱하지 말라는 나의 항의 전화를 받은 방송국 관계자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그는 시청자를 우롱한 게 아니라고 적극 부인했다. 그것은 결코 속임수가 아니고, 속임수였다면 다른 프로그램으로 넘겼지 자기 프로에서 다루었겠느냐고 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마술사인 김지륭 씨가 그것이 속임수가 아님을 확인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를 설득하려들지 말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아내와 아들의 불만을 방송국 관계자에게 전달하지만, 속에서는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있었다. 방송국 관계자가 그게 속임수가 아님을 극구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나의 심장박동은, 그 주장과 나의 심장이 센서로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갈수록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방송국 관계자의 주장을 들으면서 나의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던 까닭은 만 하루만에 분명해졌다. 내가 아내와 아들의 주장을 다수결 원칙 때문에 반복하고 있었긴 하지만 나의 속마음은 그와는 반대였다는 건데, 그 괴상한 물건 속에서 일어난 일이 속임수가 아니기를 바랐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기인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가지고 나온 물건은 기물로써 충분히 호기심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이라고 믿었던,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나는 여느 상자곽처럼 생긴 그러나 괴상한 그 물건의 임자의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는 아내와 아들과 다르지 않아 그 물건 속에서 사라지는 물건들을 속임수로 알았는데, 그의 입에서 쏟아져나오는 말을 듣고는 백팔십 도 의견을 수정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 괴상한 물건 속에 들어간 볼펜이나 핸드폰이나 머리핀 따위가 사라져버린 게 과거로 혹은 미래로 갔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자신 속의 물건들을 과거로 미래로 마구 보내버리는 물건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한순간 의문을 갖다 나는 그게 바로 그거라는 걸 깨달았다. 말로만 듣던 시간기계, 타임머신 말이다. 물론 그는 그의 소유인 그 괴상한 물건이 타임머신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얘기의 골자는 그가 소유한 그 물건이 다름아닌 타임머신이라는 것이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 오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것은 오래 전이었다. 대학 시절이었다. 내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서화담과 황진이의 자료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때의 일이었다. 자료라는 것은 결국 완벽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료 생산자의 주관과 사상과 이데올로기적 관점에 의하여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는 게 자료의 속성이었다. 서씨 집안 바깥에서 찾아지는 모든 자료는 나와 서화담과 황진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자료들뿐이었다. 서씨 집안 안으로 들어오면 그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서씨 집안의 일원으로서 나는 나와 서화담과 황진이와의 친연성을 믿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집 밖의 자료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었고, 집안의 자료들은 인정하고 있었지만,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의혹, 특히나 내 정체성의 의혹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과거로 가서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오고 싶어했던 것이다.
서화담이 진짜 황진이에게 반해 야밤에 그녀가 기거하는 기루의 담을 월장해 들어가 황진이를 겁탈했을까, 내가 바라는 진실이었다. 그래야 나라는 존재가 성립할 수 있었다. 우리 서씨 집안 전부가 성립할 수 있었다. 만일 그게 진실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담화가 진실이라면, 그때는 나의 존재는 부정되는 것이었다. 더불어 나의 아들내미의 존재도 부정되는 것이었다. 나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의 아들내미의 존재마저 부정되는 것은 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진실을 알고 싶다. 긍정되든 부정되든, 그래서 긍정으로 살든 부정으로 살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삶이 이어져나가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결국 나의 떨림은 그가 나의 오랜 숙원을 해결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에서 오는 떨림이었던 것이다. 기인열전을 보고 만 하루가 지나고 나자 그래서 그를 만나봐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감됐다. 나는 아내와 아들의 뜻에 의하여 나의 의사에 반하여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건 것을 후회했다. 나는 항의 전화가 아니라 그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청탁전화를 하는 게 옳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하는 수 없는 일이었었다. 다수결의 원칙상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만 하루가 지난 지금 그걸 후회하는 건 때늦은 감이 없지 않은 바이지만, 지금 와서 그 잘못을 시정 못할 까닭은 하등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와 같은 후회와 반성하에 방송국에 다시 전화를 걸기로 했다. 이번의 나의 전화는 당연히 항의 전화가 아니라 청탁전화였다.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이 점은 확실한데, 어제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남자였지만 오늘 전화를 받은 것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를 만나게 좀 해달라는 나의 청탁에 여자는 뇌물을 요구한다거나 흔쾌히 승낙한다거나 하지 않고,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드릴 테니까 그녀를 통하지 말고 내 쪽에서 직접 연락을 취해 만나보라고 했다.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반가운 답변이었다. 은평구 응암3동 영남아파트 111동 807호. 364-1179. 여자가 가르쳐준 남자의 주소와 연락처였다.
