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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문학의 인프라> 책을 ‘말’하는 사람들/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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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는 사람들
―책 관련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강 경 희
(문학평론가. 숭실대 강사)
1. 책읽기의 괴로움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자신의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시절은 이제 사라졌는가? 인터넷과 영상 산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책읽기란 지루하고 힘겨운 정신적 노동을 요구하는 구시대적 유물로 둔갑한 듯하다. 특히 80년 이후 출생한 세대, 혹은 밀레니엄 세대들은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세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영상문화는 감각적 매혹과 정보의 편리성을 넘어 이미 자신의 존재와 사유 방식을 규정하는 삶의 근본적 틀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종이 위에 빽빽하게 채워진 문자와의 접촉을 본능적으로 기피하려는 경향까지 보인다. 아마도 이는 책읽기 과정 속에서 감내해야 하는 고도의 집중력과 이성적 사고에 대한 불편함을 견디지 못 하거나, 또는 애초에 책이라는 것이 즐거움의 대상일 수 없다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입시위주의 교육이 초래한 결과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읽기에 대한 기피, 나아가 무시는 비단 학생들에게만 보여지는 현상은 아니다. 한국인의 독서량이 월평균 0.5권에 불과하다는 통계지표는 오늘의 우리 삶이 얼마나 책읽기를 혐오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우리 삶의 조건 또한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테크놀러지화된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기술력과 정보력은 무한히 증식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가 생명인 까닭에 스스로 사회로부터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학과 기술문명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간혹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독서체험은 시대의 대세로부터 밀려나고 있는 인상마저 준다. 하지만 과연 책읽기가 시대에 역행하는 고리타분한 행위에 불과할까? 고전 문학에 매료되고 역사책을 탐독하는 것이 관념적 지식만을 쌓는 불필요한 작업일까? 그렇지 않다. 문학과 역사란 인간의 축적된 경험과 사유의 시간을 통해 쌓아올린 거대한 성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도도한 인류 역사에 대한 기록이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고뇌했던 인간 이성이 만들어낸 상상력의 집적물인 것이다. 따라서 인문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책읽기는 편리성과 속도감이 감당해 낼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폭력적이며 편향적인 사고만을 요구하는 이 시대의 함정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는 길이며 미래에 지평을 보다 확장시킬 수 있는 통로인 것이다.
특히 책읽기의 중요성은 첨단화된 사회일수록 오히려 그 비중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식인들은 역설한다. 이는 문자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진입하는 시점에 있어 예술과 문화, 학문의 기본이 되는 풍부한 책읽기의 과정이야말로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따라서 풍부한 독서체험은 첨단 산업사회를 맹목적으로 받아드리는 우리의 고정화된 사고를 갱신할 수 있는 비판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런 현실적 문제점을 인식했는지 각 신문사와 방송사에서는 앞다투어 책과 관련된 기사와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작하고 있다. 특히 최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MBC의 ‘느낌표’의 한 코너인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는 새로운 독서 열풍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 프로에 대한 지지뿐 아니라 비판의 목소리 또한 거세다. 책의 상품화 현상, 도서 선정과 관련된 의문점, 출판 시장의 혼란, 올바른 독서문화에 대한 우려, 출판사가 방송사에 내는 기부금 등 주로 책과 관련된 문화적 인프라에 대한 염려이다. 이는 바야흐로 방송이 책의 질과 수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영역까지 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 열기가 앞으로의 독서 문화에 어떻게 작용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따라서 본고의 의도는 ‘느낌표’뿐 아니라 문학 관련 방송 프로그램의 실태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또한 개선되어야 할 점에 대한 개인적 바램을 담고자 한다. 각 방송사마다 빠지지 않고 제작되고 있는 책 관련 프로그램이 과연 일반 대중의 독서 문화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교양 프로그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전략적으로 책정해 놓은 전파의 낭비인지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매스미디어에 친숙한 많은 사람들은 책과의 만남조차 전파 매체를 통해 전달받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에 대한 올바른 시각 또한 방송 매체가 담당해야 될 몫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보여주고 말하는 책의 함정
