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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신작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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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 미 희
신작소설|은미희․
어쩌다 그가 생을 버렸는지 알 수 없다. 간밤, 느닷없이 한 통의 전화로 그의 소식은 날아왔고, 그 불길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P역시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말끝마다 의문을 달며 무언가 잘못됐을 거라고, 단정지었다.
“글쎄,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딨냐? 종수가 죽다니. 아마 아닐 거야. 동명 이인일지 몰라. 그래 분명 동명 이인일 거야.”
송수화구 속에서 P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전동 러닝머신의 속도계를 6단으로 맞추고 힘차게 뛰다 전화를 넣은 모양이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롤러의 벨트에 제 생을 걸어놓고, 그는 날렵한 신체 사이즈의 주문을 걸고 있었으리라. 지난 해부터 배에 붙기 시작한 군살이 대책없이 커나가자 P는 잠시도 제 몸을 가만 놓아두지 않고 등산과 러닝머신 위의 달리기로 몸을 혹사시키곤 했다. 하지만 불혹하고도 네 해라는 시간을 품어버린 그의 몸은 P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기억을 거부한 채 나날이 푸짐해져갔다. 가끔씩 만날 때마다 P의 배는 배꼽 밑으로 벨트가 처져 내릴 정도로 불어있었고, 배가 눌려 힘든다며 좌식 탁자에 앉을 때는 방석 여러 장을 겹쳐 앉아 아랫배에 가해지는 압박을 줄이곤 했다.
그가 죽다니. J는 송수화기를 다른 손으로 바꿔들며 P가 눈치채지 않도록 마른침을 삼켰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종수는 이 아파트에서 하릴없이 빈둥거렸고,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삼일 만에 사라져버린 녀석이 아니던가.
“내 말 듣고 있는 거냐?”
P는 수화구 속에서 J의 대답을 채근하며 성마르게 굴었다. 하지만 J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신문 부고라는 게 가끔은 한자(漢字)가 틀린 채 다른 이름으로 인쇄되는 경우도 있었고, 중요한 건 종수의 본이나 관을 친구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않다는 데서 그 미심쩍음은 더해가고 있었다. 정말, 부고 속의 인물이 종수라면, 그가 맞는다면, 그는 그런 식으로 떠나면 안 되었다. 종수가 더 산다고 해도 자신이나 친구들이 그의 삶을 지금보다 더 나은 길로 인도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는 살아있어야 했다. 수초에 걸린 쓰레기처럼으로라도 세상에 존재해 있어야 했다. 그게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종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낮에 C가 그 신문사로 전화를 넣어 부고를 청탁한 사람의 연락처럼 알려달라 했더니 글쎄 모른다고 하더래. 전화를 받았던 사람이 자리에 없다고, 나중에 해보라고 했대.”
P는 분명 종수가 아닐 거라는, 처음의 자신 있는 말투를 잃어갔다. J 역시 종수의 최근 연락처를 알지 못했고, 친구들 중, 누구 한 명 그의 연락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종수는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직장이 없었으며 잊어버릴 만하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와서는 돈을 빌어가거나 며칠씩 잠자리를 얻어가곤 했다. 종수는 친구들에게 있어 주체하기 힘든 짐 같은 존재였다. 주책덩어리. 그리고, 파기해버리고 싶은 과거였고, 보고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아무튼 더 알아보고 전화할게. 너도 알아볼 수 있는데까지 알아봐라.”
P는 무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P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한 달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어느 한 시점이 선명히 떠오르면서 P는 J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사무실에서였다. 점심 후의 나른한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을 때, 책상 위의 미색 전화기가 탁하게 울었다. 몇 번, 질긴 졸음에 소리를 놓쳤다가 이내 깨어서는 마지못해 송수화기를 드니 P의 짜증 섞인 음성이 튀밥처럼 날아왔다.
“어쩌면 조금 있다 종수가 너에게 갈지 모른다. 신용카드 좀 빌려달라는 거, 마누라가 없애버렸다고 안 줬다. 너에게 간다고 하더라. 돈 빌려달라면 무조건 없다고 해. 점심은 먹여보냈으니 거기까지 신경 쓸 거 없고.”
P는 수화구 속에서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듯 내남없이 굴었다. 그의 말마따나 종수가 방문한다는 예고는 간단없이 쏟아지던 졸음을 방해하며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종수가 온다니. 종수의 출현은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었고, 그만큼 거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수와의 껄끄러운 만남을 피해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다가 그가 가고 나면 올 수도 있었지만, J는 양복저고리 안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가오리 가죽으로 만든 검은 색 지갑을 꺼내들었다. 표면에 우둘투둘하게 좁살 같은 돌기들이 솟아나 있는 지갑을 여니, 양재혁, 지갑 안 투명한 비닐창에 비친 주민등록증 사진 속의 남자가 J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복사꽃 빛깔처럼 발그레 물이 들어 선명한 선을 잃고 있는 사진 속 남자는 언제 보아도 생소했다. 어느 때부턴지 눈가와 입매에 힘을 잃고 있는 사내. 한번도 자신이라고 인정해보지 않은, 아니 인정하기 싫은 추레한 사내. 그 사내는 세월의 무게를 우장처럼 뒤집어쓰고는 음울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순한 표정 속에는 이미 삶의 체념이 배어있었다. 깨지지 않는 세상의 질서 속에 일찌감치 자신을 대입시켜놓고, 어쩔 수 없이 주변 인물로 살아가는가, 사내의 표정에서 그악스러운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사내는 언제나 엉덩이 밑에 깔려있는 지갑 속에 들어있다 J가 지갑을 펼 때마다 문득문득 세상 밖으로 나와서는 제 존재를 J에게 확인시켜 들었다. 이게 너라고. 네 궁상맞은 초상이라고. 네 노년도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노라고.
월급날을 얼마 앞두고 있지 않은 터라 지갑 안은 궁색했다. 푸른색 만 원권 지폐 두어 장에, 오천 원짜리 하나가 전부였다. 혹시 하는 생각에 J의 손이 빠르게 바지주머니를 뒤졌지만, 손끝에 걸리는 것은 짤랑거리는 동전 몇 개와 쓰다 아무렇게 구겨 넣어둔 휴지가 전부였다. 흔하디흔한, 네 귀가 칼날처럼 살아있는 만 원권 다발이나 고액권의 수표는 다 어디에 몰려있는지. 손 떨리는 일 없이 양껏 집어서는 탁탁, 네 귀를 맞춰 배가 부르도록 담아보지 못하는 지갑 역시 J의 존재만큼이나 한심했다. 십년여 동안의 공무원 생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고 남의 집으로만 떠도는 자신의 존재가 얄팍한 지갑만큼이나 가볍게 느껴져 지갑을 대할 때마다 J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J는 종수에게 줄 봉투하나 만들어 두려 했다. 자신의 알량한 능력으로 얼마만큼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얼마면 종수의 신산한 삶이 위로받을 수 있는지. J는 곤혹스럽게 지갑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만오천 원. 종수의 형편을 헤아리기 앞서 자신의 삶이 너무 군색하다. 군색해 쓸쓸하기까지 하다. J는 메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갑 안에 있는 돈만으로는 그의 방문을 위로할 수 없음을 J는 알았다. 어차피 주머니 속에서 돈이 나갈 일, 그가 먼저 아쉬운 소리를 하기 전에 말없이 건네주면 그나마 남아있던 종수의 자존심이 상처받지 않으리라.
