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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기획/21세기 비평의 진원지가 되기 위하여/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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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1세기 비평의 진원지가 되기 위하여
―{비평과 전망}에 바라는 것들
이승하
1. 90년대 우리 비평계의 명암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70년대는 소설의 시대였고 80년대는 시의 시대였고 90년대는 비평의 시대였다고. 70년대의 작가군과 80년대의 여러 시인을 떠올려보면 '소설의 시대'와 '시의 시대'라는 명명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90년대가 비평의 시대였다는 규정에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비평 죽음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90년대에 발간된 문학평론집의 수와 문예지에 발표된 평문의 수는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하지만 문학은 영상매체한테 철퇴를 맞았고, 상업주의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였으며, 생산적인 담론보다는 소모적인 시비가 횡행하였다. 게다가 독자가 문학작품을 외면하고 뿔뿔이 흩어져간 그 시대에 비평이 한 역할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면 암담해지기까지 한다.
우선 그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몇몇 대표적인 계간지는 주식회사 체제인 대형 출판사와 공생의 관계에 있다. 이 구조는 창작과비평사·문학과지성사·민음사·실천문학사·세계사·문학동네 등을 떠올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오늘날 이들 출판사에서 내는 종합 계간지는 크게 다음 일곱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①작품 발표의 지면을 제공하는 것. ②신인을 발굴하는 것. ③소설가의 창작집을 확보하는 것. ④월평·계간평·서평 등을 통해 작품을 평가하는 것. ⑤문학상을 관리하는 것. ⑥문학 판에 쟁점을 제기하는 것. ⑦일종의 문학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이 가운데 ③은 한국의 특수상황이 아닌가 하는데, 계간지가 작가를 묶어두기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함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는 대단히 크다. 그 계간지의 편집위원이거나 그 계간지를 통해 비평활동을 전개하는 비평가는 모기업격인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의 대변인 내지는 해설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정실비평이니 주례비평이니 하는 말은 비평가에 대한 최대의 모욕인데, 이 모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비평가가 몇 명이나 될까? 동고동락해왔기에 너무나 잘 아는 친구, 혹은 동료, 혹은 선·후배의 작품인데다, '우리' 출판사에서 낸 책인데 따끔한 조언을 해주기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점은 계간지나 대형 출판사라는 울타리 안의 작품이 아니면 아예 거들떠보지 않거나, 언급을 하더라도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비평의 메스를 아주 날카롭게 들이대는 것이다. 출판상업주의의 첨병 노릇을 문학평론가가 한다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문예지가 출판사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잘 팔리는 장편소설 찾기에 골몰하는 것도 문제이고 문학 판에 쟁점을 제기하고 토론을 유도하는 문예지가 드물다는 것도 문제이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쟁점이 없는 대신 시비와 비판만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토론문화가 미성숙한 단계이다. 일단 초·중·고·대학의 교육과정에서 토론식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초·중·고에서는 주입식 교육이, 대학에서는 발표식 수업이 주로 이루어지므로 토론을 통해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수정하고, 보완할 줄을 모른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조리있게 말할 줄을 알아야 하지만 진지하게 경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 토론자는 인내심과 포용력이 필요하며,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토론은 금방 인식공격으로 확대되어 토론의 당사자는 원수지간이 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는 씁쓰레한 뒷맛을 느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문학권력 논쟁이다. 세기말과 세기초에 전개된 문학권력 논쟁은 문학권력을 확실히 갖고 있는 이들의 논쟁이었다는 점과, 작품은 배제되고 논쟁을 위한 논쟁이었다는 점에서 꽤나 소모적인 설전이었다.
