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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신인상(시부문)/ 四捨五入, 6時 외 4편/김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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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섭
댓글 0건 조회 3,256회 작성일 02-11-0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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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시부문)
김영섭


四捨五入, 6時


벽시계 아래 옥신각신하던 두 아이 지금 몇 시냐고 묻는다.
6시야. 의아한 표정으로 눈만 끔벅인다.
조금 뒤, 지금은 몇 시냐 또 묻는다. 6시야.
여덟 살 먹었다는 근심어린 눈 나를 쳐다본다. 그런데요,
제가 보니까요 조금 전에는 5시 58분이었고 지금은 6시3분인데요
아저씨는 왜 자꾸 6시라 그래요?
그래 5분, 사사오입이 황급히 도망친다.
대충 애매모호 굶어 죽어도 싸다 콱 쥐어 박힌 오늘은,
친구 마흔 네 번째 생일날.





겨울나무와 나 사이


1.
그가 가장자리부터 몸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 무렵 그에게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2.
그가 얼음장같은 손을 내밀었습니다
나 역시 꼭 선택해야할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없다며 손을 맞잡았습니다

3.
십자형 발자국이 선명했습니다
휙휙 날아들어 신비로운 체온을 내려놓던 것이 새였던 모양입니다
그땐 영문도 모른 채 우리는 따뜻했습니다
生을 품고 있었음을 눈치챘을 때 이미 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4.
그 일에 대해 까마득해진 나는 붉은 밑줄을 그어가며 데미안에 열중이었습니다
어느 페이지에서 그가 초록계통의 의식들을 주르르 쏟아내고 있습니다

5.
발가벗은 몸이 타인에게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비목(碑木)처럼 서 있었습니다




새벽을 훔치다


본드 같이 눌어붙는 어둠, 그 위에 고착된 쥐새끼 한 마리

숨구멍을 내어줄 새벽이 필요해
세상을 챙겨 줄거라 믿었던 오래된 관념들,
진작에 헤어져야 했었어

내 왼쪽 뇌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식은땀을 흘린다
자궁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훔쳐간 새벽을 내놓으라 한다

귀신 머리채를 휘어잡고 나를 낳았던
어미의 새벽이 한 줌이라도 남아 있다면
여기까지 달려오지 않았다
만에 하나
해가 뜨지 않으면…… 해가 뜨지 않으면……
촛불이라도 밝히리?



詩, 그 불감증에 대하여


박형, 오늘은 김수영, 신동엽, 고정희, 기형도, 이들을 임의 동행했습니다 몇 밤을 꼬빡 새더라도 추궁해 볼 작정입니다
처음 詩를 쓴 것은 어린 날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내 동화 속 아저씨는 소주병 하나를 가져가면 오 원을 쳐주었는데 다섯 개를 가져가자 이십 원을 쳐주었습니다 또 간장병은 왜 쳐주지 않았는지, 내 詩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되었지요 그 무렵 이미 내 묘사는 아름답다 슬프다 그립다며 짙은 병색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서 모자이크 된 내가 날마다 죽어갔습니다
툭툭 꺾어지는 내 묘사를 녹여 줄 인디언 섬머를 찾고 있었거나, 요절한 내 詩를 위해 자학하고 있었음을 저들의 알리바이로 증거해 주리라 위안한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네 시인의 심장이 다 헤지도록 뒤적입니다
마침내 나는 어느 페이지에 갇혀 나 자신을 심리하고 있습니다
박형, 세상사람이 아닌 기형도에게 그날밤 일은 차마 묻지 못하고, 詩 밖에 있는 나는 지금 기소유예 중입니다




 봄에는 울지 마


벚꽃나무에 올라간 그 여자는 끝내 내려오지 않았다 밤마다 찾아와 말라붙은 유방에 젖을 돌게 하는 구릿빛 사내가 생겼다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 나는 빈 의자처럼 태연하다가…… 발이 시리다

-화(火)자가 네 개나 들어있는 내 이름에 피식 웃음이 난다-

까칠까칠한 내 목덜미에서 그녀의 허물이 뿌옇게 인다 갑자기 빨간 점멸등이 깜빡이고 관자놀이에서 유리잔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드르륵 내 옆구리를 열고 또 누군가 쿵쿵 뛰쳐나간다 확- 불어오는 향기에 진저리친다

(그놈이 깜깜한 무덤 하나를 만들어 놓고 도망칠 거라고 나는 악담을 퍼붓는다)

눈발처럼 꽃잎이 날린다




 그 겨울, 밖에 있었다


1.
바람이 분다
여자는 계속 접속을 시도한다
이미 나는 플러그가 뽑혀 있다

2.
그녀가 빗장 지른 문을 흔들어댄다 싸한 인기척이 흔들리자 벽이 흔들리고 나 또한 흔들흔들 한다
달력이 펄럭이고 섣달 스무닷샛 날의 顯 孺人咸安趙氏神位(현비유인함안조씨신위)가 흔들거린다 본적 없는 여자가 흔들흔들 들어온다
모두 흔들리고 내 하복부에 X-레이 필름 같은 나무가 꼿꼿이 선다

3.
곧추세운 나는 여자의 몸을 풀어헤치고 얼음 알맹이 같은 아이 하나를 밀어 넣는다 아하 나는 경이로운 후생을 만난다

4.
여자가 몸을 풀었다
시린 바람이 아버지 아버지라 칭얼대며 겨울 밖까지 따라 왔다




<당선소감>
혹독한 시간을 위하여

내 피와 살, 아니, 나 자신을 나는 먹어본 적이 없다. 시도를 하거나 그러기로 작정한 적도 없다. 꽃은 꽃을 떨구고 나서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나는 단지 아픔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맛을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거짓이었다. 비로소 깊은 독에 들어 이제 뚜껑을 덮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철저한 자기소화가 이루어질 때 나는 진정 자유로워지리라 믿는다. 꾸덕꾸덕 말라버린 육포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글에 엄청난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혹독한 시간을 갖겠다.




<심사평>
자아의 눈 트임 돋보여

10편 중 「사사오입, 6時」, 「겨울나무와 나 사이」, 「새벽을 훔치다」, 「봄엔 울지 마」, 「시, 그 불감증에 대해」 다섯 편을 골랐다. 「사사오입, 6時」는 사물의 생명(시간)을 예의 관찰하는 어린아이에 비해 대충대충 애매모호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희유적으로 꼬집고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새벽을 훔치다」와 「봄엔 울지 마」는 관념의 해탈을 시도하는 시인적 진지함이 좋았고, 「겨울나무와 나 사이에서」는 육체의 검불에서 솟는 신비스런 다른 체온을 느끼는 자아의 눈 트임이 돋보였다. 「시, 그 불감증에 대해서」는 감정의 진실한 발로에서가 아니라 모자이크로 짜여지는 자신의 시에 대한 자책, 자기 성찰이 주목되었다. 한마디로 지나친 열과 욕에서 생겨나는 눈꼽을 씻고, 맑고 따뜻한 시선으로 사물의 본모습을 다시 보려는 태도가 좋았다. 계속 분발을 빈다.
 예심-편집위원회 본심-김동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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