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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단편소설/열목어/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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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종성
댓글 0건 조회 5,423회 작성일 02-06-2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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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김종성
1953년 강원도 평창 출생.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재학 중. 1986년 《동서문학》 신인상 중편소설 당선으로 데뷔. 중단편집 『탄(炭)』(미래사), 『금지된 문』(풀빛), 『말 없는 놀이꾼들』(풀빛) 출간.

열목어
  

1.
" 저 메기가 좀 이상해요?"
순영이 어항의 두꺼운 유리벽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말했다.
" 매기가 이상하다고?"
권실장이 뒷짐을 지고 어항 곁으로 다가갔다.
" 다른 물고기들은 다 놀고 있는데 왜 저놈은 저렇게 누워 있는 거죠?"
"그건 메기는 낮에 자고 밤에 활동하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런가요. 버들치 같은 고기는 잘 죽는데 메기는 잘 죽지도 않는 게요."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물이 오염되면 버들치가 빨리 죽지. 열목어. 산처어. 버들개. 버들치가 살면 1급수, 꺽지. 쉬리. 퉁가리. 자가사리. 은어가 살면 2급수, 잉어. 붕어. 뱀장어. 메기. 미꾸라지가 살면 3급수지."  
"실장님은 물고기에 대해서 언제 그렇게 공부하셨어요?"
" 내 친구 하나가 민물고기연구소를 하고 있어. 연구소에 들락거리면서 들은 이야기야.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잖아."
  권실장이 슬몃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실장님, 오른쪽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어요."
"응, 어젯밤 늦게까지 책을 좀 읽었더니 그런가봐."
"안약 넣으세요."
   권실장은 일간 보고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제 만나고 온 사람들 이름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을 적는 것이었다. 겨우 8명밖에 못 만나고 왔다고 위로 찢어진 눈꼬리를 치뜰 안사장을 생각하니 몸이 잔뜩 움츠러졌다. 인터폰이 울리더니 정상무가 사장실로 들어갔다. 간간히  안사장의 꺽진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권실장은 주간 보고서를 펼쳐들었다. 광대뼈가 나오고 볼이 들어간 그는 퍽 수척해 보였다.  
정상무가 길쭉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사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아동물 출판사로 유명했던 계명사에서 20년간 단행본과 잡지 편집을 하다가,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었던 계명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자,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게 되었다. 편집기술에 뛰어난 그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안사장은 그를 상무로 초빙했다. 이름이 상무이지 편집교정원이었다. 월급도 계명사에서 받던 것의  3분의 1도 안되었다.
서부장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사장실에서 인터폰을 내려놓는 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서부장이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사장실로 들어가자마자, 안사장의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 또 시작하는구나."
정상무가 교정지에다 머리를 푹 박았다.
안사장이 점심 식사하러 밖으로 나갔다.
" 이거 어디 주눅 들어서 일해먹겠어요."
사무실의 안의 얼어붙은 공기를 깨트린 사람은 임대리였다.
"이 달이 보너스 달이잖아. 보너스 안 줄려고 머리 쓰는 거야."
서부장이 매출 전표를 책상 위에  휙 던지며 한마디 했다.
"월급을 매 달 두 번 주는 수법은 어떻고. 내 이놈의 회사에 5년째 다니고 있지만 세금 한 푼 낸 적이 없다니까. 명색이 상무인 내가 매달 82만원을 받는다고 세무서에다 보고 한다더군."
"그래도 상무님은 세무서에 이름이나 올라가지요. 우리 회사서 정식 사원으로 신고가 돼 있는 사람은 사장님까지 모두 셋뿐이래요."
순영이 가늘고 긴 눈을 깜박거리며 말했다.                  
" 자, 점심식사 하러 갑시다."
오전 내내 숨을 죽이고 교정지에 머리를 박고 있던 정상무가 교정지를 서랍 속으로 밀어 넣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무더운 날씨였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휴가 철이 시작된 것이다. 햇볕은 사정없이 내리부어지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앞서 걷던 권실장이 천천히 문을 밀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로  파고 들어왔다. 수원지방법원이 필로폰과 엑스타시를 먹은 유명 여자 탤런트에게 징역 1년 6월형을 구형했다는 소식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마악 흘러나왔다.
" 필로폰도 모자라 엑스타시를 먹어? .............우린 무얼 먹나?"
주름살이 패인 이마 위에 드리워진 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정상무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 말복이 낼 모랜대, 삼계탕이 어떻습니까?"
권실장이 차림표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지요."
작달막한 키에 탄탄해 뵈는 몸집을 가진 서부장이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주며 대꾸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오성엔지니어링 기술연구소와 한국대학교 시스템응용공학부 등 8개 연구기관이 지난해 6월 30일부터 올해 6월30일까지 강원도 삼척시 감곡 광산 등 전국 10개 폐광산의 555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198개 지점에서 비소, 카드뮴, 납 등 중금속이 토양오염 우려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사결과 감곡광산의 경우 아연과 카드뮴 함류량이 최고 자연함유량의 51. 9배에 달하고 일부 지역의 농작물생육피해 한계농도가 40퍼센트에 달하는 등 극심하게 오염돼 있었습니다. 카드뮴은 사람의 몸에 쌓일 경우 이따이이따이병을 일으켜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에 폭격을 맞은 것처럼 부서진 선광장이 누런 쇳물을 흘리며 사라지고, 콩밭에서 풀을 뽑는 농부들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저런 심심산골에서 재배하는 농작물도 오염되었으니, 뭘 먹고 사나?"
서부장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요즘 오염 안 된게 어딨어. 이렇게 먹고 살다가 가는 거지 뭐."
서부장이 삼계탕 국물을 숟가락으로 뜨며 말했다.
그들은 해동대학교 부설 전자계산원을 졸업하고 어학연수를 받으러 미국에 가 있는 안사장의 둘쨋딸 혼사와 그의 잔머리 굴리는 실력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이어 나갔다.
확실히 안사장은 머리 하나는 잘 굴렸다. 그의 잔머리 굴리는 실력은 무엇보다도 사원모집 광고에서부터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사원모집  광고는 반드시  《출판저널》이나 《녹색저널》 같은 전문지에다 냈다.

  출판문화운동의 견인차  금문각 출판사에서 중견간부를 꿈꾸는 진취적인 인재를 모십니다.

광고는 거창한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월급여는 출판업계 상위권 수준.
상여금은 능력에따라 600프로까지 지급.
이력서, 자기 소개서, 도서에 관한 기획서, 추천서를 등기속달로 보내기 바람.

안사장의 전략에 걸려든 사람은 권실장뿐만이 아니었다. 서부장도, 김차장도, 임대리도 그리고 이순영도 걸려들었다. 모두가 나름대로의 꿈을 안고 금문각 출판사에 들어왔던 것이다. 합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합격자들은 안사장이 요구한 서류를 갖추느라고 곤욕을 치뤄야 했다. 고등학교 졸업 증명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대학교 졸업 증명서, 대학교 성적 증명서, 신원보증서, 재정보증서, 호적등본, 주민등록등본, 서약서, 편집기획안,  독후감. 그런데 무엇보다도 독후감이 문제였다. 금문각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 3권을 사서 읽고 그 독후감을 쓰는 것이었다.