셋째는 평단에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장과 중견과 신예가 계속해서 평론을 발표하면 좋을 터인데 우리나라 비평계는 20∼30대, 그리고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비평가가 백가쟁명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문학평론가는 문학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진보와 보수(혹은 급진과 온건?)의 균형이 깨진 것도 문제이다. 채광석은 작고했으니 어쩔 수 없고, 80년대의 현준만·조정환·백진기 등은 시대가 변했다고 하여 왜 평단을 떠나버렸을까. 김명인은 평론가라기보다는 연구자의 길을 가고 있고 최원식도 마찬가지이다. 창작과비평사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문학평론가로는 임규찬과 방민호 정도가 있는데 수적으로 열세이다. 이념이 다른 사람들끼리 논쟁을 벌어야 재미도 있고 소득도 있을 텐데 지난 몇 해 우리 평단의 가장 큰 화두가 '문학 권력'이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2. 순수문학론의 역사
상업주의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문학평론가는 이 시대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성찰해보아야 하며, 문학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찰해보아야 한다. 지금 순수문학은 존립의 여부를 따져보아야 할 만큼 위기에 몰려 있다는 것이 내 느낌이다. 물론 문학위기론을 들먹이면 문학인 다수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격분하여 반격하지만 내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 그러니 어쩌랴. {남자의 향기}를 쓴 하병무와 {가시고기}를 쓴 조창인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79학번 내 동기이다. {소설 토정비결}을 쓴 이재운은 한 해 선배이다. 그리고 확실한 자기 목소리를 냈거나 지금 내고 있는 소설가 후배로 방현석·박청호·전성태·김종광 등이 있다. 이들을 보면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전자는 '팔릴 소설'을 위하여, 후자는 '좋은 소설'을 위하여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으므로 문학의 존립 여부가 문제시되는 이 시대에 '문학이란 것'의 본질에 대해 진지한 담론이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순수문학론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 문단에는 악제가 속출하였다. 한 소설가와 문학평론가 사이에 벌어진 표절 시비, 원로 평론가에게 제기한 신예 평론가의 표절 시비, 동인문학상에 얽힌 잡음, 대중문학의 대약진과 사재기 파문, 문학권력 논쟁의 확산, 어느 시인과 문학평론가 사이에 전개된 명예 훼손에 따른 법정 공방, 황순원과 서정주의 타계, 고은의 서정주 비판과 서정주 제자들의 고은 비판……
문학인이 시정잡배로 타락해버린 것은 아닐 텐데 우리 문단에는 왜 이렇게 악재가 이어질까. 문학예술은 수세기 동안 인간의 정신 영역에 물줄기를 대어, 고고한 토양을 유지해왔는데 마침내 말 그대로의 '순수의 시대'가 가버린 것일까. 순수의 가치에 대해 논하기 전에, 순수문학론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순수문학론은 문학이 정치나 이념과 관계없이 순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뼈대로 삼고 있다. 또한 예술적인 가치가 단연 중요하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것을 지향해야 한다는 문학론이 순수문학론의 핵심이다.
1930년 박용철·김영랑·정지용 등을 중심으로 한 '시문학파'는 언어예술가로서의 시인의 고유한 기능을 깨닫고, 사회적 현상과 구별되는 문학의 독자적인 영역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작자의 창조적인 표현 가치를 강조하면서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30년대 후반 임화와 유진오가 20대 신진작가들은 한국의 역사와 현실생활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하자 김동리가 분연히 나서서 30대야말로 비문학적인 야심을 갖고 있는 정치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하면서 20대를 옹호하였다. 20대 신진작가들이 30대 문인의 우상을 파괴함으로써 개성적인 삶의 추구에 도달했다고 김동리가 주장한 당시의 논쟁은 문단의 신진세력을 앞세운 논쟁이라 신선한 감이 없지 않았다.
해방 이후 혼란기에 김동리·조연현·조지훈 등은 좌익의 '조선문학가동맹'에 맞서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고, 순수문학론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조연현은 [문학의 위기]에서 하루빨리 문학을 정치에서 독립시키고 이념에서 분리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김동리는 [순수문학의 진의]에서 순수문학을 '본령정계(本領正系)의 문학'이라고 하면서 문학의 본령이 인간성 옹호에 있음을 전제하고 본령을 추구하는 순수문학을 '제3기 휴머니즘'에 접맥시켰다. 이 문학론은 6·25전쟁 이후 김동리와 조연현이 한국문인협회를 만들어 문단의 실질적인 리더가 됨으로써 한국의 지배적인 문학관이 되었다. 일군의 문인이 이들에 대해 도전하면서 60년대 순수·참여문학 논쟁이 일어난다.
