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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문화산책> 유머의 코드로 풀이한 만화세상/조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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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코드로 풀이한 만화세상
―comic and comics―
조 은 하
(스토리작가)
유머에 대한 글을 유머 하나 없이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반응은 아마도 실소(失笑)를 포함하여 조소(嘲笑)까지도 가능할 것이며, 물론 가장 바람직한 필자의 바램은 ‘박장대소(拍掌大笑)’임이 자명하다.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윈스턴 처칠의 말을 거창하게 인용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된 영혼의 여유는 웃음이다. 이 글은 남녀노소 다소의 미소를 짓게 할 사심 없는 빈 마음의 소산이니, 전문서적이나 연구자의 견해를 인용할 생각이 없음을 미리부터 밝혀둔다. 자, 이제 웃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해 보자고 선언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수준 있는 독자들은 마음의 준비부터 할 터인데, 그것은 테마로서의 웃음을 논할 자세가 아닐 것이니, 은근슬쩍 읽다 보면 본론이고 웃다 보면 결론이 되도록 글을 한 번 만들어보도록 하겠다.
1.
웃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백과사전을 펼쳐들 이유는 없겠으나, 펼쳐들지 못할 이유 또한 없으니 이 기회를 빌어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웃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신체적 자극이나 감정의 폭발, 연기(演技)나 병적인 데서 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웃음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도 각양각생인데, 우선 홉스는 웃음을 돌연한 승리의 감정으로, 베인은 타인의 권위와 체면이 상실되었을 때에 느끼는 쾌감으로, 칸트는 예상 밖의 결과에 갑자기 긴장이 풀리는 상태로, 쇼펜하우어는 관념의 불균형으로, 베르그송은 정신의 물질화로 보았다. 이를 대강하면, 웃음은 기대의 어긋남과 긴장의 해소, 부조화와 불균형, 사교와 연기, 놀람과 유희에 의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웃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사례도 있는데, 정서적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으나, 이왕 단계적으로 접근하고자 의도했으니 또한 살펴보도록 한다. 과학적으로 웃음은 횡격막의 단속적․경련적 수축을 수반하는 흡기(吸氣)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포복절도(抱腹絶倒)는 배를 움켜잡고 웃을 경우 몸통과 머리가 흔들리는 상태를 제대로 표현한 과학적인 표현이다. 웃는다고 다 웃는 것은 아니다. 입이 상하좌우로 벌어지면서 웃는 것은 근육의 균형적 사용으로 인해 정서적으로도 만족감을 나타내고, 입꼬리를 한 방향으로 치우치며 웃는 것은 근육의 불균형한 사용으로 인해 악의나 저의를 품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유아(幼兒)나 아동의 웃음은 신체적․감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즉 간지럼이나 배설의 쾌감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반면, 성인들의 경우에는 정신적․사회적 상황이 개입되면서 웃음에 대한 해석이 매우 복잡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정서적, 과학적, 사회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웃음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웃음을 뜻하는 영어표현은 매우 많은데, 우선 개그(gag)가 있다. 개그는 연극, 영화, 방송 등에서 관객,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우스운 말이나 짓을 가리킨다.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와 같은 단순한 웃음유발에서부터 복잡한 풍자에 이르기까지 개그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유머(humor)는 익살, 해학, 기분, 기질로 번역된다. 본래 유머는 고대 생리학에서 혈액․점액․담즙․흑담즙 등 4종류의 체액을 의미하는데, 당시에는 체액의 배합 정도가 사람의 체질이나 성질을 결정한다고 믿었으며, 후대에 오면서 유머를 기질․기분․변덕 등과 동격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유머라고 다 웃기는 것은 아니다. 생각 없이 명랑한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도 있지만,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인간존재의 실존적 불안과 불확실성을 자각하는 블랙유머(black humor)도 있다.