J는 청 내 현금 자동지급기에서 신용카드를 집어넣고 현금서비스 항목을 눌렀다. 드드드드. 기계는 저 혼자 돈을 세고, 돈을 토해놓았다. 누른 금액대로. 머리가 없는 데도 기계는 언제나 정확히 지시한 만큼만 게워놓았다. J는 봉투 안에 네 귀가 잘 맞게 채워 넣었다. 박봉으로 살림을 꾸려가느라 제 몸단속 한 번 엽렵하게 해보지 못한 아내가 알면 눈꼬리 치켜뜨며 불퉁거릴 터이지만, 아내의 게정이 염려돼 종수를 모른 척 내버려두기에는 왠지 마음 한 구석 무거웠다. 이 몇 푼의 돈으로 황량해져 버린 종수의 마음을 채울 수 있을는지. 그가 친구들에게서 찾고 싶은 것은 뭘까. 영화롭던 과거의 한때일까? 아니면 그때 가졌던 친구들의 충성 어린 애정이었을까? 그래, 충성……, 분명 그런 게 있었다.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과 그와의 사이에는. 우정이 아닌, 충성. 상하의 계급.
현금자동지급기 앞에서 바라다보이는 유리문 너머 민원실은 여전히 사람들로 복작였다. 호적등․초본, 토지관리, 토지소유자주소등록신청……, 명패처럼 걸려있는 분리대 위의 업무 분장 패를 살피며 사람들은 굳은 얼굴로, 혹은 무심한 얼굴로 오가고, 직원들은 지겨운 표정으로 사람들이 들이민 신청서들을 들여다보며 몇 장의 서류들을 건네주곤 했다.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무어 그리 많은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일은 당사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되는데, 그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삶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주문을 걸어놓는지. 삶을 보다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할까.
복도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가볍게 눈인사를 보내며 지나가고, 또 누군가는 황급히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오래된 청사의 양회 바닥은 자신을 딛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신음처럼 토해놓았다. 소리가 공명을 품은 채 날아올 때마다 J의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바닥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소리에는 굽이 닳고 모양이 짜부러진 낡은 신발의 정보는 들어있지 않았다. 구보편집실. J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종수를 기다렸다. 양치를 하고, 오랫동안 손을 씻은 뒤 어깨에 내려앉은 머리카락들과 두피의 각질들을 털어 내고, 바지를 추스려 입고서는 자리로 돌아와서 조만간 죄를 추궁하러 들이닥칠 형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종수를 기다렸다. 하관이 빤 역삼각형의 얼굴에 굵은 웨이브가 지는 고수머리, 결이 거친 진갈색의 피부, 강파리한 골격, 제대로 깎이지 않은 수염과 움푹 꺼진 볼은 종수를 더 우울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들었다.
P는 송수화구 속에서 종수가 곧 도착할 거라더니 녀석은 오지 않았다.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두 번인가 다녀오고, 담배를 여러 대 태우고, 누군가와 길게 통화를 하고, 또 미뤘던 결재를 받고 왔는데도 종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알량한 직장으로 종수가 자신을 만나러 오는 일도 편치 않았지만, 오지 않는 일은 J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무언가 꼭 해야 할 일을 빠트린 사람처럼 다른 일에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허수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 밖은 바람의 세상이었다. 하루 내내 바람은 가림 없이 세상을 들쑤셨고, 바람을 안은 플래카드는 찢어질 듯 팽팽한 몸으로 푸륵푸륵,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 바람 또한 소리 없이 밀려드는 어둠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길 건너 상점들에서 밝힌 불빛이 제법 또렷해지는 게 퇴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어깨를 움츠리며 바람에 섞여 어둠이 깃드는 도심 어느 곳을 헤맬까. ‘글쎄, 카드를 빌려달라고 하잖아. 없다고 안 줬지.’ P의 음성은 아직도 쟁쟁한데 그는 오지 않았다.
“재혁아.”
청사를 나와 횡단보도 앞에서 푸른 신호를 받으려는데 누군가의 음성이 불쑥 날아왔다. 강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소리는 거리의 소음들에 묻혀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재혁아. 종수였다. 청사 앞, 벤치에서 일어나며 성큼 다가오는 종수의 얼굴이 푸른빛으로 변해있었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분분하게 살아있었다. 견장이나 날개 따위의 장식 없는 오래된 베이지색 바바리 코트가 종수를 더 지치고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추운데. 예서 날 기다렸어? 사무실로 들어오지.”
“응. 공연히 일 방해할까봐 못 들어가겠더라.”
그가 씩 웃어보였다. 하지만 추위로 굳은 얼굴은 웃음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J는 P로부터 곧 올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어디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 전화하지.”
“오가는 사람 훔쳐보는 일도 괜찮더라. 다들 무심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걷고 있지만, 아마 속내는 그렇게 편치 못할 거야. 앉아서 그네들의 사정을 추측해봤지. 지루하지 않았어.”
“할 일 없기는, 어디 밥이나 먹으러 갈까?”
“아니.”
종수는 밥보다는 술을 마시고 싶어했다. 그것도 여자가 있는 집에서. ‘이쁜 각시가 있으면 좋겠다.’ J는 난감했다. 저고리 안에 만들어놓은 봉투의 액수를 초과해 사용하면 일년의 계획이 무참히 무너질 터인데. 겨우 생활비만 충당할 수 있도록 내주는 월급은 정해진 사용처에만 쓰도록 보이지 않게 강요했고, 조금이라도 호기나 치기에 휘둘려 규칙을 거스르면 사람이 잘고 궁색해질 정도로 내핍을 요구했다. 하지만 종수의 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마음은 안돼,라고 거절을 종용했지만, 입은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러자.”
J는 종수가 가고 싶어하는 집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청사 앞, 왕복 사차선의 도로 뒤편, 차 두 대가 겨우 비켜 지나갈 수 있는 이면도로에 즐비하게 늘어선 색시집들. 그 집들은 모두 업계 퇴물이나 마찬가지인 늙은 여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게를 꾸려나갔고, 속칭 과부 골목으로 불리웠다. 그곳에 가면 여자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내주었다. 술보다 몸 인심이 더 후한 곳이 그곳이기도 했다. 종수는 그곳엘 가고싶어했다. 맥주를 상자째 사면 여자들이 훌렁 옷을 벗고 나와서는 그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그대로 있어주는 집. 술을 마시다 여자가 안고 싶으면 별다른 흥정 없이 가게 뒤 골방으로 들어가 살을 섞고 나올 수 있는 집.
종수는 푸줏간에 밝혀둔 붉은 보랏빛 같은 조명 아래서 늘어진 여자의 유방을 만지며 흘흘흘, 울다가 삼단을 이루며 불거져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킬킬거렸다.
“우리 어머니도 이랬지. 꼭 이랬어. 잘 먹어 기름이 졌지. 어쩌면 젖도 이리 똑같을까.”