참여문학을 주장한 이는 이어령·김우종·김병걸·홍사중·이철범·정명환·최일수·유종호 등이었다. 이들은 문학이란 마땅히 현실인식을 지녀야 하며, 사회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맞선 순수문학론자들은 이형기·김상일·곽종원·선우휘 등으로, 참여문학론을 서구 실존주의에 기댄 반전통론이라고 비판함과 아울러 사회주의 문학이론과 동일시하였다.
60년대 후반에 들어 이어령이 갑자기 논지를 달리함으로써 순수·참여 논쟁은 제2라운드에 접어든다. 이어령은 참여문학 옹호론자에서 입장을 바꿔 60년대 전반기의 참여문학론자들을 '오도된 사회참여론자'라고 매도하고, 참여문학론이란 문학을 정치활동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기를 든 이는 시인 김수영이었다. 김수영은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한 것이며, 대중의 검열자보다도 더욱 두려운 문화 파괴적 검열자는 획일주의적인 문화 당국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김양수가 이어령을, 김병걸이 김수영을 옹호하며 논쟁에 뛰어들었고, 이들의 가세로 참여와 순수에 대한 추상적인 공방전은 참여의 미학적·이념적 형태를 탐구하는 구체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1970년대에는 현실에 참여할 것인가 거리를 둘 것인가 하는 논쟁에서 벗어나 민족·민중문학론으로 나아갔다. 60년대부터 진행된 근대화로 말미암은 소득분배의 불균형 야기, 유신독재 타도의 주체로서의 민중에 대한 논의, 분단극복과 민족해방의 주체로서의 민중에 대한 인식이 대두된 데 힘입어 백낙청이 가장 먼저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에 염무웅·임헌영이 백낙청의 옆에 섰고, 김현·김주연·김병익 등이 맞은편에 서서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역사적인 개념으로서의 민족적 현실인식론과 문학의 가치개념으로서의 민족문학론이 정립되어 나갔다. 70년대 문학논쟁의 특징은 논쟁이 문학활동의 사회적 역할을 촉진시키고 기능의 증대를 가져온 점이었다. 또한 작가들의 문학활동이 본격적인 민중 지향의 실천적 창작활동으로 연계된 특징이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김원일·박태순·송영·신상웅·윤흥길·이문구·이청준·조세희·홍성원·황석영 같은 정통문학권의 작가와 더불어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 박완서·조선작·조해일·최인호·한수산 등도 많은 수작을 발표하여 문단에는 화제도 풍성하였고 뛰어난 작품도 많이 나왔다.
80년대 초반은 광주민주화운동과 제5공화국의 탄생,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정치적 격변기였다. 3저(低)의 호황시대가 되면서 노동자의 수가 현저히 증가했으며, 노동자가 직접 쓴 창작품이 대거 생산되었다. 이 시대는 논쟁 중심의 시대로, 실제 창작에 있어서는 70년대의 성과에 미치지 못했다고 본다. 구체적 현장성과 실천적 운동성의 통합을 역설한 채광석의 민중문학론, 노동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한 현준만의 민중문학론, 소시민계급의 문학이 지니는 물신주의와 개인주의적 문학관을 타파하여 집단창작을 통한 새로운 창작방법을 모색한 김명인의 민중적 민족문학론, 민족해방과 민족통일을 위해 민주주의 계급이 중심이 되는 당파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조정환의 민주주의 민족문학론 등이 기억될 만한 좌파이론이었다. {문학과 사회}를 무대로 비평활동을 전개한 이른바 '문사 동인'은 이들에 맞서 온건파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성민엽은 현실성에 대해 눈감고 당위성에만 집중하는 민중문학론의 현실 관련성에 있어서의 취약함을 지적하였다. 정과리는 민중문학론이 일종의 상징인 동시에 실체라는 모순된 개념이라고 공박하였다. 임우기는 김명인이 신중간계층의 이데올로기 관리 기능을 무시하고 하부구조의 계급적 대립만을 절대화한다고 반박하였다. 80년대에 논의는 이처럼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70년대에 비해 실제 창작의 성과가 모자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다시 월문리에서}(송기원), {내일을 여는 집}(방현석), {완전한 만남}(김하기),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김영현), {고삐}(윤정모) 등을 생각하면 작품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소연방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자 좌파이론가들은 그만 침묵을 지키게 되었고, 싸움의 상대를 잃은 '문사 동인'들도 비교적 조용히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90년대 초까지 진행된 우리 나라 순수·참여 논쟁, 혹은 민족·민중문학론을 간단히 요약해보았는데, 그런 대로 점잖고 건강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논쟁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어 순수와 참여간의 줄다리기는 이전 시대와 확연히 달라지는 양상을 보인다. 대중문학이 순수문학에게 강펀치를 먹이고, 순수문학은 그로기 상태가 되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다. 아무튼 90년대 말 우리 문단의 연이은 악재를 보면 새로운 세기를 맞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상처투성이였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평론 전문 무크지가 나왔으니 그 이름은 '비평과 전망'이다.
