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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특집/생태 위기에 관한 연극적 보고서/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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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위기에 관한 연극적 보고서
― 한국 현대 희곡을 중심으로
김남석(문학평론가)
1. 생태 위기를 대하는 새로운 시각
많은 연구자들이 지금의 생태 위기를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여기고 있다. 자체 유지를 위해 생산과 소비의 메커니즘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고 확대 재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자연을 파괴하고 생태계를 훼손하는 주범이라고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에서 한 걸음 빗겨선 학자가 존 벨라미 포스터이다. 그는 환경 문제를 인류의 경제사와 밀착시켜 살펴보면서, 전 산업사회에서도 환경 파괴 문제나 생태계 붕괴 현상이 이미 출현했었음을 밝혀낸다. 수메르·인더스 벨리·그리스·페니키아·로마·마야 문명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생태 문제로 붕괴했다는 것이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범람을 이용하여 탄생·성장·중흥한 고대국가였지만,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이에 따른 무리한 관개 확대, 그리고 이어지는 부실한 농토 관리로 인해 사멸했다. 상승하는 하상계수와 침수에 의한 표면의 염화 작용이 붕괴를 촉진한 원인이었다. 2000년이 지난 로마도 사정은 비슷했다. 대제국의 식량 공급원은 북아프리카였는데, 막대한 인구증가로 인해 이 식량 공급원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토지의 확장이 불가피했는데, 이러한 확장이 토지 황폐화를 부추겼다. 북아프리카 지방은 거대한 사막으로 변하게 되었고 만성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가중되었다. 그 결과가 제국의 약화였다.
이러한 과거 사례는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더욱 당혹스럽게 만든다. 한편 인류가 항상 환경 오염과 자연 파괴라는 생태 위기 속에 처해 있었음을 알려주어 우리의 경각심을 고조시킨다. 어느 경우이든 존 벨라미 포스터는 자본주의의 폐기물 혹은 산업사회의 부작용 정도로 인식되던 환경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살피게 한다. 이러한 관찰은 생태 위기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것이다.
세계를 괴롭히는 생태적 곤란들을 설명하자면, 급박한 문제만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긴 목록을 이룰 것이다. 여기에는 과잉 인구,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종 소멸, 유전적 다양성의 상실, 산성비, 핵오염, 열대림 벌목, 극지림 제거, 습지 파괴, 토양 침식, 사막화, 홍수, 기근, 호수와 개천 및 강들의 약탈, 지하수 고갈과 오염, 연안 해역과 하구 오염, 산호초 파괴, 석유 유출, 남획, 쓰레기 매립지 확장, 독성 폐기물과 살충제 및 제초제의 유해한 영향, 직업상 재해, 도시 혼잡, 재생 불가능 자원들의 고갈 등이 포함된다.
― 김현구 역,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에서
위의 긴 목록에는 존 벨라미 포스터가 지적한 생태 위기의 요인들이 꼼꼼히 적혀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낯선 항목도 있다. 가령 유전적 다양성의 손실이나 직업상 재해, 혹은 도시 혼잡 같은 것은 좀처럼 환경 문제와 연관되지 않는 현상들이다. 우리 주변에 잔존하되, 자연 파괴나 생태 훼손과는 별도로 취급되어진 항목들인 것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는 이러한 항목들 역시 환경과 생태 문제의 범주에 포함시켜 논의한다. 이러한 인식상의 확장은 폭넓고 다층적인 시각으로 생태 위기를 검토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무대 위의 환경주의자들
2.1. 오태석의 경우 : 각종 피해 사례들
1) 연안 해역의 오염 : 환경 오염에 대한 오태석의 생각이 처음 싹을 보인 작품이 [초분](1973)이다. [초분]에는 생태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작가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다.
군 자 불가피했습니다. 이 섬의 동남선상 십여 리 해안에 걸쳐 굉장히 훌륭한 미역밭이 있었습니다만 작년 말부터 조류를 타고 흘러드는 폐수로 침식 부패 중이던 것이 이제는 미역 한 가닥지 성한 것을 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부 결단이 났습니다. 섬의 운명이 이대로 사흘을 넘기지 못합니다.
극의 배경은 섬이고, 이 섬은 지리적·혈연적·경제적으로 폐쇄된 공간이다. 가까운 친족들로 이루어진 섬 주민들은 일종의 자치 구역을 형성했으며 육지 이주를 엄금하는 율법을 따라왔다. 그런데 이 주민들이 율법을 파기하면서까지 육지로 이주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벌어진다. 폐수가 식량 공급지인 미역밭에 유입되어 경제적 토대가 붕괴되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악화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열병이 창궐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의 힘을 잃고 생명의 안위마저 위협 받는 섬 주민들의 모습은, 곧 닥쳐올 생태 위기 속의 현대인의 자화상으로 부족함이 없다. 이 섬은 방심하면 다가올 우리의 미래에 해당하는 셈이다.