사원 이래야 사장까지 포함해 10명도 안되는 회사에 입사 서류만 처음 응시할 때 제출한 자기 소개서와 이력서 그리고 추천서까지 포함하여 모두 15가지가 되었다. 합격자들은 모두 이러한 것쯤은 취직하기 어려운 시대에 한번쯤 겪어야 하는 과정쯤으로 여기고 안사장이 요구하는 대로 서류를 갖추어 가지고 갔다.
그러나 합격자들은 재정보증인을 세우고, 그것도 모자라 보증보험에까지 가입하라는 데는 분통이 터졌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데 식을 왜 올리는지 아세요? 그건 우린 앞으로 이렇게 살렵니다. 잘 지켜봐주십시오. 하고 인사하는데 그 뜻이 있는 겁니다. 우리 회사가 여러분에게 재정보증인 세우고 신원보증인 세우고 하는 것도 여러분이 나는 회사에 이렇게 취직해서 잘 다니려고 합니다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데 그 뜻이 있는 겁니다."
안사장의 이야기였다.
이 말에는 안사장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1원도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보증서를 받으러 다니다 보면 금문각 출판사에 취직이 되었다는 사실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고, 입사한 후 회사에 불만이 생기더라도 보증서에 도장을 찍어준 사람들 생각을 하고 금방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할 것이라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합격자들은 입사하고 나서 3개월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금문각 출판사에서는 중견간부가 사실상 필요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안사장이 말단 여직원에게까지 인터폰으로 직접 지시하거나 하루에도 수십 번 편집실과 기획실과 영업부를 들락거리며 지시하기 때문에 중견간부가 필요 없었다.
"사장님이 무슨 일로 우리 모두를 사장님 댁으로 초청할까요?"
  서부장이 의아한 낯빛으로 물었다.
"......그게 다 숨은 뜻이 있지........"
정상무가 말끝을 흐렸다.
"숨은 뜻이라뇨?"
  순영이 우편물을 분류하던 손길을 멈추고,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늘의 탓겟은 권실장이지."
"점점 모르실 말씀을 하시네요."
"권실장이 우리 회사에 들어온지 3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권실장이 인맥이 탄탄하기 때문에 그나마 3년 가까이 되도록 놔둔거야. 그만큼 벗겨 먹을 거가 많다고 보는 거지. 다른 기획실장들은 다들 1년을 못 넘겼잖아."
정상무가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권실장에게 눈길을 주며 낮게 말했다.
"실장님 우편물 왔어요."
순영이가 우편물을 권실장에게 건네주었다.
권실장은 봉투를 뜯었다. 현소장이 보내온 것이었다.
" 부지런도 해. 언제 이런 걸 다 번역했지?"
권실장은 중얼거리듯 말하며 책장을 넘겼다. 책을 넘기다가 '이따이이따이병의 아픔'이란  사진의 캡션에 눈길이 멎었다. 이따이이따이병이라고 불리워졌던 일본의 상징적인 공해병을 통렬히 고발한 보도사진가 아유가이 시세이의 30년에 걸친 충격적인 기록사진과 취재수기를 실은 책이었다. 첫장은  "기병(奇病)이 발생한  도야마현(富山縣) 진즈강(神通川) 연안지역. 1960년 촬영"이란 해설이 붙은 사진이었다. 둘째 장은 " 신(神)에 저주받은 여자들"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었다. 이타이이타이 병은  주로 다산(多産)의 갱년기의 여성에게 발병하며, 요통 하지 근육통으로 시작하여 수년 후에는 보행불능이 되고, 병세가  급격히 진행하여 몸을 조금만 움직이거나 기침을 해도 골절을 일으켜, 밤이나 낮이나 '이따이 이따이(아프다 아프다)' 라고 고통을 호소하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병이 진행하면 전신쇠약이 되어 사망한다. 동통은 목 윗부분을 제외한 전신에 걸쳐서 일어난다. 신장(身長)이 단축되고 피부는 특유의 검은 빛을 띠며, 엑스레이 사진으로 보면 뼈의 고도의 위축과 병적 골절이 보이고, 병리학적으로는 골연화증에 가깝다. 원인은 진즈강 상류의 아연광산 폐수에서 흘러나온 카드뮴이 하천을 오염시켜 농축산물에 농축되었는데, 그 농축산물을 먺은 마을 사람들이 만성중독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의 여자 사진 밑에 "진즈강에는 카드뮴에 의한 무서운 독아(毒牙)가 잠재해 있다. 그러나 진즈강가에 사는 농민들은 알 길이 없다. 신에 저주받은 사람들은 서서히 목을 졸리어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리고 아들이 죽어갔다. 그 신을, 그 누가 분노시켰는가...... " 라고  씌어져 있었다.
"권실장 뭘 해? 빨리 가야지."
정상무가 권실장을 향해 말했다.
권실장은 보던 책을 책꽂이에 꽂고 일어섰다.
안사장의 집은 신사 전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단독 2층 주택인데 넓은 마당은 잔디로 덮여 있었고, 주목과 향나무 사이로 어린 아이 키만한 자연석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가자, 안사장 부인이 눈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맞았다.
"사장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권실장은 벽의 한면을 가득 채운 책장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12권짜리 한국민속전집과 『성씨인물사』,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같은 책들이 책장에 가득 꽂혀 있었다.
안사장 부인이 예쁜 쟁반에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와 찻잔을 가지고 왔다.
" ............전 출판업계가 파산 직전이라는 걸 여러분들도 잘 아시죠? 우리 회사가 오늘까지는 그럭저럭 버텨 왔으나, 앞으로 이대로 가다가는 몇 달 못 가서 여러분 월급도 못 줄 상황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안사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주전자를 앞으로 당겼다.
"매출이 급격히 떨어져 재고도서가 창고마다 그득 차 있어 더 이상 책을 싸 놓을 데가 없어서 우리 집 차고에까지 책을 쌓아 놓게 되었습니다. 내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 차고로 가 보기로 합시다."
안사장이 찻잔을 다탁에 내려 놓고 일어섰다.
정상무가 재빨리 일어섰다. 권실장도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그러자 나머지 사원들도 모두 일어섰다. 그들은 안사장을 따라 차고로 갔다. 차고 한 켠에는 그랜져 지 엑스가 서 있었고, 사면 벽에는 재고책들이 천정에 닿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책더미에서  곰팡이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 난 요즈음 출판사 사장이 아니라, 창고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사장이 사원들을 휘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이 어려운 시대에 사원들을 무턱대고 길바닥으로 쫒아낼 수는 없고 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게 자비출판의 확대입니다. 내가 무슨 자료를 보니까, 일본의 경우 출판물의 오십 푸로 이상이 자비 출판이라는 겁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회사는 학술적 가치와 자료적 가치가 있는 책들만 찍어오다 보니까, 상업성이 없는 책만 내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사장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
사원들의 얼굴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들이 서재로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안사장 부인이 들어와 식사 준비가 끝났다 말했다.
" 자, 식사들 하러 갑시다."