3. {비평과 전망} 등장의 의의
창간호가 발간된 일자는 1999년 11월 18일이었다. 90년대 말, 세상은 바야흐로 삼국 정립의 시대였다. 잠시만 비유법을 쓰겠다. {창작과 비평}이 위나라라면 {문학과 사회}는 오나라요 {문학동네}는 촉나라였다. 땅이 넓은 위나라에는 세금을 내는(정기구독을 하는) 백성이 많았다. 모사의 수는 적었지만 장군과 병사의 수가 많은 위나라에는 조조 같은 확실한 지도자가 있었다. 물산이 풍부한 오나라에는 모사도 장군도 많은 편이었다. 잘 챙겨주지 않는다고 오나라를 등지고 촉나라 땅으로 가는 장군이 나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나라의 손권이 주는 녹을 먹는다는 것은 아직도 그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촉나라는 후발 국가였으나 복룡과 봉추(누구인지는 짐작하시라)가 있어 급부상하는 신흥 강국이었다. 비록 그 영토는 가장 작았지만 두 국가를 위협할 만큼 세력을 키워 천하가 삼분되어 있던 시절이 90년대 말이었다. 촉나라는 병사의 모집과 선전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고, 금방 가장 많은 세금을 거두는 나라가 되었다.
세 국가의 권위에 도전한다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웠던 시절, {비평과 전망}의 탄생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에도 권위에 도전했던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1987년에 부산 소재 출판사 도서출판 지평에서 {문학과 지성 비판}이란 책이 나온 바 있다. 민병욱과 황국명이 숙의하여 [장르로서의 비평의 비평]을 썼고, 황국명이 [{문학과 지성}의 도식적 記述 체계 비판]을 써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메아리 없는 단발성 외침이 되고 말았다. {실천문학}에서는 1991년 여름에 '자유주의 문학의 뿌리를 해부한다'는 특집을 마련하여 주로 문학과지성사를 겨냥하여 공격을 감행하였고, 1992년 봄에는 '자유주의 문학을 다시 읽는다'는 특집을 마련하여 이청준·황동규·정현종론을 게재, 각개격파에 나섰다. (이청준론을 윤지관이, 황동규론을 유중하가, 정현종론을 이병훈이 썼다.) 하지만 이들의 도전에 문학과지성사는 오불관언, 아무런 응대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문학과지성사에 대한 이들의 비판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 터에 이명원·고명철·홍기돈은 학연으로 똘똘 뭉쳐 있는 세 나라에 대해 선전포고를 감행하였다. 일단 대단한 용기라고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창간 당시 편집위원 세 사람은 대학강사요 대학원생이었는데 나이는 30대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이명원이 서울시립대학 대학원에(지금은 성균관대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고명철이 성균관대학 대학원에, 홍기돈이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었고, 모두 국문학도였다. 외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과 학연이라는 끈으로 묶여진 이들이 아니라는 점, 한국 문단에서 큰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 서울대·고려대·동국대·경희대의 인적 자원이 아니라는 점도 변별성을 지닌 요소였다. 등단 지면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계간지였다면 비빌 언덕이 있어 지각변동을 꾀하려는 모임을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명원은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고명철은 1999년 {문학과 창작}으로, 홍기돈은 1999년 {작가세계}로 등단하였기에 자수성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어느 진영에 들어가 일신을 의탁하기란 젊은이다운 패기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들은 무크지를 만들며 힘을 키우기로 도원(桃園)이 아닌 출판사 '새움'에서 결의하였다. 문학의 시대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90년대 말이라 그들은 세상에 너무 늦게 태어난 감이 들었지만 첫울음치고는 아주 우렁찼다.