나는 당장 전화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없고 굳이 이유를 찾자면 그의 아파트 주소와 연락처를 하루동안 음미하느라 그랬다. 하루를 기다려, 나는 다음날 그에게 전화했다. 그는 집에 없었다. 여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가 그가 지금 집에 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연락이 안 되는지 그의 아내에게 물었고, 그녀는 알 수 없다고 조금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의 아내와 내가 전화 통화를 한 게 오후 한 두시 사이였다. 낮에 그가 집에 없는 게 별로 이상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그와의 통화가 성사되지 않았지만, 별 불만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끝내고 밤이 좀 이슥해서 다시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전화는 그의 아내가 받았다. 그녀는 낮에 그랬던 것처럼 다소 날카로운 음성으로 그가 집에 없다고 대답했다. 아직 안 들어온 거냐고 묻자, 그녀는 그가 아직 안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조금 의아해져 남편이 어딜 갔는데, 집엘 마저 안 들어올 거라고 하느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날카로워지면서 남편은 요양차 시골에 내려갔고,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는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다소 놀라웠다. TV에서 보는 그는 멀쩡했고 정력에 넘친 듯했는데, 그의 아내가 요양차 시골에 내려갔다고 해서였다. TV에서 본 그의 모습과 그의 아내의 말이 서로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왜 요양을 갔으며 어디로 갔는지 그쪽으로는 연락이 아예 안 되는 건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나의 꼬치꼬치 캐는 물음에 신경이 다쳤는지 몹시 과격해지기는 했으나 나의 집요함에 두손 들은 듯, 그녀와 나 사이에 약간의 신경전이 흐르고 난 뒤에는 나의 물음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그녀의 얘기는 이랬다. 그가 요양을 떠난 것은 TV 출연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라고 했다. 그와 그의 괴상한 물건이 방송을 탄 후 집으로 수십 통 아니 수백 통의 비난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속임수로 시청자를 우롱하는 너 같은 게 무슨 기인이냐, 기인도 아닌 게 기인 행세를 했으니 너는 기인보다도 더 비정상적인 놈이다, 네 놈을 진짜 기인으로 만들어주겠다 하는 등등의 협박성이 짙은 비난전화였다고 했다. 그 수백 통의 비난 전화에 쑈크를 받고 그가 병이 났고, 그 비난 전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병을 치유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 거라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 시골은 보은이었다. 보은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나지막한 야산 밑에 그의 작업실이 있는데, 그가 지금 그곳에 내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작업실로 연락할 방도는 없는 거냐고 내가 물어도, 그녀는 그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내가, 나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아니고 오히려 그와 그의 괴상한 물건에 반한 사람으로 그게 속임수가 아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점에 대해 그와 상의해 볼 게 있어 찾는 거라고 하여도,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그의 아내에게서 그의 연락처를 얻어내는 데 꼬박 일주일을 허비해야 했다. 나는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 내가 그녀의 남편의 적이 아니라 옹호자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지만, 아내는 좀처럼 나를 믿으려들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을 시골로 내쫓았던 그 수많은 비난자들 중의 한 명으로 보려 들었다. 나의 아내와 아들은 그랬겠지만 나는 아니었었다. 나는 조금 억울한 바가 있었다. 일주일 내내 하루도 안 거르고 설득해서야 그의 아내가 나의 진심을 믿어주는 것 같았다. 꼭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누그러지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핸드폰도 놓아두고 간 상태라 그를 보자면 천상 작업실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은 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나지막한 야산 밑에 있다는 그의 작업실로 가는 길을 꼼꼼히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주말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얘기를 들은 게 월요일이었는데, 듣는 즉시 그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평일날 직장을 제껴두고 그를 찾아가기에는 보은이 너무 먼 거리였다. 보은은 충청북도의 남단에 있었고, 하루는 족히 걸릴 거리였다. 나 같은 사람이 주말밖에는 찾아갈 수 없는 그런 만큼의 거리에 그는 가있는 것이었다. 비난자들의 시선을 피해 달아난 자리이므로 그만큼은 떨어진 곳에 가있는 게 마땅한 일일 테지만.
그러나 나는 주말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목요일 오후에 그로부터 연락이 왔던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연락이 오거나 그가 집으로 돌아오면 나한테 연락을 부탁한다고 하면서 그의 아내에게 나의 연락처를 남겨놓았던 것이었다. 그가 수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왔고 그의 아내가 나의 얘기를 전했고 그는 하루를 나로 인해 고민하다가 연락을 취해보기로 작정하고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었다.
“날 찾았다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사기꾼이라고 날 비난하기 위해서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요. 난 욕을 얻어먹을 만큼 얻어먹었다고 생각하니까.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소리요.”
“그래야죠. 나도 선생이 참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비난에는 굳세게 맞서야지요, 도망가는 게 아니라.”