유머와 유의어로 위트(wit)가 있는데, 위트는 유머와 마찬가지로 웃음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유머에 비해 다소 지적인 능력에 해당한다. 사물이나 상황을 기발한 착상으로 적절하게 표현하는 지적 활동을 통해 인간의 우매함을 연민과 애증으로 희화화(戱畵化)하는 복잡한 웃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트는 포괄적인 인생관조의 한 태도에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 위트와 유사한 뜻으로 사용하는 조크(joke)는 남을 놀리거나 웃기기 위해 실없이 하는 장난말이나 우스갯소리를 이르는 말로 농담이라고도 한다. 다만 조크는 위트와 달리, 다소 성실하지 못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칫 상황파악이 덜 된 상태에서 행해진 조크는 오히려 웃음의 역기능을 수행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농담이 진담에 비해 가치 없다는 의미는 아닌데, 경우에 따라서 농담은 진담 못지않은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처럼 웃음의 원인과 종류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웃음을 좋게만 본 것은 아니다. 상황에 맞지 않는 웃음에 대해서는 누구나 백안시할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웃음’ 자체를 부정하거나 금기시한 경우도 있다. 쟝 자크 아노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원래 제목이 『수도원의 범죄사건』이었다. 제목을 바꾼 이유는 독자들의 관심이 미스테리 자체에 편향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목이야 어찌되었건 에코는 중세말 14세기 북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원을 배경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의 필사본이 이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다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여 웃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웃음을 신성모독이라 믿는 수도사의 음모와 일련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기존 성직자를 대변하는 베네딕트파와 교회 내부의 개혁 세력을 대표하는 프란시스코파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이 대립의 핵심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자리잡고 있는데, 베네딕트파는 웃음을 금기시하고 반면 프란시스코파는 이를 긍정하고 수용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돌이 광야를 구른다. 매미가 땅 속에서 운다. 점잖은 무화과……. 나는 희극에 대한 세빌레 사람 이시도레의 정의를 생각해 보았어요. 희극이란, <스투프라 비르기눔 에트 아모레스 메레트리쿰>……, <비참한 처녀와 사랑스러운 창부>……. 어쨌든 뭔가가 도치되고 역전된 이야기라고 했지요. <코메디>이란 말은 <카마이>에서 나왔지요. 말하자면 희극이란 <카마이>에서 식사나 잔치 뒤에 벌어지는 흥겨운 여흥극인 게지요.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희극은 보통 사람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보여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해냅니다.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파악합니다. 거짓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실상이 아닌 것을 보여주고 있긴 하나, 희극은 기지가 번득이는 수수께끼와 예기치 못한 비유를 통해 그 실상을 다시 한번 검증하게 하고, 아하, 실상은 이러한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실재보다 못한,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준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것, 어떻습니까?”
이는 윌리엄 수사와 더불어 작품의 주인공인 견습수도사 아드조의 대사로서, 희극을 포함한 웃음에 대한 견해와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하나 잘나지 않은 실재보다 못한 평균 이하의 인간과 세계를 통해 진실의 이면에 도달하는 방법론으로서의 희극, 이것은 카타르시스라 하여 울음을 이상적인 감정상태로 보는 당대 비극에의 편애에 대한 의미 있는 반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적절한 예가 아닐 수도 있겠으나, 이 글이 작품 속의 웃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크게 부적절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보다 복잡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보시거나 영화를 보시고, 다만 필자는 웃음이 이렇듯 시대사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살펴보려던 것뿐이다. 웃음에 대한 본론 같은 서론을 이쯤해서 단매듭짓고, 이제 만화를 통해 바라본 웃음에 대한 서론 같은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2.
만화(漫畵)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지러운 그림’이다. 어지럽다는 의미는 다소 모호하지만, 자유분방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만화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만화는 대상의 성격을 과장 혹은 생략하여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비판하는 그림 형식으로, 자유로운 과장법과 생략법으로 단순․경묘(輕妙)․암시의 효과를 도모하는 점이 순수회화와 구별된다. 이처럼 만화와 회화를 내용과 표현방식 등으로 구별하는데, 어느 방법을 막론하고 만화와 회화의 역사적 기원은 동일시된다. 즉 현대만화의 시발점은 19세기 후반 현대회화의 시발점과 근사한데, 물론 당시에는 만화를 화가의 여기(餘技) 정도로 간주했다.
