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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신작소설/딸꾹질/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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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표명희
댓글 0건 조회 3,860회 작성일 03-03-2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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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질
표명희




월드컵이 시작되던 날, 나는 여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케이크 모양의 휘황찬란한 불꽃이 밤하늘로 솟아올랐고 환상적인 축하공연이 펼쳐졌다. 물론 월드컵 경기장에서였다. 전 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엄청나게 화려한 생일파티, 아니 개막식이었다. 멋진 개막식에 이어 프랑스와 세네갈의 첫 축구경기가 있었다. 지난번(그러니까 내가 세 살 때 있었던 월드컵) 우승국가였던 프랑스는 월드컵에 처음 나온 아프리카의 세네갈에 무참하게 졌다.
"정말 이변이야, 이변."
아빠가 해설자 아저씨의 말을 받아 되풀이했다.
"아빠, 이변이 뭐야?"
내가 물었다.
"있을 수 없는,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
아빠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여겼는지 다시 덧붙였다.
"음, 가령…… 우리 지완이가 엄마 아빠한테 반항하는 경우, 같은 거랄까."
아빠는 내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나는 아빠의 속내를 금방 알아챘다. 설마 착한 아들 공지완한테서야 그런 '이변'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기대를, 한 살 더 먹은 내게 거듭 다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월드컵 시작과 함께 그 '이변'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축구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이웃, 온 세상으로 번져갔다. 나?…… 물론 나 공지완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내가 세상과 담쌓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아빠의 기대는 그냥 기대일 뿐이다.
나이는 역시 거저 먹는 게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엄마 뱃속에서의 태교부터 시작해 몬테소리, 프뢰벨을 거치며 샛별 유치원 졸업과 지금의 성실 초등학교 입학까지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을 누구보다 잘 소화해온 나는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온 그 모든 가르침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전자오락실의 두더지 머리통처럼 정신 없이 튀어 오르는 '이변' 때문에 말이다. 그런 걸 뭐라 하나,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배워온 것들이 바나나 껍질처럼 내팽개쳐지고 모든 생각이 뒤죽박죽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걸.
"그거? 그런 걸 '정체성의 위기'라 하는 거야."
형이 해결사처럼 불쑥 한마디 던진다.
'정체성의 위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형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3학년인 형은 나보다 등교 회수가 훨씬 많긴 하지만 '총명함과 등교 회수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형은 엄마 뱃속에서의 태교 음악도 젖먹이 시절의 프뢰벨 장난감이나 몬테소리 그림책도 전혀 기억을 못한다. 나는 원래 형하고 세살 터울이지만 일년 일찍 입학했기 때문에 두 학년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사실도 나의 총명함을 잘 뒷받침해 주는 일이다.
"근데 형아, 정체성이 뭔데?"
형은 우물쭈물하더니 "왜 갑자기 배가 고프지?" 하며 냉장고 쪽으로 가버린다. 형은 몸집이 크고 힘이 더 세다는 것만 빼면 나보다 나은 구석이라곤 별로 없다. '정체성' 어쩌고 하는 말도 엄마 아빠나 선생님한테서 대충 주워들은 말일 것이다.
'정체성의 위기……?' 아무리 되뇌어 봐도 지금의 나같은 경우에 꼭 들어맞는 말 같지는 않다. 오히려 요즘 인기 끌고 있는 '위기의 남자'라는 드라마 제목이 훨씬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으이그, 네가 남자냐? 일곱 살밖에 안된 게? 그냥 정직하게 '위기의 꼬마'라고 해라. 아니면 '위기의 어린 놈'이라고 하든지."
한입 가득 바나나를 우물거리던 형은 바나나 파편과 함께 핀잔을 잔뜩 쏟아놓는다.
어쨌거나 나는 요즘 월드컵 때문에 '위기의 꼬마'가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부실 은행'처럼 하루아침에 '퇴출'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은행원이었던 옆집 철영이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잃은 것처럼 말이다. 그깟 축구공 하나 때문에 우리 가족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다섯 살 때 형과 같이 놀다가 크리스털 꽃병을 깨뜨린 축구공하고는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엄마의 보물을 깨뜨린 벌로 그날 형과 나는 삼십분 동안이나 팔을 들고 서있어야 했는데, 그 후유증으로 나는 한동안 잠만 들면 강시가 되어 헤매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런 악몽이 요즘 우리집을 넘어 온 동네, 온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빨간 티를 입은 강시들이다.
