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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제2회 리토피아인터넷청소년문학상 우수상작품/<수필>/다만 혼자/정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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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근영
댓글 0건 조회 3,669회 작성일 03-03-2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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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혼자
정근영(하남고등학교 2학년)




바람이 몹시 불던 봄의 시작. 국도를 따라 밀양 가는 길목 어디쯤에선가 그 나무를 만났다. 나지막한 솔밭 등성이에 우뚝 선 큰 소나무 한 그루. 서로 어깨 비비듯 소곤대는 잔 소나무 숲에 저리도 멀쑥 혼자 커버렸을까. 어찌하여 그 많은 일월과 풍상 단지 홀로 맞고 보내며 오늘에 이르렀는지 의아하기조차 하다. 명징한 쪽빛 하늘 배경삼아 잘생긴 몸체 윗동을 바람결에 맡기고 있던 노송. 오기 같은, 통한 같은 처연함이다. 청청한 기백, 단아한 자태 깊숙이 가라앉은 절대 절명의 외로움 같은 죄. 또는 네가 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너만의 아픔 같은 게 전해진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의 현관에 들어설 때 부모님은 일 나가시고, 동생은 학교에서 안 오고, 언제나 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었다. 그래서 계속 그 생활을 반복하게 되면서 고독이나 외로움도 나에게 저절로 스며들어버렸다. 그러기에 나에게도 그런 감정들 속에서 우울해지지 않도록 내 자신을 달랜다는 생각에서 언제부턴가 음악을 듣게 되었다. 체육 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수돗가로 달려간 나는 항상 물을 틀어놓고 갈라져버린 물줄기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고 가만히 있으면 물의 시원함과 내게 들려오는 '퉁퉁퉁' 하고 물의 연주 소리들을, 그 아름다운 선율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평상시 '음악'을 좋아한다. 아니 '음악'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에겐 모르겠지만 항상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달래주는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래서 나는 자주 오페라 공연을 보러가곤 한다. 아니, 학교의 교외 활동에서도 그런 곳을 자주 방문한다. 그 중에서 교향악단의 바이올린이나 비올라처럼 고만고만한 음색으로 다정다감한 무리 중에 어쩌다 한번 폭발적인 힘으로 솟구쳐 오르는 심벌즈 소리 같은 노송. 그랬다. 산등성이 큰 소나무에서는 챙 ―, 하고 심벌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우러짐 밖으로 튕겨나오는 단 혼자의 고독한 울림. 그러나 한 주먹에 KO시키는 권투선수의 위력적인 펀치인 양 힘차다. 쩌르르 전율마저 일게 하는 한편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심벌즈 소리. 그 소리에 번번이 나는 맥을 못 춘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했던 나에게 모처럼인지 우연인지 모르게 음악회 티켓이 주어져 몇 번 교향악단의 연주를 듣게 되었다. 한낮의 평상복을 벗어두고 저녁나절 한때나마 우아한 기분에 젖어보는 것도 꽤 멋스런 일이다. 도회의 소음이 고즈넉이 잦아드는 초저녁. 문화회관 돌층계를 오를 즈음엔 마음까지 같이 고조되곤 한다. 유리문을 밀고 로비에 들어서면 길게 늘어진 샹들리에 휘황한 불빛에 좀더 가슴이 들뜬다. 엷은 흥분기를 누르고 객석에 앉는다. 천장과 벽의 조명이 차례대로 꺼져가고 무대에만 집중되는 빛. 이윽고 지휘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섬세하게 때로는 장중하게, 그와 동시에 유려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여울지는 음.
나에게는 한 가지 유일한 습관이 있다. 그건 저녁 늦을 무렵 컴퓨터나 워크맨, 카세트를 통해서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는다. 그리고는 방안에 틀어박혀 불을 다 꺼놓고 명상에 잠기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명상이 아니라 나의 삶에 대한 반성이요, 또 다른 인생의 개척이다.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살며시 나에게 다가와 마음을 깨끗이 닦아주고 광채나게 해준다. 그래서 '음악'은 나의 마음에 교훈을 주는 존재이다.
나에게 그렇듯 음악은 모든 사람들의 세계 공통어라 생각한다. 그 중에도 음색과 음역이 각기 다른 악기를 한데 묶어 편성한 관현악의 연주는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 은빛 나래를 달고 조수처럼 스며드는 아름다운 음악에 잠겨드노라면 나는 잠시 천상의 시인이 된다. 마치 오페라의 천상의 아리아처럼 말이다. 번다한 세간사 잊을 수 있는 이 순간이 바로 복락 그 자체 아닌가 싶다. 또한 음악 속으로의 유영만큼 황홀한 몰입, 완벽한 도취도 흔치 않을 것 같다.
나는 혼자 있을 때면 언제나 불을 다 꺼놓고 사라 브라이트만의 '아베마리아'를 즐겨 찾는다. 그러나 이 순간엔 스메타나의 '몰다우 강'이며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나를 더욱 벅찬 감동으로 안겨들게끔 만든다. 가락에 노랫말을 싣지 않아도 흐르는 강물 소리가 들리고 비 내리는 저녁의 우수가 잡히는 음악의 세계. 경쾌한 새의 지저귐이며 화사한 꽃의 속삭임이 느껴지는 음악. 좋은 음악은 직관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되고 흡수되는 것이다.