1)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방향성을 내장한 비판 저널리즘이다. 그러나 이 비판 저널리즘은 종전의 저널들이 흔히 보여주곤 했던 '논쟁의 주기율'을 거부하는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2) 우리는 완고한 문학주의자가 되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는 관용적인 문학의 네트워크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우리의 비평행위는 냉철한 비판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성찰의 겸허함을 견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우리가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지점은 문학의 인식론과 존재론을 왜곡시키는 비이성적인 연고주의며, 에콜의 자의식 없이 권력의 동력학에 편승하는 패거리주의며, 의식의 자기발전을 교묘하게 배제시키는 문학계의 마술적인 상업주의와의 동화 경향이다.
4) 우리는 문학의 존재론과 인식론을 치열하게 고민할 것이다. 문학의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한 성찰이 배제된 채로 이루어지는 비평행위는 떠들썩한 풍문의 해석학은 될지언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속에서의 문학의 기능과 그것의 의미를 밝혀줄 수는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창간사에서 눈에 뜨이는 다짐을 적어보았다. 1)은 기존의 몇 개 비평 전문지와는 달리 비판 저널리즘을 지향하겠다는 선언이다. 2)는 문학밖에 모르는 문학론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시비만 거는 불만론자가 되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또한 똘똘 뭉쳐 고슴도치처럼 굴지 않고 차차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3)은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창작과 비평}의 연고주의, {문학과 사회}의 패거리주의, {문학동네}의 상업주의를 본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4)는 문학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존재론과 인식론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다. 자, 이제껏 다섯 권을 낸 {비평과 전망}이 과연 초발심을 지금껏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런 초발심 자체가 올바른 것이었을까? 아무튼 큰소리로 다짐을 하며 출발의 닻을 올린 {비평과 전망}이 제5집을 내기까지 걸어온 길을 잠시 점검해본다.
제1집의 기획특집은 '90년대 한국문학 비평의 계보학'이었다. 이명원이 90년대 비평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글을, 고명철이 임규찬·신승엽·김명인의 비평작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한 글을, 홍기돈이 90년대 신세대 문학론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홍기돈의 글이 공격 목표로 삼은 이는 이광호·권성우였다. 세 명의 외부 필자가 이광호·임규찬·한기의 비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글도 창간호에서 눈에 띄는 글이었다. 표지 인물은 권성우였다.
제2집이 앞 호와 달라진 점은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과의 대담을 실은 것과 '징후를 찾아서, 텍스트를 넘어서'라는 타이틀 아래 다섯 필자가 작품 분석과 평가에 들어간 것이다. 고명철이 70년대생 소설가들의 작업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썼고, 이명원이 김선우론을, 이택권이 박용하론을, 홍기돈이 백민석론을, 김남석이 하성란론을 썼다. 젊은 세대 소설가들을 개관하는 글과 2편의 시인론, 2편의 소설가론이 발표된 셈이다. 기획특집의 제목은 '문화제도, 생산성과 불온성'으로, 저널리즘 리뷰·문학상 제도·영화판의 소비구조를 비판하는 외부 필자의 글이 실렸다.
제3집부터 반년간지로 탈바꿈한다. 기획특집의 제목은 '문학, 권력과 반권력'으로, 대표적인 세 계간지에 대해 두 명의 편집위원과 한 명의 외부 필자가 불화살을 쏜 글이 실렸다. 홍기돈은 90년대 백낙청의 비평세계를, 고명철은 {문학동네}를, 전병문은 {문학과 사회}를 본격적으로 비판하였다. 표지 인물로 삼은 이문열을 강준만과 이명원이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참호 속의 지식인들'을 기획특집의 제목으로 삼은 제4집에는 김용옥·강준만·홍세화·김지하의 글과 이념에 대해 공과를 논하는 글이 실렸다. 이명원이 윤지관의 문학권력론 비판에 대한 반론을 실은 것이 창간호부터의 제2 기획인 '선택과 배제'에서 눈에 먼저 뜨이는 글이었다.