평소 얼굴 보기 힘들던 '하숙생' 아빠는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다음부터는 집에 있는 시간이 곱절로 늘어났다. 요즘 아빠는 퇴근 후 곧바로 집에 들어온다. 아빠는 들어서자마자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부터 켠다. 세균이 득시글거리는 손도 씻지 않고 넥타이도 끄르지 않은 채. 집에 오면 샤워하고 옷부터 갈아입던 아빠가 하루 아침에 나쁜 버릇이 든 것이다. 아빠는 채널을 한곳에 고정시키고 난 다음 양복 저고리를 벗어 소파 옆에 걸쳐놓는다. "아니, 양복을 여기다 벗어놓으면 어떡해요?" 엄마의 잔소리도 처음 한두 번뿐이었다. 잔소리로 가족의 바른 생활습관을 이끌던 엄마도 요즘은 아빠 옆에 바싹 붙어 앉아서 축구 경기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아빠는 손도 씻지 않은 채 깎아놓은 과일을 덥석 덥석 집어먹기도 한다. 아빠가 병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나의 철저한 위생관념은 "괜찮아" 한마디로 금세 무시되고, 아빠는 다시 텔레비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엄마 아빠가 우리에게 늘 강조하던, 텔레비전과의 3미터 간격 유지도 온데 간데 없다. 아빠는 거실바닥에 뒹굴며 자정이 넘도록 같은 경기를 반복해서 보기도 한다. 바늘이 가면 실이 따라간다는 속담처럼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빠 옆에서 나란히 사이좋게 뒹군다. 그래서 남들이 엄마 아빠를 '금실' 좋은 부부라 하는 건가…….
엄마 아빠가 처음부터 그렇게 월드컵에 관심이 있었다면 나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D-100, D-50, D-30…… 으로 월드컵까지 남은 날짜를 헤아려가는 것부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쳇, 온 국민이 월드컵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아나 보지."
그럴 때면 아빠는 채널을 딴 데로 돌려버렸다.
"정치 문화적으로는 도저히 업그레이드가 안될 것 같으니 스포츠로 승부하려는 모양이죠 뭐."
엄마도 아빠 편을 들었다.
"하여튼 어느 정권이든 스포츠의 위업 하나만은 확실히 달성하는구만. 88올림픽으로 난리치더니 이제 또 월드컵이라니……."
다른 채널에서도 스포츠 뉴스를 하자 아빠는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월드컵이 시작되고 응원단의 붉은 물결이 시청이나 광화문을 가득 메울 때도 엄마 아빠의 불평, 아니 비판(형과 내가 투덜거리는 것은 '불평'이고 엄마 아빠가 하는 투덜거림은 '비판'인 거라고 언젠가 아빠가 구분해준 적 있다)은 여전했다.
"저런 열의의 반의반만이라도 민주화운동에 기울였다면 유신이니, 5공 같은 게 있을 수 있었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공 하나에는 저렇게 단결이 잘되면서도 정작 정의로운 일 앞에서는 이해 관계에 따라 사람들의 태도가 금방 엇갈리거든."
하지만 엄마 아빠의 이런 '비판적' 태도는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우리가 월드컵 첫승을 이루어내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와, 저 응원 인파 좀 봐요. 정말 붉은 물결 일색이네요."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이번 기회에 빨간색 콤플렉스는 말끔히 가시겠는걸."
"87년 6월 항쟁 때보다 훨씬 많아요. 그때도 시청 앞에 모인 인파가 사상 최대라 했는데……, 이건 그 몇 배네요."
"월드컵의 힘이 대단하긴 하군."
그 날부터 아빠는 일찍 집에 오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월드컵 기간 동안 야근도 없앤 모양이었다. '고객 만족도 100%'를 강조하는 백화점 세일기간 때처럼 말이다.
"여보, 이번 기회에 텔레비전 바꾸는 게 어때요."
축구를 보던 엄마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한마디했다. 멀쩡한 텔레비전을 36인치 대형 텔레비전으로 바꾸겠다는 말이었다. 시집올 때 사온 냉장고를 아직도 쓰며 환경 지킴이 주부임을 당당하게 내세워 왔던 엄마가 말이다.
"월드컵 기념 특별 할인이래요. 그것도 30프로나."
엄마는 알뜰 주부의 명예를 끝까지 물고늘어졌다.