이렇게 한참 동안이나 넋이 빠져서 교향악단의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지휘자보다 내가 더 주목하는 이가 있다. 바로 다름아닌 심벌즈를 치는 사람이다. 오케스트라의 제일 뒤쪽 트라이앵글과 팀파니 사이에 배치된 심벌즈는 시종 묵묵하기만 하다. 따분할 정도로 손놓고 그냥 밀랍인형처럼 고정돼 있던 그 사람이 어깨 높이로 심벌즈를 치켜드는 순간, 나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른다. 아니 호흡조차 이미 멎어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숨죽이고 지켜보노라면 돌연 직격탄을 쏟아붓듯 힘차게 부서지는 소리, 챙 ―. 극적 효과를 위한 듯 결정적인 순간 적재 적소에서 확실한 구두점을 찍듯이 단호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기란 기 죄다 모아 한꺼번에 터트리는 강한 에너지의 발산이다. 전심 전력 집약시킨 힘을 단 한번에 내쏟는 열정의 극. 빨려들어가는 듯한 흡인력을 느끼게 하는 심벌즈 소리. 아예 도발적이기조차 한 그 소리.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타악기 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초자연적인 힘, 나아가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특별한 힘이 배어있다. 저 멀리 아프리카의 고유한 혼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강렬함이 매혹적인 타악기는 기교 모르는 솔직 담백한 점에 마음이 이끌린다. 직설적이라 아주 통쾌 무쌍하다. 마치 막혔던 물꼬가 탁 트이듯 속시원한 소리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감. 맘껏 자유로이 솟구쳐 오르는 그 소리는 매번 나의 숨을 가쁘게 하곤 한다.
타악기가 거의 그러하듯 심벌즈 역시 강한 성정을 타고났다. 심벌즈는 태생 자체가 거칠고 야성적이다. 어떤 때는 혁명가처럼 사람을 흥분시키는가 하면 단순 명쾌하여 더욱 돋보이는 위용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세계를 단숨에 평정시킨 격전장의 징기스칸, 그 서슬 퍼런 기개를 닮은 소리. 뭇 짐승을 제압하려 포효하는 숫사자나 강풍에 따라 격렬하게 타오르는 산불의 기세 같은, 심벌즈 소리는 결코 배경으로 잔잔히 받쳐주는 악기가 될 수 없다. 계속 연주에 동참하는 현악기와도 또 다르다. 부분부분에서 잠언이듯 간결하고 또렷하게 치솟아 오르는 소리. 혹은 섬세한 음의 조화에 좀 나른해질 듯한 어느 대목, 문득 심벌즈는 긴장시킨다. 높이 치켜드는 한쌍의 둥근 금속판, 번쩍 놋쇠판이 빛을 반사한다. 위세 당당한 장군의 견장마냥 번뜩이는 광채, 그리고 작렬한다, 강하게 아주 강하게.
나에게 있어 힘들고 따분할 때 듣는 레스피기의 '아피아 가도의 소나무'와 '카르맨'의 전주곡에서 심벌즈는 특히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심장 쿵쿵 울려 혈관을 최대한 팽창시키는가 하면, 심청이 아버지라도 퍼뜩 눈떠지게 하는 확연한 소리. 더욱이 한 단원을 마무리짓는 심벌즈 소리는 딱 맞아떨어지는 구구단 숫자처럼 얼마나 명료하고 깔끔하던가.
이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악기인 심벌즈에 대해 칭찬을 너스레 늘어놓아야 할 것 같다. 힘찬 극적 박진감으로 충동적이기만 한 심벌즈. 그러나 동양의 바라는 똑같은 모양의 요철이 나있는 금속 원판의 마주침일지라도 오히려 분위기를 수굿하게 가라앉히는 마력이 있다. 불전에서 재를 올릴 때, 천구다라니를 외면서 바라를 치는 춤사위는 정적이고도 신비스럽다.
불교 의식무용의 하나인 바라춤. 여기서 바라소리는 강한 치솟음이 아닌 고요한 다스림이다. 잡신의 근접을 막고 부정을 씻기 위해 청수 치듯 소금 뿌리듯 신성하기조차 한 바라소리. 이렇듯 기질마저 동서양은 판이하게 다르다.
간혹 일상사로부터 떨어져 혼자 지내고 싶을 적이 있다. 더 나아가 세상 밖으로 이탈하고 싶어질 적이 있다. 가벼이는 녹작지근한 허무, 좌절에 빠져 허우적거릴 경우이다. 더러는 세사에 지치고 존재의 무게에 치일 적일 것이다. 그때 심벌즈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유로운 솟구침이자 강한 신념의 표출인 그 소리는 나약과 침체로부터의 구원의 고리, 해방의 고리다. 그리하여 나는 새로운 의욕과 활력을 전이받곤 하는 것이다. 단지 혼자이지만 독야청청 올연히 푸른 빛, 뿌리 깊은 소나무의 강건함이다. 심벌즈 소리는 나에겐 '희망'의 끈인 셈이다.

추천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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