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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총론-우리 시대의 문화 인프라, 이대로 좋은가?>/박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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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프라로서 대학의 역할
박 상 천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 문화 인프라란 무엇인가?
내게 주어진 논제인 ‘문화 인프라로서 대학의 역할’을 논의하기 위하여 먼저 ‘문화’와 ‘인프라’에 대한 개념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 같다. 물론 ‘문화 인프라’ 하면 대체적인 윤곽이 잡히기는 하지만 ‘문화 인프라’에 대한 정리된 개념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이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 어떠한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맡아야 하는가를 논의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이러한 개념들에 대하여 일정 정도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화에 대한 개념 정의와 범주 설정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문화를 가장 폭넓게 정의내리는 이들은 문화를 ‘인간 삶의 모습의 총체’라고 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해가는 수단, 방법, 제도 등이 모두 문화의 범주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이 정의는 자연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거나 한국문화, 미국문화 등의 쓰임새에서 보듯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둘째는 첫째 정의에 비해 조금 폭을 좁힌 정의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 문화는 ‘철학․종교․예술․과학 등 인간의 정신적 가치의 소산’을 가리킨다. 즉, 첫째 개념 정의가 포괄하고 있는 생활문화 등이 제거되고 일정한 정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산물들만을 일컫는 개념으로서 흔히 사용되는 정신문화라는 용어가 대표적인 용례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개념은 가장 폭이 좁은 개념으로서 ‘높은 교양과 예술적 요소를 지닌 산물’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화예술’이라는 합성어가 지칭하는 대상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논제에서 말하는 ‘문화’는 어떤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할까? 이번에 기획된 특집의 다른 논제들을 살펴보면 아마도 가장 좁은 범위의 개념인 ‘문화예술’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프라’란 무엇인가? 인프라란 생산을 위한 시설과 제도 등의 하부구조를 일컫는 말이므로 문화 인프라란 결국 문화예술의 창조, 유통, 향유를 위한 시설과 제도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문화 인프라와 문화 의식, 그리고 문화의 실천적 행위를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프라는 의식이나 실천 행위가 아닌 물질적, 제도적 하부 구조를 일컫는 것이지만, 최근 인프라라는 용어의 쓰임새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각 지방에서 행해지는 문화적 실천 행위를 크게 보면 한국문화의 인프라라고 말할 수 있고, 국민들의 문화적 의식 또한 한국문화의 인프라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서 문화 인프라를 단지 물질적, 제도적 하부 구조의 의미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위한 물질적 토대뿐 아니라 대학의 문화적 실천 행위와 문화 의식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2. 대학은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가?
대학의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은 크게 보아 세 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 하나는 대학내의 각종 문화 관련 시설물을 활용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각종 문화예술의 실천적 활동을 통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이며 마지막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첫째의 경우에는 대학 내에 설치되어 있는 도서관, 공연장, 박물관, 전시장, 체육시설 등 가장 기본적인 문화 인프라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이다. 사실 많은 대학들은 대규모의 도서관․공연장․전시장․체육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문화와 관련된 이러한 시설물들은 우리 사회의 좋은 문화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대학 내에서 행해지는 문화적 실천 행위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각 동아리들의 활동, 대학의 축제, 각종 문화예술 관련 행사 등이 그것이다. 이 또한 대학이라는 한정된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실천 행위들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실천 행위들이 결국은 한국 문화의 인프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셋째는 대학내의 문화예술 관련 학과들의 정규 커리큘럼을 통한 교육과 각 대학 내에 설치되어 있는 사회교육원과 같은 특별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문화 예술 교육이다. 실제로 대학들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많은 인력들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문화예술 교육은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현재 우리의 대학들이 과연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며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물론 대학이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 일정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몫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나는 ‘현재 우리의 대학은 과연 문화적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쉽게 말해 대학이 문화적이어야지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대학은 문화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결코 ‘예’라고 대답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의 대학들은 대단히 비문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깊이 있는 학문적 탐구가 있을지는 몰라도 높은 교양도 없고 예술적, 문화적 향기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깊이 있는 지식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대학의 구성원들은 대단히 비문화적이고 대학의 시설과 제도의 운용도 결코 문화적이라 할 수 없다.