"그래, 이 텔레비전은 애들 방에 놓고 교육 방송용으로 쓰면 되지 뭐."
아빠도 엄마 명예의 지킴이 역할을 선뜻 맡고 나섰다.
그로부터 이틀만에 우리 집엔 새 텔레비전이 거실에 떡 하니 들어앉았다. 그 때문에 거실 벽에 붙어 있던 나의 '신비한 바다' 그림은 베란다로 치워졌다.
"진작 살 걸 그랬어."
엄마 아빠는 새 텔레비전에 대한 예의라도 갖추듯 더 열심히 축구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는 정말 운동권 학생 출신이 맞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게 얼마 만이에요,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의 관심사로 뭉치는 게."
엄마의 목소리에서 감격이 묻어났다. 새 텔레비전 때문인지 텔레비전 속의 사람들 때문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6.10 항쟁 때, 시청 앞 데모대가 10만이라던가, 그랬지."
"맞아요, 그때가 사상 최고라고 했죠……. 그때, 당신은 어디 있었어요?"
"나……? 나야 그때 학교 시위대에 끼여 있었지."
아빠는 우리를 한번 둘러보면서 말했다.
"저두요."
"그걸로 결국 6.29선언을 이끌어냈던 거 아냐."
"맞아요, 1987년이었죠. 올림픽을 앞둔……."
우리 엄마 아빠는 386세대다. 정확히 그 숫자가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운데 숫자인 8은 내가 세상에 나기 훨씬 전인 80년대, 그러니까 20세기였던 그 까마득한 시절 운동권 대학생이었던 것하고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386이라는 말만 나오면 엄마 아빠는 마치 숫자놀이라도 하듯 온갖 수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4.19, 5.16, 5.18, 10.26, 4.13, 6.29, 5공, 6공까지 버스 번호 같은 헛갈리는 숫자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엄마 아빠가 예전에 살았던 세상은 어느 수학자의 말대로 세상이 온통 수로 이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 나 빨간 티 사줘."
학교에서 돌아온 형이 어느 날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빨간 티는 왜?"
"요즘 내 친구들 다 빨간 티 입고 다녀. 내가 끼면 꼭 이빨 빠진 것 같단 말야."
"그래……? 그럼 우리도 이번 기회에 빨간 티 한 벌씩 장만하지 뭐. 인터넷에서 싸게 팔던데……."
"와아, 신난다! 엄마, 빨리 신청해!"
"엄마, 저는 빨간 티 안 입을 거니까, 형더러 제거 입으라고 해요."
내가 형의 호들갑에 찬물을 끼얹으며 한마디했다.
"왜? 지완이 너도 입지 그러니?"
"남들 다 입으니까, 별로 안 내켜요."
"난, 지완이 거 안 입어. 그 티는 붉은 색이 아니라, 검붉은 색이야. 그거 입으면 붉은 악마가 아니라 검붉은 악마가 된다구. 유사품, 변종 붉은 악마는 싫어!"
형은 어림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형은 경고라도 하듯 한마디 쏘아붙였다.
"지완이 너…… 그러다 친구들한테 왕따 당한다!"
"치, 요샌 내가 걔들 왕따시키고 있다구. 환경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데……."
나는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녀석, 꼭 노인네 같은 소릴 하고 있네."
입을 삐죽 하면서 엄마는 삼만 원이 넘어야 배송료를 물지 않는다며 결국 내것까지 모두 네 장의 빨간 티를 주문했다. 엄마는 늘 우리에게 뭐든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 놓고는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
원래 빨간색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긴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색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모두가 똑같은 색의 옷을 입는다는 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도무지 개성이니 상상력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게 바로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맨날 방송에서 떠들어대면서 말이다.
"아니, 성완이 너 그러고 학교 가니?"
어느 날, 형이 책가방 대신 축구공 하나만 달랑 들고 학교 간다고 나서자 엄마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오늘은 운동장 수업만 해, 엄마. 축구 경기도 하고 응원도 하구. 월드컵을 기념하는 소운동회 같은 거야."
형이 차리고 나선 차림새도 볼만했다. 형은 'Be the Reds!'(아빠 말로는 '빨갱이가 되자!'라는 뜻이라고 함)라고 쓰인 빨간 티를 입었고 얼굴 양쪽 뺨에는 태극기 판박이가 하나씩 박혀 있었다. 게다가 빨간 스카프로 머리수건까지 둘렀다. 응원단장 같은 요란한 차림새를 한 형은 학교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말 대신 "대∼한민국" 하면서 집을 나섰다.
