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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신작시/권대웅 팔월의 눈사람 외 1편/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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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대웅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 <당나귀의 꿈>과 장편동화 <돼지저금통 속의 부처님> 등이 있다.
팔월의 눈사람
여름내
해바라기가 머물던 자리
나팔꽃이 피었다 사라진 자리
목이 쉬도록 살아있다고
매미가 울어대던 자리
그 빈자리
흔적도 없이 태양이 거두어 가버린
팔월의 눈사람들
폭염 한낮
밥 먹으러 나와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후줄근 흘러내리는 땀에
나도 녹아 내리고 있구나
문득 지구가 거대한 눈사람이라는 생각
눈덩이가 뒹굴면서 만들어놓는
빌딩들 저 눈사람들
팔월 염천(炎天)
해바라기가 있던 자리
화들짝 나팔꽃이 피던 자리
내가 밥 먹던 자리
돌아보면
그 빈자리
선뜻선뜻, 홀연, 가뭇없이.
화석
어느 날 갑자기 수화기에서 돌멩이들이 튀어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붉은 벽돌이 시멘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나의 혀는 축대처럼 굳었다 할말이 없다
신문을 읽으면 자갈밭을 걷는
자판기를 두드리면 찍혀있는 알 수 없는 새 발자국들
나는 이제 나를 나라고 쓸 수가 없다
저 돌로 되어있는 도시
저 돌로 지은 집
저 돌로 지은 마음
나뭇잎과 슬픔을 섞어보아도
다시 한 번
구름과 눈물을 범벅해 보아도
나를 쓰는 것이 너를 읽는 것이
가시덤불 헤쳐나가는 것처럼 힘들다
어느날 깨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본 것은 말하는 벙어리들
어느날 깨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읽은 것은 박쥐들의 언어
말하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삶 꿈꾸었다
비틀비틀 돌멩이를 맞으며 돌멩이를 읽으며
수세기가 지나간 어둠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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