“도망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항의 전화를 해오는 통에. 정말 테레비의 힘이라고 하더니, 대단합디다.”
“내가 전화 드린 건 항의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지요. 난 선생의 그 괴상한 물건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난 선생이 그 물건을 갖고 속임수를 쓴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정말 알고 있단 말이요?”
“그럼요, 그건 일종의 시간기계, 타임머신이 아닌가요. 그래서 그 속에 들어가면 물건이든 사람이든 사라지곤 했던 거지요. 맞잖습니까?”
“…….”
전화 저편에서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의 침묵이 궁금했다. 전화통화를 할 때 상대방의 갑작스런 침묵만큼 당혹스럽고 불안한 것은 또 없을 것이었다.
“선생을 좀 만나고 싶은데요. 가능하다면 오늘이라도.”
“회사가 어디요?”
“네?”
“내가 지금 댁에 회사 근처로 찾아가서 연락을 줄 테니 회사의 위치를 알려달라는 거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는 내가 일러준 루트대로 나의 회사로 찾아왔고, 나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의 지하 커피숍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그의 전화를 받는 즉시 지하 커피숍으로 내려갔다. 사무보다도 내겐 그를 만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내 물건이 타임머신인 걸 어떻게 아셨소?”
“아닌가요?”
“맞소. 하지만 난 내 입으로 밝힌 적이 없다고 기억하는데.”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습니다. TV에서 보는 순간 말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그런 물건이 나오기를 애타게 고대하고 있었거든요.”
“하아-”
그는 다소 입을 과장되게 벌린 채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정작 놀라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닐까. 그의 그 괴상한 물건이 진짜 타임머신이고, 그가 그 물건의 발명자라면 말이지.
“무엇 때문에 그런 물건이 나오길 고대한단 말이오.”
“정체성 때문이지요. 오래 전에 잊고 살기로 한 거지만, 아들내미가 생기면서부터 다시 나를 사로잡기 시작한 문제, 정체성이지요.“
“정체성이라니?”
“내가 누구냐 하는 거지요. 내 근원이 어디냐는 겁니다. 그건 내게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내 아들내미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이지요.”
“흐음.”
그는 흐음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었고, 얼굴 표정이 난색이 되었다.
“내 물건이 타임머신이라는 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특허청에 특허원을 내었지만, 출원을 낼 때마다 퇴짜를 맞았었소. 그래서 공개적으로 인증을 받겠다는 오기가 들어 TV 출연을 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요, 참 바보같은 생각이었지. 그게 얼마만한 불찰이었는가는 내가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피해 도망가 있어야 할 정도였다면 짐작이 갈 거요. 내가 요양이라는 핑계를 대고 시골로 도망가 무엇을 했는 줄 아시오?”
“글쎄요.”
“후회하고 또 후회했소. 내 물건은 이 땅에서 공개하기에는 시기상조였던 게요. 이 땅 사람들은 타임머신과 같은 진보적인 물건이 이 땅에서 나올 수 있으리라는 걸 감히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거요. 미국이나 불란서, 독일 가까이는 물 건너 일본 정도에서 나왔다고 해야 그럼 그렇겠지 하고 수긍을 하는 거요. 내가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게 불찰이었고 잘못이었던 거요. 이 동네에서는 절대로,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논리적으로는 그런 물건은 나올 수 없다는 거요.”
“글쎄요, 선생 말씀이 느낌은 옵니다만, 충분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군요.”
“내 얘기는 그러니까 내 물건을 공개해서는 안되었다는 거요. 내가 사기꾼 소리를 듣는 건 자업자득이었다는 거요.”
“너무 지나친 자학이 아닌가요,”
“아니, 이건 자학이 아니요. 적나라한 현실인식이지.”
“…….”
“적나라한 현실인식에 도달하고 보니까 나는 이 땅에 더 이상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요. 타임머신 같은 괴상한 물건은 물건너 다른 땅에서나 만들어지는 거라고 이 땅 사람들이 믿고 있는데, 이곳에서 괴상한 물건을 만들었다고 떠들어댈 수는 없는 거잖소. 아마도 내가 밖에 나가서 이 물건을 선전하면, 그제서야 이 땅 사람들은 이 물건이 타임머신이라는 것을 수긍하게 될 거요.”
“난 선생이 해외로 나가시려는 데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자기 발명품에 대해 인정을 못 받았다면 당연히 해외에로라도 가지고 나가 인정을 받으셔야겠지요. 다만…….”
“다만 뭐요?”
“다만, 그러기 전에 내 부탁을 좀 들어달라는 것이지요.”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러자면, 꽤 먼 과거로 되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데, 안 그렇소?”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1542년 7월 21일이지요. 장소는 개성이구요. 서화담과 황진이가 처음 만나는 날입니다.”