종수와 J둘뿐인데 여자는 넷이나 나와 앉아 무섭도록 술과 안주를 마시고 먹어댔다. 아마도, 자리에 들어온 술 대부분은 그녀들이 비워냈을 게다. 나이를 감추기 위해 진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드라이로 펴거나 무스를 잔뜩 발랐지만, 늘어진 젖과 탄력을 잃은 뱃가죽, 눈가에 선명하게 나있는 세월의 흔적은 어쩌지 못한 채 여자들은 네 젖보다 내 젖이 더 크다며 시시덕거렸다. 그녀들과 누님, 동생 해가며 연신 킬킬대던 종수가 언제부턴지 모르게 웃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나이가 더 들어보이는 여자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우리 자자,라며 여자를 향해 고개를 쳐들었을 때 종수의 눈가는 물기로 어룽거렸다.
“어마, 어마 웬일이래.”
윤기라고는 없어 보이는 짧은 파마머리의 여자가 종수를 바라보며 애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 오늘 이 사람하고 잘란다.”
눈물 어룽진 얼굴로 종수가 웃었다. 아직도 그의 몸 속에 바람이 사는 모양인가.
“제수씨가 난리일 텐데.”
“그런 거라도 남아있다면 좋겠다.”
J는 땅콩껍질과 베어먹다 버린 딸기들이 짓이겨진 탁자에 봉투를 내려놓았다. 뭐냐고 묻지도 않고 종수는 J가 내민 봉투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 천천히 집어들어 바바리코트 주머니 속에 찔러넣었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갈 때 그의 표정은 참혹해 보였다. 청년시절 보았던 그때의 참혹함보다도 더.
J는 종수를 여자들 틈에 놓아두고 밖으로 나왔다. 여자들 옆에서 잔뜩 구겨진 휴지처럼 짜부러져 있는 종수의 모습 어디에서도 옛날 순실했던 젊음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마로 흘러내리던 결이 가는 머리카락 때문에 표정이 더 유순해 보이던 얼굴. 한번도 호쾌하게 소리내 웃어보지 못하던 청년. 종수, P, K ,C, S,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여섯 명 가운데 유일하게 돈이 많은 아버지를 두었던 종수는 자신에게 쾌적한 잠자리와 영양이 풍부한 음식물, 넉넉한 용돈을 제공하던 아버지를 짐스러워했다. 어쩌면 그 이면에는 지독히도 가난했던 친구들의 질투가 뻘 같은 함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만년 말단 공무원의 장남인 P, 시골 가난한 집안의 둘째아들 K, 소도시의 영세상인의 장남 S, 행상을 하는 홀어머니의 외아들 C, 우리는 모두 종수에게 기생해 그의 자양분을 나눠먹고, 그의 꿈을 방해했으며, 그의 안온함을 깨트려놓았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종수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종수 아버지를 경멸했고, 호의호식에 젖어 배고픈 자의 설움 따위는 모르는 종수를 고속성장의 슬러지라 비꼬며 그의 주머니를 털었다. 종수는 그때마다 곤혹스러운 얼굴로 제 주머니 속에서 한 움큼씩 돈을 꺼내놓곤 했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땅값이 치솟았고, 임대료도 오르던 때였으므로 한번 불기 시작한 종수네의 재산은 엄청난 속도로 자가분열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때. 아마도 친구들 모두 내심으로는 종수가 부러웠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속내를 감추었는지 모른다. 해외 여행이다, 골프다, 사우나다 해서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볼 수 없는 그의 부모가 아들을 위해 거실 도자기 안에 현금을 넣어두면 얼마가 되었든 필요한 만큼 집어다 쓰면 되던 종수가 모두 부러웠을 게다. 그래 더 그악스럽게 사회 정의니, 자본의 윤리니 따져가며 종수를 몰아붙이고, 그의 돈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을 게다. 어디 그뿐일까. K는 종수의 돈으로 부족한 등록금을 채워냈고, S는 밀린 방세를 냈으며 C는 그에게 용돈과 책값을 조달해 썼으며, P 역시 부모 몰래 써버린 등록금을 그에게서 얻어다 겨우 내기도 했었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모두 당연하다는 듯 밤새 몰려다니며 술을 마셨고, 어수선한 시국에 목청껏 야유를 퍼부었다. 그래, 지금 가진 것이 없는 게 죄가 되지 않듯, 그때도 가진 게 죄가 되지 않았었는데 왜 죄라고 생각하며, 그를 몰아붙였을까.
친구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종수는 세상에 대해 강단 있게 소리 한번 치지 못했다. 그리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속내를 말하지도 못했으며 눈 한 번 부릅뜨지 못한 채 그렇게 친구들의 그림자 속에 섞여 어정버정 청춘의 시기를 살다 훌쩍 군에 자원 입대해 버리고 말았다. 등록금으로 받은 돈을 C의 2학년 2학기 등록금으로 대신 내주고 종수는 자신의 부모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채 그렇게 군대로 도망가버렸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의 부모가 돈으로 그를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을. 헌데 종수는 그렇게 도망쳐버렸고, 육 개월이 지난 후 그는 의가사 제대를 했다. 물론 그의 부모 돈으로.
종수를 뒷골목 색시집에 두고 온 후로 녀석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날로부터 닷새 후였다. 그때는 P가 아닌, K였다. 종수의 일로 아내와 크게 다투고 아침도 거른 채 출근을 한 날, K는 청사 앞 다방에서 J를 불러냈다. 도심 번화가에 오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는 K는 한 달 세만 해도 칠백만 원이나 되었고, 도시 인근 지역 모텔에서는 한 달에 천만 원이라는 수입을 올리고 있는 알부자 중의 알부자였다. 하지만 유난히 돈 엄살이 심한 친구였다.
“종수, 그 자식 정말 이대로 둬선 안 되겠어.”
K는 J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짜증 섞인 말부터 뱉어냈다. 담배 재를 털어 내는 그의 왼손 약지에서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볼 수 없었던 반지였다. J는 빈 위장을 물로 달래며 K의 손가락에 시선을 고정시켜 두었다. 한 중앙에 8부쯤 되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고, 그 둘레에 12개의 5부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반지는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K의 손가락에 비해 커 보였다. 움직일 때마다 반지는 수선스럽게 빛을 쏘아댔다. K는 여전히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빨며 쯧쯧, 혀만 차고 있었다. K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또 종수는 K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J는 명치끝이 답답했다. 종수 얘기라면 됐다,며 일어서 나가버리면 그만일 텐데 J는 종업원이 가져다준 물을 다 비우고 나서 재차 더 주문했다. K는 검지와 중지사이에서 필터만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힘있게 눌러 끄며 짜증스럽게 말을 꺼냈다.
“어제 느닷없이 혜미가 전화를 해서 종수를 찾지 않겠냐.”
혜미라면 종수의 딸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호리호리하니 키가 큰 아이. 종수가 몇 년 전, K의 모텔에 보름간 묵은 일을 떠올리며 혜미는 K에게 전화를 넣은 모양이었다.
“글쎄 종수 마누라, 오늘내일 하는 모양이야. 유방암이라나. 수술이라도 해보자고 하는데, 녀석은 어디로 처 가버리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야.”
J는 문득 P의 말이 생각났다. ‘글쎄 자식이 카드를 빌려달라는 거야.’ 그랬구나. 종수는 아내의 수술비 때문에 누군가의 카드가 필요했구나. J는 며칠 전에 종수를 보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커피에 설탕과 프림을 넣고 젓개질만 하고 있었다.