이렇게 옷 색깔까지 빨갛게 하나로 맞춰 입은 우리 가족들을 보면 꼭 악마의 불길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괜히 예전의 엄마 아빠처럼 자꾸 '비판적'으로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악마의 불길에서 반드시 건져내야 할 것 같은 책임감까지 드는 것이다.
나는 축구라는 게 정말 괜찮은 스포츠인지도 의심스럽다.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속임수 같은 것도 그렇지만, 우선 서로 공을 차지하려고 악다구니쓰는 경기 모습부터맘에 안 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죽기살기로 남의 공을 빼앗으려 안간힘 쓰는 거나, 이리저리 발 사이로 공을 빼돌리며 상대방에게 절대로 양보 안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꼭 형과 내가 먹을 걸 두고 다투는 것 같다. "먹을 걸 가지고 그렇게 욕심부릴 거야?!"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리를 심하게 꾸짖는다. 우리 엄마가 가장 혐오하는 게, 먹는 걸 욕심내는 '식탐'이다. 언젠가 엄마가 문화센터에 가던 날이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번 문화센터 강좌를 들으러 가는데 그 날이 장봐오는 날이다. 언제나처럼 그 날도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형과 나는 둘 다 허기에 지쳐 엄마 오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베란다를 뒤지다, 검은 비닐 봉지에서 버려진 듯 남은 바나나 한 개를 발견했다. 시커먼 꼭지에 달랑 하나 매달려 있는 바나나였지만 눈물이 날만큼 반가웠다. 나는 베란다 한쪽 구석에 서서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기고는 익을 대로 익은 바나나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거 어디서 났어?"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형이 다람쥐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저기, 구석에서……. 이게 마지막이야." 나는 혀에 살살 달라붙는 바나나의 맛을 느끼면서 경계의 눈빛을 바짝 세웠다. 나눠 먹을까 하는 의리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의 억센 손은 내 바나나를 나꿔채 가버렸다. 순간, 씹던 바나나가 목에 턱 걸렸다. "으앙, 내 거야, 내 거란 말야. 내놔!" 나는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형의 뒤를 쫓았다. 형은 나를 따돌리며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식탁 뒤로 방으로 거실로 내달았다. "내 바나나 내놔!" 나는 형을 쫓다가 식탁에 무릎을 부딪치고, 블록을 밟아 넘어지기까지 했다. 형은 나를 요리조리 피해 베란다까지 도망가서는 바나나를 입에 쏙 집어넣어 버렸다. 바나나는 형의 입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절망과 원망의 뜨거운 울음이 울컥 솟았다. "으앙, 내 바나나!" 이마가 찢긴 것도 모른 채 나는 억울하고도 원망스런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이게 웬 난장판이야!" 현관으로 들어서던 엄마는 엉망이 된 거실 한복판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고는 걱정과 짜증이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형이, 내 바나나를 뺏아가서 다 먹어버렸어!" 나는 기다렸다는 듯 형의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일러바쳤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어떡해!" 엄마가 노려보자 형은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투로 되받아쳤다. 엄마는 내 이마의 상처를 보고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나는 울먹이며 부딪친 무릎도 보여 주었다. 엄마는 우선 생채기가 난 이마에 약을 발라주고 나를 달랬다. 그런 다음 형을 꿇어앉혀 놓고 한참이나 혼쭐을 냈다. "남의 것을 빼앗다니…… 게다가 동생처럼 약하고 힘없는 자의 것을 빼앗는 게 얼마나 비겁하고 나쁜 일인지 알기나 해?!" 꾸지람 도중에도 형은 울먹이며 "그럼 배가 고파죽겠는데 어떡해!"만 되풀이했다. 나는 형이 더 혼나도록 계속해서 울먹였다. 형을 한참 야단치고 난 엄마는 "조용해! 지완이 너도 잘한 거 하나도 없어!"라며 내게도 따끔하게 쏘아붙였다. 그런 다음 엄마는 우리 모두에게 끔찍한 벌을 내렸다. "너희들 둘다, 오늘 저녁 굶어!"
