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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신작시/황희순/'봄밤, 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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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희순
댓글 0건 조회 3,856회 작성일 02-11-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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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희순
충북 보은 출생. 19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강가에 서고픈 날』,  『나를 가둔 그리움』. 


봄밤, 꿈


언젠가 가본 듯한 버드나무 아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그 애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려면 뭉턱 무너져내린 논둑을 건너뛰어야 했다 아무도 손내밀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구경꾼이었다 날아가자, 날아가자, 몸을 깊이 움츠렸다가 공중으로 힘껏 뛰었다 나무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 힘줄 때마다 그 애와 나는 점점 멀어졌다 팔을 옆구리에 착 붙이고 물개처럼 무작정 하늘을 헤엄쳤다 까마득 내려다뵈는 세상은 잡풀 우거진 개미굴이었다 
   (아,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다니!) 

   몇 生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콘크리트 바닥에 뚝 떨어져 
   한뼘 한뼘, 또 한뼘, 꿈을 재는 
   자벌레였다 






  나는 무엇인가.
  장자의 胡蝶之夢을 생각하다 까무룩, 또 잠이 들었다.
  잠자는 것도 이젠 넌더리가 난다. 하지만 자꾸 잠을 자다 보면 누에처럼 허물을 벗게 될지도 모르지, 그리하여 딴 세상이 만져질 지도 아니, 나는 누에인지도 몰라, 몇 잠만 더 자면 나방이 되어 훨훨 하늘을 날 수 있는.
  半跏趺坐를 하고 눈높이 벽에 콩알만한 구멍을 까맣게 찍어놓고, 무시로 그 구멍을 빠져나가는 연습을 한다, 죽으면 밝은 빛이 된다는데 삼도내를 건너기 전에 저 구멍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때로 그 구멍은 벽을 밀치고 나와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노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가 빠져나가려는 구멍이 나를 빠져나가기도 한다.
  가만히 엎드려 책상 밑 구석을 보면 먼지가 뭉쳐 있다. 훅, 불면 꿈틀거린다. 살아 있다. 저 먼지가 혹시 나의 분신 아닐까. 잠시도 멈추지 않고 조금씩 줄어드는 나의 시간, 솔솔 새나가는 나의 목숨 아닐까. 아니면 어디서 온 것일까, 햇볕 들지 않는 이 방엔 늘 나 혼자뿐인데. 하루에 서너 번 문을 여닫으며 잠자고 책 읽는 일밖에 한 일이 없는데, 저것은 누구의 혼일까.
  나는 가끔 사람의 길을 잊어버린다.
  무밭을 지날 때면 무가 되어 땅에 꽂히고, 숲길을 가면 나뭇잎이 되어 벼랑을 구른다. 나뭇가지를 뚝 꺾으며 팔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파리를 잡으며 바닥에 곤두박질하는 나를 본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건가. 아니, 나만 살아 있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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