식당엔 맛깔스런 음식이 식탁 위에 가득 놓여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밥을 입에 떠 넣고 있는 권실장 옆으로 안사장이 다가갔다.
"권실장, 내일부터 알라스카에 냉장고를 판다는 정신으로 일해봐. 권실장 동문들이 각계각층에 쫙 깔려 있잖아. 내일부터 동문들만 찾아다녀도 한 일년은 잘 팔아먹을 거야. 우선 우리 회사가 막대한 돈을 들여 제작한 '한국 민속전집' 좀 팔아봐. 내가 월급 외로 수당 줄게. 나, 누구처럼 벌어서 혼자 다 먹는 나쁜 놈 아냐."
안사장이 싯누런 금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
"자존심 상해 못하겠다는 소리는 안 하겠지. 권실장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기여한 게 별로 있어야지. 내가 권실장에게 처음 기대했던 거에 너무 못 미처. 입사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데 계약을 250건밖에 못해왔잖아. 이젠 그나마도 권실장이 아는 국문학계의 인맥은 거의 박닥이 났잖아."
안사장이 부드러운 어조로 구슬리듯 말했다.
"..........."
권실장은 뇌수에 바늘 끝이 와 닿는 느낌이었다. 안사장의 속마음 뜻을 잘 알 수가 있었다. 기획실장인 그에게 이제 영업사원을 겸해 뛰라는 이야기였다.
"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말아. 국문학계의 인맥이 바닥이 났으면, 환경계로 눈을 돌리면 돼. 요새 제일 장사 잘되는 게 뭐야. 환경 아냐?  고리타분한 한국고전 책만 낼 게 아니라. 환경책도 만들어 보자고."
안사장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사원들은 조용히 숨을 고르며 슬금슬금 안사장의 기색을 살폈다.
"그렇다고 내가 그동안 국문학 서적 출판을 선도해온 우리 회사의 이미지를 어지럽히는 책을 내자는 건 아닙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와 환경생태 보고서를 출간하고자 하는 겁니다. 마침 강원도 태백산 일대에서 숲의 집을 조성하고 있는 오경구 목사가 원고를 보내왔기에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시리즈 물 1호 책으로 출간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겁니다. 근데 문제는 오경구 목사 같은 분들이 전문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원고를 사실상 출판사에서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해야한다는 겁니다. 권실장이 이 원고를 집에 가서 한번 검토해보고 월요일 기획회의 때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합시다."
안사장이 말을 끝내고, 원고 봉투를 권실장에게 건네주었다.
" 자, 정상무, 한 잔 받아."
안사장이 정상무 앞으로 맥주잔을 내밀었다.
"권실장, 내일부터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정신으로 일 해봐. 권실장은 명문대학 출신이 아닌가. 게다가  척척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닌가. 이 프로젝트엔 권실장이 적격자라니깐.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월급과 별도로 특별 수당을 생각해줄게. 나 벌어서 혼자 먹는 놈 아니야. "
안사장이 권실장에게 다가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안사장 부인이 상자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 다들 주목하세요. 내일이 월급 날인데, 뽀나쓰를 주어야 하는데, 회사가 어렵다 보니 참기름 한 병씩만 주게 되는 사장인 내 마음도 아픕니다. 자 한병씩 받어요. 이건 무공해 진짜 참기름입니다."
안사장이 참기름을 한 병씩 사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사원들은 모두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참기름 한 병씩을 들고 안 사장 집을 빠져나왔다.


2
권실장이 마을 버스를 타고, 용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부터미널 행 버스가 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차표도 끊지 않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뒷좌석에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터미널을 빠져 나온 버스가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여기저기서 클랙션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앞서 가는 한길, 한국의 미래가 한길에 있다.
권실장은 빠르게 화면이 바뀌는 전광판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가 들어간 곳이 한길 그룹 홍보실이었다. 국문과를 '굶는 과'라고 자조하던 동기생들은 그가 한길그룹 홍보실에 취직한 것을 무척 부러워했다. 그는 회사에 들어간 지 2년만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겨나고.............. 용인시 외곽 지역에 31평 아파트도 한 채 마련하고, 아내에게 소형 자가용도 한 대 사주고........... 매주 일요일이면 에버랜드로, 민속촌으로, 수원성으로 가족을 끌고 놀러도 가고..........그러던 그가 거리로 내몰리게 된 것은 한길그룹에 북한에 투자한 사업이 부진하자, 한길그룹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부터였다. 6개월 동안 집안에 틀어 박혀 있다가 거래처였던 인쇄소 사장의 소개로 안사장을 만나 금문각 출판사의 기획실장이 되었다. 금문각 출판사는 박사학위 논문과 정치 지망생들의 자서전 같은 것을 돈을 받고 책으로 만들어 주는 곳으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었다. 원래 안사장은 충북 영동에서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동대문 운동장 앞에서 리어커에다 덤핑 책을 놓고 팔던 사람이었다. 목돈을 조금 모은 그는 금문각 출판사를 차려, 15년 동안 2천 5백종에 가까운 책을 찍어내 많은 돈을 모았다. 그는 동대문시장에 상가 두 개, 강남에 10층짜리 빌딩 하나, 안국동에 4층 빌딩 하나, 그리고 미국 뉴욕에다 부동산을 사둔 재력가였다. 둘째딸이 어학을 연수하러 미국을 들락거리는 것도 사실 돈을 빼돌리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사내에 돌았다.
버스차창으로 머리가 기계충처럼 깍힌 골프장이 빠르게 흘러갔다. 권실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용인땅은 곳곳에 나지막한 산이 시냇물이나 저수지를 끼고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일찍부터 용인에 눈을 돌린 기업들은 놀이동산, 민속촌, 연수원을 앞다투어 지었다. 그리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다 스무 개가 넘는 골프장을 만들었다. 용인은 하루종일 서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도시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지만 서울 근교에 마지막으로 남은 풍광 좋은 용인땅이 날이 갈수록 파괴되어 가는 것을 볼 때 권실장은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용인땅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수지와 구성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나지막한 구릉에 소나무와 활엽수 그리고 관목들이 우거져 있어 버스를 타고 그 옆을 지나가노라면 산골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곳이었다. 불도저와 포크레인의 엔진소리가 몰고온 개발 바람은 소나무숲이 빽빽한 산과 나지막한 구릉을 깡그리 갈아엎어 허허벌판으로 만들었다. 아파트 회사들은 단 한 평의 땅이라도 손실이 있을까봐 벌판에다 거대한 성냥갑 같은 아파트들을 빼꼭히 꽂았다. 차츰 골짜기에서 새소리를 듣기 어려워 졌고, 밤송이들이 바람 소리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아침 신문은 용인에 땅을 사둔 사람들의 이름과 사둔 땅을 지도에 정확하게 표기하여 보도했다.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 현직 대법원 판사, 대학교 총장,  전현직 장관......이름 석 자만 대면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양지. 송전. 수지. 백암. 원삼. 모현. 구성. 남사.........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의 이름처럼 다정한 이 이름들의 주인이 왼손에 권력을 오른손엔 돈을 거머쥐고 있는 서울 사람들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권실장은 사람의 욕망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만남의 광장이 가까워 왔다.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시계를 보았다. 용인터미널을 떠난지 50분이 지나 있었다. 수지와 구성 쪽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차기 시작한 후부터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변해갔다.