굶주린 데다 너무 많이 운 탓인지 나는 저녁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형도 꽤나 괴로운 모양이었다. 우리는 동정을 바라는 눈빛으로 늦은 저녁을 드는 엄마 아빠의 식탁을 수시로 흘끔거렸지만, 밥을 다 먹은 엄마 아빠는 매정하게도 식탁을 깨끗이 치워 버렸다. 밤이 깊어도 잠은 안 오고 배만 계속 꼬르륵거릴 뿐이었다. 형과 나는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때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엄마는 자유의 여신상처럼 작은 상을 받쳐들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신기루처럼 뭔가 헛것이 보이는가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터져나오는 형의 울음소리가 꿈이 아닌 생시임을 또렷이 일깨워 주었다. 바보 같이 형은 그 순간 감동인지 원망인지 모를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엄마가 내려놓은 작은 상에는 계란이 씌워지고 빨간 토마토 케첩이 리본처럼 둘러진 오무라이스 접시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형은 울먹이면서도 분주하게 숟가락질을 해댔다. 우리는 그걸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다 먹고 나자 엄마는 물잔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지완아, 남에게 뭔가를 나눠준다는 건 말야…… 바로 그 오무라이스 맛 같은 거야." 갑자기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랬던 엄마가 요즘에는 우리 선수들이 상대편의 공을 빼앗아 오면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우리 선수가 골을 넣기라도 하면 엄마는 교양 없는 사람처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와 함께 펄쩍펄쩍 뛰며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공을 넣는 장면을 보면 꼭 형이 내 바나나를 빼앗아 입으로 쏙 집어넣을 때처럼 가슴이 철렁한다. 나만이 느끼는 '바나나 킥의 비애'라고나 할까.
지난번 16강전 진출이 확정되던 때도 그랬다. 경기가 끝나자 포르투갈 선수들 몇몇은 경기장 잔디밭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비행기 타고 먼 나라에까지 와서 졌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나도 찔끔 눈물을 흘릴 뻔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야단이었다. "이제 저들은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입장이니 저럴 수밖에 없죠." 축구 해설자의 목소리에는 통쾌함이 철철 넘쳤다. "어쨌든 축구야 결과가 말해주는 것 아닙니까……."
우리나라가 8강에 들었을 때는 아빠까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우리 지완이도 나중에 축구 선수 시킬까? ……녀석이 말야, 뱃속에서부터 발차는 힘이 대단했거든."
아빠의 어이없는 제안은 내게 엄마 뱃속에서의 추억을 떠올려 주었다.
캄캄한 뱃속에서 8개월째 접어들던 때였다. 나는 여느 오후처럼 엄마와 함께 태교 음악에 취해 있었다. "어디, 우리 딸래미가 얼마나 컸나 한번 만져볼까?" 갑자기 모차르트의 선율을 방해하는 굵고 꺼끌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성차별도 못마땅했지만 목소리부터가 꽤나 거슬렸다. 나는 낯선 훼방꾼에 머리끝까지 짜증이 치밀어, 세차게 발길질을 해버렸다. 그 발길질로 아빠는 내가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했을 텐데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야, 우리 공주님 발길질 한번 대단하네. 아주 건강한 애가 나올 모양이야." 아빠의 헛된 집착에 순간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나를 그토록 절실하게 기다리는 누군가가 저쪽 세상에 있다는 사실에 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중에 바깥세상에서 만났을 때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일 거라는 깨달음이 스치면서 나는 조신해졌다. 나는 뻗쳤던 발을 거두어들이며 그 때까지 얌전하게 웅크리고 있기로 했다.
"성완아,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만 꺼내 오너라."
아빠는 속이 타는 듯한 목소리로 형에게 말한다.
4강을 다투는 스페인과 우리나라는 후반전이 끝나도록 0대 0 동점이다. 연장전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어머 참, 맥주 다 떨어졌는데……."
중요한 걸 깜빡 했다는 듯 엄마가 미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성완아, 네가 요 앞 가게에 좀 갔다와야겠다."
"아이 참, 아빠도. 미성년자한테 술 못 파는 거 모르세요."
"……."
"요즘은 월드컵 기간이라 괜찮아. 그리고 가게 아저씨도 너 잘 알잖니."
엄마가 아빠 편을 든다.
다들 텔레비전 앞에서 꼼짝 않겠다는 듯 한치의 양보도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다.
"아빠, 제가 갔다올게요."
나밖에 갈 사람이 없다는 걸 나는 깨닫는다.
"그래, 역시 지완이밖에 없어."
"다섯 개 사면 돼. 그러면 돈이 딱 맞을 거야."