가장 비근하게 대학 내에서 구성원들의 행동 양식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교문을 들어서면서부터 조용하고 질서가 있고 안정적인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마치 시끌벅적한 시장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아무 곳에나 어지럽게 널어져 있는 홍보 벽보, 광고 현수막, 대자보. 차량과 사람들이 뒤섞여 우왕좌왕하는 모습. 엄연히 운동장과 같은 체육시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건 차도건 어디든지 빈 공간만 있으면 농구와 족구를 해대는 학생들. 심지어는 강의실까지도 이어지는 소란스러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우리나라 대학들에 ‘문화’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겉모습만이 아니라 도서관을 예로 들어 한국 대학의 문화적 현주소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에는 공공 도서관이 약 430여 개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고 대학 도서관 또한 이와 맞먹는 숫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이 별개로 인식되고 통계상으로도 별도로 집계되고 있다. 그 까닭은 공공 도서관은 문화관광부의 소관 기관이고 대학 도서관은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을 이렇게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 사회 문화 인프라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도서관에 대한 우리 사회, 그리고 대학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도서관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 문화 인프라로서 제대로의 구실을 하지 못 하고 있는 셈이다.
그뿐 아니라 대학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행태를 살펴보면 더욱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상위 그룹에 속하고 규모가 큰 한 대학의 예를 들어보자. 이 대학의 도서관에는 1일 평균 연인원 약 2만 명 가량이 드나든다. 물론 이 인원들 중에는 도서관을 실제로 이용하지 않는, 다양한 목적으로 도서관을 방문한 허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많은 인원이 드나들지만 실제로 1일 평균 도서 대출 건수는 1,500여 건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2만 명의 인원이 모두 책을 대출받기 위해 도서관에 오는 것은 아니고 정보 검색, 정기 간행물, 참고도서 열람 등을 위해 도서관을 출입하기도 하지만 2만 명의 인원이 드나드는 도서관에서 1,500여 건의 도서 대출만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의아하지 않은가?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이는 다 아는 바와 같이 도서관이 본래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험 준비와 취업 준비를 위한 자습실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는 수없이 많은 열람석이 있지만 이 자리에는 수험 준비에 바쁜 학생들만이 앉아 있는 것이다. 대학 도서관들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기보다는 자습실화하였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대학 도서관의 현실에서 무슨 문화를 논할 수 있겠는가?
대학의 문화예술 관련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문화예술 창작을 꿈꾸는 많은 학생들은 사실상 여러 가지 제도적 제약 때문에 자유로운 창작 활동에 전념하기가 어렵다. 어느 학과든지 유사하게 적용되는 졸업을 위한 학점과 필수 과정들. 문화예술의 창작보다는 이론적인 접근이 더욱 우세한 커리큘럼들. 이 모든 제약 조건들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려는 창작 열의를 꺾어놓기 십상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예술 창작을 위한 자유로운 세계가 인정되지 않은 우리나라 대학의 문화예술 교육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학은 문화적인가?’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서 비참하게도 ‘아니다’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연장, 축제, 동아리 활동 등 대학의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이것이 대학의 표면적 일상이 보여주는 비문화적 모습이다. 겉으로만 보아도 이렇듯 대학 자체가 비문화적인 마당에 ‘문화 인프라로서 대학의 역할’을 논의하는 자체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대학은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여지며 또한 대학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해야만 하기 때문에 이 논의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3. 대학은 어떻게 문화 인프라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앞서 나는 대학의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세 가지로 나눈 바 있다. 첫째는 대학 내의 각종 문화 관련 시설물을 활용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이고, 둘째는 각종 문화예술의 실천적 활동을 통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이며, 셋째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우리의 대학들은 사실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과 기능을 가질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의 대학들은 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대학들은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과도 맞물려 있는 것인 만큼 단순히 이것은 대학만의 책임은 아니다. 문화예술이 생활과 유리된 채 표류하는 한 우리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 또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은 그 사회의 경제적 성장과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상품을 생산하는 행위 자체는 경제적 행위이지만 이 상품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떻게 포장하느냐는 문제는 단순한 경제 행위를 넘어서는 문화적 행위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적 수준의 정도에 따라 문화적 행위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자연히 상품 생산 그 자체에 매달리게 되지만 경제적 수준이 오를수록 다음 단계인 문화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인식의 수준은 그 사회의 경제적 수준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인 문화 인식 수준과 경제적 수준만을 탓할 수는 없고 대학은 마땅히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들은 대학이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기울여야 할 노력들이라 생각한다.