“그 자식 참. 그 많던 지 아버지 재산 다 분탕질해먹고, 돈 한푼 없이 떠도는 걸 보면 그 자식 바보 아니야?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데, 종수 그 자식은 어찌된 게 망해도 이리 망하냐.”
J의 명치끝에서 분노 같은 게 다기지게 뭉쳐지고 있었다. 그래, 분노. 진중히 마음을 한곳에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며 자꾸만 등을 떠미는 그 무엇. 기실 그 등등한 기운은 유방암에 걸려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아내를 방기해버리고 어디론가 태평스럽게 꽁꽁 숨어버린 종수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간단히 그를 바보로 매도해버리는 K에 대한 서운함일 터였다. J의 생각으로는 그랬다. 어마어마하던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허랑하게 날려버린 종수를 향해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려도 적어도 한때 친구였노라 자처하던 자신들만은 그를 돌려세우고 비난하거나 방종한 사람으로 단정지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옛날 웅숭 깊던 그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지 못해 안달을 부리거나 서로 경쟁적으로 오른팔임을 강조하며, 종수를 부추기고, 방종의 길로 인도하던 무리들이 바로 자신들이었지 않는가. 헌데 그의 성채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의 영토가 없어졌다고 해서 그를 폐기처분 해야 할 퇴물로 내몰다니. 그 몰인정함이라니.
종수는 어땠던가. 삼학년 이학기 고향인 소읍, 간이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표를 끊어주는 일로 근근히 술값이나 대던 아버지에게서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K에게 종수는 자신의 아버지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말없이 꺼내와 그의 등록금을 내주고는 태연하게 굴었지 않았는가. 그때 K는, P는, C는, S는 씨팔, 부의 재분배가 돼야지, 부의 편중이 이 나라를 말아먹고 썩게 만든다,고 종수가 내는 돈으로 통음을 하며 부자들을 안주거리로 씹었다. S의 두 평 반 남짓한 핍색한 자취방에서. 구멍난 양말들이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고, S가 계절 구분 없이 오직 하나로 버티고 있는 때가 탄 분홍색 솜이불은 납작 눌려서는 퀴퀴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으며, 책상에는 전공서적과 교양서적이 함부로 포개어져 어지럽게 뒹굴고 있는 비좁은 S의 방안에서 자신과 종수와 P와 S와 C와 K는 하나의 먼지처럼 뒤엉키거나 따로 떠돌며 청춘을 갉아먹었다. 한 가닥의 라면이라도 친구들보다 더 많이 걷어올리기 위해 손을 재게 놀리며, S와 C와 K와 P가 얼굴이 벌겋게 열이 달아서는 부자들을 단죄하고, 가난한 자들을 옹호할 때, 종수는 라면 한 가닥 퍼올리지 못하고 무참한 표정을 지은 채 구부리고 앉아있느라 저린 다리를 달래고만 있었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하루 온종일 햇빛 한 점 들지 않은, 먼지 둥둥 떠다니는 작업장에서 알량한 품을 팔고 또 팔아도 가족들을 기름지고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던 시절에 친구들의 말은 곧 배고픈 노동자들이 갈구하는 해방구로 통하는 비상구이자 열쇠처럼 들려 J또한 고개 아프도록 끄덕이거나 손바닥이 열이 나도록 마주쳐대며 동조하곤 했다. 이 나라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는 날이 하루빨리 와야 이 나라의 진정한 미래가 열릴 수 있노라 격앙되게 부르짖을 때, 종수는 그 일심의 공간에서 조금씩조금씩 추락하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뒤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J는 알고 있었다. 절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만 같던 종수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려져 말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버리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던 공장을 급작스럽게 떠맡게 된 종수는 직장도 없이 떠돌던 C를 불러다 회사의 얼굴 사장으로 앉혔고, 알게 모르게 친구들의 어려운 형편부터 살폈다. 그리고는 얼떨결에 사장자리에 앉아 직원이 시키는 대로 도장 찍고 달라는 돈 내주고, 가라는 데 가고, 오라는 데 오느라 진땀을 흘려댔었다. 종수의 나이 서른 아홉이었다. 불혹을 한 해 앞둔 나이. 종수가 여전히 한곳에 시선을 두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매운 욕 얻어가며 손 내밀고 사느라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할 때. 외국에서 따온 학위로 어디 교수 자리 하나 사줄까, 아버지 제의를 강단지게 도리질하고는 사글셋방으로 떠돌며 궁상을 떨 때. 종수는 사장으로 앉자마자 직원들의 봉급을 올리고 상여금을 주었으며, 공사현장의 안전을 위해 거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가 잘 해내리라 믿으며 점차 녀석을 잊어갈 때, 풍문으로 종수를 만나며 달라진 신분을 씁쓸하게 인정해갈 때, 종수가 느닷없이 J를 찾아왔다. 검은 세단도, 운전기사도 없이 혼자 택시를 타고 J가 근무하는 빈촌의 동사무소로 쭈볏거리며 들어섰다. 그의 입성이 후줄근해 인근 주택가의 주민 한 사람이 주민등본이나 초본을 떼러온 줄 알고 심드렁 맞으려다 나다, 하는 소리에 J는 종수임을 알아보았다.
“어쩐 일이야.”
민원인들의 공간과 직원들의 공간을 구분짓는 분리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J는 놀란 얼굴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아직 퇴근 멀었냐?”
종수는 J의 어깨너머 흰 색 양회 벽에 부착된 검은 원형의 시계를 흘깃 일별했다. 4시 45분. 퇴근 시간까지는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J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오겠다고 기별이라도 먼저 주었다면 넌지시 일찍 나가보겠다는 말이라도 꺼내볼 수 있었으련만. 사장이 되었다고, 그 많은 재산을 가져서 신수가 훤해졌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종수의 표정에 그늘이 보였다. 빛이 바랜 듯한 엷은 회색 싱글 양복에 다소 수척해진 얼굴,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종수의 모습에서 J는 그가 길을 잃었음을 알아차렸다. 띄엄띄엄 들고나는 민원인들 때문에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자신을 기다리며 하늘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그가 왠지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이식된 나무처럼 보여 시큰, 마음 한 구석이 시렸다. 간사스러운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퀴퀴하고 음습한 자취방에 무릎을 부딪치며 끼어 앉아 함께 소주병을 기울이고, 새우깡을 씹거나 파리똥이 점점이 들러붙은 종잇장처럼 엷은 쥐포를 질겅거리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거부로 등극하자 내심 속이 울울했는데, 저리 풀죽은 얼굴로 앉아있는 몰골을 보려니 마음 속에서 애잔함이 솟아났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종수는 하릴없이 기다렸다. 볼만한 책도 없었지만, 한쪽에 마련된 서가대에서 정부홍보용 책을 꺼내드는 일도 없었고,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지도 않았으며 무료해 졸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허리를 구부정하게 앉아서 허름한 입성으로 주민등본이나 인감증명서를 떼가는 민원인들을 풀기 어린 시선으로 좇다가 젊은 여자의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온 어린 아이들을 향해 미소를 짓거나 까르르릉, 혀를 차며 어르곤 했다. 저런 그가 어마어마한 갑부라니. 신산한 삶을 대변하듯 한곳에 붙박이지 못하고 잦은 이사로 주소지 란이 빽빽한 서류들을 민원인들에게 건네주며 녀석이 눈치채지 않도록 흘금거렸다. 생의 물꼬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으로 터질는지. 단지 중요한 게 있다면 어떤 모양으로 자존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직원들을 남겨두고 먼저 동사무소를 나온 J는 속이 출출했다. 허겁지겁 시간에 쫓겨 뜨는 둥 마는 둥 한술 아침을 뜨고 나와선 동사무소 앞에서 이천 원짜리 김밥이나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나면 저녁 무렵에는 속이 쓰리고 아렸다.