엄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준다.
정말 이변이야.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생각한다. 아빠는 지금껏 우리한테 술 담배 심부름은 한번도 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옆집 아줌마가 애완견을 안고 급히 내린다. 강아지 목에 빨간 손수건이 둘러져 있고 머리에도 빨간 리본이 달려 있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니, 우리 귀여운 지완이?"
나는 옆집 아줌마가 '우리 귀여운 지완이' 하며 사랑스런 눈길을 던질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나를 보는 눈이 꼭 자기네 강아지 들여다보는 눈 같기 때문이다.
"맥주 사러요!"
나는 재빨리 '닫힘' 버튼을 누르며 대답한다.
아파트 단지는 일요일 오전처럼 조용하다, 이따금 창밖으로 쏟아져나오는 함성만 빼면…….
작은 연쇄점이 있는 아파트 입구까지 와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차도 별로 눈에 띄질 않는다.
가게에 들어서니 늘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주인 아저씨가 없다. 화장실 가셨나? 언제나 켜져 있던 책상 옆 작은 텔레비전이 오늘따라 꺼진 채다. 웬일이지? 텔레비전이 꺼져 있었던 적도 아저씨가 자리를 비웠던 적도 한번도 없었다. 아저씨는 연신 하품을 해대거나 그렇지 않으면 텔레비전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기가 일쑤여서 아이스크림을 골라 돈을 내려고 할 때마다 난처해진다. "손님이 없으니 그렇지." 아저씨는 졸음의 원인이 손님 탓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대형 할인매장으로 몰려가고 손님이라야 나 같은 코흘리개(사실 나는 코 같은 건 절대 흘리지 않지만) 꼬마들이 불량식품이나 빙과류 사러 오는 게 고작이라는 것이다. "아니면 대형 마트에서 빠뜨린 것을 사러 오는 정신머리 없는 여편네들이거나."
아저씨는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좁은 가게에 틀어박혀 있기만 한다. 장사가 안된다고 투덜대면서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아저씨가 가게를 살리기 위해 나한테 조언을 구해오면 나는 가게를 전문 매장으로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 일종의 '벤처'사업이라 할 수 있는 '불량식품 전문 매장'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전 세계의 불량식품을 다 모아놓는 거다. 세네갈, 포르투갈, 폴란드, 터키, 브라질,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월드컵 개최국에서 전 세계의 불량식품을 몽땅 모아놓고 '불량식품 월드컵'도 같이 열면서 어느 나라 불량식품이 최고인지를 가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단번에 16강 안에 들 텐데……. 잘하면 우승국이 될지도 모른다. 나 같은 꼬마들이 불량식품을 좋아하는 심리를 생각해볼 때 아빠 말대로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장사다. 맛이나 특이한 모양, 또 값이 싸다는 좋은 점말고도 불량식품을 먹을 때는 묘한 재미와 짜릿함이 있다. 아저씨도 그런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자랐을 텐데 왜 그렇게 간단한 것조차 모르는 것일까. 어쨌든 아저씨가 지금처럼 구멍가게 식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평생 텔레비전 앞에서 하품을 하거나 졸고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게 내 판단이다.
아저씨가 오면 오늘은 반드시 그 얘기를 해드려야겠다. 나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어쩌면 하루아침에 아저씨를 부자로 만들지도 모른다. 아저씨를 기다리기로 작정한 나는 까치발을 세워 선반대에 놓인 텔레비전부터 켠다. 그런 다음 작은 간이의자를 끌어다 놓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연장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산속의 매미울음처럼 붉은 물결의 함성이 공을 따라 몰려다닌다. 응원소리와 이리저리 정신없이 옮겨다니는 공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저씨가 오지 않는다. 어쩌면 아저씨는 어느 집의 새로 산 대형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닐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책상 위에 만원을 올려놓은 다음 까만 비닐 봉지를 하나 뽑아내어 냉장고로 간다. 라거, 카스, 하이트 등등 맥주도 꽤나 여러 가지다. 어떤 걸로 담을까 잠시 망설이다 나는 평등하게 골고루 담기로 한다. 하나, 둘, 세번째 맥주를 담고 있는데 누가 들어서는 기척이 들린다. 고개를 돌려 보니 주인이 아닌 낯선 아저씨다. 손님인 모양이다.
"얘, 꼬마야. 캔 맥주 두 개만 다오."