만화의 의미역 또한 웃음의 그것만큼이나 다양한데, 우선 캐리커처(caricature)가 있다. 캐리커처의 어원은 ‘과장된 것, 왜곡된 것’ 등의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 ‘caricatura’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의 양상이나 그러한 사건의 핵심에 자리잡은 인간군상의 자태 등을 절묘하게 특징만으로 포착하여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이나 문장을 가리킨다. 대개 조소(嘲笑)․우의(寓意) 등을 수반한 과장된 표현으로 시사적인 성격을 표방하는데, 이러한 캐리커처의 이념은 문학․방송 등에도 확산되어 현대 정치 사회의 모순이나 불합리를 직시하는 데 일조한다. 다음으로 카툰(cartoon)이 있다. 카툰에 대한 정의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는데, 미국의 경우 카툰을 한 컷(cut)으로 된 시사만화나 장면만화라 하고, 4컷 이상 연결되어 스토리가 이루어지는 연속적 장면의 그림이야기 형식으로 된 만화를 구분하여 코믹스(comics)라고 한다. 여기서 코믹스는 코믹 스트립스(comic-strips)․코믹 스토리(comic-story)의 약어로서 코믹은 ‘희극’을, 스트립은 ‘띠’모양의 연속성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유럽에서는 보통 코믹스를 카툰에 포함하여 모두 카툰이라 통칭한다. 한국1)과 일본․중국 등지에서는 일반적으로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카툰과 코믹스를 구분하며, 경우에 따라서 소설처럼 긴 스토리를 엮어나가는 코믹스를 극화(劇畵)라고도 한다. 코믹스는 활자문화가 흡수하지 못한 지적․정서적 욕구를 수렴하여 즉각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출판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유럽의 경우 여전히 신문지상에 만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고급 시사만화지 계열의 것은 차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다만 순수 유머만화로 엮어진 단행본과 에로만화를 주축으로 편집된 만화잡지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현대의 기계문명 속에서 지쳐버린 현대인들의 가벼운 휴식의 방편으로 스포츠와 더불어 만화를 찾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웃음을 유발하는 극형식인 희극을 뜻하는 ‘코믹’과, 이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낸 일련의 연속성을 가진 이야기를 뜻하는 ‘코믹스’의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는 그 명칭만으로도 여실히 증명된다. 따라서 만화를 ‘코믹스’라 칭하는 그 순간부터, 만화가 위대한 ‘코믹’의 전통을 계승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잠시 카툰의 개념을 덜어낸 순수한 코믹스는, 코믹의 뼈대를 배태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코믹의 전통을 이어받은 코믹스는 그 장르가 매우 다양한데, 그 속에는 ‘코믹’하지 않은 것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믹스의 장르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성인물․소년물․순정물․아동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각 연령별로 ‘코믹’의 유무와 정도의 차이가 크다.
우선 성인물은 내용에 따라 정치․경제․경영․직장․사회․애정 등 다양한 테마를 다루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애정물에 편향되어 있으며, 또한 그 테마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대체로 ‘코믹’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도 특기할 일이다. 성인물의 주요테마인 정치․경제 등의 시사문제를 ‘코믹’하게 다룰 필요성에 대해 그다지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카툰의 경우는 본래 카툰의 기능이 시사풍자에 있음으로 풍자를 위한 ‘코믹’ 요소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나, 코믹스의 경우 성인물에 그런 요소를 가미하고 말고는 작가의 의무조항이나 특정 연령대의 유행은 적어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중․장년층들에게 유머감각이 부족하다는 보고가 심심찮게 들리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웃음에 인색한 구세대들의 여유 없이 무미건조하고, 세상만사 진지하고 심각하게 접근하는 것이 진정한 해법이라 믿는 고지식한 태도가 코믹스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비해 소년물은 내용에 따라 스포츠․학원(폭력)․무협․공포․판타지․공상과학(SF)․게임 등 소년들의 주요 관심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테마에 무관하게 어떤 식으로든 ‘코믹’적인 요소가 없으면 큰 반향을 일으키기 힘들 정도로 소년물의 경우 코믹에 대한 욕구와 기대치가 높다. 소년물이라면 10대 청소년들이 주요 대상타겟인 동시에, 그들은 연령별 구분을 막론하고 코믹스 전체에 있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요 고객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취미나 특기에 따라 다양한 테마의 코믹스를 무작위로 섭렵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독서행위는 단순히 소일(消日)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의 감상과 다양한 정보검색, 롤플레잉이나 액션 어드벤쳐 등 각종 장르로 개발된 컴퓨터게임의 구입이나 참여, 등장하는 캐릭터와 구조물의 프라모델(완구)의 구입이나 지속적인 수집 등 다양하게 시야를 확산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독자이다. 