책읽기는 습관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꾸준히 책과 친밀해지는 연습을 반복해야 하는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는 우선 ‘문자’와의 소통에 익숙해짐을 전제로 한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말’과는 달리 언어의 직접적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준다. 즉 인간의 ‘말’은 ‘글’이라는 변형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영역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말이 주는 효과와는 달리 글은 읽혀짐으로써 내면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글을 통해 보다 창의적 사고와 상상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프란시스 베이컨은 ‘책읽기는 완전한 사람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안다 하더라도 문제는 단순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과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착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수많은 종류의 서적이 출판되는 상황에서 다수의 독자들은 자신의 전공서적, 또는 베스트셀러 서적을 제외한 여타의 책에 눈길을 돌리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는 독서에 대한 관심을 방해하는 최초의 난관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서점에 쌓여있는 수많은 종류의 책을 모두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최근 많은 독자들은 실상 책과 관련된 도서정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책 관련 프로그램은 수많은 잠재 독자와 실재 독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책 관련 프로그램은 대략 얼마나 될까? 대표적인 것들을 나열해보면 TV 방송의 경우 KBS의 ‘TV 책을 말한다’․MBC의 ‘행복한 책읽기’․‘느낌표’ 등이며, 라디오 방송의 경우 KBS의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SBS의 ‘김영하의 책하고 놀자’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책과 관련된 다수의 프로그램이 있지만, 본고에서는 비교적 점유율이 높다고 알려진 프로그램을 위주로 논의를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KBS TV의 ‘TV 책을 말한다’는 방송 시간대 편성에 있어 비교적 황금시간대를 할애한 점이 돋보인다.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10시 50분이라는 시간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진의 관심이 매우 비중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공영방송이라 자부한 KBS에서 내로라 하는 책 프로그램 하나 없다는 것이 사실 문제 아닌 문제라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포부답게 ‘TV 책을 말한다’는 주로 화제가 되는 책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테마 북’은 제작 취지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읽었거나 현재 읽고 있거나 또는 대중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 가운데 사회변화 흐름에 있어서 중요한 코드를 담고 있는 책”이며 동시에 “책의 내용과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에 따라서 논쟁, 대담, 때로는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의 성격은 하나의 책을 통해 그 책이 불러일으키는 사회․문화 전반의 문제점을 비교적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선정된 책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각계 전문가의 토론, 다양한 영상자료, 저자와의 인터뷰 등을 고루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 프로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 프로를 통해 소개된 책을 대략 살펴보면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은희경의 『마이너리그』,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기형도 시인의 유고작, 무하마드 유누스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틱낫한의 『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정효구의 『시 읽는 기쁨』,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등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예술, 철학, 역사, 신화, 경제, 과학, 환경 등 다양한 쟝르를 통해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문화전반의 문제점을 꼼꼼히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 프로는 각계의 전문가들인 자문위원을 두고 있어서 책 선정의 공정성과 신뢰감을 높이고 있는 프로라 할 수 있다. 또한 책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과 상설화 된 토론의 방식은 책의 의미와 가치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방송을 지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간혹 토론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추상적 질문, 인상 비평적인 답변, 지나친 작가의 배려, 논의가 될 만한 문제점보다는 전체적인 책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 등은 이 프로를 보다 생동감 있는 논쟁의 장으로 이끌고 있지 못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즉 책에 대한 객관적 태도와 평가에 역점을 맞추기보다는 선정된 책이 지니는 좋은 의미와 가치와 같이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뭇 토론의 재미는 하나의 화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마찰과 교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토론자들의 가치관과 철학이 서로 대립, 갈등, 화해, 조화하는 생동감 있는 토론의 방식이야말로 시청자를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TV 책을 말한다’는 최근 방송되고 있는 여타의 책 관련 프로그램에 비해 가장 모범적인 프로라 생각된다.
다음으로는 MBC 방송의 ‘행복한 책읽기’와 ‘느낌표’에 대해 언급해 보자.
