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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신작시/손현숙/'몸 속의 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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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손현숙
1959년 서울 출생. 1999년 8월 현대시학 등단. 2001년 토지문학제 평사리 문학상 수상. 2003년 문예진흥 기금 수혜. 현대시학 '시인의 안과 밖' 연재중. 공간시 낭독회 상임시인.
몸 속의 몸
내 집 문간을 넘으시는 어머니
문턱을 넘자마자
젖가슴을 헤치신다.
말라 찌글찌글해진 젖꼭지를
내 입에 물리신다.
발바닥부터 기를 쓰고 젖을
퍼 올리신다.
엄마, 젖이 잘 나오질 않아
반기는 기색도 없이
왜 이렇게 날 약하게 낳았어?
튼튼한 심장 하나 달아주질 못했지?
날 선 칼끝이 살 속으로 묻히면 묻힐수록
아가, 아가, 내 뒷 잔 등을 쓸어안는 어머니,
자꾸만 자꾸만 작아지신다.
엄마, 나는 엄마의 엄마가 아니야,
물불은 미역처럼 엉켜진 몸을 잡아떼며
잘근잘근 이빨로 젖꼭지를 물어뜯어도
이제는 까맣게 부르튼 발톱까지 내 놓으시는
어머니,
일찍이 몸 속에 내 몸이었던.
예언자
쏜살 같이 내리 꽂히는 햇살을 피해
삐딱삐딱 걷고 있는 나를
그가 불러 세운다.
손바닥만한 의자에 겨우 엉덩이 한 쪽 붙이고
제법 근엄한 척 나보다 더 심각하게
나의 전생과 미래를
A4용지 한 장 위에 달랑 올려놓는다.
야릇한 색조에 살바로르달리 기법으로
그려진 내 망각과 기억의 모든 것 앞에
인생이 뭐 저렇게 복잡해서야,
삐죽 입술을 내 밀었지만
붓끝이 무겁게 지나간 내 어느 구절
빈 몸에 맨발이었던 벼랑 끝 내가 서있고.
햇빛 부서져라 박수 소리 들리는
황금 베일 속 상징처럼 내가 보이면.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아는 나의 불운을
입 속에 단내 나도록 술술 쏟아 놓으며.
신에게 봉헌하듯, 작두 위에서 춤을 추듯
혼자 울고 혼자 웃고.
그는 나를 단단히 틀어쥐고
죽였다 살렸다 망령처럼 끌고 다니며.
됐지 뭐,
나는 내 하루치 일당을 다 털리고
그는 그의 하루치 밥그릇을 잘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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