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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신작시/박미영/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잘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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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미영
댓글 0건 조회 4,044회 작성일 02-06-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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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박미영
1963년 대구 출생. 1997년 《현대시》로 등단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잘 수 없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자고 만다 외 1편


달빛 아래 너무 오래 잔 걸까
오랑캐꽃 피었다  
자전거 끌고 힘겹게 언덕 올라오는 아버지
흰 옷 걸친 가엾은 예수
달빛 눈부셔 오랑캐꽃 씨방 둥글게 몸 부풀린다  

지금 또 잠들면 분명히 악몽을 꿀 거야
아버지 달을 뭉개고 화약냄새 풍기는 편지를 디민다
얼크러지는 달빛 먼 전쟁터 흙먼지처럼
눈을 쏠고 지나간다 오랑캐꽃 푸른 씨방을 핥고 지나간다
안, 녕,
죽어가면서 너에게 쓴다
그대여

아, 아, 나는 너무 오래 잔 걸까
아버지 자전거가 밟고 간
오랑캐 꽃잎 젖히자
달빛 주르륵 흘러내린다






어느 날 입맛이 참 써서


어느 날 입맛이 참 써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치자
숟가락에서 흘러내린 흰 죽이    
수포 둥글한 물꽃의 젖혀진 잎
물쿨한 물집처럼 역겹다치자
그렇다치자
뜨거워 몸부림치다 두부 속 기어들어 죽어간다는 숙회
흡반을 목젖에 붙여가며 죽어간다는 낙지도 그렇다치자
진물이 흘러내리는 터진 물집처럼
그 터진 물집처럼 어느 날
삶이 터져버려
  
숟가락에 간신히 붙어 흐르는 흰 죽처럼  
시커멓게 동강난 건물 창에 붙어 서서 흰 수건 흔들던
그들이 흘러내린다치자

숭숭 썬 두부숙회 속 미꾸라지처럼
풀 한 포기 없는 빈 산 방공호에서, 불타는 건물에서, 폐허에서
미꾸라지 몸통처럼 그들이 웅크려 신음한다치자  

그 거대한 아가릴 연
그 속으로 그 속으로
삶이, 집이, 숟가락이, 어느 날이, 다 달려가
퍽 터져버린다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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