2002년 상반기에 나온 제5집부터 편집위원 체제에 변동이 인다. 이명원이 편집주간으로 올라가고 하상일이 편집위원으로 가세, 4인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기획특집의 제목은 '문학·언론·권력'으로서, 민족문학작가회의·문학동네·조선일보의 권력에 대해 점검을 해보았고, 신참 하상일이 [비판적 글쓰기와 비평의 자의식―신철하·권성우·김정란의 비평을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2년여에 걸쳐 5집이 나오는 동안 이명원이 {해독}과 {타는 혀}를, 고명철이 {'쓰다'의 정치학}을, 홍기돈이 {페르세우스의 방패}를 출간하는데, 이 네 권의 문학평론집은 완고한 한국 평단에 내민 도전장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이 {비평과 전망} 이외의 책에 발표했던 글들도 대개 논쟁적인 글들이었다.
5권의 책을 통독한 지금 나는, 환부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던 우리 문단에 {비평과 전망}이라는 소독약이 나타나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편집위원 네 사람이 누누이 지적하고 공격해온 {창작과 비평}의 연고주의, {문학과 사회}의 패거리주의, {문학동네}의 상업주의에 대해 우려의 눈길을 보낸 사람이 결코 적지 않았지만 그 거대한 타이타닉호, 특히 문학과지성사나 그쪽 평론가에 대해 다소나마 비난을 했던 사람은 '배제'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었다. 이동하·진형준·임우기 등은 '배제'를 수모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어떻든 이제 막 30대로 접어드는 이명원·고명철·홍기돈이 자수성가하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나섰으니 신선한 느낌도 들었고,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동안 젊은 친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어서 장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아쉬운 부분이 자꾸만 눈에 뜨인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 한다. 내 글의 짧은 본론이자 결론은 이제 시작이다.
4. {비평과 전망}에 바란다
{비평과 전망} 5권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아쉬움은 다음 12가지이다.
1) 왜 책의 부제가 '전망을 내장한 비판 저널리즘'일까? 아무리 예리하게 비판하고 진지하게 성찰한다고 할지라도 저널리즘을 지향하고 있으므로 책의 무게가 가볍게 느껴진다. {비평과 전망}이 초창기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의 치열함과 진지함보다 윗길인가? 그렇지 않다. 두 계간지는 창간 후 적어도 10년간은 한국 문단과 지식인 사회, 그리고 문학 지망생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사회의식·역사의식·정치의식을 견지하고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비평과 전망}이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그들만큼 치열했는가? 저널리스틱한 글은 시효가 짧을 수밖에 없다. 우리 문학과 문단의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문학 권력에 대한 비판은 시기심 때문이 아닌가? 나는 앞에서 "지난 몇 해 우리 평단의 가장 큰 화두가 '문학 권력'이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고 말한 바 있다. 권력이 있으면 당연히 그 권력을 행사하게 마련이다. 권력 집단이 크게 잘못하는 것이 있을 때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소장 문학평론가의 의무임에 틀림없지만 편집위원들이 창작과비평사·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 세 출판사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책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판을 하려면 과거 이어령처럼 [우상의 파괴]를 들고 혜성과 같이 등장하여 상대가 누구이건 싸움꾼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들던가 하지 않고 몸은 몸대로 사리면서 권력자를 향해 권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하고 있으니 전폭적인 동의를 보내기가 어렵다.
3) 문학평론가라면 동시대의 작품을 폭넓게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비평과 전망} 동인은 이 노력이 부족하다. 책이 5권 나오는 동안 편집위원이 쓴 작가론과 작품론의 편수가 너무 적다. 물론 각자가 낸 평론집에는 텍스트와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비평과 전망} 지면에서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좀더 활발히 전개되었으면 한다. 작품을 배제한 문학 일반론과 문학 당위론이 얼마나 공허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 선배 평론가가 있지 않은가. 흔히 말하는 '문지 4K'의 젊은 시절의 평문을 보라. 그들은 모여서는 술을 마셨지만 집에 가서는 작품을 읽었다. 작품에 대한 정치한 분석과 엄정한 평가가 있어야만 {비평과 전망}의 값어치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좋은 작품은 동시대의 가장 고민스런 부분과의 집요한 싸움의 결과물이다. 그 작품에 대한 담론이 문학평론의 본질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평문이 오래 남을 평문이 아닐까.
