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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신작시/배용제/'落胎, 꿈속의 아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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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배용제
댓글 0건 조회 3,505회 작성일 02-11-0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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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배용제
1963년 정읍 출생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삼류극장에서의 한때}


落胎, 꿈속의 아이


이 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아이,
검은 화면에서만 반짝거리던 빛의 아이,
여자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린다

주사바늘을 통하여 夢幻의 이물질들이 흘러든다
천장의 불빛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와
꿈의 도구들을 들여다본다
한 점 반짝거림, 아이는 날카로운 금속성에 소스라치며
울음을 터트린다
밖으로 밀려나온 눈물방울이 주르륵 흐른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은 꿈속을 떠돌았다고 안간힘을 쓰지만
생의 뿌리를 움켜쥐거나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게
손발을 잘라버린다
거머리처럼 질긴 꿈의 블랙홀 속으로
핏빛 반점이 되어 까마득하게 멀어진다
아이가 빠져나가자 여자는 딱딱한 생의 바닥에 누워
모든 꿈이 텅 비어버린 몸으로
천천히 눈가에 묻은 축축한 아이의 흔적을 더듬는다

여자는 밤마다 꿈속으로 아이를 만나러 간다
깜깜한 화면에서 사지 잘린 몸으로만 떠도는
핏덩어리 달, 배고파 우는 아이,
젖을 먹여야 되는데
손을 내밀어도 잡히지 않는 아이,
끝내 허우적거리다 돌아와
젖가슴 가득 부풀어오른 맹목적인 슬픔을 쥐어짠다
수수억년 꿈으로만 스미는 달이 둥글게 차 오른다.





공중의 사막


말라붙은 공중으로 사막이 몰려온다
타클라마칸이나 고비 어디쯤에서 뒤척이며 
뜨겁게 익은 죽음의 알맹이,
고대의 유물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난다
거꾸로 처박힌 수많은 피라미드에서
미라들이 쏟아져 나오거나 들어간다
경적소리를 내며 왕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한 무리의 들소 떼가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가고
사방에서 전쟁이 터지고 화살촉 같은 비행기가 지나가고
쉴새없이 신전을 향한 표를 예매하지만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없다
곳곳에 건설된 무덤에서 무덤으로 오고가는 길뿐
이 거대한 모래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달아오른 바람의 혀는
긴긴 세월동안 지구의 뼈와 살을 발라내었다
이제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검은 얼룩으로 흐릿하게 묻어있는 흔적을 더듬으며
간신히 기억해낸다
공기조차 모래의 꿈을 꾼다
수도꼭지에서는 누런 모래눈물들이 쏟아지고
갑자기 독오른 전갈처럼 아이들이 뛰쳐나간다
사막의 골짜기마다 모래문자들이 전송된다
밤이면 모래의 연인들이 뜨겁고 건조한 사랑을 나눈다 
모래시계가 뒤집어지고
다시 처음부터 모래의 나날이 시작된다
누렇게 곪은 태양의 알들이 여기저기서 부화된다.
추천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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