2) 독성 폐기물 중독 : [초분]이 신화적 시공간을 빌어 환경 파괴의 위협을 은밀하게 전달한 작품이라면, [비닐하우스]는 가상적 상황을 설정하고 산업 재해의 위험을 경고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행정당국이 시민들에게 <사랑의 실천에 관한 교육>을 부과한다는 극적 설정을 제시하면서 시작된다. 사랑의 실천은 표면적으로 헌혈을 가리킨다. 그러나 헌혈은 교육의 실제 목적을 숨기기 위한 빌미이다. 진짜 목적은 헌혈을 빌미로 수감된 이들에게 소외된 이웃을 소개함으로써,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있다. 수감자들이 만나게 되는 이웃이 <명군>이다.
명군은 15세 소년으로 온도계나 체온계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15세의 나이로 이미 노동자가 되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수은 중독으로 막대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오태석은 이러한 충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명군의 외양을 끔찍하게 묘사한다. 소년은 수은 중독으로 인해 피부가 군청색을 띠고 있고, 피부염을 심하게 앓고 있으며, 삭발과 반창고로 몹시 추레한 인상을 드러내고 있다. 정상적인 소통 행위가 불가능할 정도로 언어 장애 증세까지 보인다. 이러한 명군은 필담으로 다음과 같은 끔찍한 사실을 증언한다.
명 군, 끄덕인다. 글씨 써 기술자 3을 준다. 기술자 3이 읽는다.
기술자 3 작업장에서 아이들 토하는 거 보면 무서워요. 한 애가 시작하면 다 따라서 게웁니다. 개수대에 쭉 늘어서서 토하면 수도꼭지 여러 개 동시에 틀어논 것 같죠. 처음 게우는 애들은 웃습니다. 나도 웃었습니다.
명군은 산업 재해로 입게 되는 치명적인 상해를 관객에게 폭로한다. 외양상으로 발전한 우리 사회란 실은 이러한 무고한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대인들에게 아프게 인지시킨다. 문제는 이러한 희생이 이제는 공장 노동자 혹은 힘없는 어린아이의 몫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피고용자의 안전 대책에 인색했던 산업 시설이, 담장 너머 시민들에게만 너그러웠을 거라고 추측하기는 대단히 힘들다. 유독성 산업 폐기물은 우리 곁에 매우 가깝게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오태석은 관객들에게 불우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따뜻한 시선을 갖도록 종용하면서 그 속에 우리 자신에게 가해지는 생존 위협도 지적해내고 있다. 이기적 무관심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정신의 독성 폐기물>이라면, 발전 논리 속에 기생하며 무책임하게 버려지는 산업 폐기물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버려진 물질의 무관심>인 셈이다.
3) 핵 오염 : 93년에 발표된 [아침 한때 눈이나 비]는 원폭 피해자를 다룬 작품이다. 삼류 건달인 삼열과 송달은 민주를 성폭행하려다가 이를 만류하는 민주의 부친을 살해한다. 민주는 살인 용의자로 잡혀온 이들을 용서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민주를 협박하여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민주가 이들의 협박에 꼼짝하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는 원폭 피해자로 햇빛을 볼 수 없는 신세이다.
모 친 그게―1945년 8월 6일 11시 45분이요. 당시 난 히로시마 시내 소학교 운동장에서 막 체조시간을 끝내고 수돗가에 몰려있는 조무래기들 틈에 끼어 있었어요. 서로 수도꼭지를 입에 물려고 다투는데 방공 싸이렌이 울려요. 아이들이 방공호로 흩어지는데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 물이 콸콸 쏟아지지 않겠어요. 잠그려다가 수도꼭지 입에 물었는데 그때 하늘 꼭대기가 번쩍하더니 내 눈에 직격탄이 꽂히고 그게 뇌 속에서 터지면서 수천 개 바늘이 되어 박힙디다. 그 후로 햇빛을 볼 수가 없어요. 햇빛만 보면 뇌 속에 바늘이 죄 곤두서고 거품을 물고 쓰러져서―.
민주의 어머니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피해자로, 어두운 다락에서 숨어 살아야 하는 신세이다. 잘못하여 빛에 노출되면 사지가 뒤틀리는 증상을 겪기 때문이다. 삼열과 송달은 이러한 민주의 어머니를 써커스의 상품으로 둔갑시켜 돈벌이에 나선다. 이러한 사건 전개는 개연성이 희박하고 산만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서커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민주 어머니를 통해 원폭 피해자의 참상이 알려지게 된다. <50년간 해를 뺏긴 여자. 무엇이 우리한테서 해를 앗아갔는가>라는 선전문구는 우리에게 이 불행한 피해자를 상기하게 만들고, 무엇이 이러한 피해자를 낳았는가를 새삼 상기하게 만든다.