“밥 먹을까?”
“아니, 술 먹고 싶다.”
밥보다 술을 찾는 종수의 마음속에 들어앉은 미망이 무얼까. 무엇이 그를 평화롭게 놓아두지 못하고 길을 잃게 만드는 걸까. 무엇의 망령이 그의 일신을 자꾸만 위협하는가.
“시장통 그 집, 아직 있지?”
종수가 씩 웃어보였다. 입가에 실리는 힘없는 미소. 폭염 아래 꽃잎이 시들어있는 여린 봉숭아꽃 같은 웃음이었다. 그 미소가 J의 내부에 들어있던 세상 것에 대한 온갖 전의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J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들이 푸성귀나 텃밭에서 가꾼 토마토나 가지들을 이고 와 바닥에 아무렇게 펼쳐놓고 앉아있는 난장초입에 병치나 가오리들을 길게 썰고, 상추에 무채와 배를 함께 넣어 식초하고 고춧가루를 쳐 버무린 회무침에, 쌀알이 동동 뜨는 막걸리를 파는 완도집이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회무침에 참기름 넉넉히 두르고 밥을 비벼주거나 산낙지를 쳐주기도 하는, 손끝 솜씨 좋은 나이든 여자가 가게 딸린 방에서 잠을 자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간혹 은밀히 사내를 들이면서 시간을 죽이는 동굴 같은 곳이었다. 발길을 잡아채는 행상들의 부름을 모른 척 물리치며 비린내나는 완도집의 문을 열자 먼저 찾아온 사람들로 안은 왁자했다. 종수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거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완도집의 나이 든 여자는, 옛날, 종수를 맞듯, 흔연스러웠다.
“아이고, 어서 와 어쩐디야. 사장이 됐다고 해서 신수가 훤해졌을 줄 알았등만 외려 살이 내렸네. 사장 노릇하기가 힘들긴 힘든 모양이네.”
몸이 천근이라도 저 보러 온 손님 그냥 가게 만들면 안 된다고, 쉽게 문 한 번 닫지 않는 나이 든 여자는 뻐근한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구부정 가슴만 내민 채로 종수와 J를 맞았다. 새벽녘, 싱싱한 놈으로 받아다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내장을 발라 차곡차곡 냉장고 속에 넣어두었다가, 사람들이 붕어떼들처럼 우루루 몰려드는 시각에 한 마리 한 마리 내어 칼질 하다보면, 자정을 훌쩍 넘기기 십상이었지만, 여자는 저 피곤하다고, 눈을 흘겨 밑자리 무거운 사람들을 야박스럽게 내쫓지 않았다. 구석진 자리에서 그녀가 꾸벅꾸벅 졸고 있노라면 불콰하게 술이 오른 사내들은 여자의 단잠을 깨우지 않고, 손수 냉장고 안에서 술도 꺼내가고, 초장도 따라가고, 반찬 통에서 나물이나 김치 따위들을 덜어가기도 했다.
마침 구석진 곳 가운데 하나, 벽 위로 고물 선풍기가 진남색 커버를 뒤집어쓴 채 매달려있는 아래, 탁자 하나가 손님이 앉았다 나간 뒤로 치워지지 않은 채 비어있었다. 종재기 안 움푹 패인 된장에 함부로 떨어져 있는 고추씨들. 젓가락과 숟가락에는 고춧가루가 말라붙어 있고, 탁자 군데군데에 된장과 김치 국물들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으며, 베어먹다 만 고추에 이빨자국이 나있었다. 술잔이 세 개, 빈 소주병이 4병, 술잔 하나에는 자주색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입술주름이 난 채로 묻어있고, 씻고 놓아둔 물수건에는 초고추장이 묻어 불결해 보였다. 종수가 손수 타인이 먹다 만 그릇들을 치우고, 나이 든 여자의 손에서 행주를 빼앗아 탁자를 훔쳐낼 때, J는 곤혹스러웠다. 도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가. 세단에 기사까지 데리고 폼나게 사는 놈이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스스로 시장통 허름한 식당의 머슴을 자처하다니. 혹여 가난한 공무원인 자신에게 눈높이를 맞추려 연극을 하거나 가진 것 없는 자들의 질박한 술자리에 향수 같은 거를 갖고 있음은 아닐는지. 종수는 역시 스스로 잔을 가져다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잔에 술을 쳤다. 재빨리 J가 종수의 손에서 소주병을 뺏어들었지만 술은 이미 술잔 가득 넘실거리고 있었고, J에게는 권하지도 않고 먼저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무슨 주법이 그러냐고, 퉁박을 주기에는 그의 표정이 왠지 쓸쓸해 보여 J는 말없이 종수처럼 자작으로 술을 치고, 술을 넘겼다. 그렇게 거푸 세 잔을 비우고 나서야 종수는 고개를 들고 말을 꺼냈다.
“자존이 뭐냐? 현존이 자존이냐? 현존하는 것으로 자존이 성립되는 거냐?”
밑도 끝도 없는 종수의 질문에 J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가 묻는 의도가 무언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J로서는 그의 말을 거들어 주거나 반박하기보다는 가만히 입다물고 있는 게 그를 도와주는 일이라 생각됐다.
“난 모르겠다. 내가 누구인지, 또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돈이 너무 많은 것도 죄가 되고, 돈이 없는 것도 죄가 된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생각하는 일,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조차 죄가 되는 느낌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살아있는 일만으로도 죄가 된다니. J는 종수의 말을 들으며 토막쳐 있는 병치의 살점들을 지분거리고, 씹어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줘도 줘도 직원들은 불만이다. 상여금 올려주고, 사무실 옮겨주고, 자녀들 학자금까지 다 챙겨 내보내지만 어떻게 된 게 그들의 요구는 줄어들지 않고 만족을 모른다. 더구나 다른 사장들 사이에서 난 또라이로 통한다. 공연히 질서만 흐려놓는 놈이라고 면전에서 얼굴 구기고…….”
그는 또 한 번 거침없이 술을 들이켰다.
왜 이런 의구심이 들까. 내가 망해도 친구들은 여전히 내 옆에 남아있을까. J너는 망한 나와 마주 앉아서 술 상대를 해줄는지. P와 K는 진정 염려하는 마음으로 회사 형편을 묻고, 가족의 안부를 전하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까. 옛날에 나는 너희들사이에서 늘 미운 오리새끼였다. 함께 있으되, 언제나 혼자였지. 휘둘리지 말고 내 모습대로 살고 싶은데, 언제부턴가 나는 내 모습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과거의 기억 속에는 내가 없고, 너희들과 내 아버지만 있었으며, 지금 역시도 나는 없다.
