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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신작시/쑥부쟁이 외 1편/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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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림
쑥부쟁이
발바닥으로 밟히면
속으로 울고 겉으로는 웃는
향기도 안으로만 풍기는
대동아전쟁 때, 매를 맞으면
중국인들은 일부러 씨익! 웃었다.
그래서 쿨리라 불렸다.
서리맞아야
더욱 붉어지고 약도 되는 쑥부쟁이, 그가
내 앞에서 별 이유도 없이
씨익! 곧잘 웃으면
잠자고 있던 커다랗게 자란 쿨리 한 마리
내 몸 안에서 쿨, 쿨,거리며
이리저리 들이받는다.
*쿨리(coolie) : 돼지라는 뜻. 중노동을 하는 중국의 하층 노동자
고드름보다도 더 뾰족한
피붙이들 마음,
고드름보다도 더 뾰족뾰족하다.
더 이상 찔려 죽지 않으려고
스스로 잘려나간 발가락 하나,
엄동설한 이 도시
남모르는 어느 귀퉁이에라도 붙어보려다가
낮달 아래 그만
파랗게 질려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호흡, 말도
거지반 잃어버리고
바퀴로 혼자 숨어사는 작은누나.
청진동 해장국집.
선지처럼
혼에 어혈이 든 나의 작은누나.
아흔 넘은 노모에게 전화조차 못 걸어보는
사흘들이 책 사러
근처 교보에 들르면서도
믿음․소망․사랑을 더하여 달라고
날마다 기도하면서도
전화 한 번 못해 보고 있다.
청진동 사거리에서
입술이 파랗게 얼어버린 하늘 향해
뼈아픈 기도만 하고 있을 뿐
서 림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199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이서국으로 들어가다』 『세상의 가시를 더듬다』 등
․시론집 『말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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