핵의 위험은 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위력과 구미 선진국이 행한 핵폭탄 실험, 그리고 각종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졌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핵의 위험에 맞서 평화 정착에 심혈을 기울였고 핵무기와 발전소를 규제하는 정책을 폈다.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을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는 몸짓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그 피해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오태석이 이러한 사각지대를 들추어내며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대량 학살 무기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그의 경고문에는 인간이 자랑하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우려 섞인 각성이 들어있다.
4) 종 소멸 : 97년에 발표된 [여우와 사랑을]에서는 멸종된 여우를 소재로 다룬다. 옛날 한국에는 어느 산을 가도 흔하게 여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여우에 대한 각종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산에서도 여우를 만날 수 없다. 오태석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 "여우가 산에서 다 없어지는 걸 모르고 지냈으니 우리 후손들 체면이 말이 아니오. 외국 사람들 들으면 우릴 사람으로 취급하겠소".
오태석이 내놓은 문제의식은 신선하다. 여우를 보지 못한 세대라 해도 여우가 멸종한 산을 보면서 허전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여우를 되살리기 위해서 외국에서 여우를 수입하는 문제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우선 종의 수입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의 유입은 생태계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차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외국 종의 유입(비록 옛날에 멸종한 동물을 다시 들여오는 것이라 해도)이 각종 질병의 발병이나 포식자 부재로 인한 먹이사슬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이미 우리 나라는 외국산 물고기와 황소 개구리로 인해 생태계의 파괴를 절감한 바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여우를 수입하여 옛날의 풍경과 정취를 수복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 여우가 왜 이 산하에서 사라지게 되었는가를 먼저 탐문해야 하며, 그 소멸원인을 먼저 바로잡고 난 이후에 여우의 방사가 이루어져야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여우를 무작정 풀어놓기만 한다고 여우를 소멸시킨 자연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태석은 앞의 세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그 대안을 제시하는 한결 성숙된 면모를 보인다. 앞의 세 작품이 현실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에 역점을 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결과이다. 대신 현실의 문제를 추상적으로 인지했다는 약점을 노출시키고 만다. 이로 인해 [여우와 사랑을]은 본격적인 환경고발 연극으로서의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5) 지상에서 사라져 가는 동식물들과 인간들 : 오태석은 2001년 12월 20일에 신작 [지네와 지렁이]를 발표한다. 지네와 지렁이는 3천년 동안 망월대에서 수련한 영물로, 사진작가 정씨와 동해안에 남파된 11인조의 유일한 생존자 통신병을 살리기 위해 세상 여행에 참가하게 된다. 추적하는 국군을 피해 도착한 곳은 2010년의 폐광 지하에 마련된 카지노 <남간도(南間道)>이다. 그 곳은 지하 천 칠백 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본귀화 재일 교포인 하라따의 지배력이 미치는 장소이다. 특히 지네와 지렁이가 당도한 곳은 지하 22층으로, 장기 기증으로 빚을 갚으려는 대기자들이 머무는 장소이다. 지네와 지렁이는 같이 탈출했으나 헤어지게 된 사진작가와 통신병의 행방을 탐문하던 중, 통신병은 22층의 관리인으로 사진작가는 책임자인 하라따로 변신했음을 알게 된다. 지네와 지렁이는 헤어진 일행을 찾아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면서 지하 세계의 온갖 문제를 접하게 된다.
오태석은 장기 밀매의 부당함과 백년 전(1910년) 한일합방의 뼈아픈 상처를 잊고 지내는 세상의 어리석음을 힐책한다. 뿐만 아니라, 날로 가중되는 이민 인구의 확산과 언어의 비속화 현상 그리고 동족 상잔의 아픔까지 두루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기본적인 발상을 제공한 환경문제에 대해 심각한 전언도 남기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비판하려는 목적 하에 쓰여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산발적으로 행해지다 그치고 만다. 사회 문제를 정심하게 탐색하는 작가적 관점을 확보하지 못하고, 다양한 사건을 꿰뚫는 유기적 형식을 마련하는 것에 미흡함을 드러내고 만다. 이것은 이 작품의 숨길 수 없는 약점이지만, 오태석의 평소 스타일을 참고했을 때 점차 정심한 내용과 유기적 형식을 갖추리라고 기대해 본다.