J는 얼마 전까지 친구들이 그에게 했던 일을 알고 있었다. C와 P가 함께 공모해 종수의 회사자금으로 시가보다 높게 땅을 매입하고, 차익만큼 분할 받은 땅을 C와 P가 나누어가졌다는 소문이나 K가 종수에게 도로변 건물을 사야 한다며 거금을 빌어가서는 감감 무소식이라는 것과, S가 종수에게 보증을 세우고서는 재산을 빼돌린 채 갚지 않은 일 등등의 것들. 그 옛날 사회정의와 경제윤리를 외치고, 도덕을 입에 담고 살던 친구들이 과연 그들인지.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켜버렸는지. 그들에게 지금도 여전히 올곧은 반성과 비판은 유효한지. 지금도 주민 한마음대회나 행사장에 가면 무료로 나누어주는 차양 달린 모자를 쓰고, 어깨에 숫돌과 가죽끈 따위를 맨 채 확성기를 입에 대고 칼 갈아요, 가위 갈아요,를 외치며 아파트 단지들을 돌아다니는 C의 아버지는 친구 덕에 C가 출세했다는 소리를 풍문으로 듣고, 자신을 편히 모시지 않은 그놈은 자식도 아니다고 힘있게 가래침을 뱉는다고 하던가.
맺혀도 단단히 맺혀있는 모양이었다. 종수는 그 밤 내내, 혼잣말하듯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때론 키들거렸으며, 때론 훌쩍였고, 때론 쓸쓸해하기도 했다. 그런 종수에게 J는 네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고, 진정한 친구들이 있으니 두려워 말고 네 갈 길을 가라고 위로할 수 없었다. 저 역시 박봉에 다섯 식구 먹고사느라 종수를 까맣게 잊고 있었고,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가면서 P나 S, C, K와도 사이가 소원해진 게 사실이었으므로. 어쩌다 한 번 길에서 조우하는 날에도 서둘러 손 내밀고 어색한 웃음을 억지로 매단 채 그간의 안부를 몇 마디 의례적인 말로 나누는 일로 몇 달, 혹은 일 년의 격조함을 친근함으로 위장했고, 돌아서서는 뒷목덜미가 홧홧해지도록 부끄러웠다. 그랬다, 부끄러웠다. 그것도 심히. 만나면 마음 불편해지고, 자신의 존재가 안타깝게 졸아들 정도로. 그들이 소나타에서 그랜저로, 그랜저에서 다시 한 급 높은 엔터프라이즈나, 체어 맨, 에쿠스로 차를 바꿀 때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벤츠나 BMW같은 외제차로 자신들을 치장하고 다닐 때, 종수만 빼고 다같이 가난하던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괴감마저 들기도 했다. 피가 더운 시절, 부의 재분배를 목청껏 외치던 친구들이 하나 둘 소기의 목적을 향해 몸 빠르게 움직일 때 혼자만 낙오자처럼 말단 공무원 의자에 앉아있던 자신의 무능에 대한 자괴감인지, 그들의 역빠름에 대한 자괴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면서까지 통음을 하던 종수는 물먹은 짚단처럼 흐느적거리며 새벽길을 밟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 사이 완도집의 나이든 여자는 가게에 딸린 방에 들어가 반 뼘 정도 빼꼼히 문을 열어놓고서 깜북, 꽃잠을 자고, 셔터도 내리지 않은 채 형광등을 환히 밝히고 밤새 시장 통의 초입을 지켰다. 한밤 사람이 들지 않은 시장통은 어둠의 은혈처럼 유난히 시꺼멓고 괴괴했다. 전등 한 점, 비추어도 그대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처럼 어둠은 진하고, 깊었다.
종수의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소리를 들은 때는 녀석이 찾아온 날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뒤로 얼마간 돈을 꿍쳐 제 남은 생 두량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채권자들에게 넘겨주고 빈 몸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나서서는 되는 대로 살아간다고 누군가에게 들었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서는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서는 헐헐헐, 웃음도 울음도 아닌 기이한 소리를 내다 끊어버린다고 P와 S와 C와 K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놈 자식 때문에 환장하겠다고, 왜 그렇게 생겨먹었는지 모르겠다고, 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자꾸 도와주니 녀석이 의타심만 늘겠다며 다음부터는 절대 도와주지 말자고, 약속을 하고, 의기양양하게 자신들의 성공한 부의 축적을 서로 축하하며 토끼탕에, 장어 구이에, 개구리 탕에, 혹은 보신탕과 사탕 같은 기름진 음식들로 위장을 채웠다.
어쩌다 불려나간 자리에서 J는 종이 다른 동물처럼 따로 외돌았다. 결코 무리에 섞일 수 없는 단절감이 J를 껄끄럽게 만들었다. 그들의 언어는 해독불능의 외계언어였고, 접속되지 않는 기호였으며 성분이 다른 존재였다. 진갈색 피부에 수염이며 머리카락이며 유난히 숱이 많은 체모를 지닌 S, 정수리께의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P,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친구들 가운데 가장 큰 목소리를 지닌 C, 걸때가 가장 큰 K는 이제 자신들만의 영토를 지닌 작은 제국의 왕들이었다.
“왜, 가게?”
그들의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내내 무겁게 입다물고 있던 J가 슬그머니 일어서면 기다렸다는 듯 일행 중 한명이 얼굴 빤히 쳐들고 물었다.
“응.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거든.”
그들은 제물이 필요했을까. 잘 차려진 밥상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순탄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고, 철저히 한 사람을 격리시켜서는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의 성공을 자축하고 싶었을까. 푹 삶아진 소의 음경, 소의 혀, 희고 불그스름한 소의 골, 소의 붉은 살들을 씹으며 그들은 다음 상대를 찾을까. 아니, 이미 그들은 새로운 대상으로 자신을 지목했는지 모른다. 옛날에는 가진 것 많은 종수를 택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야할 길을 보았고, 이제는 저들보다 가진 게 없는 자신을 택함으로써 자신들이 지켜야할 과제가 무언지 경계로 삼고자 하는지 모른다. J는 서둘러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신발 뒤꿈치를 제대로 신지도 못하고 나서면, 그놈의 다리는 또 왜 그리 저린지. 절룩이며 소의 생체들을 파는 고깃집을 나와 매연 가득한 거리를 걸었다. 종수도, 옛날에 그랬는지 모른다. 기껏 같이 섞여있다가 슬그머니 나와선 자신처럼 저린 다리를 달래지도 못하고 질질 신발을 끌고 나와선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는지 모른다. 걷고 또 걸어도, 무언가 텅 비어버린 듯한, 아니, 분노일지도 모를 그 무엇을 달래며 익명의 타인들로 넘쳐나는 거리를 걷고 또 걸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그는 길을 잃어버렸을까. 종수는 왜 그날,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찾아왔을까. 자신에게서 함께 섞여 있어도 절대 같을 수 없었던 과거의 자신을 보았던 걸까.
“얀마.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종수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거야?”
종수 생각을 하는 동안 K가 무슨 말인가를 물은 듯했다. 하지만 일일이 대답해줄 만큼 J은 마음이 너그러워지지가 못했다. 적어도 K의 앞에서, 종수에 관한 한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종수 그 자식, 너랑 제일 친했잖아. 그래, 너는 미리 낌새라도 알고 있나 했지.”