4)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만스럽다면 권력 집단의 은덕을 입지 못해 소외된 작가와 시인의 좋은 작품을 찾아내 정직하게 평가해주는 작업을 하면 어떨까. 학연과 지연, 문예지 연고가 너무나 크게 작용하는 우리 문단의 풍토를 확 바꾼다면 나는 {비평과 전망}을 향해 박수를 칠 것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거나, 속된 말로 '후진' 대학을 나와 등단했다면 불이익을 당하기가 십상이다. 지방 거주 문인이면 활동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등단 지면이 신통치 않으면 평생 곤욕을 치른다. 신춘문예 출신이어도 끌어주는 선배나 문예지가 없을 때는 도태되기가 쉽고, 지방신문 신춘문예 출신이면 등단했다고 봐주지를 않는다. 이런 관습을 앞장서서 깬다면 문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5) 비평은 있지만 전망은 없다. 21세기에 문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상업주의의 바람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영상 매체의 쇄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문학작품의 영화화에 따른 문제점은 없는가? 세계문학은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세계문학의 조류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편집위원이 할 법도 한데 지금까지는 없었던 듯하다.
6) 신인 발굴은 하지 않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문예지의 힘은 평론가의 역량과 아울러 좋은 신인을 확보하는 데서 오는 것인데 {비평과 전망}은 출발부터 머리카락 잘린 삼손 같다. 신춘문예가 가장 전성기였던 시절에 {창작과 비평}은 소설가 송영·윤정규·이정환·김춘복·손춘익을, 시인 김남주·김준태·김정환·이종욱·하종오를 배출하였고, {문학과 지성}은 시인 장영수·김광규·최석하·안수환·서원동·최승자·이성복·김혜순·박남철을 배출하였다. 좀더 적극적으로 신인 발굴 작업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7) 필자도 좀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필자 섭외의 고충은 눈물겨울 정도이겠지만 우리 문단은 권력 집단 소속 문인이 절대 다수인데 그 모든 이를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강만길·김철준·송건호·이기백·이만열·천관우·홍이섭 등이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 모두에 중요한 논문을 발표한 사학자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학과 지성} 창간호에는 정현종·윤상규와 더불어 이성부·조태일·김준태의 시가 재수록되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문학과 지성}의 색깔이 흐려졌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유아독존식의 자기 고집도 필요하지만 포용력을 보여주어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고립을 자청할 필요는 없다.
8) 비평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제는 가십 거리를 찾아 눈을 빛낼 것이 아니라 백 년 뒤에 읽혀질 평문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현이 왜 김현인가. 내 마음에 드는 작품에 골라 최선을 다해 분석·평가하고, 애정 어린 비판을 해주지 않았던가. 그의 평론 중 어떤 것은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고, 문장의 아름다움과 문체의 섬세함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평론문도 하나의 작품임에 틀림없으므로 언어의 연금술사 혹은 문장의 세공사로서의 노력이 투여되길 바란다.
9) 국문학도인지라 외국의 문학이론을 소개하고 평론에 적용하기에는 역부족일 테지만 동아시아 문학의 미래를 모색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베트남·캄보디아·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같은 나라의 작품을 읽고 깊은데 읽을 수가 없다. {비평과 전망}이라도 우리와 피부 색깔도 비슷하고 일본으로부터 식민지 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들의 문학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정말 고맙겠다. 그리고 고전문학 비평이론은 잘 모르기에 감히 당부하고 싶다. 공부를 좀 하시어 국적 있는 평론을 하시라고. 이 땅의 문학평론가들은 외국의 이론을 장구한 세월에 걸쳐 번역·소개하고, 학습·인용해왔다. 지금도 석사논문 열에 일곱은 라캉을 들먹인다.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이제현의 {역옹패설}에 비평이론이 펼쳐져 있음을 이 땅의 평론가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인시화} {동문선} 등에도 뚜렷한 비평의식이 전개되어 있었고, 조선조 후기에 남용익·이익·박지원·이덕무·정약용·홍석주 등은 작시론이니 비평론이니 효용론적 문학론이니 하는 문학론을 전개하였다. 우리 조상의 문학론이 인용되어 있는 평론문과 연구논문을 보기란 쉽지 않은데, 우리를 모르고 남을 알면 속 빈 강정이 되기 쉽다. 강력한 적을 향해 자꾸 잽을 날리려 하지 말고 한 펀치에 링에 뉘일 강력한 훅을 준비했으면 좋겠다. 깊이 있는 평론, 문체의 미학을 아는 평론, 그리고 우리 것을 아는 평론을 써주시길 간곡히 당부한다.
