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호/신작시/이영주/'너무 오래되었어'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영주
댓글 0건 조회 3,203회 작성일 02-11-04 14:27

본문

신작시
이영주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석사졸업. 2000년 문학동네 시 부문으로 등단.


너무 오래되었어
-수상촌 이야기


태양을 머리에 이고 방갈로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지상의 모든 물이 흘러와 고이는,
아이들의 오줌과 퉁퉁 불은 물고기가 먼 해안을 돌아온 마을    

밥짓고 빨래하고 오줌싸고 목욕하는 흙물을 마시고 
무럭무럭 자란 태양이 적도 밖으로 사라진다 
그녀는 방갈로 밖으로 나온다
어젯밤에 훔쳐둔, 손바닥을 맴도는 서늘한 흰 빛,
꽉 움켜쥐고

어둠에서 쫓겨난 지 얼마나 되었니, 머리가 다 타버렸군, 타버렸어! 적도의 비명에 데인 이 얼굴, 뜨겁고 낭자한 물얼룩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아

기억나니, 너무 오래되었어
유배당한 삭은 얼굴들이 저 빛 속에서 울고 있어

그녀가 방갈로에 앉아 분갈이를 한다
오래 곪은 흉터처럼 꽃잎이 툭 떨어진다
그녀는 화분에 손을 묻는다
밤을 훔친 도둑의 마지막 흰 빛,
천천히 스며든다 
아이들이 태양에 그을린 까만 손을 내민다








사진


무너진 사원에 앉아
소녀는 때절은 발을 까딱거린다
얼른 찍어가세요
곧 해가 질 거에요
밑단이 찢어진 치마 사이로
발가락이 까딱 까딱
나는 렌즈 속으로 소녀를 밀어 넣는다
사원의 진흙을 부둥켜안고 소녀는
프레임에 갇힌다
해가 지기 전에 데려가 줘요

찰칵찰칵
수많은 렌즈가 소녀를 밀어 넣는다
수많은 소녀가 사원으로 몰려온다
수많은 발가락이 까딱거린다

야근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던 밤
가방을 깔고 앉은 한 소녀가
다리를 꼬고 발을 까딱거리고 있다
소녀의 짙은 눈에 박힌 오래된 진흙
나는 렌즈 속으로 소녀를 밀어 넣는다
잘려진 발가락이 프레임 밖으로 떨어진다
가로등 밑,
내 왼발이 푸르게 부어 오른다
추천3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