서초구청이 보였다. 버스가 바퀴를 멈췄다. 권실장은 천원짜리 한 장과 백원짜리 동전 여섯 개를 요금통에 던져 넣고, 허겁지겁 양재전철역을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계단으로 내려서자, 얼굴에 뜨거운 열기가 확 끼쳐왔다. 지하철 회수권을 개폐기에 들이밀면서 허벅지로 출입구의 봉을 밀었다. 전동차가 플랫폼에 막 들어서고 있었다.
전동차 안의 좌석은  꽉 차 있었다. 그는 손잡이를 잡고 시렁 위에 버려진 신문이 없나를 살폈다. 신문은 없었다. 그가 서 있는 바로 앞의 좌석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회사원 차림의 사내가 누런 서류 봉투를 손에 들고 졸고 있었다. 서류봉투에는 한길그룹 마크가 선명했다. 한때 권실장도 서류 봉투를 들고 전철에서 졸던 때가 있었다. 그는 시선을 천천히 차장 밖으로 옮겼다.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던 권실장은 가방에서 안사장이 준 원고를 꺼내 펼쳤다.

내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조성해가고 있는 숲의 집은 태백산 언저리의 검룡산(儉龍山) 밑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다. 4, 50년 전만 해도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지역이었다. 산기슭은 활엽수와 침엽수로 뒤덮여 있어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오고, 나무가 얼마나 빽빽이 들어차 있는지 소를 끌고 나갈 수 없었다. 그러던 곳이 1936년 일본인들이 삼척개발주식회사를 만들어 석탄을 캐기 시작하고부터 숲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과 칠팔십년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이곳의 숲은 갱목으로 땔깜으로 잘려나가, 산은 민둥산이 되었고, 계속되는  석탄 채굴로 산비탈에는 갱이 토해낸 폐석이 또 다른 산을 이루고, 숲은 사라져 갔다. 이제 석탄산업합리화로 대부분의 탄광 회사들이 문을 닫고 떠나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폐석더미와 숲을 베어낸 상처와 병든 광부와 그 가족들이다.
큰 교회 목회자들!  교단의 지도자들!  대도시로 몰려가 교인 한 사람을 두고  서로 자기 교회로 끌어들이려고 갖은 수단방법을 동원해가며 열을 내는 목회자들! 이제는 광산촌 같은 특수지대의 선교에 힘쓸 때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나를 목사님을 막장 지대인 광산촌에 보내주셨다고 믿습니다." 라고 이곳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하늘이 삼천 평밖에 안 보인다는 이곳이 이제 내가 마지막 여생을 보낼 곳이라 생각하니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  아무래도 대필작가를 투입해 처음부터 다시 취재를 해서 글을 써야만 될 것 같군.'
권실장은 낮게 중얼거리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안국역이었다.
  필자들과 약속이 없어, 권실장은 오전 내내 기획실에 앉아 오목사의 원고를 검토했다.
오목사는 강원도 광산촌으로 내려 가기 전에는 서울에서도 이름이 있는 교회의 당회장 목사였다. 일요일이면 교인이 삼천 명이나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그가,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내려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외아들 때문이었다. 외아들이 교인들 돈을 끌어다 건설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도주하는 바람에 오목사는 책임을 지고,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떠나야만 했다. 오목사가 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태백의 흑지 장로교회 장로들이 서울로 올라가 오목사를 목사로 모시겠다고 간청을 해, 흑지장로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후 그는 강원도 태백에서 많은 사업을 벌였다. 야간학교도 하고 노인대학도 하고,  어린이 집도 했다. 그리고 광부들의 복지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그런데 이 광부 프로그램이 문제였다. 광업소의 사주를 받은 교회 장로들이 오목사를 산업선교회목사로 몰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목사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흑지 장로교회를 떠나, 따로 태백의 변두리에 교회를 개척했다. 그것을 모체로 하여 숲의 집을 만든 것이었다.
"사장님이 들어오시라는 데요."
사장실에 들어갔던 순영이가 말했다.
" 풍년문화재단에서 최종 결정이 났다 합니다. 애 많이 썼어요.
안사장의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풍년문화재단 생태환경총서를 출간하는 문제가 이제야 최종결정이 났다는 것이다. 풍년문화재단을 만든 풍년그룹의 모태는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 등지에 광산을 갖고 있던 풍년광업소였다. 생태환경총서 간행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것이었다. 풍년문화재단에서 넘겨주는 원고를 깔끔하게 편집하여 책으로 만들어주면 재단에서 초판 2000권을 책임지고 구매해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년 12종 이상 출간하는 것이었다. 큰 힘 안 들이고 많은 돈이 굴러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풍년문화재단 생태환경총서를 따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안사장 부인이 나가는 교회의 집사가 재단의 사무차장으로 있어서 커다란 힘이 되었다. 그러나 암초는 엉뚱한 데 있었다. 돈 냄새를 맡은 출판사들이 금문각 출판사의 출판 단가의 절반에 책을 출간해주겠다며 달려들어, 최종 계약이 미루어졌던 것이다. 일이 꼬여간다는 것을 눈치챈 안사장은 이번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회사가 위기에 몰리게 된다며, 권실장에게 풍년문화재단으로 송차장을 매일 찾아가라고 닥달했다. 권실장은 사무국을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려 어렵게 계약을 따냈던 것이다.
" 송차장님의 힘이 컸지요."
" 그 송차장이 우리 집사람이 나가는 교회의 집사거든............. 다 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  "
"그 일은 그렇고......... 참, 오목사의 원고는 읽어 봤소?"
안사장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 아무래도 대필작가를 투입해 처음부터 다시 취재를 해서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 문젠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선 오목사를 권실장이 한번 만나보아야 하는데 ...... 출판 조건도 그렇고........"
안사장이 하얀 봉투를 한쪽으로 밀어 놓으며 말꼬리를 흐뜨렸다.
"그래야 겠지요."
현대인물사편찬 위원회.
안사장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하얀 봉투에 씌어진 단체 이름이 길다고 권실장은 생각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안사장의 얼굴로 옮겨졌을 때, 안사장이 입가에 엷은 웃음을 흘렸다.
" 긍지를 가지고 일합시다. 우리가 단순히 종이 장사가 아니라는 걸 이제 주위분들이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하얀 봉투를 집어드는 안사장의 억양이 여느 때와 달리 부드러웠다.
"오늘은 왠 일로 사장님 얼굴이 저렇게 활짝 피어 있을까?"
사장실을 빠져 나오면서 권실장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권실장은 안사장으로부터 불호령을 듣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여겼다.

3.
숲의 집 오목사와 아직 통화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원고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오목사와 면담일이 결정되면 총무가 연락해주겠다는 언질을 들은지 보름이 지났으나 연락이 없는 것이었다.
"실장님 전홥니다."
순영이 송수화기를 들어보였다.
권실장이 송수화기를 들자 현소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 전화좀 하면 안 되나."