10) 한국 평론의 문제점 중 하나가 시와 소설의 평가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희곡·수필·아동문학·시나리오·방송대본·만화·오리지널 시나리오·소설을 각색한 시나리오·애니메이션 대본 등에 관해서도 문학평론가가 연구하면 안 될까. 문예지에 이런 실으면 품격이 떨어지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수필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역정}(리영희), {장정}(김준엽),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을 수필문학으로 간주하여 문학평론가가 이들 작품의 의의에 대해 연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추리소설·환타지 소설·공상과학소설·역사소설·연애소설 등은 상업성이 농후하므로 영원히 논외로 쳐야 할 것인가.
11)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문학의 유통구조에 대해서도 글이 나왔으면 좋겠다. 자본의 힘과 작품의 질, 그리고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하는 주문이다. 베스트셀러의 탄생과 흥망성쇠에는 어떤 메커니즘이 있을지 모른다. 독자가 작품을 잃지 않고 문학평론가가 작품을 연구하지 않으면서 '문학, 권력과 반권력'이란 기획특집이 마련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세 편의 글이 청량제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처방전은 아니었다. 그래서 '전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앞에서도 했던 것이다.
12) 사이버문학의 엄청난 확대가 바람직한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새로운 시가 매일 수도 없이 발표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문학은 어떤 모습으로 목숨을 유지할까. 여기에 대한 고민과 성찰 내지는 진단과 처방을 {비평과 전망}이 해볼 법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21세기 문학의 존립 여부가 여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 문예지의 앞날을 위하여]({한국 현대시 비판}, 월인, 2000)란 글에서 썼던 몇 마디를 인용한다. 문예지들 특집이 대체로 빈약한 것을 보고 내가 제기한 의견이었다. "바로 앞 호 최악의 작품에 대한 월평, 유명한 기성작가의 졸작에 대한 비판, 평가가 지나치게 절상되어 있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판, 문학평론가의 평가에 대한 시인·소설가의 반박, 문학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작품에 대한 재조명, 창작 희곡에 대한 관심, 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제3세계의 시나리오 게재, 교포 작가들의 활동에 대한 관심과 작품 번역, 해외에서의 국내 작가 소개 상황, 해외 문단의 흐름, 독자수용의 측면에서 고찰해본 환타지 소설의 의미, 세계 전자출판 시장의 현황, 대학 문학 교육의 문제점, 대학 문학 교재의 문제점……."
우리 문학은 미래가 그리 밝지 못하다. 문학작품을 많은 독자가 읽고, 문학 판에서 담론이 활발히 전개되고, 좋은 작품이 우후죽순처럼 쑥쑥 나오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오면 오죽이나 좋으랴. 그러나 지금 이 땅의 문학인 중 일부는 '권력과 영광'을 쫓아다니고, '오만과 편견'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상업주의의 만연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상업주의를 표방한 작품의 질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데 순수문학 진영에서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평과 전망}이 해야 할 일은 이처럼 산적해 있다. 30대 초반의 젊은 네 사람이 만드는 {비평과 전망}이 21세기 우리 문학에 크나큰 지진을 일으킬 진원지가 되기를 소망한다. (82매)
이승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등.
시론집 {생명 옹호와 영원 회귀의 시학} {한국 현대시 비판} {백 년 후에 읽고 싶은 백 편의 시} 등.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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