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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신작시/박쥐란 외 1편/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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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종인
댓글 0건 조회 3,374회 작성일 03-03-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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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란 외 1편
유종인


콘크리트 바오밥나무 같은 아파트에서 나는 옛집을 떠올렸다 하얀 고드름이 허공의 무처럼 자라나던 날림 집, 겨울은 심장병에 걸린 시궁쥐들과 속이 빈 무를 나눠 먹으며 살았다 뜨거운 냄비에 봉황의 무늬가 오그라든 플라스틱 밥상에선 겨울 햇살도 한 장의 파래김처럼 눈길로 집어 먹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 창틀로는 먹좀벌들이 여인숙처럼 드나들었다 나는 그늘로만 옮겨다니는 내 영혼의 무늬에 돋을새김의 날들을 기다렸으나 먼지만이 눈치껏 내 그림자를 피해 쌓여갔다 자꾸 오그라드는 내 마음인데 그림자는 몸보다 긴 혀로 나를 끌고 다녔다 희망이 있다면 그건 끝없이 날 오해하여 갈 날들이었다
여자도 없이 수많은 아이들이 내 마음의 이파리 뒷면에 열매처럼 매달렸다 소리없이 시들어갔다 여름날 어두워지는 무덤가에서 나는 커다란 왕사마귀 한 마리와 활극(活劇)을 벌이다 지쳐 돌아왔다 누구의 무덤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동네 개들은 낯선 눈빛으로 내 안에 든 어둠을 짖었다 내 뿌리는 곧 날개와 같아 습한 허공에도 묻어두었다 꺼내어 펄럭였다 간과 쓸개가 아닌 간음(姦淫)과 정조(貞操) 사이에도 꽃은 피리라 끝없이 뻗는 벼랑 같은 나무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날아오르는 중에도 젖 먹던 힘이 뿌리를 허공에 서려두었다








아이가 머리를 꾸벅거린다
자전거를 세우고
대로변 작은 공원 벤치에 눕힌다

낮잠이 찾아온 거다
순간 쓰르라미 소리가 쏟아진다
4차선 아스팔트엔
쌩쌩 내달리는 레미콘 트럭들
더운 공기의 뺨을 후려치며 달아난다

잠든 아이의 두 귀가
쓰르라미 소리와 덤프트럭 스치는 소리를
나눠 갖는다 아니
나눠 먹다가 귀가 막힌다

어느 것이 이명(異鳴)인지
어느 것이 자연(自然)인지

아이가 돌아눕는 쪽, 느티나무 그늘이 더 짙다

똥 싼 기저귀를 가는 동안
참 먼 길을 달려온 곡식들의
소리를 누런 똥냄새로 맡아본다

처음, 소리의 푸른 잎사귀가 서걱대던 곳에
귀를 맡겨두었다고, 비듬이나 매달고 사는
머리카락 잎사귀를 뒤로 넘긴다  



유종인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아껴 먹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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