K의 표정에 지겨움이 고이고 있었다. 죄의식이 아닌, 지겨움. 타인의 불행 따위야 오롯이 타인들의 몫일 뿐. 그 타인의 불행이 자신들의 일상을 침해해서는 안 되었다. 절대로. J는 K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이틀에 한 번, 이발소에 가서 마사지를 받고, 귀털과 비죽이 비어져 나온 코털은 물론, 민들레 홀씨 같은 얼굴의 솜털들을 제거하며 손톱소제까지 받는다는 그의 얼굴은 주름이 앉을 사이도 없이 잘 먹어 살이 두둑이 올라있고, 반들반들 윤기까지 흐르고 있었다. 초록빛나는 가는 줄의 체크무늬 콤비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어린 뱀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은 K에게서는 그 옛날, 궁색한 자취방에서 깎지도 않은 수염과 때 낀 손톱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분노에 차 가진 자들을 단죄하고, 부의 재분배를 외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디 용모뿐이겠는가. 육층짜리 모텔 지하를 삼억 원에 세를 주고, 밤이면 푸르고 노랗고 붉은 네온으로 건물 전체를 두른 모텔을 십삼억 원에 팔라고 해도 안 팔았다며, 자신의 부를 과시할 때는 종수의 아버지는 보는 듯했다. 그리고, 고급세단에 뭐하는지도 모를 젊은 여자를 태우고, 제주도로, 태국으로 골프 관광을 다닐 때는 탐욕에 찌든 생면부지의 사람을 보는 듯했다. 그는 그랬던가. 자신의 부를 마음껏 향유할 때, 이게 사는 맛이라고.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한 번쯤 이렇게 살다가는 일도 나쁘지 않다고. 오히려 없이 살면서 남에게 구걸하고, 피해주며 사느니, 내 것 가지고, 베풀며 사는 일이 더 좋은 일이라고. 아침이면 건강 생각한다며 생식으로 때우고, 점심은 승용차로 두 시간이나 달려 도착하는 곳도 마다 않고 찾아가서 배를 불리고, 밤이면 접대한다는 핑계로 고급 룸살롱에 들어가 꼭지주, 계곡주, 미인주, 비아그라주, 폭포주, 회오리 바람주 같은 기이한 이름들의 술을 마시며 생을 소비하면서, 그는 그게 사는 맛이다고, 사는 재미라고 표현했던가. 날마다 기름진 음식들로 배를 채우는 통에 처리하느라 힘겨운 그의 내장 어디쯤 K도 미처 눈치채지 못할 혹 덩어리 하나 자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한 번씩 치기 있게 뀌어대는 방귀에 그리 지독한 냄새가 스며있음을 미루어 보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음이었다.
“그래, 짐작 가는 곳도 없냐?”
K가 다시 한번 물었다.
“찾으면 어떡할 건데? 한 대 패주기라도 할 거냐?”
거침없이 날아오는 반향에 K의 표정이 움찔했다.
“뭐, 그러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럼, 그렇게 살지 마라 훈계라도 할 참이냐?”
“얀마. 너까지 왜 이래? 자식이 걱정돼 너한테는 혹시 연락이라도 있나해서 찾아와 본 건데.”
K의 언성이 사뭇 높았다. 노란 튜울립의 조화들로 장식된 탁자 분리대 너머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힐끔 솟아올랐다 다시 내려가고, 벽에 부착돼 있던 커다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던 흰색 원피스의 이십대 초반 다방 종업원이 K와 J를 향해 몸을 돌렸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다면 J는 시계의 태엽을 거꾸로 돌리고 싶었다. 돌아가서 모든 것을 원위치 시키고, 다시 플레이시키고 싶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찬찬히 짚어보며 오류를 수정하고, 예전의 그 순수함으로, 정의로움으로, 진정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 어디쯤에 나날이 변해 가는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 하나쯤, 슬쩍 끼워넣고 싶었다.
“나 간다.”
K는 벌떡 일어서 계산을 마치고 나가버렸다. 그의 말처럼, K도 종수가 걱정됐는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젊은 날을 함께 했던 친구로서 얼마간의 정리는 아직 퇴색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다. K가 불퉁거리는 걸음으로 나가고, 흰색 원피스의 여종업원이 주전자를 들고 와 빈잔에 물을 채우고 돌아간 뒤로도 한참이나 앉아있던 J는 느릿느릿 일어나 다방 밖으로 나왔다. 그새 세상의 풍경은 출근 시각의 분주하던 모습에서 오전의 나른하고 한가로운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종수는 정말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일이 안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아내를 버려두고, 어디 가서 끌끌, 허튼웃음 지으며 속절없는 시간들을 살고 있을까. 왜 그날 찾아와서는 자신의 아내가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는가. 수술비가 없으니 좀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더 나이가 든 여자하고 밤을 보냈을까. 혹여 오래 전에 아이에게 젖을 물려 쪼글쪼글해진 그 여자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컹컹, 울지나 않았는지.
사무실로 돌아온 J는 종수가 갈 만한 곳으로 전화를 넣어보았지만,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혜미에게 전화를 넣었지만 혜미는 수화구 끝에서 낮고 풀죽은 음성으로 어물거리며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으세요. 아니요. 한 나흘 정도 되었어요. 어머니는 그냥 퇴원하신대요. 수술해봤자 가망도 없다는데, 공연히 사람고생 하고 돈 없앨 필요가 뭐 있겠느냐고…….”
송수화기를 전화기의 몸체에 올려놓고 나서 창 밖을 보니, 온기 없는 햇살이 세상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살찐 비둘기 한 마리 겁없이 보도 블럭 위로 내려와 누군가 흘려놓은 음식들을 쪼아대고 있었다.
그런 종수가 죽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C가 부고가 난 신문사로 전화를 넣어 기어이 그 부고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종수였음을 확인하고 난 뒤라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노라고 했다. 으레 하던 대로, 전화로 접수를 받고, 게재했을 뿐이었다고, 얼굴 모르는 사람이 수화구 끝에서 얘기해줬노라, C는 말했다. 각이 진 얼굴, 이마로 흘러내리는 직모의 머리카락을 드라이어로 모양을 잡고, 스프레이로 고정시킨 C는 더 이상의 말을 삼간 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종수 밑에서 일을 거들던 C는 그때 덜어낸 종수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거대한 마트의 사장이 되어있었다.
함께 만나 종수의 빈소로 가기로 한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 다들 서름한 표정으로 앉아서는 애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비켜내고 있었다. 왔냐,라는 인사도 없이 머리수가 채워지자 C가 가지고 온 진청색 BMW에 모두 말없이 올라탔다. 차안에서도 종수의 죽음에 대해 의혹에 찬 표정을 지은 채 서로들 말을 아끼고 있었다. P는 두 손을 아프도록 맞잡았다가 풀고, 다시 잡았다가 푸는 일을 무의식중에 반복하고 있었고, C는 말없이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에 시선을 던져두고 있었으며, K는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은 왜 장소가 바닷가라는 거야.”
P는 담배를 꺼내 물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고, 입술로 물고만 있었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희디흰 속살 같은 담배가 입술에 들러붙었다가 부드럽게 떨어졌다.