이 글에서는 작품에 반영된 환경문제에 대한 시각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이 작품의 첫머리는 사진작가 정씨가 멸종한 것으로 여겨지던 희귀식물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 꽃은 노루귀꽃, 금낭화, 꿩의바람꽃이다. 이러한 꽃들은 환경 오염이 심화되고 외래식물종이 유입되면서 우리의 주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지네와 지렁이 역시 환경 문제와 관련이 깊은 동물이다. 지네는 삼림의 낙엽이나 흙 속, 썩은 나무나 나무껍질 아래에 사는 동물로, 옛 민담에서 지하세계의 신이나 지배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도시화의 확산으로 그 생존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형편이다. 지렁이는 예로부터 흙을 정화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지렁이는 유기물을 자체적으로 소화하거나 양분을 분해, 흡수하는 소화 기능이 덜 발달되어 있어 유기물이 부숙(腐熟)된 것을 선호한다. 최근에 지렁이 먹이로 이용되는 물질은 동물의 분, 퇴비, 폐기물, 목재 및 제지폐기물, 하수 슬러지 등인데, 이러한 지렁이의 생태적 조건을 이용해서 환경 오염을 줄이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오태석은 이렇게 환경 친화적인 생물을 등장인물로 등장시켜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상황을 암시한다.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춘 꽃과 희소해지는 동물들의 운명은, 곧이어 닥쳐올 인간의 운명을 예견한다고 하겠다.
아울러 오태석은 자칫하면 실현될 수도 있는 가상적 상황을 활용하여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운다.
라디오 소리 황해바다 전체가 썩고 있다. 오염도가 돌이킬 수 없는 수치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있고 나서 이민을 결심했다 그러구 대답한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수산청은 흑산도 소흑산도 이북 해역에 오염도가 극심하여 비상수역으로 선언한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황해 바다를 사해로 선언하는 것이 되며, 이는 서해안 일대에서 어로 조업이 일체 중단되는 것으로 봐야합니다.
작품 속의 세상은 인간에게 유해한 온갖 물질로 더렵혀지고 있다. 황해바다는 죽은 물의 공동묘지로 전락해 있고, 지하수는 오염되어 식수로 사용될 수 있는 양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이다. 이러한 극적 설정은 우리의 현재 상황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러나 악화일로에 있는 환경오염 실태를 감안하면, 조만간 우리 앞에 닥칠 수도 있는 현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치유와 정화에 대한 노력이 망각되고 오히려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기주의로 인해, 대책은커녕 그 심각성만 더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퍼져가는 각종 질병과 화학물질과 유독성 무기에 대한 위험은 이제 우리에게도 서서히 위협이 되고 있다.
오태석의 연극이 의의를 갖는 것은 이러한 문제적 사안에 대해 과감한 지적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태석은 그 심각성이 증폭되지만 현실의 일각에서만 논의되고 곧 잊혀져 버리는 환경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한 연극인이다. 이러한 그의 관심이 [지네와 지렁이]에서는 다층적인 문제제기와 함께 다시 한번 직설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품의 완성도가 미흡하고 그 보완책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일관된 노력과 관심은 크게 칭찬받아야 할 사항이다. 또한 환경 오염 속에서도 굳굳하게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오리를 주목함으로써, 우리에게 환경 보전에 대한 희망을 이어간다는 점도 기억해 둘만한 사항이다.
2.2. 이강백의 경우 : 탄광촌과 양식장 리포트
1) 직업상 재해 : 지금은 그 흔적이 희미하지만,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탄광촌은 우리 주변에 엄존했었던 것으로 보고된다. 이러한 탄광촌의 문제에 깊이 있게 천착한 작가로 윤조병과 이강백을 들 수 있다. 윤조병은 [모닥불 아침이슬], [풍금소리], [초승에서 그믐까지]의 광산촌 연작을 발표했고, 이강백은 [쥬라기 사람들]이라는 수작을 발표했다. 윤조병이 매몰되어 죽어가는 광부들의 삶과 꿈/탄광촌 여인들의 수난과 상처/광산촌 일가의 내력과 희망을 추적하여 각각의 작품 속에 용해했다면, 이강백은 매몰 사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광산촌 주민들의 시각을 다층적으로 묘사했다.
