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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신작시/한여름 밤의 꿈 외 1편/이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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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혜진
댓글 0건 조회 4,689회 작성일 03-03-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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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외 1편
이혜진



더위가 갉아먹는 나를 봐요 거대한 태양의 도살장, 나는 누우런 암내를 풍기며 썩어가요 검은 천을 뒤집어쓴 망나니가 밤마다 먹음직스럽게 머리털을 뽑아놔요 여분의 머리털은 싱싱하도록 곰팡이를 심어놔요 헐벗은 몸뚱이 위로 거세된 정신이 덜렁거려요 천년 전 나의 조상 프로메테우스가 이식해준 간(肝)은 망둥이처럼 헐떡거려요 저 빌어먹을 망둥이를 내 손으로 뿌리째 뽑아내고 싶어요 그럴수록 밑에 깔린 미친년의 불두덩만 점점 달아올라요 검은 입을 벌린 후라이팬 위로 태양의 혓바닥이 몸뚱이를 뒤집어요 앞뒤로 꼿꼿한 성기가 녹아버린 나는 이제 바삭거려요 아아아, 마침내 한입에 쏙 들어간 나는 뜨겁게 소화(消化)되고 있어요





틀니가 자라는 폐가


서른 개의 울타리가 삐걱거리는 폐가 안쪽에, 그만 신(神)이 들어섰네 왼쪽 잇몸 끄트머리부터 죽은 대나무가 주루룩 종유석처럼 자라났네 그때부터 폐가에서는 구멍 뚫린 창호지 사이로 설익거나 부패한 영혼들이 새어나왔네 바람이 불 때마다 박제된 누런 혼(魂)들이 펄럭거렸네 아무도 없는 폐가에서는 가끔 염불소리가 들리고 향 피우는 냄새가 났네 밤마다 서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네 약 한첩 못쓰고 죽은 동자신이란 말도 돌고 겁탈당해 죽은 열아홉 처녀신이란 말도 돌았네 돌면 돌수록 폐가는 밑을 벌린 미궁이 되어갔네 잠잠하다싶으면 폐가는 나 보라는 듯 곡을 했네 날카로운 곡소리는 귓구멍을 쑤셔댔네 숨구멍을 쑤셔댔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마침내 굿이 열렸네 이젠 됐다며, 깔깔거리며 웃는 얼굴들의 입구멍에서 슬금슬금 수상한 바람이 기어나왔네 작두를 타는 늙은 무녀에게 神이 들리자 갑자기 천장 네 쪽에서 철커덩, 쇠틀이 씌워졌네 쇠틀에 갇힌 神, 오늘도 오물오물 魂을 삼키고 있네 세 살배기 손자의 귀를 잡고 이 오래된 얘기를 들려주고 있네



이혜진
·1983년 출생
·2002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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