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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신작시/안현미/'이 箱'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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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안현미
1972년 태백 출생 서울산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년 <문학동네>로 등단
이 箱
너는 달콤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사랑이라는 상자를 내게 건넨다
내게 온 상자는 너를 닮은 비단뱀이 된다
상자 속처럼 검은 아가리가 통째로 나를 삼킨다
나는 뱀의 허물을 뒤집어 쓴 기인 몸뚱이
나무를 휘감고 탈피를 꿈꾼다
나는 간악한 혓바닥을 날름대며
神의 눈, 붉은 사과를 네게 건넨다
너는 사과를 베어먹은 알몸의 부끄러움
자궁 속으로 숨는다, 함께 부풀어오른다
나는 탈피하듯 너를 낳는다
너는 상자(箱子)로 태어난다
너를 열자 해골의 갈비뼈 하나가 튀어나오고
상자는 棺처럼 썩었다
이상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학습장
종합운동장 한 켠
자연학습장
해바라기라는 팻말을 들고
여름 내내 한 여자 서 있다
기다림을 학습하고 있을까?
원두막 그늘 밑
보라색 도라지꽃
제 잎 속에 <입 속의 검은 잎>을
새기며 멍들고 있다
칸나는 붉고 검은 잎들은?
그 여름 내내
일상의 학습에 서투른 나는
색칠공부하는 유치원생 같았다
노랑/보라/빨강/파랑
빛의 산란
부서짐의 아름다움!
빛을 익혔다
백치라는 팻말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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