[쥬라기 사람들]의 만석은 탄광 매몰 사고를 겪고도, 기사회생한 유일한 증인이다. 서울 본사의 폐업 위협을 잘 알고 있는 광산 현장 사무소의 소장과 노조 지부장은, 만석을 회유하여 이번 사고를 광부 최씨의 실수로 몰고 가려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보상금마저 요원해진 죽은 최씨를 위해, 박씨를 중심으로 한 일부 광부들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려 한다. 한편 협조한 대가로 내근을 약속받은 만석은, 최씨 가족의 딱한 사연을 전하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게다가 만석은 아들 진욱의 합창 대회 협조 건으로 학교에 갔다가 박씨의 노골적인 통박을 듣게 되고, 이를 기화로 만석의 전직(轉職)과 출세를 질시하는 다른 광부들과 대립하게 된다. 양심의 가책을 견디다 못한 만석은 소장과 지부장을 찾아가 진실을 밝힐 것을 건의하지만, 오히려 탄광소가 안고 있는 문제점만 파악하게 되면서 진퇴양난의 처지로 빠져든다. 죽은 최씨 영혼과의 만남은 이러한 난처한 심정을 심화시킨다. 여기에 만석의 아들(진욱)을 중심으로 한 합창대회 참가 학생들과 박씨의 아들(칠복)을 중심으로 불참 학생들 사이에 집단 싸움이 벌어지고 급기야는 불참 학생들이 사고가 난 14번 탄광으로 들어가 숨는다. 합창대회는 탄광촌 학교로 좌천당한 교사가 출세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계획한 행사였다. 성적을 중시하는 교사는 노래를 못 부르는 학생들은 소외시켰고, 이렇게 소외된 학생들은 총애받는 학생들과 감정적 마찰을 빚게 된 것이다. 혜택과 차별의 이중적 국면은 어른들이 겪고 있는 현안과 부합된다. 따라서 아이들의 대립은, 중심 사건을 보조하는 기능을 한다.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은 아이들이 들어간 14번 갱도 앞에서이다. 만석은 아들에게 분란을 조장하는 합창단에서 빠져나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을 돕도록 설득한다.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특혜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라고 종용받는 셈이다. 이것은 집단의 대립을 무마시키기 위한 개인의 희생이다. 만석 역시 동일한 희생을 결심한다. 만석은 자신이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분란을 가라앉히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에서 환경 논의와 관련되어 주목되는 사항은, 이강백은 윤조병이 간단하게 취급한 산업재해를 보다 부각시켰으며 광부들이 앓고 있는 직업병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먼저 광산 매몰 사고와 같은 산업재해에 대해 먼저 살펴보자. 윤조병의 [모닥불 아침이슬]도 광산 매몰 사고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무대의 중심은 매몰된 탄광 내부이다. 구조를 기다리는 광부들은 삶의 여정과 꿈의 향방을 털어놓고, 또 일부는 환상의 형태로 삶과 꿈의 편린을 대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재해가 담지하는 사회적 맥락을 살피지는 않는다. 이강백의 [쥬라기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이 작품에서는 산업 재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 지적되고 있다.
하나는 석탄 채산성의 악화이다. 서울 본사는 빌미만 생기면 탄광소 폐쇄를 감행할 기세이다. 이로 인해, 각종 사업조건이 열악해지고 어려움이 발생해도 광부들은 항의조차 하지 못한다. 소장과 지부장이 최씨에게 누명을 씌우고 만석에게 거짓 증언을 부탁하는 것도 이러한 영업소 상황에서 비롯된다.
다른 하나는 안전 시설의 미비이다. 투자자와 경영자는, 투자비용의 절감으로 채산성이 감소하고 있는 석탄 산업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투자 절감은 각종 안전 시설을 허약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건강진단이 허술해진다. 이에 맞서 피고용자측은 스스로의 안전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는 안전 진단의 강화이다. 그런데 이 비용을 환풍기를 사는 자금에서 전용함으로써, 다른 안전 설비에 헛점을 드러내고 만다. 이러한 악순환은 근본적으로 잘 고쳐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의 논리는 최소투자와 최대생산에 있으므로 공적 자금이 없이는 이러한 악순환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에는 규폐증의 실체와 위험성이 경고되고 있다.
지부장 자넨 규폐증에 걸렸다는군. 양쪽 폐가 이렇게 석탄덩어리처럼 단단히 굳어지기 시작했다는 거야.
만 석 (상반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엑스레이 필름을 나꿔채듯이 빼앗아 들여다본다).
지부장 규폐증에 걸리면 잘 먹어야지. 몸도 함부로 쓰지 말구. 그래야 생명이 조금이라도 더 연장되는 걸. 만석이, 자네 좀 쉬운 일로 옮겨주지. 하늘도 바라보이고 맑은 공기도 맘껏 마실 수 있는……
한 직종에 오래 근무를 하게 되면, 직업으로 인해 크고 작은 일종의 재해를 경험하게 된다. 재해의 정도는 직업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격차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 직업이 환경적 폐해와 관련 있는 경우라면 이러한 재해 자체가 생태 위기의 한 범주로 포함될 수 있다.
광산촌의 열악한 작업 환경은 규폐증이라는 난치병을 유발한다. 오염된 작업장과 강도 높은 노동량은 광부들에게 천형이 아닌, 인공적 재해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것은 존 벨라미 포스터가 지적한 생태 파괴 요인 중에 직업상 재해에 해당한다. 이것은 발달된 산업사회에서 생겨나는 간과할 수 없는 생태계 파괴 현상 중 하나이다.