대뜸 현소장이 시비조로 나왔다.
"먹고 사느라고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됐어."
권실장은 풍산문화센터 앞에서 택시를 버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풍산문화센터는 40층 건물로 벽면이 온통 유리창으로 뒤덮여 있었다. 유리창은 빛이 닿기가 바쁘게 빛을 되쏘았다. 권실장은 출구 옆의 화단 옆 의자에 금방 숨이 넘어갈 듯이 기침을 토해내며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이 끌렸다. 붉은 글씨가 씌어진 피켓을, 그들은 손에 들고 있었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퍼, 아퍼, 너무 아퍼.

시원한 옷차림의 여자들이 밀물같이 밀려들고 밀려나오는 출입구 앞에  피켓을 들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했다. 경비원들이 몰려 나와 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권실장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느릿느릿 뒤로 물러서는 그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무엇이 아프다는 걸까?'
권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풍산문화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을 끼얹었다. 권실장이 커피숍 문을 밀고 들어갔다. 창밖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현소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방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환경생태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온 그는 몇 군데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면서 민물고기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연구소로 찾아가겠다는 그를 현소장은 번거롭게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마침 자신이 종로로 나갈 약속이 있으니 오후쯤 시간을 내서 만나자고 했다.
" 민물고기 연구소는 잘 운영되고 있어?"
권실장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 그럭저럭."
현소장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민물고기연구소를 운영하자면 그 비용도 만만찮게 들텐데."
"그러니까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런 책도 써 내고 그러는 거지 뭐."
찻잔을 다탁 위에 내려 놓은 현소장은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한국의 토종 민물고기』라는 책이었다.
" 이 책이 반응이 좀 괜찮아요."
현소장이 사인을 한 다음 권실장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한국의 토종 민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민통선에서 제주도 서귀포까지 남한의 하천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미호종개, 납자루속, 미레, 감돌고기, 갈겨니, 흰줄납줄개, 꺽지, 참마자, 미수개미, 공지, 을문어.............현소장의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오르내렸다. 이야기가 열목어(熱目魚)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에 열기가 묻어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고 있는 동창 하나가 열목어 이야기를 하더라고.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이라든가 어딘가에 열목어가 살고 있다고 하던대."
"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은 낙동강 상류 지역이거든. 1608년 권기 등이 펴낸 것으로 알려진 '영가지'에는 소천부곡의 토산물로 여항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여항어가 열목어야. 소천부곡은 현재의 봉화군 소천면과 석포면 일대이고."
"그렇다면 열목어가 살아 있다는 말이 맞겠군."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낙동강 상류 일대에 열목어가 널리 살고 있었어. 특히 낙동강의 지류인 송정천에 열목어가 살고 있다는 게 밝혀져 1938년 그 일대의 산림을 포함한 약 1천 2백만 평을 천연기념물 서식지로 지정했지. 그런데 1962년 송정천의 거의 중류쯤 되는 곳에 아연 광산이 개발되면서 열목어가 사라지기 시작했어.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아주 열목어가 멸종해버렸지."
"멸종해버렸다면.......? 어떻게 열목어가 석포면 일대에서 살고 있을까?"
"글세 아연 광산이 몇 년 전에 문을 닫아, 폐수를 흘러보내지 않으니까 열목어가 다시 살기 시작한 게 아닐까? 뿐만 아니라 태백시의 석탄 광산들이 거의 문을 닫아 낙동강 상류의 수질이 많이 좋아졌거든."
" ......그 얘긴 그렇고, 이번에 우리 회사서 물고기와 야생화, 나무에 관한 아동물을 기획하고 있거든. 물고기 사진을 싣고 거기다, 쉬운 이야기를 곁들이는 거야. 현소장이 물고기편을 맡아서 해주면 좋겠어."
"나야 끼워주면 좋지. 그런데 출판 조건은 어떻게?"
현소장이 말끝을 높였다.
"필자가 사진원고까지 책임지고, 인세 8프로  하면 어떨까 하는데."
"아무리 아동물이라지만 인세 8프로는 너무 짜다."
"인세 문제는 내가 사장님께 다시 말씀드려볼께."
권실장이 현소장과 헤어져 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5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실장님 전홥니다. 숲의 집이랍니다."
순영의 송수화기를 들어보였다.
권실장은 송수화기를 집어들고 전화기의 국선 3번을 누질렀다.
"......권실장님이시죠. 우리 원장님과 면담일이 잡혔습니다."
달뜬 목소리가 송수화기에서  튀어나왔다.
"아 네. 그러면 제가 8월 25일 오전 11시까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권실장은 전화를 끊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오경구 목사님의 면담 일정이 잡혔습니다. 8월 25일 오전 11시에 그곳 원장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주어야 겠어요."
안사장이 네모진 얼굴 가득히 웃음을 웃었다. 평소에 잘 웃지 않아 '돌얼굴'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그였다.
권실장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책상에 우편물이 놓여 있었다.
겉봉투에 한국인물사편찬위원회라고 씌어져 있었다. 지난번 사장실에서 본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겉봉투를 뜯자, 여러 장의 안내문이 나왔다.

단군  건국 이래 유구한 역사 속에 깃든 민족적 시련과 영광된 역정을 비롯하여 찬연하게 빛나고 있는  정통민족사관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합니다. .........초호화 영구애장본 4 ×6 배판형  총 10,000여 페이지(별첨 편찬내역 참조) ......전7권.....귀하를 본 위원회에서 한국의 현대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요즈음은 책 팔아먹는 수법도 지능적이란 말야."
권실장은 안내문과 겉봉투를 꾸깃꾸깃 접어 쓰레기통에 밀어넣었다.
"권실장, 저녁 약속이 빨리 끝나면 나도 갈 테니까. 예정대로 모임을 갖도록 하지."
안사장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 부이 아이 피'에는 이미 풍년문화재단 사무국 팀이 구석진 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권실장,  늦었어. 안사장님은 같이 안 오십니까?"
송차장이  웅숭 깊은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갑작스러운 약속이 있어서 좀 늦을 겁니다. 우리가 먼저 한 잔 하다 보면 오실 겁니다."
권실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오마담, 진짜 부아 아이 피께서 오셨으니, 잘 빠진 애들 좀 들여보내."
송차장이 인터폰으로 말했다.
이윽고 날씬하게 생긴 여자들이 들어왔다.
" 미스 하예요. 잘 부탁합니다."
미스 하가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권실장 옆에 가 앉았다.
" 아니 이럴 수가. 미스 하, 권실장만 부이 아이 피인 줄 알아? 나도 유명인사란 말야 "
송차장이 웃으며 말했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안사장이 나타났다.
" 인터뷰 좀 하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안사장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 인터뷰라뇨? 대한일보 문화부 이 기자를 만났습니까?"
권실장이 물었다.
"그게 아니고 한국인물사편찬위원회라는 데서 내가 현대한국인물로 선정되었다면서 인터뷰를 하자 해서 갔다 오는 길이야."
안사장이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사장님께서 현대한국인물로 선정되셨다고요? 저희 재단에만도 현대인물로 선정된 사람이 20명이 넘습니다. 부장급 이상은 전부다 통지문을 받앗고, 별볼일 없는 차장인 저도 한국현대인물로 낙점받았다니까요."
