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6호/권두언/맹목적 프리바토피아를 넘어/고명철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고명철
댓글 0건 조회 4,050회 작성일 02-06-23 16:02

본문

   맹목적 프리바토피아를 넘어
   고명철(문학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나라 안팎이 소란스럽다. 월드컵 개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각종 매스컴에서는 월드컵에 관련된 보도로 분주하며, 정치권에서는 각 정당의 대선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국민경선제를 도입함으로써 정치에 냉소적인 국민으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을 갖도로 하였으며, 중단되었던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다시 금강산에서 이루어져 분단의 아픔을 환기하였으며,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에서 여전히 잔존해 있는 각종 게이트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다시 한번 우리사회의 윤리적 불감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동의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 갈등의 양상은 중동의 평화를 그 어느 때보다 위협하고 있는 바, 이것은 지난 해 9.11사건이 있은 이후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선포와 무관하지 않다. 얼굴 없는 적과의 무기한적 전쟁이 선포한 이래 강대국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대테러 전쟁이란 국제적 명분 아래 약소국을 향해 힘의 논리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조금만 나라 안팎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본다면, 우리는 실로 혼돈의 국면에 놓여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전개되는 나라 안팎의 상황이 이처럼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적 삶은 여전히 예의 것들과 무관하게 반복되고 있다. 점점 더 개인의 일상성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소외된 채 지극히 사적인 삶의 영역으로 고착되고 있다. 집단과 공동체의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사적인 유토피아인 이른바 프리바토피아(privatopia)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물론 이러한 면을 두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만은 없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개인의 일상성이 온전히 유지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왜곡된 근대성'으로 인해 개인의 일상성이 국가의 성장위주의 발전주의 전략에 예속됨으로써 '참다운 개인의 발견' 혹은 '참다운 일상의 발견'을 할 수 없었음을 고려해볼 때, 저간의 프리바토피아에 대한 욕망은 나름대로의 명분을 갖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프리바토피아의 추구 여부가 아니라 그 프리바토피아가 담지해야 될 구체적 성격이다. 우리가 앞서 나라 안팎의 복잡한 정황을 상기해본 데에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프리바토피아는 한갓 관념의 차원에서 욕망하는 신기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아젠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개인의 참다운 일상성을 발견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라고 생각된다.

   ≪리토피아≫의 이번 호 특집에서는 근래 발간된 신생 매체들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보았다. '매체의 르네상스기'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90년대 후반 이후 가히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신생 매체들의 현상을 지켜보면서 여러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양적인 증가에 비해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매체의 급증은 그만큼 우리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적인 매체들을 통해 합리적 의사소통에 대한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견해도 있다. ≪리토피아≫는 매체가 급증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주목할 만한 신생 매체를 집중 점검해보았다. 정문순의 [문학의 탈정치화와 문학집단의 정치학]에서는 문학계간지 ≪문학·판≫이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날카로운 비평적 문제의식으로써 진단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생 매체로서 독립성을 담보해야 될 ≪문학·판≫이 ≪문학과사회≫의 아류와 같은 성격을 띤다는 정문순의 비판은 신생 매체가 지녀야 할 정체성을 냉철히 생각해보게끔 하는 값진 성찰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승하의 [21세기 비평의 진원지가 되기 위하여]에서는 비평전문지 ≪비평과전망≫이 그동안 거둔 성과와 한계를 꼼꼼히 짚어내고 있다. 이승하의 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비평과전망≫에 대한 그의 애정어린 비판이다. 그는 12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비평과전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나름대로 제시해주고 있다. 그의 글은 그 동안 ≪비평과전망≫에 대한 공개적 통로를 통해 생산적 비판의 대화가 없었음을 고려해 볼 때 소중한 문제의식이다. 이것은 비단 ≪비평과전망≫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다른 신생 매체의 현재적 모습을 성찰케 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세심한 일독을 권한다. 그런가 하면 안남일의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마당]에서는 시민운동의 이론적 실천의 교두보를 제공해주기 위해 창간된 ≪시민과 세계≫라는 매체를 점검하고 있다. 사실 ≪리토피아≫가 특집에서 ≪시민과 세계≫를 주목하는 이유는 앞서 우리가 추구해야 될 프리바토피아의 성격을 언급했듯이 ≪시민과 세계≫가 바로 우리사회에서 성숙한 시민의 세계를 추구하는 데 활발한 담론의 장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안남일의 글은 이러한 ≪시민과 세계≫에 대한 전반적 성격을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값지다.
   이처럼 특집 외에 ≪리토피아≫는 지난 해 연말 세상을 타개하신 김구용 시인의 시세계를 점검해보았다. 구용 시의 난해함 때문인지 아직까지 이렇다할 만한 본격적인 비평과 연구가 진척되지 않는 터에 ≪리토피아≫의 이번 기획은 비록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있으나, 구용의 시세계가 활발히 논의되었으면 하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조해옥의 [전후 인간의 파괴적 자화상]에서는 구용의 시집 {시}를 중심으로 50년대 구용의 시세계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금까지 구용 시에 대한 논의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한 시기에 국한시켜 집중적으로 구용의 시세계를 논의한 비평은 없는 터에 조해옥의 이번의 비평은 이후 구용 시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배인환은 구용 시의 3부작을 비평가가 아닌 시인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있으며, 이진명은 구용의 생존 시절의 추억담과 얽힌 구용의 삶의 흔적을 차분히 반추하고 있다.
   ≪리토피아≫의 이번 호에도 역량 있는 시인과 소설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문예지의 생명은 좋은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게 일차적 생명이라는 사실을 ≪리토피아≫는 잊지 않고 있다. 다양한 문예지에서 작품이 소개되고 있으나 ≪리토피아≫에서는 가능한 더 많은 우수한 작품을 소개하여 창작의 일선 현장에서 오늘도 영혼의 언어를 갈고 다듬고 있는 문인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울 것이다.
   ≪리토피아≫는 창간호 이후 문화 부문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호에는 주창윤의 [텔레비젼 시트콤의 장르형성과 웃음의 구조]를 통해 근래 안방극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시트콤을 살펴본다. 주창윤의 글에는 지금까지 무심코 시청했던 시트콤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위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한다. 그밖에 김미혜의 연극 에세이는 연극 <시골 선비 조남명>(이윤택 작·감독)을 관람한 이후 어수선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선비의 참된 모습을 숙고하게 함으로써 학인(學人) 또는 지성인으로서의 현재적 위상을 재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리토피아≫의 여름호에 옥고를 보내주신 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며 문화의 질적 도약을 위해 오늘도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문화 전사들이 있기에 우리의 척박한 문화 토양에서도 알찬 문화의 열매가 열리는 게 아니던가.

추천4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