따라서 코믹스에서 소년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청소년 독자들은 코믹스를 비롯한 애니메이션․영화․컴퓨터게임․완구 등 주변 연계 산업의 동조적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순정물이나 아동물은 학원(연애)․판타지․동성애․마법담․동물․동화․육아 등 다분히 소녀․아동 취향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 테마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코믹적’인 요소가 소년물에 비해 과장되지 않고 아기자기한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코믹보다 작은 개념으로, 일명 ‘개그컷(gag cut)’이라고 하여, 페이지칸 밖에 작은 말칸을 이용하여 몇 마디 적절한 의성어나 의태어를 구사한다든가, 정상적인 체형이 아닌 이를 축소시켜 만든 작고 귀여운 2등신 체형의 캐릭터를 적절히 사용하여 상황묘사를 구체적으로 하되, 소년물과 달리 대부분의 컷에 있어서 장면을 미화(美化)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웃음이 나는 여고시절의 자잘하고 섬세한 웃음들이 순정물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보면 적절하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지나친 과장법의 그림이나 억지스러운 상황전개 보다는, 몇 마디 코믹스러운 대사나 신체․안면의 미화법을 바탕으로 한 변형 등 잔재미에 치중해 있다. 이런 미화의 불문율은 순정물이나 아동물과 연관된 산업적 특성에 비추면 쉽게 이해된다. 즉 순정물․아동물의 경우 문구류나 팬시류, 패션잡화류까지 캐릭터사업이 확장되어 있기 때문에 미적 요소가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만화에 나타난 웃음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상당히 먼 길을 우회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웃음의 발생원인과 종류도 살펴보았고, 만화의 탄생배경과 장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점검해 보았다. 이 글에서 필자는 ‘코믹스’의 ‘코믹’에 대해 다루고자 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펜으로 그려진 일정한 컷이 있는 형태의 원고나 책자를 모두 뭉뚱그려 만화라고 지칭하고 있으며, 그 대책 없는 포괄성을 다소 구체화시키기 위해 몇 가지 관련 용어에 대해 지면을 고르게 할애하였다.
만화 중에서도 특히 이 글에서 포커스를 맞춘 코믹스는, 현대 정보사회의 각광받는 디지털 매체와 산업의 중심에 있다. 코믹스를 바탕으로 캐릭터 사업이 육성되고, 플래쉬․이메일(e-mail)․이카드(e-card) 등 관련 컨텐츠 사업이 발전하고, 기존 출판물에 대한 독자반응을 판매 부수나 사회파장 등을 통해 예견하여 제작․기획되는 애니메이션 산업과 영화 산업의 모체가 된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만화에 대해 문외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며, 동시에 만화를 아동․청소년기의 연령에 한정된 전유물로 생각하기 십상일 것이다. 만화에 대해 알고 있다 해도,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코 묻은 돈으로 몇 시간이고 틀어박혀 읽던 그 어둑하고 눅눅했던 만화방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추억에 잠기는 분들을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때에 비해 세월이 변해도 한참 변했다. 만화는 이제 비생산적인 연령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요 산업의 생산적인 원텍스트에 해당된다.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한 글에 무게가 실렸으니 균형은 독자의 몫이겠다.
주)
1) 한국의 만화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1930년대에 동양화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이 잡지에 단편만화를 그렸고, 노수현(盧壽鉉)은 1924년 조선일보에 「멍텅구리」를 연재하여 신문만화의 새 기원을 이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만화가의 본격 만화작품으로 알려지기보다는 화가의 여기로 알려졌다. 최초의 순수만화가는 김규택(金奎澤)인데, 그는 <신동아(新東亞)> <별건곤(別乾坤)> <조광(朝光)> 등에 많은 단편만화와 「억지춘향전」을 연재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광복 이후에는 주간지 <새한민보>에 시사만화를 연재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아동지에 삽화를 그리던 김용환(金龍煥)․의환(義煥) 형제가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김용환은 <서울타임즈>에 「코주부」를, 김의환은 <어린이나라> 등 아동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또 시인 김소운(金素雲)이 <만화행진>이라는 주간 만화신문을 발행하여 종래 만화를 아동전유물로 인식하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발상을 전개했으나 곧 폐간되었고, 이후 김용환이 발간한 <만화뉴스>에 김성환(金星煥)․신동헌(申東憲)이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6․25전쟁이 일어났다. 피난지에서 박성환(朴聖煥)이 <만화신보>, 김용환이 <만화신문>, 김성환이 <만화승리>를 제작하는 등 주간 만화신문이 잠시 활기를 띠었다.