2) 적조 현상 : [물고기 남자]의 배경은 여름철 바닷가 양식장이다. 이 양식장은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꾀임에 넘어간 이영복과 김진만이 지난 가을 전문 브로커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이 되자 적조 현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양식 물고기가 집단으로 폐사한다. 적조현상은 플랑크톤이 대량 번식하여 집적됨으로써 바닷물이 변색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적조현상은 부패성 유기 오염물질과 미량금속 및 증식촉진물질이 풍부하게 용존되어 있고 일사량과 수온과 염분 등의 환경조건이 적당한 곳에서 플랑크톤이 대량 번식하여 발생한다. 특히 바람이나 조류의 영향에 의하여 한 곳에 집적되면 고밀도 적조가 발생한다. 생활하수가 다량으로 유입되고 저층에 퇴적된 영양물질이 용출되는 곳, 각종 배수유입이 많은 곳, 일사량이 풍부하고 안정된 수괴가 형성되는 곳, 바닥에 유기물질이 많이 퇴적된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폐쇄성 내만이나 연안이 상습 발생 지역이다. 적조 현상이 발생하면 용존산소가 부족해져서 수중생물이 질식사하거나, 적조생물이 생산하는 독소 혹은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황화수소·메탄가스·암모니아 등의 유독성물질에 중독사한다. 이로 인해 어장이나 양식장의 가치가 떨어진다.
김진만과 이용복은 적조현상으로 인해 막대한 거금을 날릴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작품은 양식장을 팔았던 브로커가 등장하여 양식장을 헐값에 도로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이어 근처의 바다를 관광하러 나섰던 유람선이 침몰하면서, 다소 환경 문제에서 빗겨나가게 된다. 그러나 감언이설로 매입자를 속여 막대한 이득을 얻고 양식장을 팔았다가 적조현상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양식장을 되사는 수법을 7년째 반복하고 있는 브로커의 사기 행각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죽은 이의 시체를 찾으려는 유가족과 이를 이용하여 한몫 챙기려는 시체 인양부와 변호사들이 벌이는 눈살 찌푸려지는 행태는, 자연이 파손된 곳에서 인간성마저 온전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킨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이를 착취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으려는 욕망을 지속적으로 증폭시켜왔고, 이러한 욕망은 자연을 넘어 집단과 타인과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단순히 환경 파괴의 심각성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폐의 참담함까지 겨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강백의 의도는 작품을 통해 완전히 살아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바다라는 연극적 기호를 현대적으로 변용하여 환경과 생태의 문제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문제까지 담아내려 했던 시도는 의의가 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3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져 온 어촌극의 상동적 패턴과 바다를 소재로 다룬 오태석 작품의 성과와 변별되는,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담지한 바다를 선보였다는 의의까지 상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와 의미는 환경과 생태의 문제가 인간의 삶 전체와 관련된 것임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적절한 문제제기로 판단된다.
2.3. 김상열의 경우 : 개발과 보존의 논리가 맞서는 현장을 다녀와서
1983년에 공연된 김상열의 [까치교의 우화]는 개발 논리를 앞세워 자연 파괴를 정당화하는 현실 세태를 비판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갈등은 호텔 건설을 빌미로 까치마을을 개발하려는 사람들(서울에서 온 업자와 마을 내의 동조자들)과, 이에 맞서 서낭당과 그 터전인 복주산을 지키려는 젊은이들(명구와 명숙)의 대립에서 파생한다. 이 두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대목을 살펴보자.
명 구 이곳이 국내 유수의 관광지가 되면 주인은 누가 되는 것인가요?
원사장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명 구 결국 우리는 종이나 심부름꾼이고 도회지 돈 많은 사람들이 주인이 될 게 아니냐 이런 말씀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타지역 사람들의 등쌀에 우린 고향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고……
봉 필 하여간 저 놈은 생각하는 것마다 싸가지가 없다니께.
명 구 복주산에 관광호텔이 서는 대신 우리는 서낭당을 잃게 되었습니다.
원사장 지금 말씀하신 젊은이는 지금도 서낭당의 가치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명 구 우리는 확신에 의해서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원사장 그래서 이러한 빈곤이 찾아온 게 아닐까요.