먼저 ‘행복한 책읽기’는 KBS와는 달리 방송 시간대에 있어 배려의 손길이 아쉽다. 화요일 밤 12시 55분에 방송되는 이 프로는 심야에 방송되는 까닭에 올빼미족이 아니고는 시청하기에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방송 시간은 그 방송에 대한 방송사측의 의도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다소 과장된 추측일지 모르지만 이 프로는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서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생각에 이 프로를 보는 사람은 정말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이거나, 또는 우연히 늦은 시간에 깨어있어 이 프로를 보게 되는 일부 시청자들로 국한될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내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전달력은 미흡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행복한 책읽기’를 구성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고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을 소개하는 <화제의 책>, 고전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해석하는 <고전문학 산책>, 한 작가의 주제의식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두 작품의 비교, 또는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전혀 다른 시각으로 쓴 두 작품을 비교하는 <책 VS 책>, 명사들이 추천하는 <책과 나>, <신간 소개> 등 책에 관련된 다양한 접근 방식은 자칫 지루하기 쉬운 교양프로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책을 쓴 저자뿐 아니라, 출판 평론가, 문학 평론가 등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책에 대한 여러 가지 입장을 다양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점은 공감이 가는 점이 많다. 즉 책을 쓴 주체인 저자의 입장과 책을 읽은 비평가의 관점, 이 밖에 이 책과 관련된 출판계의 관심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참신한 시도라 여겨진다. 또한 덧붙여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 사회자, 특히 여성 사회자의 해박한 지식과 말솜씨는 진행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환기시킨다.
하지만 ‘행복한 책읽기’ 역시 지나치게 저자에 대한 존중에 치중한 나머지, 가끔은 동석한 패널들의 지나친 찬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원로 작가가 출연한 경우 그 저자의 생각을 조금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인지, 칭찬일색으로 일관하는 것이 영 개운치 않는 뒷맛을 남긴다. 다시 말해 방송 프로의 생명은 그 프로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객관적 정보와 가치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제시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된 작가를 곤경에 몰아넣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려를 넘어선 지나친 우대, 마치 당신이야말로 이 시대 지식인의 표상이며 영원한 모범 작가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가장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MBC의 ‘느낌표’의 한 코너인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이다.(이하 ‘느낌표’로 통일) 이 프로는 여타의 프로그램과는 달리 책을 멀리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풍조를 맹공격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책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적극적으로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프로는 독서인구의 저변확대라는 기치 아래 ‘책읽기 캠페인’뿐 아니라 나아가 ‘도서관 건립’이라는 프로젝트를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기존의 ‘책 관련 프로그램’이 독서체험에 익숙한 독자에 대한 배려를 기초로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책으로부터 소외된 일반 대중을 공략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제작 의도를 유감 없이 성공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느낌표’의 영향력은 일반 대중에게 ‘책읽기 열풍’, ‘느낌표 브랜드’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느낌표’의 파급력은 우리 독서시장의 판도를 바꿀 만큼 위력적이다. 또한 동시에 기존의 우리 독서층의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직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즉 20여분의 짧은 전파의 힘이 책에 관한 어떠한 홍보보다도 엄청난 설득력을 지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성공 배경에는 책을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 관념을 과감히 탈피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내재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느낌표’의 성공은 교양 프로를 오락과 접목시킴으로써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 관련 프로그램이 지녀야 할 지적 요구에 대한 만족도, 다양한 책에 대한 정보력, 선택된 책에 대한 일방적 홍보(이 책은 반드시 좋은 책이다)와 같은 것은 자칫 자유로운 독서에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 또한 지닌다. 실제로 이러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많은 매체를 통해 언급되었다.