이후 김성환이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 「고바우영감」을 연재하고, 안의섭(安義燮)이 <경향신문>에 「두꺼비」를 연재했으며, 정운경(鄭雲耕)의 「왈순아지매」가 <대한일보> <경향신문>을 거쳐 <중앙일보>에 연재 중이며, 백인수(白寅洙)의 「사회희평」이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것이 신문만화로선 장기간의 연재물이다. 김일소(金一笑)․김경언(金庚彦)․길창덕(吉昌悳)․박기정(朴基禎)․임창(林創) 등은 신문․잡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오룡(吳龍)은 <조선일보>에 「야로씨」를, 윤영옥(尹暎玉)이 <서울신문>에 「까투리여사」를 연재했다. 이 무렵 아동만화계에는 만화잡지가 붐을 일으켜 이상호(李相昊)․정한기(鄭漢基)․박기준(朴基埈)․김정파(金靜波)․신동우(申東雨)․김종래(金鍾來)․박현석(朴賢錫) 등이 활약했으나, 얼마 후엔 잡지시대에서 대본소용 단행본시대로 접어들어 많은 조제품이 남발되어 사회문제화되기도 하였다.
또 신동헌은 최초로 장편만화 『홍길동』을 제작상영함으로써 만화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호피와 차돌바위』로 이어졌으나 기업으로까지 성장하지는 못했다. 김종래의 극화 『도망자』 『암행어사』에 이어 고우영(高羽榮)은 극화 스타일로 꾸준히 <일간스포츠>지에 『임꺽정』 『일지매(一枝梅)』를 연재했고, 이두호의 『머털도사와 또매』 『장독대』, 방학기의 『바람의 파이터』 등은 무술극화를 정착시켰고, 박수동(朴水東)은 독특한 선으로 『고인돌』을 <선데이서울> 등에 장기간 연재하였다. 『엄마찾아 3만리』의 김종래, 『라이파이』의 김산호의 단행본 시대를 거쳐서 각 일간지들은 어린이와 중학생 상대로 <소년조선일보> <소년동아일보> <소년한국일보>를 발행했는데 김박(金博)․김세환(金世煥)․김삼(金森) 등이 참여하였다. <동아일보>에 이홍우(李泓雨)가 『나대로선생』을, <일간스포츠>에 허어(許漁)가 『미스터 펀치』를 연재하였다.
어린이잡지에서는 김수정이 『아기공룡 둘리』로 명성을 얻었고 주간만화잡지와 스포츠신문에서는 이현세의 『까치』 시리즈와 『로보트 태권 V』의 김형배, 『변금련』의 배금택, 『악동이』의 이희재와 『각시탈』의 허영만, 『신손자병법』의 한희작,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가 유명하다. 단체로는 1958년 김용환․신동헌이 주도한 한국만화가협회와 김성환․안의섭이 주도한 현대만화가협회가 각각 만화가협회전과 문화단체와의 야구경기 등 행사를 많이 해왔으나, 5․16쿠데타 후에 와해되었고, 68년 아동만화가협회가 이상호를 회장으로 발족된 후, 77년 극화분야와 어린이신문 관계 만화가까지 망라하여 만화가협회로 개칭되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변산업과의 연계마케팅 전략에 의해 신일숙의 『리니지』와 이명진의 『라그나로크』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으로 제작되어 만화의 상품성과 산업성을 재평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조은하
․1996년 ≪「대원동화≫ 소설 등단
․1999년 대한민국 만화문화대상 스토리작가상 수상
․주요작품
코믹스 : 『X-tra 신드롬』 『먼데이맨』 『나는 사슴이다』 『레비쥬』 등
동 화 : 『투바나무이야기』 『젤라북』 『젤라카툰북』 등
극 본 : 『원더풀데이즈』 『사이렌』 『화성으로 간 사나이』 등
․현재 고려대, 한국게임산업개발원, 사이버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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