개발측은 빈곤의 퇴치를 호텔 건설의 이유로 제시하고, 환경보호측은 서낭당의 상실을 반대의 이유로 제시한다. 빈곤의 퇴치는 60년대와 70년대를 장악한 군사정권이 앞세운 슬로건이다. 그 결과 전국토에 엄청난 파괴가 일어났다. 경제 건설과 산업화가 우선시되면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1978년 마지못해 <자연보호헌장>을 제정했지만 유명무실했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발전 논리가 원사장과 봉필을 중심으로 한 개발우선론자들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명구는 <서낭당>의 보존을 명분으로 이러한 발전 논리를 반박한다. 명구는 서낭당을 풍속과 문화의 상징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이끄는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서낭당을 미신으로 취급하는 봉필에 맞서고, 서낭당을 함부로 넘겨준 마을 사람들을 꾸짖는다. 더구나 명구는 발전의 허실을 파헤친다. 호텔 건설은 마을 전체의 생업을 바꾸어 놓을 것이고, 바뀐 생업은 외부적 여건(관광객과 업자)에 종속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심화된 종속관계는 필연적으로 생업의 터전을 완전히 빼앗기는 비참한 종말을 부를 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허울좋은 발전 논리에 현혹된 마을 사람들이 개발업자들에 동조함으로써, 일단 명구의 패배로 일단락된다. 그러나 명구는 이에 맞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짜낸다. 그 전략은 마을 개발의 인프라로 건설될 예정인 철근 콘크리트 까치교에 맞서, 허술하지만 정성이 담긴 목조다리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잊혀진 마을의 전통놀이를 부활하여 새로운 출발을 기원하는 것이다. 환경 파괴를 막고 산업화의 논리에 저항하며 전통 문화를 확고하게 계승하려고 애쓴다.
사실 이 작품은 군사정권이 내세운 경제 발전의 논리에 희생되는 한 마을의 운명을 통해, 산업화의 횡포와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침탈에 노출당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까치마을은 경제화의 강제력에 유린당한 우리 국토의 모형인 셈이다. 많은 학자들과 연구자들은 자본주의의 번성이 환경 오염과 생태 파괴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몇 가지 유보사항을 달긴 해야 하지만 대체로 옳은 말이다. [까치교의 우화]는 이러한 주범을 우리에게 공개한 작품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범에 대항하는 근거가 빈약한 것이 흠이다. 환경보호의 근거로 제시된 <서낭당>의 상징성이, 금전적 풍요와 편리한 혜택을 앞세운 개발과 발전의 논리에 비해 허술하게 처리된 것이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환경 보호의 생득적 이유라 할 수 있다. 전통 문화의 보존이나 정신적 구심점의 확보와 같은 측면도 중요하지만, 오염된 환경과 파괴된 생태계 내에서 도저히 살 수 없는 인간의 생존 논리도 함께 고려되었어야 했다.
2. 4. 마당극의 경우 : 작물과 주민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민중들을 중심으로 공해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정면으로 발현된 작품이 [청산리 벽폐수야]이다. 이 작품은 1983년 서울 애오개 소극장에서 <한두레>의 연구 발표로 공연되었다. 이 작품의 소재는 여천공업단지 소재 진해화학을 상대로 그 지역 주민들이 일으킨 피해보상소송사건이다. 피고측의 각종 농간과 과학적 증거 부족으로 인해 이 재판은 7년이나 끌게 된다. 그로 인해 소송을 낸 농민들의 부담은 가중되고, 급기야는 자살을 하거나 야반도주하는 사태에 이른다.
[청산리 벽폐수야]에서 지적되는 공해 문제는 거칠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농작물과 양식 어패류에 나타난 피해 사례이고, 다른 하나는 주민들에게 발생한 공해병이다. 공장에서 배출된 유독성 오염물질은 대기와 수질을 오염시켜 농토를 황폐하게 만들고 양식장의 수질을 악화시킨다. 이로 인해 굴이나 해태 같은 양식 어패류가 패사하고 논농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피고인측은 실무 연구자(안무식)의 권위적인 해석을 등에 업고, 그 책임을 무마하려 한다. 회사측은 공해물질의 차단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며 극소량으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는 작물의 만성 영향뿐만 아니라 성장 지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주민들의 공해병을 변호하는 과정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반복된다. 참고인으로 배석한 의사(닥터진)는 각종 독성 물질의 중독 사례를 열거하고 난 이후에, 이러한 사례는 소송을 건 농민들의 증상과 다르거나 그 인과관계를 확실히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공장 인근 주변 주민들에게 나타난 증상은 영양부족, 알레르기, 저혈압, 신경성, 기생충 감염, 칼슘부족, 과도한 음주, 갱년기 장애 등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은근히 강조한다. 발병 원인을 주민들의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회사가 지역 주민과 경제 발전에 공헌한 내용과, 공해방지를 위해 힘쓴 사실을 과장해서 광고한다.
변호사 여러분은 기업가가 이 지역에 설치해준 아홉 개의 어린이 놀이터와 열 여덟 곳의 노인정, 그리고 백스무 개의 화분과 이백쉰다섯 개의 휴지통을 보지 못하십니까?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복지화학공업이 연간 오천여만 원을 오물세로 납부함으로써 이 지역 행정예산의 약 삼분지 일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부득이하게 복지재벌이 이 지역을 떠나게 된다면 이 부담은 누가 할 것입니까? (관중 한 사람을 지적하며) 당신이 모두 하겠습니까?