뾰족한 턱을 치켜들고 송차장이 느물거렸다.
"그럴 리가 있나. 송집사가 뭘 잘못알고 있는 게지."
안사장이 헛기침을 했다.
권실장은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안사장과 헤어져 권실장이 서초구민회관 앞에 도착했을 때, 용인으로 가는 막버스는 끊어진지 오래였다. 그는 택시를 집어탔다.
"경부고속도로를 죽 따라 내려가다가 신갈 인터체인지에서 영도고속도로 들어서서 마성 터널을 빠져나가자마자 용인 톨게이트로 가세요. "
말을 끝내고 권실장은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뉘었다. 피로감이 무거운 납덩이처럼 그의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손님, 손님, 용인 다 왔어요."
운전기사가 권실장을 흔들어 깨웠다.
" 용인이라구요, 용인 시내 사거리에서 안성 평택 방면으로 10분쯤 달리다가, 묵리로 가는 길로 좌회전해 올라 가세요. 그러면 그린 타워 아파트가 보일 겁니다."
권실장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택시가 아파트 중앙경비실 앞에 멎었다.
권실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인터폰의 벨을 눌렀다. 딩동딩동.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다시 벨을 힘껏 눌렀다. 딩동딩동............
"깊이 잠이 들었나? "
권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벨을 힘껏 눌렀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닫았다. 불빛이 갑자기 확 달려들었다. 권실장이 눈을 찡그리는 순간이었다.
" 해피 버스데이 투 유."
아내와 딸아이가 손뼉을 짝짝 쳤다.
" 아빠, 해피 버스데이 투유. 생일 축하합니다."
딸아이가 권실장의 팔에 매달렸다.
" 여보, 미안해, 오늘 당신 생일인 거, 시어머님 전화받고 알은 거 있지. 정말 미안해."
아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여보 당신 눈이 왜 그렇게 새빨개?"
아내가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응, 너무 피곤해서 그런가봐."
권실장이 짧게 대꾸했다.
권실장은 식탁머리에 앉아 국그릇에 머리를 박고 늦은 저녁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미역국이 맛이 있었다.
" 아빠, 편지 왔어요."
딸아이가 편지봉투를 건네주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경기도 지부에서 온 것이었다. 권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고 편지봉투를 뜯어보았다.

귀하는 지난 3월 1일자로 퇴사한 뒤 소정의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직권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 경기도 지부로 편입시킵니다.

" 아니 본인이 멀쩡히 회사에 다니고 있는 데도 퇴사했다고."
권실장은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4.
  열목어가 물살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등에 자주색의 작은 얼룩무니가 번득거렸다. 가파른 낭떠리지를 뛰어 오르려고 몸부림쳤다. 눈에 열이 많아서 차가운 물을 찾아 자꾸만 위로 거슬러 오르는 고기가 열목어였다. 열목어는 1급수의 맑은 물이 아니면 살지 않았다. 권실장은 깜짝 놀랐다. 커다란 열목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열목어들의 눈이 한결같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덜컹 하고 열차가 멈추었다.
권실장은 잠에서 깨어났다.
" 왠 잠꼬대를 그렇게 하우."
"제가 잠꼬대를 했다고요."
"숨을 쉴 수 없어요. 숨을 쉴 수 없어요. 라고 하더군."
얼굴에 저승꽃이 돋은 할아버지가 웃었다.
옆자리의 단발머리 여자가 배시시 웃었다.
차창에 불쑥 어둠이 내렸다. 열차가 덜커덩거리며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권실장은 망연히 차창 밖을 응시했다. 가슴 밑바닥을 훑어치미는 암담함과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경기도 지부에서 날아온 안내서를 안사장의 코 밑에 들이밀자, 그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회사 부담분을 물기 싫어 저 자신도 모르게 저를 퇴사자(退社者)로 만들어, 지역의료보험에 편입되게 한 거지요. 난 모르는 일이라니깐. 사장님이 모르시면 누가 아느냐고 다그치자, 조그만 출판사 하나 하는데  무슨 놈의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을 들어야 하냐면서, 회사문을 닫아야겠다고 쇳소리를 튕겨냈다. 권실장은 굵은 입술을 아랫니로 지그시 깨물었다. 안사장이 얇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그까짓 국민연금료 내가 물어줄게. 대신 이번 오목사 건만 잘 성사시켜. 숲의 마을을 후원하는 회원들이 오 만명이라잖아. 그들에게 책 한 권씩만 팔아봐. 가만히 앉아서 수천만원 버는 거야. 국민연금이 문제야. 안 그래. 권실장.
납작 업드려 있는 역사(驛舍)를 휘감고 지나온 안개가 '추전역. 해발 855미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역입니다.' 라고 씌어진 안내판으로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었다.
"이제 태백시도 좋은 시절이 끝났지요. 요 몇년 사이에 12만명이나 하던 인구도 반으로  팍 줄었다 잖아요. 게다가  남아 있는 광산들도 몇 년이나 더 갈지 모른다잖아요. 인구가 계속 줄다간 태백시가 군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금 태백시민들 사이에 위기 의식이 팽팽해요. 인구가 6만 이하로 떨어지면 중앙정부 보조금이 팍 팍 깍긴다잖아요. 태백시 같은 경우 시 예산의 절반 이상이 중앙정부 보조금으로  채워진다잖아요."
" 내가 처음 태백에 왔을 때만 해도 굉장히 흥청거렸던 도신데........... 그 망할 놈의 석탄 산업합리환가  뭔가 하는 것 땜에 도시 망하고......... 광부들 다 쫒겨나고,,,,,,,,,,,장사꾼들도 다 보따리 싸고........."
산비탈에 댐처럼 걸려 있는 석탄 폐석더미를 바라보며, 얼굴 곳곳에 탄가루 자국이 박혀 있는 사내가 말끝을 흐렸다. 광부와 그 가족들이 살길을 찾아 다 떠나버린 광부 사택촌에는 마치 콜렐라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생명체라곤 강아지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 동네가 텅텅 비어 뿌렸어."
할아버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어디 동네만 텅 비었겠어요. 저 산도 속이 텅텅 비고 껍데기만 남아 있다 하대유."
단발머리 여자가 비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석탄을 40년 이상이나 캐 냈으니, 아무리 속이 꽉 찬 산인들 남아 나겠어. 껍내기밖에 안 남아 있겠지."
  열차가 속도를 늦추고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 안 내려요, 여기가 태백역이요."
  권실장은 역광장으로 나왔다. 헌 신문지 조각이 발 끝에 채였다. 고원택시라는 글자가 뒷꽁무니에 씌어진 택시가 몇 대 멈춰 서 있는 게 보였다. 맨 앞에 서 있는 택시 앞으로 다가갔다.
"용소로 갑시다."
권실장이 택시문을 닫으며 말했다.
거리는 적막했다. 택시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실팍한 개천은 온통 싯누런 황토빛이었다. 땅과 물이 시커멓다는 탄광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에 혼란이 왔다.
