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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신작시/기름보일러는 돌아가고 외 1편/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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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 정
댓글 0건 조회 3,608회 작성일 03-03-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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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보일러는 돌아가고 외 1편
여정


방바닥에 드러누워 관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다. 내 뇌는 물소리를 거슬러 나를 끌고 기름통으로 들어가고 나는 액이 된 주검들과 잠시 뒤섞이고 있다. 주검들이 방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주검들이 집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내 뇌는 주검들에 이끌려 식탁으로 나아가고 나는 잠시 식탁 위에 놓인 동식물의 주검들을 내려다본다. 주검들이 나를 배부르게 하고 있다. 주검들이 나를 따뜻하게 하고 있다. 내 뇌는 나를 공동묘지로 만든다. 내 뇌는 나를 수많은 주검들과 자꾸 뒤섞이게 만든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온갖 주검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이고 있다. 그 울음소리에 등은 따뜻하고 배는 부르다. 내 뇌는 내 방에 들어찬 온갖 사물들을 동식물의 주검으로 되살리고 있다. 내 방이 온갖 주검들로 꽉 채워진다. 주검들이 내 방을 꾸며주고 있었다. 주검들이 내 무료함을 달래주고 있었다. 내 뇌는 나를 공동묘지로 떠돌게 만든다. 내 뇌는 수많은 주검들을 불러내 나를 자꾸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시체, 시체, 시체, 내 방에는 수천 년 전에 죽은 주검들과 얼마 전에 죽은 주검들이 갈가리 찢겨 뒤섞여 있고 나는 그 시체들을 입고 먹고  보고 즐기면서 잘도 돌아가고 있다. 내 뼈와 살에도 온갖 주검들이 갈가리 찢겨 뒤섞여 있고 내 뇌는 그런 나를 끌고 관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휩싸이게 만든다. 시체, 시체, 시체, 내 뼈와 살은 물소리에 점점 가루가 되어 흘러가고 내 뇌는 그런 내 뼈와 살에서 온갖 동식물의 주검들을 되살리며 관을 따라 잘도 돌아가고 있다.






원 룸


이 놈의 방, 변기와 식탁이 함께 놓여 있는, 밥그릇에 똥덩이가 가득  담겨 있는, 이 구린내, 세면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개수대에서 낯을 씻고, 두 개의 줄이 끊긴 기타가 두 개의 줄이 끊긴 노래를 부르고, 구두엔 뿌연 먼지들만 쌓여가는, 이 망할 놈의 방, 먼지 쌓인 구두가 발목을 자르고, 두 개의 줄이 끊긴 노래가 두 개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얇게 썬 면상들을 개수대에서 건져내고, 씻은 그릇들을 면상에 잘 포개어놓는, 이 구린내, 변기에 걸터앉아 죽을 쑤는, 나 하나로도 꽉 차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이 죽일 놈의 방


여정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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