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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빈 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건다 외 1편/권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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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3,163회 작성일 04-01-0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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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천학
 빈 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건다
빈 집, 빈 방, 도시의 빈 가슴에
여보세요, 여보세요……
정좌한 어둠이 진저리를 친다
화들짝 놀라 깬 침묵이 수화기를 노려본다
거미의 파리한 손가락이 뻗어나와
벽과 벽 사이
공허의 모르쓰 부호를 타전해온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
뼈마디를 일으켜 세운 어둠이
싸늘한 바람을 몰고 온다
구석진 한 귀퉁이에 겨우 발붙이고 있는
체온을 딸깍 꺼버린다.
가느다란 신경줄 하나
수화기 옆에 오똑 웅크리고 앉아 오로지
듣고있다, 침묵의 제 발자국 소리를
공허의 빈 들판에서 우롱, 우롱, 우롱······
소용돌이치는 죽음 같은 절망
절망 같은 죽음을 쓸고 오는
허무의 바람 소리를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는 적막의 물살에 부딪쳐
미끄러지는 벨 소리
빈 집, 빈 방, 빈 도시의 가슴에서 헛되이
메아리진다





어둠이 따뜻하다


스크럼을 짠 콘크리트 조형물들이
햇빛을 차단시킨 검은 도시
시체를 거느린 나는
그 관 그늘에 들고 있다

바리게이트에 걸려 선지피를 뿜어 올리는
하루분의 자유를 반납하며
억눌린 틈서리를 파고드는
싱싱한 빛 한 줄기
스러지고 있다

충혈된 저녁놀이 유리창을 깨부수며
일제히 공격해 들어온다
허약해진 시력을 붙들고 있던 시선이 굴절된다
안경알이 깨어져나간다
파편들이 무수히 날아올라
온몸에 상처를 내며 박힌다
담쟁이덩굴 휘덮인 푸른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젊은 날의 작업복이
백기로 내걸린다

오! 아름다워라,
상채기마다 찔금거리는 눈물의 행복
향기로운 절망에 코를 박으면
어둠도 따뜻하다



權千鶴
․일본 출생, 김제 성장
․1985년 ≪현대문학≫에 <지게> <지게꾼의 노을>을 발표하며 본격 활동
․시집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
<가이아부인은 와병중> <고독바이러스> 외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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