“하도 엉뚱한 데가 많은 자식이니, 알 수 없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걸쳐놓았던 자세를 풀며 S가 대답했다. 양복과 와이셔츠는 물론이고 양말과 구두, 심지어 속옷까지 색을 맞추어 입는다는 S는 오늘도 검은색의 싱글에 짙푸른 와이셔츠, 은사가 사선으로 들어있는 잿빛의 넥타이와 회색 양말, 코가 반짝이는 검은 구두를 신고 나와 평소의 감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K의 손목에는 여전히 루비와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금시계와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가 침울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수선스럽게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래, K의 말처럼, 여늬 부고 같지 않게 특이한 점은 있었다. 장소가 바닷가라는 점과 중요부호를 달아 시간을 엄수할 것이라고 명기해 놓았다는 내용이 아무래도 그의 죽음을 예사롭지 않게 만들었다. 일찌감치 종수의 가족들은 초상 치를 준비를 하느라 그곳 바닷가로 갔는지 혜미와의 통화는 되지 않았고, 그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혹을 단 채 친구들을 자책 속으로 내몰고 있었다. 일만 이천 가지 상품을 취급한다는 내로라하는 마트의 사장 C, 육층짜리 모텔을 두 개나 소유하고 있는 P, 모두 굳은 얼굴로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 자식 지 부인 병원비 마련하느라 배를 탔는지 모르지. 그래 바닷가에 빠져 시신도 찾을 수 없었거나.”
K의 말에 누구 하나 이의를 다는 사람이 없었다.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자는 듯 두눈 감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던 J의 명치끝에 불온한 기운이 칼끝처럼 벼려지고 있었다. 종수의 죽음으로 내몬 건 어쩌면 자신들일지 모르는데 이들은 제 잘못을 모르고, 죽은 친구를 두 번 죽이고 있구나. 하지만 저 역시 공모자 중의 하나. 이들과 다를 바 무엇이랴. J는 일종의 부채감에 입을 꾹 다물고 여전히 자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차가 바닷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 바다는 회색빛으로 넘실대고 양식을 위해 줄 맞춰 심어놓은 몸통 가는 나무들은 을씨년스럽게 우듬지만 내밀고 햇빛을 쬐고 있었다. 저 멀리 하얀 천막이 하나 보였다. 고물고물, 사람들 몇 움직이고, 옆, 붉은 드럼통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안개가 흩어지듯 연기는 결지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얇은 장막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저기인 모양이다.”
P가 소리치고, 누군가는 흠흠, 마른 목을 가다듬고, 누군가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서는 옷매무새를 바로잡았다.
혜미였다. 반으로 잘라 눕혀놓은 붉은 드럼통 안에 불을 지피고, 큰 철망을 걸쳐놓은 뒤 고기를 뒤적이고 있는 사람은. 그 옆에, 다리를 모아 두 팔로 끌어안은 채 녀석의 낡은 베이지색 외투를 어깨에 걸치고 있는 중년의 여자는 종수의 아내였고, 녀석은 혜미가 뒤적이는 고기를 흘깃 쳐다보거나 담배를 입에 문 채 저 멀리 떠있는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자식 뭐야?”
“아직 혼이 덜 난 거 아냐? 저 자식 정말 사람 되긴 그른 거 아냐?”
멀쩡하게 살아있는 종수를 발견한 K가 발끈 화를 내고, C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침을 쏘듯 내뱉었다. 차를 도로에 세우고 빵빵, 클랙슨을 울려대며 녀석의 주의를 끌자, 종수가 느릿느릿 일어나 친구들에게로 왔다.
“와 주었구나. 난 모두 안 올 줄 알았다.”
“이 자식 사람 가지고 노는 거야?”
금방이라도 주먹을 한 대 날릴 것처럼 P가 씨근덕거리며 녀석의 멱살을 그러잡자 녀석은 얼굴 발개진 채로 히죽이 웃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J가 P의 악력 센 주먹에서 녀석을 풀어내며 물었다.
“아무튼 저리 가자. 술도 있고 고기도 있다. 먼 길 오느라 목도 마를 텐데 우선 한잔씩 해.”
녀석은 앞서 혜미와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화가 난 표정으로 서있던 P와 S와 C와 K 역시 영문이나 알고 가자며 그를 따라갔다. 치레 같은 인사들이 녀석의 아내와 친구들 사이에 어색하게 오가고, 녀석은 그 옆에서 준비한 막걸리를 돌리고 고기를 돌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녀석의 아내와 혜미를 의식한 S가 애써 음성을 누그러뜨리며 묻고, 종수는 기다렸다는 듯 내내 달고 있던 웃음을 거둬들였다.
“난 너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다. 한때 우리 아버지를 경멸하던 너희들이 우리 아버지와 한 치 다를 바 없더구나. 아니, 더했으면 더했지 부족하지도, 같지도 않더구나. 난 혼란스러웠어. 너희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지. 너희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세상을 잘 살 것만 같았다. 헌데 아니었어. 정의를 외치던 너희들은 모두 거짓이었어. 나는 그런 너희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길을 잃어버렸다.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너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 했지.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이 사람의 앞둔 죽음이 날 돌아보게 하고, 너희들을 보게 했어. 난 죽었다. 그간에 난 죽었어. 오늘 이 장례는 이전의 나에 대한 장례다. 이 시간 이후로 난 다시 태어난다. 너희들이 경멸해 마지않던 우리 아버지의 정당함을 복권하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련다. 나는 도태된 게 아냐. 진화되는 거지. 다시는 너희들을 찾지도 않을 것이며, 너희들도 나를 아는 체하지 말아라.”
K가 들고있던 술잔을 내팽개치고 일어나고, P는 씨펄, 욕을 하며 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을 따라 S와 C도 어정쩡 일어나 자리를 떴다. 하지만 J는 들고 있던 술잔을 꼭 움켜쥔 채 앉아있었다.
“너도 가라.”
녀석이 J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가볍게 밀어냈다. 녀석의 뒤늦은 독립선언을 축하해줘야 하는지, 아니면 술이라도 녀석의 얼굴에 끼얹으며 화라도 내야 하는지, J로서도 당혹스럽기만 했다.
“미안해요.”
녀석의 아내가 핏기 없는 입술로 낮게 말했다. J를 밀어낸 건 녀석의 손이 아니라, 그의 아내의 말이었다.
돌아오는 동안 누구 하나 입을 떼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는 차창 밖을 골똘히 쳐다보거나 누구는 눈을 감고 자는 시늉을 했고, 또 누군가는 입에서 담배를 떼놓지 못했다. J 역시 자는 듯 눈을 감고 친구들을 피했다. 녀석의 상처가 그리도 깊었을까. 왜 이제서야 자신을 보았을까. 조금만 더 일찍,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들, 지금처럼 살아 장례를 치르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J는 녀석의 홀로서기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스스로 잃은 길을 찾고 당당히 헤쳐나가기를, 그리고 예전처럼 그늘이 넓은 큰 나무로 우뚝 서 주기를, 필요할 때 주저함 없이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하기를, J는 빌고, 또 빌었다.
혹여, 나중에 녀석이 찾아오면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하리라. 완도집이든, 색시집이든, 어느 곳에 가서라도 주머니 걱정하지 않고 맘껏 마시고 취하리라. 그리고 뒤늦은 탄생을 축하해 주리라. 그때까지 잘살길…….
은미희․1960년 목포 출생
․1995년 <전남일보>,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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