이러한 과장과 협박은 정부와 이의 적극적인 옹호를 받았던 기업측이 즐겨 내놓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경제 발전 우선 정책과 외형적 성장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논리의 표상 같은 발언이다. 이러한 경제 논리의 간교한 술책은 같은 해 공연된 [까치교의 우화]에서도 발견된 바 있었는데, [청산리 벽폐수야]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주민들은 회사측의 술책과 논변에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무지한 그들로서는 회유와 과학과 힘을 앞세운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행정당국에 호소하지만, 간접적인 방해로 탄원조차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다. 공해병의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그 피해자가 속출한다. 심지어는 정든 땅을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접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기업과 정부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비판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무관심과 이기심의 원인을 냉철하게 따져보지 못한 점이며, 고발과 비판 이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부족한 점이다. 이제 환경 파괴에 대한 연극적 보고서는 이러한 냉철한 시각에 대해 다시 천착하고 그 전망을 내세울 때가 된 것이다.
3. 헤라클레스의 지혜를 지켜보며
헤라클레스는 서양의 항우 같은 인물이다. 그는 <역발산 기개세>의 능력을 지녔던 그리스 최고의 역사(力士)이다. 그는 네메아의 사자를 물리쳤고 불멸의 괴물 히드라를 죽였으며 온갖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했다. 그러나 주어진 대부분의 난제들은 그의 힘과 용맹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을 따름이다. 정작 그의 지혜를 알려주는 일화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하나를 고르라면 아우게이아스의 마굿간을 청소한 일화를 들 수 있다. 아우게이아스는 엘리스의 왕이었는데, 소를 3천 마리나 기르는 마굿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마굿간을 30년 동안이나 청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청소를 하는 일이 헤라클레스가 맡은 열 두 가지 난제 중에 세 번째 임무이다.
헤라클레스는 알페이오스와 페네이오스 두 강을 끌어들여서야 마굿간을 청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더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작업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우리는 단편적 진술을 통해 인간이 청소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굿간의 상황이 최악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천하역사인 헤라클레스조차 힘으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을 만큼 그 상태가 심각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마굿간을 인공적인 재앙으로 간주할 수 있겠다. 이 마굿간은 온갖 노폐물을 배출하고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고 토지의 사용을 제약했으며 또한 각종 식물의 성장을 방해했을 것이다. 소음이나 악취로 인한 피해도 자못 대단했을 것이다. 해충과 전염병의 온상지였을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생존 여건은 날로 악화되었을 것이고 당시의 취락 공동체에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따지면, 아우게이아스의 마굿간은 현재의 공장이나 핵 발전소와 같이 당시의 주변 환경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인위적 산업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마굿간을 청소해야 하는 헤라클레스의 처지는 환경 오염에 대항하는 당시의 민중들의 입장을 말해준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헤라클레스가 시도한 태도와 지혜이다. 헤라클레스는 개인적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자연의 힘을 신뢰했고, 그 정화력을 이용했다.
우리의 환경 문제도 동일하지 않을까. 인간은 인간의 힘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것도 가급적이면 단시간 내에. 그 방법이 과학을 앞세우든, 자본주의를 수정하든, 아니면 개인적인 노력을 실천하거나 전지구적인 노력을 계획하든 간에, 모두 인간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우리는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고만 하지, 그 문제를 자연과 상의하려 하지 않는다. 시혜의식을 내세워 자연을 다시 한 번 괴롭힐 가능성도 농후하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공명심에 사로잡혀 또 한 번 자연에 대한 가택 침입을 자행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환경 오염과 생태 위기를 보는 우리 작가들의 눈에 이러한 가택 침입의 위험성이 각인되었으면 한다. 아무리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자연을 일방적으로 다루려는 인간의 힘은 반드시 반대급부를 부르기 마련이다. 또 인간에게 그 능력은 영원히 요원할 수도 있다. 헤라클레스처럼 인간의 문제를 자연과 상의하여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참 지혜이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연 자체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환경과 생태 문제의 문학적 해결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에 있지, 한때 반짝하는 이슈로 여기고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가 그 논의를 새로운 관심으로 옮겨가는 방식에 있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오태석의 노력은 작고 그 성과가 미미하지만, 꾸준하고 조금씩이지만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 희곡에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문제는 오태석이나 이강백 같은 꾸준하지만 조금씩 그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는 작가에 의해 양성되어야 할 줄로 안다. 그러나 환경 오염의 실태가 아닌 원인을, 현재적 상황에 대한 비판보다는 대안을 이제는 생각할 때이고, 또 환경오염과 생태파괴를 저지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투명하지 못한 이유를 보다 확고히 할 때라는 인식을 먼저 다져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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