그 중 가장 문제시 된 글은 계간 ≪문학동네≫(2002년 가을호)에 게재된 문학 평론가 김화영 교수의 「‘아포스트로프’의 어제와 ‘느낌표’의 오늘」이다. 그는 ‘느낌표’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프랑스 TV의 독서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와 비교하면서 지적하고 있다. 우선, 김 교수는 자신이 재직중인 고려대 도서관의 2002년 대출도서 베스트 목록을 열거하면서 1998년 이후 5년간 “일반적인 식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알려진 소설과 역사서가 차츰 권외로 밀려나다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으며, “대출 베스트 20종 가운데 대부분의 책을 읽지 못 했을 뿐 아니라 들어본 바도, 책 자체를 직접 눈으로 본 적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정작 읽어야 될 책은 읽히지 않고 흥미 위주의 가벼운 책들만이 판치는 오늘의 현상이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것이 “각종 매스미디어가 앞다퉈 시시각각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의 저변에 깔린 경제 일변도의 시각, 나아가서 100만 부를 훨씬 상회하는 몇몇 서적의 판매고는 거의 백지에 가까울 정도로 판단력을 상실한 독자들에게 상업광고와 출판조작의 효과와 위력 그리고 독서의 맹목적 편중현상”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느낌표’ 인기에 영합한 베스트셀러의 점유화에 대한 염려는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느낌표’의 영향으로 인해 그 동안 신간판매가 줄어들었다는 역기능이 제기됐으며, 또 한편에서는 출판사의 기획회의 때 어떻게 하면 ‘느낌표’의 수위에 맞는 책을 출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오갔다고도 한다. 이쯤 되면 출판의 경향과 흐름을 TV 프로가 좌지우지하는 사태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화영 교수가 제기한 문제점은 실상 우리 독서풍토가 안고 있는 기존의 문제점이 ‘느낌표’로 인해 더욱 노골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늘의 문제는 ‘느낌표’의 부상으로 인해 베스트셀러가 조작되고 ‘독서의 맹목적 편중현상’이 양산되었다기보다는 ‘느낌표’의 성공이 곧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인 지적 곤궁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독서문화의 취약함, 우매한 독자로밖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독자 수준의 심각성, 또한 올바른 독서문화를 선도해야 할 지식계층의 엷음과 무력함, 사회 전반에 만연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풍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김화영 교수가 제기한 ‘느낌표’에 대한 비판을 출판 평론가인 표정훈은 ≪문학과 경계≫(2002 겨울호)를 통해 새롭게 문제제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김화영 교수의 ‘백지에 가까울 정도로 판단력을 상실한 독자’라는 표현은 실상 독자를 “사실상 우민(愚民)과 동일시하는 시각”이며 이는 “<책을 읽는 사람>과 <책 이외의 다른 매체를 대하는 사람>의 이분법을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또한 “베르나르 피보 진행의 프랑스 독서 토론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는 어디까지나 ‘독서 토론 프로그램’”이며 “<책을 읽읍시다> 코너를 본격 독서 토론 프로그램과 비교하여 논하면 범주착오(category mistake)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그는 책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와 ‘책을 신성시하는 듯한 태도’가 오히려 ‘유저(user)로서의 독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타당한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의 정서에 친근하게 부합한 ‘느낌표’의 공적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상 ‘느낌표’를 보고 있는 나의 심경은 여러 가지로 착잡할 때가 많다. 아무리 독서에 대한 관심을 오락성과 캠페인 차원으로 이끈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흥미위주로 일관하고 있는 프로의 내용을 보면 거부감이 일 정도이다. 물론 책에 대해 별다른 지식과 정보도 갖지 못 한 일반 대중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기 개그맨을 내세운 오락성 위주의 프로 진행은 부담 없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화면에 얼굴을 내비치기 위한 학생들의 도발적인 발언, 인기 연예인을 흉내내는 과장된 개인기, 책을 마치 짐짝처럼 이리저리 옮기며 경품을 타려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희화화를 넘어 불편함을 주기까지 한다. 물론 이러한 요소가 이 프로에 대한 시청률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느낌표’는 오락성에 대한 비중만큼이나 선정된 책이 지니고 있는 가치와 의미, 그리고 왜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호소력 있는 해명이 필요하리라 본다. 특히 청소년기에 읽은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예민한 감수성과 미흡한 판단력은 저자가 말하는 것이 세상의 전부라 믿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일 예로 내 경험에 의하면 대학 강의 시간에 1학년 학생들에게 책에 관해 조사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수의 학생들이 읽은 책은 느낌표에서 선정한 책이었다. 물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하지만 내가 걱정되었던 문제는 책을 읽은 다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생각이었다. 이는 느낌표에서 선정했던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모랫말 아이들」과 같은 책들이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지만 언제나 가난하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아름답게 미화하고 있는 이 책들을 통해 학생들이 오늘의 현실의 문제보다는 과거에 대한 연민과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당대의 시대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성찰보다는 현실에서 한 걸음 빗겨나간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삶을 추억하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바람직한 현상이냐는 반문이 든다. 이것은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라디오로 방송되는 책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견해이다. 라디오는 TV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송의 파급력이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정확한 통계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현재 장기적으로 방송되고 있는 프로는 KBS의 ‘이주향의 책마을 산책’, SBS 김영하 ‘책하고 놀자’이다.
