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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공단의 봄 외 1편/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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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장
댓글 0건 조회 2,592회 작성일 04-01-0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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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공단의 봄


양철 조각 같은 새떼가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지만
아직 공단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자가 모여들고 조선족이 모여들어
철야로 몸이 너덜거리도록 기계를 돌려도
완제품의 봄 하나 만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밀물이 오면 봄기운도 온다고
항만의 모든 배들이 하역 인부들이 물때를 기다렸지만
밀물이 오면 오는 것은
가슴 언저리에서 부서지는 거친 파도였다
폐선의 몸체를 삐걱거리게 하는 바람이었다

저무는 하늘에 가래 같은 별이 찾아오고 있었다
어느 별에서나 이산화황 냄새 풍겨나고
봄은 어느 쪽에서 오느냐고 물어도
누구 하나 제대로 방향을 가리키지 못했다
누구는 월급봉투가 두툼해지면 그때가 봄이라고 하고
누구는 수당이 올라야 봄이라고 했지만
어디나 해고의 불안이 웅크려 있을 뿐 기다리는 날은 오지 않았다

숭어떼 찾아들면 봄도 온다고 했지만
숭어떼 돌아와도 돌아오지 않던 봄
카드 빚에 카드 빚이 늘어가는 나날
잡힌 숭어에서는 기름 냄새나 나고
어제 누군가 또 프레스에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지만
한번 잘린 꿈의 신경은 결코 이어지지 않았다

양철 조각 같은 새떼나 자욱히 시화호 하늘로 날아올라 봄을 찾고 있었다
시위하고 있었다




천마가 날아간 하늘


비만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새털구름 형성층으로 가을이오면 그리움의 갈퀴 나부끼며 천마가 날아간 하늘을 찾아갑니다 수없이 방전되어간 꿈을 충전해 찾아갑니다 천마가 날아간 하늘로는 계절이 어떤 자세로 오는지 슬픔은 몇시 방향에서 와 어디로 떠나가는지 전설은 어느 별자리 아래서 익어가는지 신라의 사랑은 어떻게 깊어갔는지 비만의 정신이지만 첨성대에 올라 눈 시리도록 관측하고싶어 갑니다

가다보면 이 도시를 몰아서 가고 싶기도 하고 천마가 날아간 하늘 아래는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천년의 유물에 대해 메모하며 때로는 천년의 이야기 속으로 뒷걸음쳐 가기도 할 겁니다 천년의 모퉁이에 앉아 토우를 빚기도 하고 어쩌다 어른들이 빚은 성애 장면에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할 겁니다 어느 소녀는 얼굴 붉어져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도 할 겁니다 천마가 날아간 하늘 아래에 에밀레종 소리 울려 퍼지면 횃대에 올라 새벽을 기다릴 천년의 꿈 계림에서 피어날 퉁소 소리 비천하는 여인의 옷자락이 이마를 스쳐가기도 할 겁니다

이렇게 무료한 도시의 나날 시민이 방목한 어둠이 사납게 몰려다니는 날은 천마가 날아간 하늘을 찾아갑니다 불야성을 이루는 거센 불빛 아래서 우리가 호롱불처럼 켜고자 했던 희망이 사위어 갔지만 끝없이 방전되어간 꿈을 충전시켜 천마가 날아간 하늘을 찾아갑니다 가다보면 하늘과 사람을 연결시켜 준다는 자작나무가 물결치기도 하겠지요 물결에 달빛이 실려오면 달빛에 들키는 아직은 부끄러운 우리 사랑 아직은 서툰 그리움의 문장 이렇게 우울증이 번지는 도시의 나날은 천마가 날아간 하늘을 찾아갑니다


김왕노
․1957년 포항 출생
․19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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