아저씨는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서더니 다급하게 말한다.
"저, 여기 주인 아니에요."
"그럼, 주인 아저씨 오면 좀 전해 드리렴."
아저씨는 천원짜리 몇 장을 책상 위에 던져놓고 내 손에서 캔 맥주 두 개를 낚아채서는 휑하니 가버린다.
맥주를 다 담고 난 다음, 나는 책상 위에 흩어져 있는 돈들을 잘 간추려 놓는다.
축구는 연장전에서도 여전히 골을 하나도 못 넣고 있다. 0대 0 동점이다. 그냥 무승부로 하면 될걸 뭐 하러 힘들게 연장전까지 가면서 기어이 승부를 가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맥주 봉지를 들고 가게를 나서다가 다시 한번 가게를 돌아본다. 참, 텔레비전을 꺼야지. 다시 들어와 텔레비전을 끄려고 하는데 책상 위의 돈이 눈에 자꾸 달라붙는다.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된다. 나는 마음을 바꾸어 주인 아저씨를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양쪽 다 한 골도 넣지 못한 채 연장전 전반전이 끝난다. 선수들이 많이 지친 모양이라고 해설자가 설명을 한다. 정말 선수들이 꽤나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런데도 휴식도 없이 다시 후반전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누가 이기든 빨리 경기가 끝나면 좋을 텐데……. 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맥주 봉지를 끌어다 무릎에 올려놓는다. 맥주의 시원한 감촉이 온몸으로 전해온다. 갑자기 목이 마르다. 냉장고의 콜라를 한번 흘끔거려 본다. 하지만 엄마는 맥주 다섯 개에 딱 맞는 돈이라고 했다. 참아야 한다. 집에 가면 엄마가 수고했다고 얼음 탄 시원한 주스를 줄 것이다.
맥주의 찬 기운이 계속 몸을 타고 전해진다. 나는 안고 있던 봉지를 펼쳐 맥주를 하나 하나 들여다본다. 얇은 알루미늄캔에 작은 물방울이 송송 맺혀 있다. "맥주는 술이 아냐, 음료수지." 축구 볼 때마다 맥주를 마시던 아빠가 말했다. 그 중에 가장 물방울이 많이 맺힌 것을 하나 꺼낸다. 깡통 겉면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시원하게 손을 적신다. 집게손가락을 넣어 손잡이를 살짝 당겨본다. 치잇 소리와 함께 흰 거품이 불쑥 올라온다. 흘릴새라 거품을 쪽 빨아먹는다. 씁쓸한 맛이 나긴 하지만 캬 ― 소리가 절로 날만큼 시원하다. 다시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구멍으로 올라온다. 또 한번 거품을 빨아들이며 한모금 들이킨다. 캬 ―,
홀짝∼ 캬 ― 홀짝∼ 캬 ―.
물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병아리가 된 것 같다. 점점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 아빠도 이 맛에 맥주를 마시는 모양이다. 연장전 후반전이 진행되고 있지만 점수는 꼼짝도 않은 채 계속 빵대 빵이다.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아저씨도 축구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
다시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는데, 책상 위에 놓인 막대 소시지 통이 눈에 들어온다. 2백원짜리 치즈 소시지가 잔뜩 꽂혀 있다. 형과 내가 한자리에서 24개짜리 한 통을 금세 먹어치울 만큼 좋아하는 거다. 우리는 엄마가 주는 슬라이스 치즈는 거들떠도 안 보지만 막대 치즈 소시지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마도 그게 불량식품을 닮아 그런 모양이다. 주위를 한번 두리번거려 본다. 아무도 없다. 아저씨도 축구가 끝날 때까지 안 나타날 게 분명하다. 막대 소시지를 하나 꺼낸다. 워낙 많이 꽂혀 있어 아무 표시도 나지 않는다. 껍질을 벗기자 노르스름한 속살이 드러난다. 살짝 한입 베어문다. 맥주 맛에 비하니 정말 꿀맛이다. "이변이야, 이변!"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들었을 때였다. 아빠는 '이변'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얘기했다. "이런 이변이 있어야 세상은 살맛이 나는 거야." 엄마도 끼여들었다. "맞아요, 한번씩 숨통이 틔는 것 같다구요.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기고,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아빠도 신나게 말을 받았다. "맞아, 검둥이가 백인을 이기고, 작은 놈이 큰놈을 이기고…… 공 하나가 그 모든 걸 가능케 해주니 얼마나 대단해!" 나는 막대 소시지를 하나 더 꺼낸다. "세상이 이렇게 한번씩 뒤집어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엄마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맥주 하나가 거의 다 비었다.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 하긴 하지만 그래도 몸은 풍선을 탄 것처럼 붕붕 뜨는 기분이다.
