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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신작시/공황발작 외 1편/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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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발작 외 1편
박진성
발작은 지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용돌이치는 회오리바람 흉부로
숨길 수 없는 혈통을 실어 나른다
혈관들이 부풀어오르고
길길이 날뛰는 벌레들의 수런거림,
아버지벌레가 어머니벌레를 잡아먹는다
네 심장을 긁어주마
혈관이 터져서 색색의 꽃들을 뿜어내면
피톨들은 꽃씨를 타고 뇌세포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정원, 이대로 갇힐 순 없어요
동맥혈관에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곧바로 바람의 내부에 갇힌다
그대들의 호흡이 바람을 만들었다
지문에 묻어 있는 흔적을 잘라 내버리고 싶어
뭉툭한 내 손으로 심장 도려내어
숨을 쉬게 하고 싶어 아버지,
어머닌 그만 놓아주시고
내 심장을 밖으로 내던져주세요
정원의 벌레들과 언제 그렇게 친해지셨을까
감자, 수박, 토마토, 옥수수 알갱이……
언제부터 내 심장들을 쌓아놓으셨을까
보세요, 공중으로 떠오르는 나의 몸을,
아 아버지, 아 알프라졸람은 이제 그만
식탁 위의 컵라면
라면국물이 며칠째 고여 있다 먹다 남긴 면발은 형체를 알 수 없이 부패했다 어떤 연대기도 없이 라면국물은 색깔 바꿔 가는가 국물의 표면은 편년체다 검은 연대로 둘러싸인 주황색 부분은 병마용 발굴된 고대(古代) 섬서성의 황토흙빛,
중세가 암흑시대라는 해석은 부패한 면발을 옹호하기 위한 수작이다 검은 색을 통과해야만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다 나는 얼마나 열병 같은 사랑을 부정해왔는가 밤의 한강다리 건너면서 눈 질끈 감고 흔들렸는가 마침내
마침내 푸른색의 곰팡이여 완벽하게 썩은 채로 스티로폴 그릇 속에서 푸르게 타오르고 있는 곰팡이여 썩을 수 있음의 지복(至福)을 누리고 있는, 돌아갈 수도 없는 참혹한 내 사랑이리니 네 빛깔이 여기까지 왔구나
박진성
·1978년 충남 연기 출생
·2001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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