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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특집호)를 내면서/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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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599회 작성일 04-01-0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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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禍)가 아닌 문화(文化)의 인프라 구축

본지 편집위원 고명철




지난 연말,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조촐한 술자리에서 들었던 한마디는 인상적이었다. 바야흐로 ‘문치(文治)의 시대’가 왔다는 게 아닌가! ‘문치의 시대’라? 순간 여러가지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술자리가 익어갈수록 이 ‘문치의 시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되는 이러저러한 말들이 좋은 술 안줏감이 되었다. 매번 새로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세우곤 했던 ‘문화의 발전’과 관계된 다양한 정책에 대한 관심과 냉소가 뒤엉킨 질펀한 술판이었다.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 이번에 새롭게 출범하는 정권은, 가히 ‘선거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특히 그동안 현실정치에 무관심과 냉소적 시선을 던졌던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개진했다는 것 자체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다―에 힘입어 탄생한 만큼 그에 따라 거는 기대가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이것은 문화 분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실 그동안 역대 정권에 의해 추진된 문화정책이 얼마나 내실이 있었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문화의 창조적 발전을 위해 이러저러한 정책을 내세우고 실천했으나, 그 대부분은 단시간에 효과를 보기 위한 경제적 효용 논리에 입각한 채 문화의 다양한 코드를 인식하여, 정말 무엇이 문화의 토양을 기름지게 하는지에 대한 정책 입안․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경제성장주의 신화에 갇혀 있어서인지, 모든 것을 성장위주의 관점에서 파악하다보니, 문화 역시 당장 눈앞에 어떤 가시적 성과를 내보여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는 게 작금의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이제 문화도 기존의 구태의연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의 ‘상징자본’에 대한 가치가 중요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가 지닌 경제적 가치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문화의 경제적 가치가 지닌 성격을 다른 경제적 가치와 무차별적으로 판단하는 가운데 문화만의 독자성을 몰각한데서 빚어지는 문화(文化)의 ‘문화(文禍)’다.
따라서 ≪리토피아≫는 이와 같은 점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번 호의 전권을 우리 시대의 문화 인프라에 대한 점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이러한 기회를 갖게 된 데에는, 그동안 여러 매체의 통로를 통해 다양한 문화의 세부적 내용들에 대한 논의가 풍부히 이루어져왔으나, 그들 문화의 실천의 장에 대한 논의는 빈약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별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미시적 담론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이들 개별 문화가 어떠한 문화적 장에서 문화다운 문화를 생성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 하다.
어떤 개별 문화가 어떠한 물적 토대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가령, 누군가가 ‘무슨무슨 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갖고 싶은데, 그 문화에 가깝게 다가갈 길이 어렵다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어떤 개별 문화가 이미 갖추어놓은 제반 조건이 그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에게 좀더 양질의 문화를 제공할 수 없다면, 이것도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리토피아≫는 바로 이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는, 혹은 친근하게 다가가지만 좀더 개선되어야 할 문화의 인프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여기서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겠다. 이번에 문화의 인프라에 대한 점검이 만족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몇 차례의 편집 회의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만큼 문화 인프라에 대해 갖는 관점이 다각도였던 셈이다. 의견을 조율하면서 도달한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의 하위 분야에 대한 인프라를 점검하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여 문학, 영화, 연극, 교육, 도서관 등의 범주를 결정하였다. 물론 각 분야에 대한 논의는 인프라에 대한 논의로 국한시켰다.
이들 각론을 전개하기 전에 총론에는 두 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현재 전국 각 지역에 지부를 두고 있는 민족예술인총연합(사)의 활동을 ‘민족예술’의 관점에서 검토하는 글이며, 다른 하나는 문화의 인프라로서의 대학의 역할을 논의한 글이다. 독자들은 전자를 통해 지역문화의 쟁점과 지역의 다양한 문화행사를 어떻게 기획하며, 그것이 지역의 문화창조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숙고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후자를 통해 대학이 학문을 연마하는 곳으로서만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대학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의 인프라를 제공하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편의 글은 각각 한 편이 각론으로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문학의 경우 지금까지 작가와 작품에 집중된 논의를 하였으나, 이번 호에서는 크고 작은 시낭송회의 성격과 문제점, 지역에서 우후죽순처럼 건립되고 있는 문학기념관의 문제점, 출판유통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점, 그리고 문화센터에서 실시되고 있는 문학강좌를 직접 수강한 일반인들의 생각 등을 다루었다. 근래 문학의 안과 밖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고려해볼 때, 문학을 둘러싼 이러한 접근은 문학에 대한 기존의 전통적 이해가 지닌 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소산으로 비춰졌으면 한다.
영화와 연극의 경우 각종 극단에 지원되고 있는 문예진흥기금지원정책이 갖는 문제점, 소극장이 운영되는 실태와 그로부터 야기된 문제점에 대한 대안, 국립극장의 현황과 과제, 근래 각광받고 있는 복합멀티플렉스의 현실, 그리고 일반관객들의 극장 이용시 느낀 점 등을 다루었다. 이들 논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연극의 제반 조건들에 대한 집중적 관심이다. 영상문화가 압도하는 현실에서 연극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연극의 인프라를 점검한다는 차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요한다.
도서관의 경우 정보를 제공하는 문화의 풍요를 위해서는 없어서 안 될 중요한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도서관에 대한 피상적 인식으로 인해 도서관을 많이 활용하면서도 여러 문제점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갖지 못 하였다. 하여 도서관을 둘러싼 크고 작은 제반 문제점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일반 이용자들의 생각을 다루었다. 특히 이용자들 중 주부들의 의견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점차 주부들이 문화의 주된 담당층이 되면서 그들이 도서관을 활용하는 빈도수가 높아지고 있는데, 주부들의 의견을 통해 일상에서 도서관의 인프라가 갖는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된다.
교육의 경우 첨예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는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모색해보았으며, ‘민족사관고등학교’란 특정한 사례에 대한 논의를 통해 학교 교육 자체의 인프라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숙고해본다. 뿐만 아니라 현직 교사가 학교의 교육 인프라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흥미로운 글이다. 아울러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각종 수험교육기관, 교육자료의 접근 등에 따라 파생된 문제점에 대한 글 역시 흥미롭다.

이처럼 다소 이질적이고 동일한 범주로 묶이기에는 곤혹스러운 감이 없지 않으나, 이들 각 세부 분야에 대한 인프라 점검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들의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었고, 특히 문화를 향유하는 일반시민들의 의견이 자유롭게 개진된 만큼 이들 논의를 통해 우리 시대의 다양한 문화의 인프라에 대한 생산적 토론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화적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양질의 문화를 향유하는 길이 잘 닦여야 되며, 그 길을 통해 역동적 문화의 기운이 들고나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곳 우리는 바야흐로 이 역동적 문화의 기운이 들고나야 할 길을 닦아야 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고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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