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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부음을 받다 외 1편/이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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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3,232회 작성일 04-01-0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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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교
부음을 받다


나무들이 뻑뻑해진 눈망울을 거두는 저녁
문상을 깜박 잊고 있었네 갑자기 나무의 어두운
그림자가 잎들이 잠잠해진 틈을 타
부음을 전해 왔네

나무의 여린 속잎들도 귀를 열고 있었는가
살아서 지나온 길만큼, 캄캄한 죽음을 알까
화신(花信)처럼 전해진 부음이 사실은 꽃잎 한번
흩날리는 틈새, 잔가지들의 손사래 마냥 가깝네
저녁이 깊어 벽 속까지 조용해질 때
내 삶은 얼마나 소란스런 도랑물인지
한결 가벼워진 꽃잎의 무게가 알리네

마음도 해뜨고 저무는 걸까
몸을 어둠에 맡긴 그의 얼굴 이젠 떠오르지 않네
문상 가는 길, 꽃잎은 모두 화살표가 되네

화살표가 가리키는 저 쪽, 영안실 문지방 넘어설 때
나무 그림자가 나의 부음을 전하네






꽃무늬를 따라가다가


붉은 날짜들이 숲마다 이름이 적혀있다
울컥 떠오르다 지워지는 낡은 잎새들은 오래
내 안을 기웃거리던 일기장이다
숲의 주연과 조연을 생각한다
바람결이 갑자기 휘어진다, 동남풍이다
꽃술을 슬적 건드리니 먹구름이 밀려온다
낯선 저 기류는 저무는 내 마음을 닮았다
푸른 번개의 씨앗 몇 점 묻어있는
모든 선홍빛 뒤엔 어두운 과거가 숨어있다
별의 운행도 길을 바꾸거나 휠 때가 있다
내가 그랬다, 꽃무늬의 배후를 밟아보면
지나온 길들은 모두 뒤틀려있다
날씨 따라 추억도 모양을 바꾸는 걸까
꽃무늬 속엔 일기예보가 들어있다


이경교
․1958년 충남 서산 출생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응 평전』 『꽃이 피는 이유』 『달의 뼈』
․저서 『한국현대시정신사』 『북한문학강의』
․수필집 『향기로운 걸림』 『즐거운 식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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