‘책마을 산책’은 우선 매일 방송된다는 이점 때문에 프로그램의 내용 또한 여타의 책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한 주를 구성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NEWS와 책읽기’, ‘저자와의 만남’, ‘문단이야기’, ‘저자와의 만남’, ‘숨어 있는 책’, ‘저자와의 만남’, ‘책과 음악’, ‘시가 있는 목요일’, ‘책과 영화’, ‘아주 특별한 책읽기’, ‘지구촌 책읽기’, ‘문학기행’, ‘책 권하는 사람들’, ‘수필이 있는 풍경’ 등 다양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 ‘문단이야기’와 같은 경우는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문단의 다양한 사건 사고, 경향 등을 짚어냄으로써 문단이 독자와 동떨어지지 않는 연대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또한 ‘숨어 있는 책’ 은 항상 화제작과 신간 위주에 떠밀려 주목받지 못 했던 좋은 책을 다시금 소개함으로써 일회적으로 사라지고 마는 좋은 작품을 새롭게 음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이 프로는 내용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참신한 기획과 도전적인 형식을 표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한계라 할 수 있다. 또한 진행자인 이주향 교수가 철학교수(수원대)이며 동시에 여러 권의 집필서를 낸 저자이기에 방송사 아나운서에게서 느낄 수 없는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전달받고자 하는 것이 청취자의 요구일 것이다. 하지만 실상 이주향 교수의 개인적인 견해와 관심, 또한 그만이 지니고 있는 철학적 관점과 세계에 대한 주관적 판단 등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물론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이끄는 것이 방송의 특성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진행자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함과 차별화된 특성이 방송을 활력 있는 것으로 만든다고 생각된다.
이에 비하면 SBS의 ‘김영하의 책하고 놀자’는 진행자의 색깔과 성향이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진행자인 김영하는 소설가로써 새로운 문제작들을 다수 출간한 주목받는 작가이다. 그래서인지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 대중적이며 감각적인 멘트, 주관적 견해를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신선하고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라 여겨진다. 이 프로는 애초에 매일 방송되던 것이 지난 2002년 10월 개편을 하면서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주말 프로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개편과 동시에 새롭게 마련한 코너인 <북 트라이앵글>은 하나의 주제나 책을 보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분석을 통해 책 읽는 새로운 재미를 느껴보는 본격적인 ‘북 토크’ 코너이다. 여기에 출현하는 고정 패널은 출판평론가 표정훈, 문학평론가 공임순, 그리고 진행자인 김영하이다. 여기서 다룬 주제들을 살펴보면 ‘산악, 모험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들’, ‘심리와 문학’, ‘천재화가 피카소’, ‘남과 여’, ‘지식인’, ‘2002 올해의 소설’, ‘올해의 외국 도서(생물학 분야)’, ‘올해의 장르문학’ ‘크리스마스를 테마로 한 책’,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인간복제’, ‘쥘 베른의 작품들’, ‘물과 권력’ 등 다양하고 흥미 있는 소재가 주를 이룬다. 문학 예술분야뿐 아니라 철학, 과학, 취미, 실용, 인간학에 이르기까지 한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토론한다는 점이 신선한 발상이다. 특히 보통 한 권의 책에만 한정된 독서토론이 주를 이루었던 기존의 프로그램의 관행에서 벗어나 패널 각자가 주제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주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점은 타 방송에서 느낄 수 없는 특징이다.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내용과 형식에 대한 제작진의 실험적 발상과 모험이 돋보이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즉 패널들 각자의 고유한 성향과 견해 등은 방송 프로그램이 딱딱하고 고정적이라는 일반적 통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북 트라이앵글’은 상당한 수준의 독서 매니아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방송일 수도 있다. 즉 책의 내용을 미처 파악하지 못 한 청취자에게는 상대적인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청취자를 포섭하지 못 하는 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불친절한 방송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다음으로 문제되는 것은 패널들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토론 내용 속에 암암리에 패널들의 정치적 이념과 문화적 견해가 일방적으로 주입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비판력이 미흡한 청취자에겐 책에 대한 또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고정화된 생각을 심어주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TV와 라디오를 중심으로 대표적인 책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간략한 견해를 피력해 보았다.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본질적 한계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시각적이며 청각적인 것에 의존해 있다는 점이다. 방송은 책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영상과 진행자, 패널들의 말에 귀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보여지거나 말해지는 방송은 몸짓, 소리, 억양에 의해 시청자와 청취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행자와 패널들이 내뱉은 말 한마디가 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질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영상에 의존해 있는 TV의 경우에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내용 이해를 위해 자주 사용되고 있는 ‘재연’ 또는 ‘이미지’의 경우 마치 그것이 실제의 책과 동일하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된 문학작품을 다시금 읽었을 때 느꼈던 경험은 무척이나 새롭고 다르다. 