첫째, 우리의 대학인들은 대학과 사회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러한 생각들을 먼저 불식해야 할 것이다. 대학을 일컫는 말 중에 ‘상아탑’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대학이 사회와 유리되어 있는 것을 비꼬고 야유하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대학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부르며 사회와 격리되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우세하였다. 물론 이제 이러한 생각들이 많이 불식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대학의 사회 속의 유리된 섬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대학이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대학은 사회 속의 유리된 섬이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와 격리시키고 있는 보이는 울타리,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걷어내야만 한다. 실제로 외국의 대학들을 방문해본 사람들이 놀라는 것 중의 하나는 대학과 도시 사이에 보이는 울타리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 구내와 도시의 경계가 없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대학들이 쌓고 있는 견고한 담들을 반성하게 된다. 보이는 것이건 보이지 않는 것이건 사회와 사이에 쌓아두고 있는 담을 허무는 일이 대학이 사회의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담을 허물어냄으로써 우선 대학의 도서관과 공연장과 전시장과 박물관은 사회의 실제적인 문화 인프라의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 문화 인프라 시설이 빈약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대학의 문화 인프라 시설물의 사회적 공여는 획기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설물 관리 등 대학이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나 대학이 사회 속의 한 섬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대학은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벽 허물기는 문화 예술 관련 시설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과 사회를 나누는 벽은 대학의 문화예술 활동, 문화예술 교육에도 마찬가지로 있어왔다. 지금까지 대학의 문화예술 활동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고 문화예술 교육이 현장성을 얼마나 중요시했느냐의 문제를 생각하면 사회와의 벽 허물기는 대학이 사회의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는 핵심이라는 점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둘째는 대학들 내에서 행해지는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의 대학들에는 ‘대학문화’라고 불리워질 만한 문화가 없다. 놀고 먹자판의 대학 축제가 그렇고, 소수 동호인들만의 동아리 활동이 그렇고, 1년에 한번쯤 벌이는 문화예술 관련 학과들의 졸업 공연․졸업 전시회가 그렇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문화예술 관련 행사들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다. 별 관심이 없다 보니 참여자들이 별로 없고 결과적으로 빈약한 행사가 되고 만다.
그러나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각가지 문화예술 관련 행사들은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소규모의 활동들이 활성화되고 이러한 행사들이 적극적으로 사회와 길트기를 하게 되면 우리의 문화예술의 토대는 그만큼 견고해진다. 우리나라의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예술 활동들이 총체화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의 전반이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실제로 대학 내에서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 창작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지만 이들의 꿈은 늘 갇힌 꿈이 되고 만다. 이들의 활동을 북돋아주는 이도 없고 지원해 주는 이도 없다. 우리 사회가 그러하듯이 대학 내에서도 문화예술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귀찮은 존재이다. 대학에서 사물놀이패들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다. 물론 아무 곳에서나 꽹과리며 장고를 두드려대는 것도 문제이지만 교수들은 이 소리를 참지 못 한다. 뿐만 아니라 누구도 다른 이들에게 소음 피해를 주지 않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두드려대는 사물놀이패들의 소음만을 탓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실이다. 수업 시작 전이나 방과후의 구내 방송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의 구성원들에게는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어 교내 방송의 음악을 소음으로만 생각하는 슬픈 현실 속에 우리는 처해있다.