" 아, 저거요. 탄광의 굿(구덩이)에서 흘러나온 유황과 철분이 섞인 물이 내로 흘러 와서 저런 겁니다."
택시기사의 퀭한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래요."
개천 양쪽으로 폐광(廢鑛)된 갱도(坑道)의 시커먼 아가리와 지붕이 내려 앉고 벽이 헌 텅빈 사택, 붕괴된 채 방치된 선탄장 등이 검은 땅의 황토빛 물과 어우러져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유령마을 같았다.
택시가 시가지를 벗어나 계속 달렸다.
" 손님도  숲의 집으로 가십니까?"
택시기사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소?"
권실장이 되물었다.
"용소로 가면 뻔하지요. 거긴 숲의 집밖에 없으니깐요. 오늘만 해도 두 탕쨉니다."
"숲의 집엔 나무들 많습니까? "
" 무슨 나무가 많아요? 거긴 옛날 풍년광업소 아연광미처리장이 있던덴대요."
"아연광미처리장"
권실장은 중얼거리듯 그 말을 되내었다.
" 지금은 문을 닫았는데, 그전에 풍년광업소가 경북 땅인 봉화군 석포면 대풍리에서 아연을 캤거든요. 그런데 아연광을 대풍제련소에서 제련하고 남은 아연 광미(鑛米)와 아연광을 캐면서 나온 폐석을 지하 갱도를 통해  도(道) 경계 너머에 있는 강원도 땅인 태백시 용소(龍沼) 골짜기에다 이십년 가까이 갖다 버렸는데, 그게 어마어마한 양이어서 골짜기 수십만 평이 평지가 되어버렸어요. 광산이 문을 닫은 뒤부터 비만 오면 광미처리장에서 폐수가 흘러나와 용소골짜기 밑의 점동마을 일대의 지하수와 저수지가 오염되어 주민들이 데모도 하고 난리를 쳤지요. "
"문닫은 아연광산에서 흘러 나오는 폐수라면 카드뮴이 섞여 있을 텐데........."
"............ "
" 광산회사에서 오염 방지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고 철수했나요?"
" 오염방지 시설을 할 생각이 있었던 놈들이 경북 땅에서 캔 아연광석의 찌꺼기를 지하갱도를 이용해 강원도땅에다 갖다 버렸겠습니까?  강원도에서도 광산이 문닫기까지 까맣게 몰랐다는 거예요. 거기가 워낙 골짜기가 깊은 데다 광업소 땅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시켰거든요. 그런데 작년에 어떻게 이 사실을 안 방송국 기자가 취재를 나오니까, 풍년그룹 홍보실에서 사람들이 내려오고 시글벅쩍 했지요. 한동안 잠잠하더니, 거기 정신병자 요양원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들리는 소문에 풍년그룹이 오목산가 하는 사람에게 그  광미처리장을 공짜로 주었다더군요. 오목사는 수십만평의 땅을 그저 주워서 좋고, 풍년그룹은 골치 아픈 광미처리장의 환경오염방지 시설 문제를 돈 한푼 안 드리고 해결하게 되어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된 셈이지요."  
운전기사가 핸들을 꺽었다. 모롱이를 돌자 개천이 구불구불 이어지기 시작했다.
"풍년이면 재벌 회사가 아닌가. 어떻게 재벌들이 그런 짓을........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군......"
권실장이 말끝을 흐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면 최고가 아닙니까. 돈벌겠다는 욕심 앞에 양심이 어딨어요.? "
택시기사가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오르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풍년광업소는 풍년 그룹이 운영하던 회사였다. 아연광산을 기반으로 해서 기업을 그룹 규모로까지 키운 풍년 그룹은 영업 실적 기준으로 우리나라 50대 재벌 그룹 안에 포함될 만큼 큰 기업군으로 성장했다. 노동조합이 없던 풍년광업소는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집행부가 강경 노선을 걷자, 광산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나서 외국에서 아연광석을 수입해다 대풍제련소에서 계속 제련해오고 있다. 아연광석을 어마어마한 황금덩이로 바꾼 풍년 그룹은 서울에다 대형 빌딩과 호텔을 짓고, 부산에다 수산물 가공회사를 차려 많은 돈을 벌었다. 게다가  풍년문화재단을 만들어 환경문화사업을 벌여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중이었다.
권실장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오르막길이 급해졌다. 택시의 속도가 느려졌다.
개천이 거품을 북적거리며 가늘게 흐르고 있었다. 물이 핥고 간 바위는 모두 잿빛이었다. 개천 바닥에도 시멘트 가루 같은 회색 침전물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물방울의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 요양원 이름이 왜 숲의 집인가요?"
권실장이 개천에서 시선을 떼며 물었다.
" 그걸  전들 어떻게 알겠습니까?  광미처리장을 흙으로 덮고 거기다 건물 열 개 동을 지어 놓고 숲의 집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허허 모르겠어요. 오목사의 깊은 뜻이 숨어 있겠지요."
택시가 오르막길을 올라서자, 대단위 아파트를 단지를 짓기 위해 조성해 놓은 택지개발 지구처럼 넓게 펼쳐진 벌판이 보였다.. 시골 고등학교 교사(校舍)처럼 생긴 4층 건물이 우뚝 서 있는 양 옆으로 여러 채의 대형 콘세트 건물이 군대막사처럼 차렷 자세로 도열해 있었다.
" 볼 일이 다 끝나시면 이리로 전화를 주세요. 모시러 오겠습니다."
택시기사가 명함을 권실장에게 건네주었다.
권실장은 주위를 살폈다.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승리를 얻겠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승리를 얻겠네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행복을 얻겠네

권실장은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는 4층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 앞의 전나무 아래에는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물끄러미 권실장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에게 시들시들한 눈초리를 보냈다. 건물 주위로 둥근 가시 철조망이 2중 3중으로 둘러 쳐져 있었다. 그리고 건물을 빙 둘러싸고 초소와 망루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서 있었다.
  잿빛의 아연광미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곳 옆에는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햇빛 속에 잠겨 있었다. 그 뒤로 둥근 가시 철조망이 2중 3중으로 둘러 쳐져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권실장은 4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목마른 짐승처럼 서 있던 사내가 다가왔다. 원장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손가락으로 하얀 문을 가리켰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키가 작달막하고 검은테 안경을 쓰고 있는 총무간사가 소퍼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윽고 송수화기를 내려 놓은 총무간사가 권실장에게 다가왔다. 금문각 출판사에서 왔다고 하자, 총무간사는 고개를 돌려 벽에 걸려 있는 상황판을 바라보았다.
" 목사님은 시청에서 급한 회의가 있어 나가셨는데, 두 세시간쯤 있으면 돌아오실 겁니다."
총무간사가 상황판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권실장은 그만 망연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총무간사가 차를 끓여 왔다.
"간사님은 여기 오신지 얼마 되셨어요?"
권실장이 찻잔을 다탁에 내려 놓았다.
" 3년쯤 되었어요."