“서화담하고 황진이? 그게 선생의 정체성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제가 서씨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집안 족보를 보면 서화담과 황진이 사이에서 태어난 조상님으로부터 우리 집안이 시작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두 사람의 얘기와는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요. 그래서 그 관계의 진실이 더욱 궁금해지는 겁니다.”
“허허, 그거 참…… 재미는 있는 얘기요만…….”
그는 도중에서 말을 끊었고 무슨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잠시 후에야 끊어진 말을 이었다.
“선생 부탁을 들어줄 수는 있긴 한데, 한가지 좀 문제가 있소.”
“문제라니요?”
나는 그게 문제라고 하였을 때 돈에 대하여 떠올렸다. 나는 처음부터 무임승차할 생각은 아니었다. 타임머신을 타는데 얼마만한 비용이 소요되는지, 그에 대한 경험치가 추적되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도 정확한 비용을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나는 내 힘이 닿는 한 그를 섭섭히 대접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내 힘이 닿는 한이란 아마도 삼사백만 원 정도의 수준일 것이었다. 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내 몰래 내가 유용할 수 있는 돈이 그만큼이어서였다. 그리고 타임머신을 타는데 드는 비용이 정확히 얼마인지 산출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내가 시간여행을 하는 최초의 인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내가 다른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시간여행을 시험해 본 적은 있지만 사람을 상대로는 십 년 상관 정도를 빼고는 실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요, 다시 말하자면, 선생이 말하는 그 시기는 너무 먼 과거라는 거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오히려 안심했다. 나는 그가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 삼사백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을 제시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외의 다른 문제라면 내게는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실 게 없습니다. 절 실험대상으로 쓰신다고 생각하고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어차피 언젠가는 거쳐야 할 실험일 테니까요. 이번 기회에 그 실험을 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흐음.”
그는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었고, 표정이 난색이 되었다. 두 번째였다. 신음소리 같은 새된 소리와 이런 표정이 대화 중 흔히 나타나곤 하는 그의 습관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선생의 뜻이 정히 그렇다면 나야 상관은 없소만…… 만일 과거로 갔다가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오.”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감수하겠습니다. 선생은 그런 걱정은 않으셔도 좋습니다.”
“?…….”
나는 그와 토요일 세시 남부터미널 대합실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보은으로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그 괴상한 물건, 알고 보면 그것은 타임머신인데, 그 물건이 그곳, 그의 작업실에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주말에 그의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하니까 그가 물건은 보은 그의 작업실에 있으니까 그럴 필요 없이 터미널로 직접 나와 거기서 만나자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사뭇 의미심장했다. 나는 평생을 무슨 화두처럼 들고 다녔던 나의 정체성과 관련한 그 지긋지긋한 문제를 이제 확실히 해결지을 날이 며칠 안 남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장담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 괴상한 물건이 타임머신이라는 것을 믿었고, 아니 알았고, 그 물건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걸 의심치 않았다. 그것은 내가 오래 전부터, 정체성의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바라마지 않았던 바의 물건이었다. 그 물건이 실제로 내 눈앞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거지만, 나는 그것이 속임수니 환상이니 가짜니 하는 따위의 의심을 가져보지는 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 물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TV 브라운관에서 그 물건을 보는 순간 그것을 느꼈던 것이었다. 그 느낌은 어떤 논리, 어떤 이론보다도 분명하고 확실해서 나는 그 사실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 괴상한 물건은, 기인이 아닌 그가 만든, 어쩌면 세계 최초로 만든 게 분명한, 타임머신일 것이었다.
서화담과 황진이가 살았던 과거로 갔다가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가 난색을 표명하며 내게 위험을 알린 바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를 회피했다.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게 부차적인 문제였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진실이 무어냐는 것이었다. 화담이 진이를 만났을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었다. 서씨 집안에 내려오는 집안의 족보사가 맞느냐 일반적으로 전해져오는 민간의 떠도는 얘기가 맞느냐 하는 것이었다. 현실로 돌아오고 못 돌아오고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아닌가. 내게 있어 화담이 진이를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의 진실보다 더 중요하고도 시급한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라는 존재의 성립 근거가 바로 거기에 달려있는데, 말이다.
나는 토요일을 향해 달린다, 토요일 오후 세시를 향해 달린다, 그의 작업실이 있는 보은읍내에서 약간 떨어진 나지막한 야산의 오두막을 향해 달린다. 나는 과거를 향해 달리고, 1542년 7월 21일을 향해 달리고, 화담이 진이를 만났던 바로 그날을 향해 달린다. 나는 나의 시원을 향해 달려간다.




이호림
․≪작가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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