물론 대학의 한정된 예산에서 어떻게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연습 공간을 다 마련해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고 그러한 반문이 부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지금 우리 대학들이 처해 있는 문화적 환경과 대학인들의 문화적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사회의 문화 인프라로서 제대로 구실을 하려면 대학에서의 젊은 인재들의 문화적 활동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의 문화예술 활동이 우리 사회의 문화예술의 인프라라는 인식을 하면서 대학과 사회가 함께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
셋째는 문화예술 교육과 관련된 제도와 커리큘럼의 문제이다. 우리 대학사회의 제도와 커리큘럼은 문화예술 관련 학과의 학생들조차도 일률적인 틀에다 얽매어 놓으려고 한다. 대학의 문화 인프라의 역할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문화예술 관련 인재들의 양성이라고 한다면 이 문제야말로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속과 제약이야말로 문화예술의 창작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 한다.
연전에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신설하려고 하자 종합대학교의 음악대학들이 들고일어나 반대를 했다. 물론 석박사 과정을 신설하려고 시도한 종합예술학교도 문제이지만 그를 반대하는 타 음악대학들의 행태도 그다지 옳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밥그릇 싸움으로밖에는 비쳐지지 않는다. 이 분야의 배움이 없는 탓인지는 몰라도 왜 우리나라의 예체능 관련 학과들은 예술적 재능보다는 학업을 더 중요시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내게는 항상 자리잡고 있다. 예술 관련 학과들에도 학사, 석사, 박사가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학위들이 이들의 창작 의욕과 문화적 실천 행위들을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쉽게 말해서 우리의 예체능 대학들은 미국의 컨서바토리의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러한 형태를 지향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종합예술학교에서조차도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려고 해야 할까? 지금 좀더 개혁적인 변화가 어렵다면 우리 대학들은 예체능 학과에 대한 여러 가지의 제약 조건들을 풀고 좀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예술가들에 대한 관대함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화 인프라가 아니겠는가?
나와 관련된 사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면서 문예 창작에 재능을 보이거나 창작에 뜻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석박사 과정에 진학하려는 것을 만류해왔다. 그것은 나의 실패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며, 대학원에서 문학 이론을 공부하는 일은 창작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문학적 열정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구속하고 제약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이다.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학위까지 갖추어야 대접을 받는 우리 사회와 우리 대학들의 현실은 대단히 비극적이다. 이러한 맥락 때문에 학부의 예술 관련 학과들의 수업도 자꾸만 틀을 만들고 제약하려고 하고 다른 학과들과의 형평성을 들먹거리며 일률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대학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관련 학과들의 커리큘럼과 운영의 자율성은 인정되어야 하며 오히려 대학과는 분리된 별도의 기관으로 운영되는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문화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들 중에는 문화예술 관련 학과가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전공을 이수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 대학들의 문화예술 관련 학과의 교육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좀더 자유로운 환경이 문화예술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핵심임을 인식하는 일이야말로 대학이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4. 글을 끝맺으며
대학의 한 구성원인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대학에 대한 나의 비판이 바로 자신에 대한 비판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나 우리 대학들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인식 부족은 문화 인프라의 부실을 초래하고 나아가 한국문화예술의 부실화를 가져오고 있다. 최근 문화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증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특정 분야에 한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의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창작 인프라는 부실하고 문화예술의 유통과 향수면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대학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화 인프라를 담당할 좋은 자원과 여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대학들은 사회적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외면하고 있고 오히려 회피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관심은 오로지 생산성에 있고 경제적 효용가치에만 몰두해 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의 중요함을 모르거나 경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란 무엇인가? 한 사회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아닌가? 물론 그 나라의 대학의 수준이 그 나라의 수준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대학들은 사회에 대한 보다 책임 있는 자세와 선도의 임무를 떠맡아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의 문화 인프라의 역할을 담당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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