이는 문자가 작품의 의미해석과 판단을 보다 자유롭게 만드는 본질적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태도는 가능한 객관적이며 비판적 시각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칭찬하는 책이 실제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책에서 인생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3. 올바른 독서 문화의 정착을 위해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결코 누군가가 주입해 준 결과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책읽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책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책읽기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 미래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책읽기는 불완전한 인간 존재를 보다 완전하게 보완시켜줄 수 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어떠한 책을 읽어야 하는가이며,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작정 아무 책이나 분별 없이 읽기보다는 책과 관계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편일 것이다. 따라서 책과 관련된 신문, 잡지, 방송 매체에 대한 관심을 통해 독서의 영역을 넓히는 것 또한 바람직하다. 일일이 서점에 나가서 자신에게 맞는, 또는 꼭 읽어둘 만한 교양서를 선택할 수 없다면 비교적 공신력 있는 매체에 의존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특히 요즘은 특정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전문가들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영역 이외에는 기본적인 교양서적 조차 읽지 않은 편협한 사람들이 많다. 즉 자신의 관심분야 이외에는 무슨 책이 출간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일반화된 현상이다. 하지만 서로 공유될 수 있는 최소한의 학문적 교양이 사라져 버리면 이 땅은 빈곤한 정신만이 난무하는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그가 쓴 『교양」에서 “위대한 문학은 무미건조한 교육의 소재가 아니라 우리가 그 세계의 경험을 공유하는 동시에 이 경험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마술과 같은 형식이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독서의 경험만큼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
간혹 독서 프로그램의 제작 의도와 목적을 보면 마치 독서로 인해 성공이 보장되거나 부가 획득되거나 유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어느 기업의 총수는,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 아무개 씨는, 보다 낳은 경영 이득을 낳게 하는 비책은 모두 책으로 통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진정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근본적 이유는 우리 자신의 세계를 이해할 줄 아는 지혜가,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사고의 유연성이, 타인과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통로가 책으로 인해 보다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처럼 인간의 삶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책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에게는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시청률과 청취율에 의존하는 경향, 오락성만을 위주로 내용, 이 책만이 모범답안이라는 권위주의적이며 계몽적 태도는 모두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것보다도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 방송에 대한 애정과 관심, 적극적이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간혹 지하철 안에서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면 다시 한번 시선이 멈추게 된다. 핸드폰으로 열심히 문자 메시지를 날리거나 이어폰 밖으로 미어져 나오는 음악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혹은 지하철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를 연신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현란한 감각의 세계로부터 한 걸음 빗겨나 있는 독서가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지니고 있는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소리도 없고 색깔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지 않는 책과의 소통을 통해 그들이 감각을 넘어선 사유의 세계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문자의 세계가 현실보다 더 사실적이며, 영화보다 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한다. 때문에 책을 외면한다는 것은 인생의 소중한 즐거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책읽기의 즐거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뭇 험난한 여정이 놓여있다. 그것은 지루한 문자의 나열 속에 감추어진 행간의 미학을 읽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감각이 아닌 사유로서, 인간의 내밀한 정신과 영혼의 숨결을 응시할 수 있는 인내와 여유의 시간을 통과하려는 지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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