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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신작시/오후 산책 외 1편/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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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산책 외 1편
정영
도연명 전집 위에
점심 먹고 오는 길에 주워 온
은행잎 단풍잎 플라타너스 올려놓았더니
금세 도연명 전집 없어졌다
도연명 씨 산책 가셨다
염소의 심야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염소
사람들은 늦은 밤 네온사인처럼 지나간다
휘청거리다가 침을 탁 뱉는다
여자들이 힐을 벗어 던진다 국자도 집어 던진다
뱃속에서 아이들을 꺼내 던진다
수십 개의 담배들이 허공에서 타들다가 저 혼자 점멸하고
염소는 고개를 목안으로 집어넣는다
새벽 두 시, 헤드라이트가 잠시 소음을 꺼뜨려보지만
그들의 내장은 밤새 그르렁거린다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잠시 후 다리를 뻗대며 걸어온 개들이
염소의 창문을 부셔버릴 듯이 두드려댈 것이다
아파트 경비 모자가
염소에게 걸어와 교대시간을 알린다
모자의 어깨를 툭툭 치고
느릿느릿 어둠을 빠져나가는
염소의 심장이 아스팔트에 툭 떨어진다
심장이 검다
염소가 간다
정영
·1975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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