총무간사가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신문과 인쇄물들을 한쪽으로 밀어 놓았다. 서울의 대학에서 연극비평을 강의하는 남편을 두었던 그녀는 늘 도시를 벗어나고파 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곳 가운데서 근처에 저수지가 있고, 푸른 야산으로 둘러 싸인 곳에다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외롭게 다세대 주택의 방 한 칸에 의지한 채 보습학원의 강사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 사무실에서 '숲의 집 사람들'이란 소식지를 보고,  진한 감동을 느껴 오목사에게 전화를 한 것이 이곳으로 오게 된 동기였다.
권실장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소식지 '숲의 집 사람들'을 펼쳤다.
숲의 집은 독일의 발트킨더가르텐이라는 숲 유치원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하게 되었다.  1993년 처음 등장한 발트킨더가르텐이 최근에는 독일 전체에 80개에 달할 정도로 성행하고 있다. 발트킨더가르텐에 다니는 아이는 감기에 좀처럼 걸리지 않는 등 자연에 대한 적응력이 훨씬 커졌다는 것이다. 발트킨더가르텐은 말 그대로 지붕과 벽이 없는 숲 속의 유치원이다. 아이들이 인공적인 유치원 공간에서 벗어나 자연을 스스로 탐구하고 발견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숲의 집은  발트킨더가르텐의 방식을 정신질환자 등 요양자들에게 도입해 자연 속에서 생활하게 하여 자연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질병을 치료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어린이처럼 살아가자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했다.
"목사님께서 엄청난 일을 하고 계시군요."
"그럼요. 보통 사람 같으면 엄두조차 못낼 일이지요."
" 막사이막사이상 같은 거라도 드려야 겠어요."
"막사이막사이상 갖고 되겠어요.우리 목사님은 노벨 평화상을 받을 분입니다."
총무간사가 웃으며 말했다.
"노벨 평화상을요?"
권실장이 '숲의 집 사람들'을 덮으며 말끝을 높였다.
" 예수 이름으로 나아갈 때 불가능한 건 없는 거지요."
총무간사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시설들을 좀 돌아볼 수 있겠습니까?"
" 그건 목사님 허락없이는 곤란하겠는데요."
" 그렇습니까?."
" 점심 식사 안 하고 오셨지요?
총무간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권실장도 엄거주춤 일어섰다.
식당은 넓고 깨끗했다. 입구 쪽에 마련된 배식대 앞에 배가 불룩 튀어나온 사람, 몸보다 머리가 더 큰 가분수형인 사람, 연신 히죽히죽 웃는 사람, 한쪽 눈이 찌그러진 사람, 바짝 말라 훅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사람,  한쪽 눈이 찌그러진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들이 스테인리스 식판을 들고 차례로 손수 반찬 통에서 반찬을 떠 담고, 밥통에서 밥을 떠 담아, 식탁의 빈자리로 가 앉았다.
권실장과 총무간사도 차례로 스테인리스판에다 반찬과 밥을 담아 빈자리로 갔다.
"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배부르게 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 텐데요?"
권실장이 젓가락질을 멈추고 물었다.
" 물론 비용이 많이 들지요. 사랑동에 있는 저분들은 정신이 온전한 분들이기 때문에 스스로 식사를 찾아 먹을 수 있지만, 소망동 같은 곳에 있는 분들은 식사를 날라다 줘야 하기 때문에 그 수발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으로 항상 채워주시니까, 걱정을 안 해요."
총무간사가 말했다.
식사를 끝내고 권실장과 총무간사는 사무실로 갔다. 권실장은 총무간사로부터 숲의 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자원 봉사자들이라는 말을 듣고 몹시 놀랐다. 봉사를 하면 하느님이 사랑으로 채워주시는데 따로 보수가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목사는 세 시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희멀건 얼굴의 그는 체구가 건장했다.
" 오경구입니다. 반갑습니다."
권실장이 원장실로 들어가자, 오목사가 악수를 청했다.
"권웅탁입니다.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목사가 권실장에게 자리를 권하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오목사가 오랜 목회 생활에서 나온 온화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며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 숲의 집은  계속 조성해가고 있는 단계입니다만,  벌써부터 기독계는 물론이고 정부 기관 언론계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숲의 집이 최종계획까지 완료되면 이곳엔 상시 3천명이 요양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태백시 인구가 3천명이 늘어나는 거죠. 그리고 또  3천명의 사람들이 숲에 모여 서로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은혜로운 일입니까? 나뭇가지를 옷걸이 삼아 옷을 걸어두고, 그루터기를 식탁삼아 빵으로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율동도 하고.......... 천국이 따로 있겠습니까?"
" 여길 오다 보니까 숲이 거의 없던대요?"
"이제 조성 단계다 보니까 그렇지요. 부지는 확보해놨으니까, 이미 절반 이상 조성한 거나 진배 없습니다. 나의 특수 선교에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주고 있으니까, 잘 될 겁니다."
" 그렇군요."
" 참, 원고는 검토해보셨습니까?"
" 네 검토해보았습니다."
" 많이 고쳐야 할 거요."
" 취재를 더 해서 대폭 수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 그건 차후 문제고........출판 조건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 초판 1만부를 선인세로 들이고 계약할까 하는데요."
" 그 정도 조건이라면 벼로 내키지 않는데...... "
오목사가 말끝을 흐리며 인터폰으로 총무간사를 호출했다.
총무간사가 문을 밀고 원장실로 들어왔다.
" 내 원고말야. 우리가 출판사 등록 내서 직접 출판하면 어떨까?
우리 후원회원에게만 팔아도 십만권은 팔 텐데말야."
" 검토해보겠습니다."
총무간사가 눈을 내리깔며  허리를 굽혔다.
" 내가 3시 반에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취재를 오기로 했거든요. 그 원고 건은 생각을 좀 더 해봅시다."
오목사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악수를 청했다.
창밖의 하늘은 잔뜩 흐려져 있었다.

5.
권실장이 전화를 한지 30분이 채 안되어 택시가 나타났다
권실장은 택시 속으로 몸을 들이밀자마자, 등받이에 머리를 뉘었다.
"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양쪽 눈이 충혈되어 벌겋네요."
택시기사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이 지역은 안개가 많은 가봐요."
골짜기에 가득 내려앉고 있는 안개를 바라보며 권실장이 말했다.
" 지대가 높다 보니 안개가 많이 끼고, 기후 변화가 심하지요."
골짜기의 모든 것이 선명한 윤곽을 잃고 모호한 형태로 변해버렸다. 안개가 스멀스멀 내려와 차창에 다닥다닥 붙었다. 차창의 유리가 뿌연 안개로 휩싸여 지척에 있는 나무들이 거대한 바위로 변해 보였다. 안개를 힘겹게 헤치며 열목어떼가 다가왔다. 열목어떼들은 한결같이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권실장은 열목어의 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풍산문화센터 앞에 피켓을 들고 쭈그리고 앉아 있던 사람들이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느릿느릿 다가왔다. 이윽고 그들이 안개의 숲 속으로 물러섰다. 열목어떼가 사라졌다.
"숲의 집에서 숲을 보셨습니까?"
택시기사가 흐릿하게 웃었다.
" 못 보았습니다."
권실장이 신음처럼 말했다.
" 또 오실건가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 아니요."
권실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개의 숲 속에서 열목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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