후반전도 0대 0으로 끝나고, 골대 앞에 사람이 하나씩 차례로 나와 골을 넣는 승부차기가 시작되고 있다.
나는 소시지 두 개를 한꺼번에 꺼낸다.
축구공이 골대 바로 앞에 놓여지고 선수가 골을 차러 나온다. 황선홍 선수다. 황선홍이 힘껏 공을 찬다. 골키퍼가 날아오는 공을 잡으러 몸을 날린다. 공이 골키퍼의 팔과 허리 사이를 뚫고 들어간다.
와아아 ―.
요란한 함성이 수백 개의 창 밖으로 동시에 터져나온다.
골이 또 하나 들어가고, 와아- 소리에 아파트 전체가 들썩거린다. 몇십초 간격으로 세상이 한번씩 뒤집어지는 것 같다.
와아 ― 와아 ― 와아 ―.
잠시 후 갑자기 포탄같은 같은 함성이 터져나오더니 그칠 줄 모른다.
'4강 진출'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해설자 아저씨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린다. 빨간 티를 입은 사람들이 아파트 마당으로 하나 둘씩 뛰쳐나오기 시작한다. 손에 태극기를 든 사람도 있다.
나도 그 사람들 틈에 끼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든다.
나는 한쪽 주머니에 소시지 한움큼을 챙겨넣는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돈을 집어 다른 쪽 주머니에 쑤셔 넣은 다음 가게를 나선다.
"으 ― 낮술을 먹었더니 취하네." 급하게 가게를 나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중얼거리면서 내 앞을 지나간다. 주인 아저씬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큰길 쪽으로 간다. 사람들이 차도로 뛰어들며 차들과 뒤섞여 있다. 저 아래쪽 전자제품 대리점 파라솔 아래 연쇄점 아저씨가 다른 가게 아저씨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거기서 축구를 본 모양이다. 아저씨는 비워둔 가게는 까맣게 잊은 듯 사람들과 계속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다. 나는 아저씨를 피해 반대편 쪽으로 간다.
대∼한민국! 빨간 티가 자꾸 늘어나면서 함성이 더 커지고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형들이 태극기를 들고는 여기저기 몰려다닌다. 어떤 형이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았다 내려놓으면서 태극기를 하나 쥐어준다.
사람들이 자동차 위로 올라간다. 몇 명은 트렁크 뒤에 들어가 앉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창밖으로 몸을 쭉 내뻗고 태극기를 흔들며 달리기도 한다.
대∼한민국.
빵빵빵빵빵.
자동차들 클랙슨 소리가 박자에 맞춰 울린다.
저쪽에서 빨간 옷을 입은 형들이 지나가는 트럭을 세우고 있다. 트럭 기사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자 빨간 티를 입은 누나 형들이 하나씩 트럭에 올라탄다. 나도 그쪽으로 쪼르르 달려가 키 큰 형한테 소리친다. "형, 나도 태워줘요!" 키 큰 형이 나를 번쩍 안아서 트럭에 올려준다. 나는 그 형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맥주 봉지를 내민다. 그 무거운 걸 건네고 나니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와, 맥주다!"
맥주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다니기 시작한다. 누구는 마시고 누구는 거품을 잔뜩 내어 샴페인처럼 사람들 머리 위로 뿌리기 시작한다. 꺄아아∼ 대∼한민국! 꺄아아∼ 대∼한민국!
트럭이 점점 빨라진다. 붉은 물결 속에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청룡열차를 탄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도 기분은 구름을 탄 것 같다.
트럭은 속력을 높이며 어디론가 신나게 달려간다. 붉은 물결이 끈질기게 우리를 따라붙는다. 한강이 보이고 우리 아파트 단지가 점점 멀어지더니 급기야 사라져 버린다.
나도 두팔을 쭉 뻗치며 힘차게 외쳐본다.
대∼한민국! 딸꾹.
갑자기 딸꾹질이 난다.
대∼한민국! 딸꾹.
대∼한민국! 딸꾹.  




표명희·2001년 ≪창작과 비평≫ 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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